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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전기 1권(18화)
제8장 권마(拳魔)(3)
주루에 들어서면서부터 마음에 걸렸던 노인이었다. 묘하게 진호의 감각을 자극하던 노인이 권마라는 사실을 알고 진호는 호기심이 동했다. 추진양과의 일전은 너무 쉽게 끝나 버렸다. 자신이 보기에도 추진양은 아직 보법이 미흡했다. 그래서 직접 나서기로 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과 직접 마주하여 보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권마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명성이나 직위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마주 서는 순간 상대를 직감하는 것이다.
권마의 왼손은 장을 펴고 오른손은 주먹을 쥔 채 단전에서 한 자 떨어진 거리에 마주 보며 멈추어 섰다. 추진양이 취했던 자세와 비슷하였지만 조금 달랐다. 권마가 반야금강권을 변형하여 만든 자세였다. 권마의 양손으로 순식간에 붉은빛이 감도는 기운이 뭉쳐 들더니 뚜렷한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권강(拳|)!”
궁연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쳤다. 완벽한 형태의 권강이었다.
주위의 놀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 사람은 서로를 관조하며 말없이 노려보고 있었다. 권마나 진호 정도의 고수들이라면 상대를 마주할 때 견(見)을 하지 않고 관(觀)을 한다. 단지 눈으로 상대의 물리적인 움직임을 보는 견(見)의 단계는 이미 지난 지 오래인 두 사람이었다. 기감을 통해 주위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는 관견(觀見), 혹은 관법(觀法)이라는 단계야말로 진정한 고수의 필수 조건이었다.
꽝!
갑자기 권마의 오른손이 뻗어지며 붉은 유성처럼 권강이 뻗어 나와 진호가 서 있는 자리에서 폭음을 내며 터졌다. 그러나 이미 진호는 옆으로 이동을 하고 없었다.
펑!
권마가 선 자리에서도 폭음이 터졌다. 진호가 이동하면서 격공장을 발출한 것이다.
“십단금!”
이번엔 권마의 입에서 외침이 터졌다. 자신이 권강을 뿌리는 순간 자신을 향해 몰려드는 기의 운집을 기감을 통하여 느꼈다. 격공장이 일으키는 현상이었다. 잠시 갈등을 했다. 왼손의 반야혈장으로 받아칠까 하다가 왠지 모를 불안감에 몸을 이 보 옆으로 이동을 하였다. 그런데 자신이 섰던 자리에 십단금이 터진 것이다.
무당파 최고 절기 중의 하나인 십단금은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소리 없이 다가오는 무형의 격공장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다. 절정을 넘어선 경지에서는 기감을 통해 관하므로 기의 움직임을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기감은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육감(六感)의 구체적인 형태이다. 그러나 십단금의 진정한 무서움은 피하지 않고 맞받아쳤을 때에 있었다. 열 번이나 중첩되면서 위력이 강해지는 격공장을 마주한다는 것은 초절정의 고수라 하더라도 두려운 것이다. 진호가 그것을 대성하였는지는 모르지만.
다시 순식간에 진호와 권마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다가오던 권마가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오른 주먹을 진호의 미간을 향해 번개같이 뻗었다. 너무나 빠른 주먹에 진호가 미처 피하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악!”
당묘화의 입에서 뾰족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권마의 붉은 강기가 실린 주먹이 진호의 얼굴을 짓뭉개 버렸다. 당묘화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진호는 멀쩡하였다.
“금강부동!”
이번엔 궁연의 입에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진호의 몸에서 극성의 금강부동보가 발휘된 것이다.
펑!
진호가 오른손으로 면장을 펼쳐 반야혈장을 머금고 있는 권마의 왼손을 쳤다. 진호가 펼친 극성의 금강부동보에 잠시 놀란 권마가 다급하게 진호의 면장을 막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진호가 오른발을 반보 앞으로 내며 왼손으로 권마의 우측 턱을 노리고 주먹을 뻗었다. 권마는 다급하게 턱을 젖혀 진호의 왼 주먹을 피하고는 고무줄처럼 뒤로 튕겨져 물러났다.
“크음……. 그 나이에 권강이라니…… 대단하구나.”
말을 하는 권마의 턱에는 핏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권마의 말에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진호의 주먹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진호의 주먹에서 권마와 같은 형태를 이룬 기의 결집을 볼 수는 없었다.
“더 하시겠소?”
진호가 담담하게 말했다.
“갈! 한 수 득수했다고 기고만장하지 마라!”
