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진호전기 1권(15화)
제7장 추적조(追跡組)(2)
“그게…… 진양, 그 친구가 진호 그 아이의 무위가 너무 궁금하다며 하도 간청하기에 제가 끼워 넣었습니다. 결국 현무에서는 그 친구가 참가하는 게 되어 이번 추적조에 사신단이 모두 참가하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형님, 정말 당가가 이 사건과 관련이 되어 있을까요?”
말을 하는 제갈진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글쎄, 단언하기는 힘들겠지. 당가가 개입되어 있다면 백호도 일단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하는데…….”
팽위산의 얼굴에도 근심이 어렸다.
“그러고 보면 진호 그 아이가 유추해 낸 사인을 당가가 몰랐다는 게 확실히 납득이 가지 않는군요.”
“아무래도 그렇지? 독으로 인한 사인을 그 독 귀신이 몰랐다는 게 말이 안 되지!”
“그러면 사인이 된 고독이 혹시 당가에서…….”
제갈진이 조심스럽게 말을 하였다.
“음, 함부로 말하기에는 사안이 너무…….”
“휴…… 참! 그러고 보니 게으르기로 따진다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궁 선배가 이번엔 어찌 추적조에 자원하여 나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거야 뻔한 거 아니겠나? 화 관주 살해의 직간접적인 원인을 떠나 청룡에서 가만히 있지 않겠다 싶으니 귀찮아서 도망을 간 게지. 그 인간, 말은 단순 무식을 달고 살아도 잔머리 굴리는 걸 보면 태생이 궁가가 아니라 제갈가 같아.”
“나 원 참…… 형님도 하필 제갈가입니까?”
“뭐, 그러고 보면 자넨 평소엔 전혀 제갈가 같지 않더니만, 그래도 오늘은 제갈가 같군.”
“그렇게 말씀하시는 형님도 팽가 핏줄치고는 너무 머리 회전이 빠른 거 아닙니까? 하하하!”
***
살수의 뒤를 추적해 온 진호 일행은 어느새 강소성과 경계를 이루는 태호(太湖) 변의 무오촌이라는 작은 어촌에 이르렀다. 선착장 근처에서 기웃거리고 있던 개방의 제자 한 명이 진호 일행을 보고는 급히 달려와 궁연 앞에 조아렸다.
“이결 제자 단홍이 궁 장로님을 뵙습니다.”
“그따위 인사는 집어치우고, 놈은 어디 있느냐?”
“예, 장로님! 상인으로 변장하여 저기 보이는 객잔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니미럴! 우리는 신발이 닳도록 쫓아왔는데, 정작 쫓기는 놈은 느긋하게 객잔에서 쉬고 있다니…….”
궁연이 살수가 있는 객잔 쪽을 쳐다보며 말을 했다.
“…….”
“놈을 감시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놈이 움직이는 즉시 알리라고 하여라.”
“옛!”
“궁 숙부님, 아무래도 놈이 우리를 유인한 것 같습니다.”
남궁전이 궁연의 곁으로 다가서며 말을 건넸다.
“젠장, 아무래도 그렇지?”
“네, 아무리 개방의 능력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쉽게 흔적을 드러내고 도주하고 있습니다.”
“그래, 아무래도 똥 누고 뒤를 닦지 않은 기분이야! 쓰…….”
“흠흠. 궁 숙부님, 말을 해도 어찌…….”
“어떻게 할까? 그냥 개 잡듯이 두들겨 패 버릴까?”
“놈의 의도를 모르니 조금 더 쫓아가 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궁연과 남궁전이 살수의 처리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사이 진호는 포구의 선착장 앞에서 그물을 수리하고 있는 어촌 주민들을 바라보면서 나름의 감상에 빠져 있었다. 오랜 시간을 바다에서 보낸 옛 기억을 더듬는지 진호는 그 풍경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변덕스러운 날씨 이야기와 풍어를 기대하는 설렘을 나누며 어부와 주민들은 빠른 손놀림으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던 궁연과 남궁전은 결국 살수를 생포하기로 결정한 듯, 잠시 휴식을 취하며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추적조들을 이끌고 도망간 살수가 머물고 있다는 객잔을 향해 몸을 날리려고 하였다. 그때 남궁전과 궁연의 귀를 울리며 진호의 전음이 들려왔다.
