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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전기 1권(17화)
제8장 권마(拳魔)(2)


‘정아!’
당묘화는 동생을 생각하자 서글픈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문기 아저씨, 맹의 사람들이 묵고 있는 객잔 옆에 포로로 잡은 살수들이 몇 명 있어요. 제가 궁 숙부에게 부탁을 해 놓을 테니 그놈들을 다그쳐서라도 놈들의 본거지를 알아내 주세요.”
당묘화는 격한 감정을 애써 추스르고 당문기에게 지시를 하였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곧 작은공자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당묘화와 당묘정 남매의 우애를 익히 알고 있는 당문기가 당묘화를 다독거렸다.

***

“이런, 니미럴! 남궁전, 이 배신자 놈아! 아재비는 노구를 이끌고 뭐 빠지게 돌아다니며 고생하고 있는데, 네놈이 나를 빼고 술판을 벌여?”
개방의 제자들과 순찰대를 통해 정보를 들으러 나갔던 궁연이 주루에서 대작을 하고 있는 남궁전과 진호를 발견하고는 고함을 치며 뛰어들어 왔다.
“끙! 궁 숙부, 진정하시고 앉으세요. 이 조카가 고생하시는 숙부님을 이렇게 기다리고 있지 않았습니까?”
“엉? 그러냐? 헤헤헤, 고맙다. 그럼 그렇지, 이 목석같은 인간이랑 뭐 술맛이나 나겠냐?”
궁연이 남궁전의 앞에 앉아 있는 진호를 슬쩍 보고는 실실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궁 숙부, 뭐 얻은 소식이라도 있습니까?”
남궁전이 궁연에게 잔을 건네며 물었다.
“소식이야 많았지. 옆에 이 목석과 관계된 소식도 있고, 권마를 근방에서 봤다는 황당한 소식도 있고 말이야!”
분주 한 잔을 들이켠 궁연이 슬쩍 진호를 한 번 쳐다보고는 잔을 내려놓으며 대답을 했다.
“권마요?”
남궁전이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물었다.
“그래, 권! 마! 그 마교의 호법인 권마 초일헌 말이다. 지미, 십오 년 전에 마교와 눈이 맞아 마교로 들어간 놈이 갑자기 절강 땅에 왜 나타난단 말이야!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입에 침을 튀기며 권마를 외친 궁연이 분주를 따라 한 잔 들이켜면서 말했다.
“난데없이 권마가 혼자 왜?”
“우라질, 낸들 아냐? 방의 애새끼들이 그따위 보고를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젠장, 내가 이거 방을 너무 오래 떠나 있었나? 애새끼들이 정보력이 왜 이리 부족한 건지, 쓰……. 이번에 복귀하면 애들 교육 좀 단단히 시켜야지, 니미럴!”
궁연은 개방 제자들의 보고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투로 말을 했다.
“그런데 진 위사와 관계있다는 소식이란 게?”
남궁전이 진호를 한 번 쳐다보고는 물었다.
“킁, 드디어 대무당이 움직이게 되었어!”
“무당이 움직인다 하심은?”
“무당의 차기 장문인이 명진도장으로 결정됐다.”
“아! 명인도장 쪽으로 기운다는 말이 있더니 명진도장으로 결정되었군요.”
남궁전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렇다더군. 차기 장문인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세 싸움을 하느라 맹의 일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였는데, 이제 결정이 났으니 뭔가 움직임이 있겠지. 게다가 원래 진산제자와 속가제자를 구분함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명진도장이니만큼 아마도 적극적으로 속가제자를 받아들여 세상 밖으로 나올 것이야.”
궁연은 평소와는 달리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명진도장과 진 위사가 관계가 있습니까?”
“킁, 그의 가형이 명진도장의 제자이니 관계가 있어도 단단히 있지.”
궁연이 먼저 진호를 보더니 술잔을 들이켜며 말을 뱉었다.
“헛! 그래요? 그럼 자네 가형의 성함이?”
남궁전이 조심스럽게 진호를 보고 물었다.
“유운일검 진성! 그가 저 목석의 가형이다.”
궁연이 진호를 대신하여 답을 하였다.
“유운일검 진성! 하, 역시 뿌리 없는 나무가 없다더니…… 어쩐지…….”
남궁전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진호를 보았다. 진호 역시 친형인 진성의 이름이 언급되자 가볍게 안색이 변하였다.
진호의 안색이 가볍게 변하는 것을 본 남궁전이 궁연을 한 번 보고는 설명을 이었다.
“자네 가형과는 작은 인연이 있었네. 육 년 전 자네 가형인 진성 그 친구와 비무를 한 적이 있었지. 결과적으로 내가 반초 차이로 힘겹게 이기긴 하였지만, 자네 가형이 봐준 느낌이 강했어.”
“그렇습니까?”
진호 역시 약간은 의외인 듯한 표정이었다.
“자네나 형이나 참 무뚝뚝하기는. 같은 항주에 있으면서도 기별 한 번 없었다니…….”
남궁전이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들이켰다.
