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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전기 1권(13화)
제6장 풍운무적(風雲無敵)(2)
진호가 편두를 놓아 버리곤 뒤돌아섰다. 그 순간 한 명의 장한이 진호를 향해 날아들었다.
장한은 귀수신편 당묘진이었다. 만복루에 들어서다 동생인 당묘화가 맞고 있는 것을 보고 다급하게 철편을 꺼내 날렸으나 오히려 동생을 다치게 할 뻔하고 상대에게 잡혀 버리자 철편을 버리고 몸을 날려 무영각을 펼친 것이다.
진호의 신형이 갑자기 일렁거리면서 반삼재보를 펼치며 당묘진의 무영각을 피하고는 손등으로 니권을 펼쳐 당묘진의 얼굴을 쳐 갔다. 그러자 당묘진도 절정고수답게 순간적으로 철판교의 신법으로 전환하여 몸을 눕혀 진호의 니권을 피한 뒤 양다리를 번갈아 허공에서 교차하며 진호의 이어질 공격을 봉쇄하고 비룡번신으로 몸을 뒤집어 바로 세웠다. 어느새 그의 손에 철편이 들린 채 잔뜩 내기를 머금고 빳빳하게 편두를 세우고 있었다.
쉭! 쉭! 쉭!
당묘진의 편두가 세 번 연환하며 진호를 찔러 왔다.
진호는 그저 삼재보와 반삼재보를 섞어 밟으며 가볍게 피하고 있었다.
쉬잉!
당묘진이 손목을 틀어 편을 흔들자 철편이 뱀처럼 휘어지며 횡으로 휘둘러져 왔다.
펑!
쿠당탕!
당묘진의 철편이 횡으로 움직이기 위해 잠시 휘어지는 순간, 진호가 왼발 뒤꿈치로 탄경을 뿜어내며 앞으로 쏘아져 들어가 태극권의 ‘엄수굉권’의 일 초로 당묘진의 복부를 타격하였다. 당묘진이 왼손 손바닥을 내밀어 진호의 주먹을 막아 보았지만 전사경이 담긴 강력한 힘을 막지 못하고 뒤로 나가떨어진 것이다.
뒤로 나가떨어진 당묘진은 수치심에 얼굴이 붉게 물든 채 허리를 가볍게 튕겨 자세를 바로 세웠다. 당묘진의 왼 손목이 부러져서 너덜거리고 있었고 오른손은 손바닥이 핏빛으로 벌겋게 물들고 있었다.
“혈라장! 그만! 그만 하게!”
백호단주인 창궁검협 남궁전이 다급하게 외치며 중간에 끼어들었다. 원래 당묘진과 함께 만복루에 들어서던 참이었으나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자 멍하니 보고 있던 남궁전은 당묘진이 당가의 성명절기인 혈라장을 펼치려 하자 만류하고 나섰다.
“이 사람, 묘진! 사람들이 많은 주루에서 독장인 혈라장을 펼치겠단 말인가!”
“원래 핏줄이 그런가.”
진호가 타인들을 생각하지 않는 당씨 남매의 행태를 보며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진 위사, 자네도 내 얼굴을 봐서 그만 하시게.”
어젯밤 살수들을 같이 추적한 이후로 진호에 대한 남궁전의 말투에 변화가 있었다. 진호를 무척 신뢰하게 되었지만, 또한 진호는 더 이상 함부로 하대를 하지 못할 존재가 되었다.
“오빠!”
청의화봉 남궁정이 옆에 서서 울먹이고 있었다.
“정아, 이게 무슨 일이냐?”
“그게…… 언니가…….”
“에잉, 그만 해라. 진 위사가 이유 없이 손을 썼겠느냐. 이 사람 묘진! 그러지 말고 묘화의 상세부터 보게!”
남궁전이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를 치고는 당묘진을 보며 재촉하였다.
당묘진은 진호를 다시 한 번 노려보고는 동생인 당묘화를 안고 만복루 밖으로 나가 버렸다.
“진 위사! 혹시 장 조장한테 연락을 받지 못하였나?”
그 모습을 보던 남궁전이 진호를 향해 돌아서서 물었다.
“지금 만나러 온 참이오.”
진호가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대꾸하였다.
“흠, 그런가. 그럼 나중에 보세. 아무래도 가 보아야 할 것 같으니.”