“매복입니다.”
“어디인가?”
남궁전이 진호에게 전음으로 되물었다.
“바로 저 앞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주민들입니다.”
남궁전은 그물을 만지고 있는 앞쪽의 주민들을 힐끗 한 번 보고서는 일행들에게 전음을 날린 후 천천히 걸으면서 앞으로 다가갔다. 추적조가 바로 앞까지 가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촌의 주민들은 무관심하게 일상의 대화들을 주고받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막 추적조가 주민들을 지나치려는 순간이었다.
핑! 핑! 핑!
그물을 손질하는 데 쓰던 대바늘과 손칼들이 비침이 되어 추적조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주민들이 손질하고 있던 그물들이 허공에 펼쳐지면서 추적조를 덮어 왔다.
“갈!”
만리개 궁연의 노성이 터짐과 동시에 그의 손이 사방으로 잔영을 뿌리며 흔들렸다. 궁연이 자신의 성명절기인 광구귀견수를 펼치며 날아오는 비침과 손칼들을 잡아 갔다. 당묘화도 사방에 붉은 그림자를 일렁거리며 암기를 회수하는 수법인 암혼수를 펼쳐 살수들의 암기를 막아 갔다. 그리고 남궁전과 관재효의 검이 파르스름한 검기를 머금고 허공의 그물들을 베어 갔다. 추진양은 연대구품의 보법을 밟으며 소림오형권 중 호권을 펼쳐 살수들을 공격하여 갔다. 나머지 사신단의 조장들도 각기 검을 뽑아 살수들을 쳐 갔다. 이미 남궁전이 전음으로 언질을 한 터라 추적조의 대응은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다.
그런데 추적조들을 당황하게 하는 일이 생겼다. 그물을 베어 간 남궁전과 관재효의 검이 그물을 베어 내지 못한 것이다. 코가 넓은 묵색의 그물은 특수한 약물에 담가 두어 검기로도 잘라 내지 못할 정도로 질기게 가공한 묵연사로 짠 그물이었던 것이다. 그물의 밑에 선 남궁전과 관재효 등의 눈에 당황스러움이 어렸다. 묵연사로 된 그물을 잘라 내지 못한다면 그물에 갇히게 되어 이 자리에서 크게 낭패를 볼지도 모르는 것이다.
순간 은빛 섬광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허공에는 잘린 그물들이 산산이 흩어지고 있었다. 진호였다. 뒤에 처져 있던 진호가 앞으로 튀어 나오며 묵연사로 짠 그물을 발도와 동시에 섬광과 같은 쾌도로 수십 조각으로 잘라 버렸던 것이다. 관재효와 남궁전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자신들의 검기가 담긴 검에는 전혀 잘리지 않던 묵연사가 진호의 도에 마치 명주실처럼 잘려 나가 버린 것이다. 특히 진호와 잠시 마찰이 있었던 관재효는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놀랐다. 자신으로서는 감히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을 정도로 극쾌의 쾌도를 본 것이다.
펑!
“큭!”
추진양의 호권이 촌로로 변장한 살수의 가슴에 적중하자 살수는 피분수를 뿜으며 나가떨어졌다.
우드드득!
궁연이 광구귀견수로 살수들의 관절을 잡아 역으로 비틀면서 탈골시켜 버렸다. 그리고 당묘화의 손에서 떠난 철혈접들이 허공을 넘실거리며 살수들을 향해 날아갔다. 잠시 허공을 맴도는 듯이 보이던 철혈접이 당묘화의 앞을 막아서며 공격해 들어오는 세 명의 살수들을 향해 번개같이 내리꽂히더니 살수들의 목젖 부분의 천돌혈에 박혔다가 빠져나왔다.