“그건 그거고, 아이들이 나름대로 조사를 해 보니 아무래도 놈들의 소굴이 이 근처 어디 섬인 것 같다더구나.”
“어쩐지 저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남궁전이 고개를 끄덕이며 궁연의 말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대량의 식량을 구해 가는 이들이 있다더군.”
“아무래도 내일 포로들을 심문해 봐야겠습니다.”
남궁전은 동감한다는 듯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궁 숙부! 부탁이 있어요.”
밖에서 주루로 들어온 당묘화가 궁연을 발견하고 앞으로 오면서 말을 했다.
“엉? 묘화 아니냐? 야밤에 처녀 아이가 어딜 돌아다니느냐?”
“독암대 일 개 조가 이곳에 왔어요.”
당묘화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며 진호를 한 번 보고는 입술을 지그시 깨문 후에 말을 꺼냈다.
“그래, 그놈들이 왔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들에게 포로를 심문하게 해 주세요.”
“그놈들에게?”
궁연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예, 그들이라면 놈들의 본거지를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흠, 하긴 그놈들이라면 전문가라고 할 수 있으니…….”
“부탁드릴게요!”
당묘화가 다시 한 번 머리를 조아리며 청을 했다.
“뭐…… 그러자꾸나. 어차피 날이 밝으면 그놈들을 족치려고 했으니, 누가 하나 상관은 없겠지.”
궁연은 제법 취기가 도는지 뺨이 발그레해졌다.
“다들 여기 계셨군요!”
추진양이 조장들과 함께 객사 쪽에서 나타나며 큰 소리로 외쳤다.
“뭐야! 네놈들은 또 왜 안 자고 나왔냐?”
“목이 칼칼해서 당최 잠이 와야지 말이죠. 어쩌나 고민하고 있는데, 순찰부주님의 카랑카랑하신 목소리가 저희를 여기로 인도하더군요. 하하하!”
추진양이 자리로 다가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인도? 진양이 너 이 새끼, 그따위로 고상한 말투 쓰다가 뒈지게 맞는다. 클클.”
궁연이 술을 한 잔 들이켜고는 추진양에게 주먹을 쥐어 보이며 말했다.
“너무 시끄럽군.”
추적조 일행들의 귀를 울리는, 낮지만 너무나 똑똑하고 분명한 소리였다.
일행의 시선이 모두 흑의 노인을 향했다. 노인은 술잔을 놓고 일어서서 천천히 돌아섰다. 흑의 노인은 육 척 장신의 키에 매서운 독수리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비정상적으로 큰 노인의 주먹이었다.
“권마!”
추진양과 궁연이 동시에 외쳤다.
흑의 노인이 바로 권마 초일헌이었다. 그는 장강수왕 하원백을 만나고 오는 길이었다. 하원백은 그의 의제로서 남달리 각별한 사이였다. 권마 초일헌이 마교의 호법이 된 데는 사연이 있었다. 원래 소림 속가 문파 중 가장 큰 문파인 금강문의 제자였던 초일헌은 타고난 무재로 발군의 실력을 보이며 산동제일의 권사로 이름을 떨친 사람이었다. 그런데 우연하게 산동 악가의 자제인 악능보가 가문의 위세를 믿고 초일헌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딸을 희롱하자 그에 격분하여 악능보를 때려 죽여 버린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을 기화로 평소 소림의 지원을 업고 승승장구하던 금강문의 기세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산동 악가가 금강문을 핍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평소 초일헌의 뛰어난 무재를 시기하고 있던 대사형 주민구가 초일헌 한 사람으로 인해 산동 악가와 대립할 수 없음을 주장하여 사문에서 그를 축출하여 버리고 말았다.
그 후로 그는 악가의 추적을 받으며 이리저리 피해 다녀야 했다. 급기야는 악가가 손을 써서 무림공적이라는 누명까지 덮어쓰게 되자 중원에서 발 디딜 곳이 없었다. 그때 그를 받아 준 사람이 장강수왕 하원백이었다. 하원백과 의형제를 맺고 호형호제하던 그는 의제인 하원백이 자신으로 인해 곤란해질 것을 저어하여 스스로 마교에 투신하게 되고, 그곳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호법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교주의 밀명을 받고 모처럼 중원에 나온 김에 하원백을 만나 보고 가려고 그를 찾았다. 그런데 초일헌이 만난 하원백은 예전의 그 호쾌한 장강수왕 하원백이 아니었다. 수양아들이자 제자인 장강교룡 하진강에게 단전을 폐쇄당한 하원백은 그저 병들고 볼품없는 초라한 촌로에 지나지 않았다.
장강에서 일어난 모반의 진실을 안 초일헌은 격분하여 당장 하진강을 때려죽이고자 했으나, 하원백이 극구 만류를 하고 장강의 모반에 교의 군사 마뇌자의 직속부대인 암밀대가 관여한 것을 알고는 어찌하지 못하고 물러난 것이다. 자신이 마교의 호법이라고는 해도 마교 군사인 마뇌자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교주의 신임을 받는 호법이기는 하지만, 정통 마교인이 아닌 때문이었다. 초일헌은 그 사실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복잡한 심사를 달래 보려고 태호가 내려다보이는 주루의 창가에 앉아 자작하고 있는데 주위가 너무 시끄러워 짜증이 났던 것이다.