권마가 노성을 지르며 신법을 펼쳐 날아들었다. 권마가 날아들면서 펼친 혈금강권을 진호가 가볍게 몸을 진동시키며 피하자, 권마의 왼손이 아닌 오른발이 진호의 왼 허리를 파고들었다. 순간 진호가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일 보 앞으로 뛰어들며 오른 주먹을 뻗자, 권마가 급하게 왼손의 반야혈장으로 막음과 동시에 뻗어진 오른발을 접어 무릎으로 다시 진호의 옆구리를 찍어 왔다. 그러자 진호가 왼 무릎을 세우며 권마의 대퇴부 하단을 공격하였다. 불리해진 권마는 왼발 하나로 몸을 띄운 뒤 몸을 뒤집으며 왼발로 진호의 오른쪽 목을 찍어 왔다. 그 발에 걸린다면 진호의 목과 쇄골이 박살이 나 버릴 것이다. 그러나 진호는 다시 오른발로 한 발 나아가 거리를 줄여 버리며 왼발 뒤꿈치에서부터 뽑아 올린 전사경을 오른쪽 어깨에 담아 철산고의 수법으로 권마의 오른발 허벅지 뒤쪽을 쳐 올려 버렸다.
“크윽!”
권마가 나직이 신음을 뱉으며 비룡번신의 수법으로 허공에서 몸을 뒤집어 비틀거리며 겨우 내려섰다. 그 순간 진호가 궁신탄영을 펼치며 앞으로 나아가 내려서는 권마의 오른쪽 가슴에 주먹을 뻗었다.
꽝!
“크억!”
권마가 피를 토하며 뒤로 주르륵 밀려 나가다 벽에 의지하고 겨우 기대어 섰다.
“금강호체공을 깨뜨리다니……. 놈! 전사경에 강기를 담은 것이냐?”
“그렇다고 해 둡시다.”
“크음, 진호라고 하였더냐? 정말 대단하구나. 그러나 다음엔 이리 당하지 않을 것이다!”
벽에 기대어 진호를 한참 노려보던 권마 초일헌은 말을 뱉고는 옆의 창으로 몸을 날려 사라져 버렸다. 교주의 명을 이행해야 하는 입장만 아니라면 진호와 끝을 보고 싶었지만 자신을 믿고 명을 내린 교주를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었다.
권마가 달아나자 진호는 왼손으로 오른 손목과 뺨을 몇 번 어루만지더니 돌아섰다.
돌아서는 진호의 오른 손목과 오른 뺨은 벌겋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상황이 끝나고 권마가 달아났음에도 일행들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붉은 강기와 무형의 강기를 담은 주먹들이 육안으로는 볼 수도 없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며 폭음들이 터져 나오니, 가히 천외천의 경지를 오늘 본 것이다. 그나마 절정의 끝자락에 머물고 있는 궁연이나 절정에 든 남궁전만이 겨우 한숨을 지을 뿐, 다른 이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니미럴, 저게 풍운대 위사라고? 시불, 풍운무적! 어떤 시러배 잡놈이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별호 하나는 제대로 지었군. 클클.’
털털거리며 자리에 앉은 궁연은 고개를 흔들며 술병을 잡아 갔다.
“아 시바, 어떤 쉐리가 뒤에서 욕하는 거야.”
그 시각, 오늘도 열심히 야간 근무를 서고 있는 풍운대 위사 여문철은 새끼손가락으로 간지러운 귓구멍을 후벼 파며 툴툴거리고 있었다.
제9장 남매지정(男妹之情)(1)
“궁 숙부! 놈들의 소굴을 알아낸 게 사실입니까?”
남궁전이 다급하게 궁연의 방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방에는 궁연과 당묘화가 앉아 있었다. 남궁전이 들어서자 당묘화가 일어나 가볍게 목례를 하였다.
“그래, 일단 앉거라.”
궁연이 손사래를 치며 남궁전에게 자리를 권했다.
“어찌 된 일입니까? 살수들이 그렇게 쉽게 불다니요?”
남궁전이 자리에 앉으면서 재차 다그쳐 물었다.
“그러게 말이다. 니미럴, 독암대가 조지기 시작하자 그 옥수수 다 나간 놈이 얼마 개기지도 않고 웅얼거리며 술술 다 불었다는구나. 클클, 독암대가 독하긴 독한가 보네.”
궁연이 묘화를 한 번 슬쩍 보고는 대답을 했다.
“그래, 놈들의 소굴이 어디랍니까?”
“음, 화소도라고 태호 한가운데 있는 섬인데 이곳에서 서북방으로 배를 타고 세 시진 정도 가면 나온다고 하는구나.”
“그렇습니까? 저도 어쩐지 이 근처 어디 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만.”
남궁전이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방의 아이들 말도 이곳에서 식량을 구입한 적이 몇 번 있다고 했으니 거짓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궁연이 말을 하며 왼손으로 괸 턱을 좌우로 비비면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 궁연과는 잘 어울리지 않지만 생각을 깊이 할 때 나타나는 버릇이었다.
“허면 어찌하시렵니까? 아무래도 확인은 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근데 좀 찝찝하지 않냐?”
궁연이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아무래도 너무 쉽게 분 것이 맘에 걸리는군요.”
남궁전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언뜻 이해가 되질 않았다. 맹에 대하여 먼저 도발을 감행할 정도에다 매복을 당해 보니 어설픈 살수 집단은 아닌 것 같았는데, 의외로 너무 쉽게 본거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렇지? 니미, 또 함정이 아닌가 싶은데……. 시바, 이거 한 번 당하고 나니 간땡이가 쪼그라들어서 말이야!”