말을 마친 남궁전은 당가 남매가 걱정되는지 남궁정과 함께 만복루를 빠져나갔다.
“가게가 엉망이군. 춘삼이 형! 어두탕하고 분주 좀 주쇼!”
진호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외치고는 황노칠 등이 있던 자리에 털썩하고 앉았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풍운무적(風雲無敵) 진호 형님! 저는 노칠이의 절친한 친구 문철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헤헤.”
여문철이 벌떡 일어서서 최대한 싹싹하게 진호에게 인사를 건넸다.
“풍운무적?”
“옙! 이젠 어른이시니까 소하귀동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이 문철이가 형님을 생각하는 충정에서 별호를 지어 봤습니다. 천하의 백호단주마저 한 수 양보하는 풍운대 위사는 형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제가 풍운무적이라고 지어 봤습니다. 헤헤.”
“끙, 그래. 고맙구나. 노칠아, 곰탱이는 어디 갔냐?”
진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한 번 흔들고는 황노칠을 보며 물었다.
“예에, 그게 아까 맹에서 전언이 와서 잠시 가셨습니다.”
머리를 처박고 있던 노칠이 겨우 고개를 들고 대답을 하였다. 그 옆의 막형구는 여전히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뭐야! 왜들 이러냐, 분위기가?”
“형님! 너무 분합니다. 흑. 사내자식이 계집년한테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개 맞듯이……. 흑.”
결국 황노칠이 분통을 이기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흠, 쟤가 그래도 제법 고수던데. 저 나비 날리는 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진호가 당묘화의 솜씨에 나름대로 감탄한 바가 있다는 듯이 말을 하였다.
“알지요. 독서시 저년, 우리 같은 놈들은 감히 쳐다볼 수 없을 만큼 고수지요. 그래도요 형님, 이 노칠이도 저년처럼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상승 절기를 익혔으면 이렇게 당하고 살지는 않았을 거 아닙니까? 시발…….”
황노칠은 이를 악물고 있었다.
“뭐, 가문이야 그렇다 치고 상승 절기는 너희도 다 익히고 있잖느냐?”
“형님!”
황노칠과 막형구가 동시에 원망을 담고 외쳤다.
“이놈들이, 내가 농담하는 게 아니고 너희도 풍운도법 다 알잖아?”
“풍운도법이 무슨…… 개나 소나 다 하는 건데…….”
황노칠이 볼멘소리를 하였다.
“그 개나 소나 다 하는 풍운도법을 누가 만든 거냐? 그거 옛날에 천하제일 고수라는 도제가 만들었다면서? 천하제일 고수가 만든 도법이 상승 절기가 아니면, 뭐가 상승 절기냐?”
“형님, 설마…… 그러면 그 떠도는 말이 사실이라는 말입니까?”
막형구가 놀란 눈으로 진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풍운도법에 비밀이 있다는 그 소문 말이오?”
황노칠도 놀라며 거들었다.
진호가 피식하고 웃었다.
“비밀은 무슨. 원래 그게 다인데. 이놈들아, 풍운도법은 비밀이 있는 게 아니고 그 자체가 상승 절기야. 무식한 놈들.”
“형님! 제발 가르쳐 주십시오!”
갑자기 노칠이 달려들어 진호의 발을 붙잡고 애원하였다.
“끙, 뭐야? 이 녀석이…….”
“형님! 저도 제발 가르쳐 주십시오!”
막형구도 무릎을 꿇고 사정을 하기 시작하였다.
“허! 야, 이 녀석들아! 내가 안 가르쳐 준다던. 그만 하고 일어서라! 남들 보기 부끄럽다.”
진호가 황노칠과 막형구를 달랬다.
“저…… 풍운무적 진호 대협 형님! 저도 좀 가르쳐 주시면 안 될까요? 헤헤.”
여문철이 슬며시 끼어들었다.
“어? 근데 너도 풍운대 위사냐?”
“넵. 당연히 그렇죠. 저 황기 조장님이 계신 팔조인데요.”
“그러냐? 근데 넌 왠지 풍운대 위사 같지가 않은데…….”
“흑, 제가 원래 좀 존재감이 없어요.”
***
“어서 오시게!”