“궁가 거지로군.”
권마 초일헌이 만리개 궁연을 알아보았다.
“오랜만입니다, 초 선배.”
“그렇군. 자네는 여전하군. 그 포악한 말투 말일세.”
권마는 좀 전에 궁연 등이 나눈 대화를 들은 모양이었다.
“쩝! 그게 그렇죠.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확실히 그건 그런가 보군.”
초일헌이 어느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추적조 일행을 돌아보면서 말을 했다.
궁연이 돌아보니 남궁전을 비롯한 일행들이 이미 잔뜩 긴장을 한 채 포위를 하고 있었다. 다만 진호만이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호기심을 담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물러들 서라. 지미, 지금 권마랑 한판 하자는 거냐?”
궁연이 급하게 남궁전에게 전음을 날렸다.
“궁 숙부, 그래도 무림공적인데…….”
“옘병, 공적은 무슨…….”
궁연은 속이 탔다. 권마 초일헌! 자신을 제외한 추적조 일행들은 이름만 들었지 그 실체를 모르는 것이다. 십오 년 전 당시 개방의 강서 분타주로서 권마의 행방을 탐문하던 중 권마의 무위를 직접 본 적이 있었다. 황금빛 권강을 두른 커다란 저 주먹에 지역의 패주를 자처하던 악가의 장로 세 명이 두개골이 박살나 으스러지면서 처박히는 모습은 정말 처절할 정도로 끔찍했다. 십오 년이 지난 지금, 그것도 마교에서 보낸 세월인데 얼마나 더 무서워졌을지 모를 일이었다.
“재미있군!”
권마가 입가에 냉소를 흘리며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단지 한 걸음을 내디뎠을 뿐인데 권마의 기세가 달라졌다. 궁연을 비롯한 일행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한 걸음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그러나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추진양이었다. 추진양은 어금니로 입술을 꽉 깨물고 권마 앞에 버티고 섰다.
추진양을 바라보는 권마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나는 물러설 수 없소!”
마치 자기 최면이라도 하는 듯 추진양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고는 왼손은 손바닥을 편 채 옆구리에 붙이고 오른손은 주먹을 말아 쥐어 왼쪽 상단으로 비스듬하게 내민 상태에서 양 무릎을 살짝 구부리며 자세를 잡았다.
“반야금강!”
권마가 나직이 외쳤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자세였다. 바로 자신의 사문이었던 금강문의 비전절기인 반야금강권의 기수식이었기 때문이다.
“너는 추명이와 어떻게 되느냐?”
추진양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권마가 약간은 부드러워진 안색으로 추진양에게 물었다.
“엄친이시오.”
“역시 그렇구나, 예전의 명이를 보는 것 같더니.”
권마 초일헌은 유난히 자신을 잘 따랐던 막내 사제 추명을 떠올렸다. 자신이 떠나던 날 담장 아래서 말없이 울먹이고 있던…….
“명이를 봐서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니 물러나거라.”
“그 더러운 입으로 감히 부친의 이름을 담지 마시오!”
추진양이 눈을 부라리며 고함을 쳤다.
“놈! 좋다 와라!”
추진양의 호기가 가상한지 권마는 가볍게 오른 주먹을 쥐고 내밀어 자세를 잡았다.
“금강문의 제십삼대 제자 추진양이 반도를 처벌하고자 하오!”
호기롭게 외친 추진양이 오른손을 뻗어 권마의 인중혈을 가격해 갔다. 추진양의 권에는 약하게 금빛으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권기가 담겨 있는 것이다. 권마가 머리를 가볍게 틀어 추진양의 오른손을 피하는 순간 추진양이 금빛으로 물든 왼손으로 반야장을 펼쳐 권마의 복부를 공격했다. 바로 반야금강권의 제일초인 노룡복호였다. 그러자 권마는 좌로 한 걸음 횡으로 빠지면서 피해 버렸다. 다시금 추진양의 오른 주먹이 니권의 형태로 권마의 관자놀이를 노리고 날아갔다. 그러나 권마가 슬쩍 아래로 몸을 끌어내리고 오른손으로 추진양의 옆구리에 촌경을 뿌렸다.
“크억!”
추진양의 허리가 접혀진 채 옆으로 비틀거리며 물러서더니 무릎을 꿇고 말았다.
“아직 보법이 부족하구나! 보와 권이 둘이 아님을 아직 깨치지 못하다니…….”
권마는 쓰러진 추진양을 보며 담담하게, 마치 사문의 어른이 제자를 타이르듯이 말을 하였다.
말을 마친 권마가 안색을 바꾸며 정면을 쳐다보았다. 진호였다. 어느새 진호가 두 손을 늘어뜨린 채 권마의 앞에 서 있었다. 권마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는 누구냐?”
“풍운대 위사 진호요.”
진호가 무표정하게 대답을 하였다.
“풍운대 위사?”
권마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