궁연의 목소리가 짜증이 묻어나오며 조금 높아졌다.
“함정일 확률도 높은데 무턱대고 아이들을 보낼 수도 없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저희가 직접 가 보는 게…….”
남궁전이 조심스럽게 제안을 했다.
“제가 가겠어요!”
말없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당묘화가 끼어들었다. 궁연과 남궁전의 눈이 동시에 당묘화를 향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네가 가겠다니?”
남궁전이 놀란 눈으로 당묘화를 쳐다보며 물었다.
“놈들의 소굴을 확인하는 일은 저와 독암대가 맡겠단 말이에요.”
당묘화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클클, 묘화 이 계집애야. 네가 나를 피 말려 죽이려고 하느냐? 만에 하나 네가 잘못되면 독왕 어르신이 내 가죽을 벗기려 들 게야. 아서라!”
궁연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실소를 흘렸다. 궁연은 당묘화의 할아버지, 즉 독왕 당만후가 얼마나 손녀딸을 아끼는지 잘 알고 있었다. 위험을 알고서도 손녀딸인 당묘화를 보낸 것을 독왕이 알게 되면 정말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할아버지도 제가 화초가 되길 원하지 않아요! 이번 일은 제가 맡겠어요!”
당묘화는 재차 단호한 의지를 내비쳤다.
“정히 그러면 독암대만 보내면 되질 않느냐? 아무래도 그들은 익숙한 일일 테니…….”
남궁전도 당묘화가 직접 가는 것은 말리고 싶었다.
“아뇨, 궁 숙부가 개방 제자들의 희생을 두려워하듯이 독암대 역시 당가의 핏줄들이에요. 저만 빠지고 사지(死地)가 될 수도 있는 곳으로 보낼 순 없어요!”
당묘화가 정색을 하고 말을 했다. 오늘따라 당묘화에게선 평소의 천방지축 말괄량이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흠…… 그게…….”
당묘화가 정색을 하고 나오자 궁연으로서도 더 이상 말릴 수만은 없었다.
“그렇게 알고 준비를 하겠어요.”
말을 마친 당묘화는 일어서서 가볍게 읍을 하고는 방을 나가 버렸다.
궁연과 남궁전은 한참을 말없이 서로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묘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남궁전이 먼저 입을 열었다.
“흠, 아무래도 그들의 말이 맞는 건가?”
궁연이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들의 말이라뇨?”
남궁전이 의아한 눈으로 궁연을 쳐다보았다.
“이번에 화산고학을 자빠지게 만든 독이 당가의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어.”
궁연이 양손으로 얼굴을 비비며 말을 뱉었다.
쾅!
“궁 숙부! 무슨 말씀입니까! 그럼 당가가 이 일에 관여를 하였단 말입니까!”
남궁전이 탁자를 치고 일어서며 노화를 터뜨렸다. 당가가 관련이 되었다면 곧 자신의 남궁세가가 포함된 백호도 관련이 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당가가 단독으로 청룡을 건드릴 수는 없으니 말이다.
“허, 이놈이! 내가 그랬다는 게 아니고 그런 말이 돈다는 거지. 앉아, 이놈아! 지붕 안 무너져!”
궁연이 답답한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끙! 찬찬히 이야기해 주십시오! 무슨 이야기입니까?”
남궁전이 잠시 치솟은 분기를 가라앉히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물었다.
“그 화 관주의 사인이 음양고라는 게야!”
“음양고라면…….”
남궁전도 들은 바가 있는지 나직이 되뇌었다.
“그래. 워낙 은밀한 이야기긴 하지만 알 사람들은 알지. 당가에서 오래전에 실험을 하다가 없앤 걸로 되어 있지. 그리고 독암대가 이곳으로 출동했다는 게 맘에 걸려.”
궁연이 다시금 왼손으로 턱을 괴고 비비면서 말을 했다. 그 말이 맞는다면 독암대가 이곳으로 온 이유는 음양고의 흔적을 찾아 지우려고 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결정할 사안이 아닌 것이다.
“허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아무래도 당가만 보내긴 그렇지 않느냐?”
궁연은 남궁전의 동의를 구하는 듯이 물었다.
“그럼 누굴 생각하고 있습니까?”
“청룡의 관가 놈이나 현무의 진양이 놈은 몸이 성치 않으니 보내긴 어렵고…… 한 놈밖에 없는데 그놈이 말을 들어주려나?”
“진 위사 말입니까?”
남궁전이 눈을 반짝이며 궁연을 쳐다보았다.
“그렇지. 아무래도 수공에도 능하고 무위는 이미 말할 것도 없으니, 일이 잘못된다 해도 당가 계집애를 살려서 데리고 올 능력도 되고 말이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이야기였다. 궁연은 이미 음양고의 존재를 밝힌 이가 진호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어쩌면 당가에서는 살수들보다 진호라는 존재를 더 지우고 싶어 할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