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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전기 1권(16화)
제7장 추적조(追跡組)(3)
“악!”
당묘화의 입에서 뾰족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진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잠시 당황하여 방심한 사이, 갈고리 두 개가 당묘화의 발목을 감으며 물속으로 끌어내렸다. 추적조의 다른 일행들이 어떻게 손써 볼 틈도 없이 당묘화의 신형이 수면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물밑으로 끌려 내려온 당묘화는 잠시 방심한 사이 갑작스럽게 당한 터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두 발목이 갈고리와 연결된 사슬에 감겨 있어 운신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살수 하나가 찔러 온 장창을 황망 중에 몸을 틀어 가까스로 피하긴 하였으나, 창두에 박힌 강철 날의 차가움이 느껴질 정도로 가깝게 얼굴을 스쳐 가자 정말 아찔하였다. 더구나 호흡마저 가빠 오기 시작했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며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다.
‘왜 그때 그를 찾았을까? 그가 보이지 않았을 때 밀려든 그 불안감은 또 뭔가?’
희미한 의식 너머로 살수의 장창이 자신의 심장으로 박혀 드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장창이 갑자기 심장 바로 앞에서 더 이상 찔러 오지 못하고 멈추어 섰다. 진호였다. 환영처럼 진호가 나타나 발도와 동시에 장창을 잘라 버리곤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며 장창을 든 살수의 목을 갈라 버렸다. 살수의 목을 가른 진호의 도가 되돌아오면서 당묘화의 발목을 감은 쇠사슬에 닿자, 쇠사슬은 두부처럼 잘려 나갔다.
진호의 몸이 갑자기 밑으로 쑥 가라앉았다. 진호의 머리 위로 두 개의 갈고리가 ‘휙’ 하고 지나갔다. 남아 있던 살수 두 명이 뒤에서 갈고리를 휘둘러 진호를 공격한 것이다. 진호는 다시 대각선 방향으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더니 도를 잡은 오른 손목만을 가볍게 흔들어 살수들의 목을 그어 버렸다.
진호가 방향을 바꾸어 당묘화 쪽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남아 있던 두 명의 살수들이 갈고리가 잘려 나간 쇠사슬들을 던져 버리고는 허리춤의 아미자를 뽑아 당묘화를 찔러 가고 있었다. 진호가 당묘화의 옆을 지나치며 살수들을 막아서면서, 찔러 오는 두 개의 아미자 중 하나는 왼손의 손등으로 니권을 펼쳐 떨쳐 버리고 남은 하나는 오른손의 도를 비스듬히 마주 찔러 아미자를 밀어내면서 살수의 목까지 꿰뚫어 버렸다. 동시에 진호의 왼 손목이 바깥에서 안쪽으로 부드럽게 회전하더니 마지막 남은 살수의 오른쪽 가슴에 닿았다 떨어졌다. 살수는 극심한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칠공에서 피를 뿌리며 가라앉았다. 진호가 펼친 침투경이 살수의 심장을 박살 내 버린 것이다.
“푸아!”
진호의 손에 이끌려 물 위로 고개를 내민 당묘화는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당묘화가 정신을 차리고 옆을 돌아보니 진호가 옆에 떠 있었다. 무언가 말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자꾸만 망설여졌다.
“괜찮은가?”
그때 남궁전이 뒤집어진 배 위에서 두 사람을 향해 물었다.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진호가 일행이 있는 배 쪽으로 몸을 날렸다. 당묘화도 입술을 한 번 깨물고는 진호의 뒤를 따라 배위에 내려섰다.
“니미럴! 이놈들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야? 수중 매복까지 할 정도면…… 지미, 근데 이제 어떻게 돌아가나, 시파.”
궁연이 혼잣말로 투덜대었다.
남궁전이 돌아보니 이미 해가 진 후라 드넓은 호수에 어둑하게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하였다. 구멍 나고 뒤집어진 배에 의지하여 지나온 만큼 돌아가려니 자신이 생각해도 끔찍하였다. 남궁전은 무의식중에 진호를 쳐다보았다.
진호는 그때 어둠이 깔리는 수평선 저 너머를 쳐다보고 있었다.
“옵니다.”
진호가 나직이 일행을 향해 말을 하였다.
“뭐가?”
남궁전과 궁연이 동시에 진호 쪽을 쳐다보며 물었다. 두 사람의 눈에 수평선 저쪽에서 아른거리는 물체가 들어왔다.
“뭐야? 또 놈들인가?”
궁연은 짜증난다는 말투로 물었다.
“아마도 매복하였던 살수들을 태우러 왔을 것입니다. 아니면 확인을 하던가…….”
진호가 담담하게 대답을 하였다.
“그렇겠군. 음, 또 한바탕 드잡이를 해야 하나?”
남궁전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제가 맡겠습니다.”
말을 한 진호가 남궁전에게 전음으로 무슨 말인가를 하였다.