추적조들은 압도적인 무위로 살수들을 몰아붙여 갔다. 그러자 포구에 정박해 있던 어선들에서 복면을 한 살수들이 나타나 일행을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진호가 달려드는 살수들을 마주해 나가며 풍운도법을 펼쳐 도륙하기 시작했다. 진호의 손에서 풍운도법 제오초 풍운만변이 펼쳐지자 사방으로 도광이 흩어지며 살수들을 베어 갔다. 진호의 도는 느리게 움직인다 싶으면 순식간에 상대의 목젖에 박혔다 나오고, 빠르다 싶으면 어느새 느려져 막아 오는 살수의 검을 흘려버리곤 다시 어느새 상대의 목을 긋고 지나가고 있었다.
삐익!
추적조가 쫓고 있던 살수가 머물고 있다는 객잔 쪽에서 소성이 터져 나오더니 검은 인영 하나가 뛰쳐나와 그 앞쪽에 정박해 있던 소선에 오른 뒤 달아나기 시작했다. 매복이 실패로 돌아가고 상황이 불리해지자 놈이 도주를 한 것이다. 추적조 일행은 다급해졌다. 진호 등은 더욱 거세게 살수들을 몰아쳐 갔다. 매복한 살수들을 모두 처리하고 급조한 어선 하나에 올라타고 추적을 시작할 땐 이미 도주한 놈이 탄 배가 제법 작은 점이 되어 있었다.
남궁전이 진호 곁으로 다가왔다.
“진 위사, 고맙네. 자네 덕분에 위기를 넘겼어!”
“별 말씀을…….”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매복인 줄 알았나? 살기도 없었고, 그저 평범한 어촌 주민들로 보였는데…….”
남궁전이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진호를 쳐다보며 묻고 있었다.
“먼저 일반 어촌의 주민들이라면 무림인들이 갑자기 나타나면 두려움 내지는 호기심이 비춰져야 하는데 그들은 전혀 동요의 눈빛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낙들이 대화를 나누면서도 날씨나 풍어에 관한 이야기는 해도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더군요. 평범한 어촌의 아낙들이라면 가족 이야기를 반드시 하죠. 무엇보다도 그물을 손질하는 그들의 손놀림이 문제였습니다.”
“나도 그들의 손놀림을 유심히 봤는데 꽤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던걸.”
남궁전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그들의 손놀림은 그저 빠르기만 할 뿐 익숙함이 없었습니다.”
“익숙함이라면?”
“빠르다는 것과 익숙하다는 것은 다르면서도 같고, 같으면서도 다른 것입니다.”
“흠, 그게 무슨 말인가?”
남궁전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빠르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작위(作爲)와 무위(無爲)라는 면에서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어느새 배 위의 추적조원들은 모두가 진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가령 젊고 힘이 센 청년이 빠르게 도끼를 휘둘러 장작을 쪼갤 수는 있지만 수십 년 동안 나무를 해 온 늙은 나무꾼이 장작을 쪼개는 것과 같이 깔끔하게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청년은 장작을 쪼개야 한다는 작위적인 마음으로 도끼를 휘둘렀기 때문에 근육도 긴장을 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힘이 들어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늙은 나무꾼은 늘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근육들이 필요한 만큼만 힘을 내어 깔끔하고 빠르게 쪼개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위입니다. 또한 그것이 무사가 자신이 익힌 초식을 끊임없이 반복 수련을 하는 이유입니다.”
“…….”
모두들 말이 없었다. 우연찮게 그들 모두 상승지도의 한 구절을 듣게 된 것이다.
어느새 서산으로 넘어가는 붉은 해가 말없이 선 그들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쿵! 와지직!
갑자기 배의 밑바닥에서 회전하는 창날이 솟아올랐다.
“암습!”
남궁전이 다급하게 외쳤다.
“파!”
남궁전의 외침과 동시에 추적조 일행이 타고 있는 배 주위로 어피의를 입은 살수들 십여 명이 수면 위로 뛰어오르며 궁노를 발사하였다.
“크억!”
예상치 못한 암습에 당황한 추적조 일행들이 다급하게 발검하여 노전들을 쳐 냈지만, 그 와중에 노전 한 대가 관재효의 오른쪽 어깻죽지에 박혀 들었다.