매복 지점으로 다가온 배는 장정 사십 명은 충분히 탈 만한 크기의 용두선이었다. 용두선의 갑판에는 상인으로 보이는 중년인 하나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주위를 살펴보고 있었다. 중년인은 처음 진호에게 발각된 혈검 구호에게 혈검 오호라고 불리던 자였다. 진호 등의 추적조를 유인하였다가 다시 매복 지점으로 살수들을 태우러 온 것이다. 그러나 매복 지점을 살펴본 혈검 오호는 뭔가 문제가 발생하였음을 직감하였다.
‘음, 정의맹 놈들도 없고 또 애들은 어디 간 거지? 아무도 없다니…… 매복!’
그 순간 잔잔하던 수면 위로 갑자기 인영 하나가 떠올랐다. 진호였다. 허공에 떠오른 진호의 손에서 노전 한 묶음이 용두선을 향해 날아가더니 부채처럼 펴지며 궁노를 겨누고 있던 살수들의 심장과 목에 박혀 들었다.
“파산비!”
혈검 오호가 비명처럼 부르짖었다.
진호가 쳐다보니 상인 복장을 한 중년인이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놈이다!’
진호는 그자가 바로 추적조를 유인했던 자임을 알아봤다. 허공에서 방향을 돌려 그자를 향해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물밑에 있던 추적조들도 갑판 위로 모두 날아올랐다.
진호의 기습으로 추적조의 접근을 허용한 이상 살수들은 더 이상 추적조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추적조들은 조금 전에 살수들의 매복에 당한 낭패를 갚기라도 하는 듯 거세게 살수들을 몰아쳐 갔다.
혈검 오호는 허공에 한참 떠 있다가 그대로 방향을 전환하여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진호의 모습을 보고 경악하였다.
“운룡대팔식?”
혈검 오호는 자신 앞에 내려선 진호를 보고 물었다.
“…….”
“곤륜인가?”
“…….”
“곤륜이 어찌 파산비를 아는가?”
혈검 오호는 진호가 묵묵부답 말이 없음에도 혼자 질문을 이어 갔다.
“살수치고는 말이 많은 놈이군.”
진호가 말을 뱉고는 몸을 날렸다. 혈검 오호는 다급하게 협봉검을 휘둘러 막아 왔다. 그러나 진호가 빨랐다. 이미 상대의 손목이 닿을 거리에 들어간 진호는 왼손으로 건곤조를 펼쳐 혈검 오호의 오른 손목을 잡고서는 역으로 틀어 버렸다.
“크악!”
혈검 오호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오른 손목이 부러져 나가며 검을 떨어뜨렸다. 진호는 왼손을 놓아주지 않은 채 오른손으로 상대의 턱을 찍어 버렸다. 혈검 오호의 이가 몽땅 튀어 나갔다. 그리고 오른발로 상대의 왼 발목을 찍어 눌러 꺾어 버렸다. 혈검 오호는 진호가 손을 놓자 그 자리에 맥없이 내려앉았다. 진호가 가혹하게 혈검 오호를 징치하고 나자 이미 상황은 끝나 있었다.
제8장 권마(拳魔)(1)
완만하게 굽은 도신이 열린 창틈으로 쏟아지는 달빛을 머금고 요요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도도한 도신의 자태를 자애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청년은 정좌를 한 채 행여나 입김이 닿아 도도한 이 아가씨가 토라질까 두려워 입가에 한지를 물고는 힘들게 구한 해동에서 난 동백유를 하얀 면포에 묻혀 정성스럽게 닦아 주고 있었다. 유난히 변덕이 심한 이 도도한 아가씨도 청년의 정성 어린 손길이 느껴지는 이때만큼은 부끄러움을 타는 새색시의 홍조처럼 발그레해진 빛으로 도신을 물들인 채 고분고분 청년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평소 표정에 거의 변화가 없는 무뚝뚝한 청년도 이때만큼은 입가에 따뜻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도도한 아가씨와 무뚝뚝한 청년이 가지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두 연인의 애정 어린 교감을 방해하는 인기척이 밖에서 났다.
“흠, 남궁전일세.”
청년은 진호였다. 매복의 위기를 넘기고 다시 무오촌으로 돌아온 추적조 일행은 흩어져서 각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남궁전이 진호가 투숙한 방으로 찾아온 것이다.
‘휴…….’
진호는 아쉬운 한숨을 쉬었다.
찰칵!
진호의 애도 ‘마사무네’가 단전 앞에서 도집의 입구를 잡고 있는 진호의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의 계곡을 따라 빠르게 미끄러지더니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아마도 단단히 토라진 모양이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진호가 방을 나서며 남궁전을 맞았다.
“괜찮다면 주루로 가서 술이나 한잔하지 않겠나?”
“흠, 그러시지요.”
남궁전이 객사 앞에 있는 주루를 향해 앞장을 섰다. 야심한 시각의 주루에는 염소수염이 난 초로의 늙수그레한 주인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창가엔 흑의 노인 한 명이 분주 한 병을 앞에 놓고 창 너머로 태호에 잠긴 달을 보며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남궁전이 졸고 있는 주인을 깨워 분주와 간단한 안줏거리를 시키는 사이, 진호가 흑의 노인을 한 번 힐끗 보고는 입구 쪽에 자리를 잡았다. 남궁전이 진호의 앞에 자리하고 앉자, 잠이 덜 깬 주인이 비틀거리며 분주 한 병을 가져다 놓았다. 두 사람이 같이 분주를 한 잔씩 들이켜고 나자 남궁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얼마 전에 군역을 마치고 돌아왔다고 하더군.”
“예.”
“고생이 많았겠군. 어디에 있었는가?”
“육전단 예하의 작은 부대에 있었습니다.”
“육전단이라면 척계광 대장군이 왜구에 맞서기 위해 만들었다는 그 부대인가?”
“예.”
“그렇군, 그래서 자네가 그렇게 수전에 능숙했군.”
“…….”
다시 분주를 한 잔 들이켠 남궁전이 잔을 내려놓을 때 당묘화가 객사에서 주루로 나왔다.
남궁전을 본 당묘화가 면사 위로 드러난 눈에 반색을 표하며 다가오려다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진호를 보고는 복잡한 눈빛으로 남궁전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하고 주루를 지나 밖으로 나갔다. 남궁전도 당묘화를 향해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로군요.”
진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렇다네. 저 아이가 이번처럼 풀이 죽어 있는 모습도 처음 보는군.”
“…….”
“그날 일은 정이를 통해서 대충 들었네. 저 아이도 그날 술이 좀 과한 상태라 실수를 했네. 자네가 이해를 해 주게.”
“저는 이미 잊었습니다만…….”
“사실 이런 말을 내가 하기는 그렇지만, 저 아이가 처음 독서시란 별호를 얻었을 때는 그저 서시같이 아름다운 용모에 독에 대해 조예가 뛰어나서 붙은 별호였네. 그러나 저 아이의 남동생인 묘정이가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고 난 후, 성격이 과하게 변하기 시작했고 남들도 다른 의미로 독서시라 부르기 시작했네. 당가의 소가주인 형에 비해 여러 면에서 부족하고 심약하였던 동생을 유난히 아끼던 아이였지.”
“…….”
진호는 말없이 다시 한 잔의 분주를 들이켰다.
***
당묘화는 주루를 나오자 몸을 날려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이백 장 정도 떨어진 송림 근처에서 멈추어 선 당묘화의 앞에 흑의인 아홉 명이 나타났다.
“독암 칠조 조장 문기가 아가씨를 뵙습니다.”
나타난 흑의인들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중년인 한 명이 읍을 하며 한 발 앞으로 나섰다. 흑의인들은 당가가 자랑하는 무사대인 독암대의 칠조 무사들이었다.
“아! 문기 아저씨! 오랜만에 뵈어요.”
당묘화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칠조 조장 당문기를 보고 반색을 띠며 인사를 하였다. 당가의 독암대를 이루는 무사들은 부대의 특성상 대부분 당가의 방계 혈족들이다. 직계와 방계의 구분이 엄격한 당가이므로 당문기가 나이로 보나 촌수로 보나 아저씨뻘이라고 해도 가주의 딸인 당묘화에게 함부로 하대를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자신에게 잘해 주었던 당문기를 기억하는 당묘화는 반갑게 그에게 말을 건넸다.
“매복을 만나 고초를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무탈하셔서 다행입니다.”
“예. 고마워요, 아저씨.”
“그런데 그 위사 놈을 제거하라고 하는 밀명은 받았습니다만, 최종적으로 아가씨의 재가를 받으라고 하셨더군요.”
“현수 숙부가요?”
당묘화가 의아한 눈으로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전언에 의하면 그놈이 화산고학의 사인을 정확하게 짚어 낸 모양입니다.”
“그럼 그가 고(蠱)의 존재를 알아냈단 말이에요?”
당묘화의 눈은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출처까지 정확하게 아는지는 모르지만, 고의 종류는 정확하게 짚어 낸 모양입니다.”
“그가…….”
당묘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만 꽉 깨물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명하시면 그 위사 놈을 지우겠습니다.”
“아니, 지금은 아니에요. 추적조의 다른 사람들도 있고…….”
당묘화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정색을 하고는 말을 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놈들의 근거지가 이 근처인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마을 주민들 가운데 묘정 공자님과 비슷한 인상착의의 청년을 본 적이 있다고 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게 정말이에요?”
“예, 가끔씩 노인 한 명과 흑의를 입은 장한들이 식량을 사러 마을에 오곤 했는데 그 노인 옆에 서 있는 청년이 묘정 공자와 비슷한 인상착의를 지녔다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