턱! 턱! 턱!
살수들이 물밑에서 쇠사슬이 연결된 갈고리들을 던져 배의 좌현에 걸고 잡아당기자 배가 기우뚱하며 뒤집어졌다. 배가 뒤집어지는 순간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가 뒤집어진 배 위로 내려선 추적조 일행들은 검을 뽑아 들고 다음 공격을 대비하고 있었다. 궁연과 추진양의 손엔 어느새 배를 젓던 노가 들려져 있었고, 당묘화는 철혈접 대신 원거리용 암기인 동비발을 손에 끼고 있었다.
살수 하나가 노전을 발사하기 위하여 수면 위로 머리를 내미는 순간 당묘화의 손에서 동비발이 날아갔다. 수면 위로 나오는 살수는 동비발에 목이 반쯤 잘려 우측으로 고개를 꺾은 채 가라앉았다. 궁노를 든 살수들과는 달리 마땅한 원거리 무기가 없는 일행에게 있어 당묘화의 동비발은 천군만마와도 같았다. 아무리 극한의 훈련을 받은 살수들이라 하더라도 물밑에서 수면 위로 나오는 순간에 시야가 온전히 확보될 수는 없었다. 그 간격을 놓치지 않고 당묘화의 동비발이 날아다녔다. 이미 다섯 명의 살수들이 동비발에 목을 내놓았다. 그러고는 몇 호흡이 지나도록 더 이상의 공격이 없었다. 잠시 여유를 가진 당묘화는 진호를 찾아보았다. 진호는 보이지 않았다. 당묘화가 급하게 주위를 돌아보니 주인을 잃은 궁노 십여 개만이 둥둥 떠 있었다.
진호는 살수들이 배를 뒤집을 때 일행들과는 달리 물밑으로 내려왔다. 수중에는 일행이 타고 온 배를 중심으로 장창을 든 살수 한 명과 나머지 네 명의 살수들이 모여 있었고, 궁노를 든 살수 십여 명이 대략 육, 칠 장 떨어진 곳에서 배를 포위한 채 궁노에 노전을 다시 재고 있었다.
일행들이 원거리 공격이 힘들 것을 감안하여 궁노를 든 살수들 쪽으로 먼저 다가갔다. 수면 위로 떠오를 기회를 엿보고 있던 살수 한 명이 진호가 다가가자 놀라며 황급히 수중에서 노전을 발사하였다. 가까운 거리라고는 하나 수중에서 발사된 노전은 진호에게 전혀 위협이 될 수 없었다. 슬쩍 몸을 틀어 노전을 피한 진호가 살수에게 손을 뻗었다. 진호가 살수의 한 팔을 잡고선 살짝 앞으로 당겼다가 놓으면서 장으로 살수의 가슴 어림을 치자 살수는 입으로 피를 토해 내며 떨어져 갔다.
옆에서 이 광경을 본 살수 하나가 궁노를 버리고 허리에 찬 아미자를 꺼내 들고 진호를 향해 다가왔다. 아미자를 든 살수는 수공에 상당히 익숙한 듯 물속에서 재빠르게 움직이며, 진호가 피할 수 있는 방위를 차단하는 한편 빠른 속도로 아미자를 찔러 왔다. 진호의 발끝이 조금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진호의 발밑 쪽으로 조그만 와류들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진호의 몸이 급격히 빨라지기 시작했다.
우드득!
진호의 빠른 몸놀림에 당황하기 시작한 살수는 급격한 움직임에 호흡이 가빠 오자 위로 달아나려고 했다. 그 순간 진호가 살수의 왼 발목을 잡아 우측으로 비틀어 버렸다. 살수의 다리는 발목과 무릎, 그리고 대퇴골이 제각기 틀어지며 탈골되어 버렸다.
그사이 살수 두 명이 목에서 피를 흘리며 가라앉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진호의 우려와는 달리 물 위에서 대응을 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진호는 주위를 둘러보며 피 냄새를 맡은 상어같이 느긋하게 유영하며 사냥을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