진호가 등룡관 관주의 집무실인 등운각에 들어서자 철심수사 제갈진이 반갑게 맞이하였다.
등운각은 원주인이 꽤나 고상하였던 모양인지 벽면을 가득 메운 고서와 서화가 정갈하게 꾸며져 있었다. 제갈진은 다탁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청수한 인상의 제갈진이 앉아 있으니 원래 주인이 누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제갈진이 이 방의 주인으로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진호였다.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진호는 제갈진에게 가볍게 읍을 하였다.
“그래. 어젯밤에는 활약이 대단하였다고? 남궁전 그 친구가 입에 침을 튀기며 이야기하더군. 사실 이번에 자네를 부른 것도 남궁전 그 친구가 자네 이야기를 하였네. 자네라면 어쩌면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 줄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
“한번 보겠나?”
제갈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가더니 시신을 덮어 놓았던 장막을 걷었다. 등룡관주인 화산고학 화중일의 시신이었다.
“아직 염을 하지 않은 모양이군요.”
“사인이 분명하지 않아 검시를 한 이들이 확언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진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시신을 살펴보았다.
“뇌의 심맥이 터졌군요. 피의 응고 상태로 보아 그것도 세 군데 혈(穴) 자리에서 동시에 터졌습니다.”
“검시를 한 의당주도 그렇게 말을 하더군. 그리고 독살과 침투경,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군.”
“침투경은 아닙니다.”
진호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왜?”
“침투경이라면 세 군데 혈 자리의 심맥만 파괴되지 않았을 겁니다. 심맥이 아닌 뇌수 자체가 터져 버렸거나, 혈에 심었다면 뇌에 있는 모든 혈맥들이 다 터졌을 것입니다.”
“흠, 그러면 독살인가?”
제갈진이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되물었다.
“독살이라 하더라도 의문이 남습니다. 급성독은 일반적으로 장기를 녹여 내리고, 만성독은 가슴의 혈맥을 막히게 합니다. 뇌의 심맥을 건드리는 독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허, 그도 그렇군. 도대체 독을 사용하였다 하더라도 흔적이 전혀 없으니……. 사건이 생길 당시 탁자에 놓여 있던 모든 찻잔들과 용기들을 조사하여 봐도 용독의 흔적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네.”
제갈진은 다탁 위에 놓인 찻잔과 다기들을 보면서 고개를 젓고 있었다.
“한 가지 가능성은, 먼저 호흡기를 통해 마비독을 중독시킨 후 뇌의 세혈맥에 조법으로 침투경을 사용할 경우 가능합니다.”
“호! 그렇군, 그 방법이 오히려 가장 설득력이 있군. 화 관주도 손에 꼽히는 무인이었으니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이니…….”
제갈진이 반가운 기색을 띠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했다.
“그러나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마비독에 당하게 되면 죽은 후에 혈장의 응고 속도에 영향을 미쳐 피부에 반혈구의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그런데 반혈구의 흔적이 전혀 없더군요.”
“흠, 흔적이 남지 않는 마비독은 없는가?”
“마비독의 특성상 흔적이 남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또다시 원점인가? 끙!”
제갈진은 이마에 손을 짚으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용독에는 일반적으로 네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렇지! 식도, 호흡기, 피부, 또 하나는 뭔가?”
“교접입니다.”
“교접! 그렇군……. 화 관주의 시신이다 보니 그 부분을 간과하였군. 그럼 설마…… 고(蠱)?”
제갈진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전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고독 중에 삼음양고라는 게 있다고 하더군요. 줄여서 음양고라고도 하는데 암컷이 죽으면 수컷이 세 마리로 나뉘어 혈맥을 파고들어 가 혈맥을 갉아먹어 터뜨린다고 하더군요.”
“허! 그렇다면 누구란 말인가, 화산고학과 관계할 만한 인물이?”
제갈진은 서성이며 마땅한 인물을 생각해 보았다.
“처음 시신을 발견한 시비 아이는 어디 있습니까?”
“설마 화 관주가 시비 아이를 건드렸다는 말인가?”
제갈진이 놀란 눈으로 진호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니, 그녀는 살아 있으니 당연히 아닙니다.”
“하, 그렇군. 내가 잠시 흥분을 하였네. 마침 그 아이는 건넛방에 있네.”
“일단 그녀를 한번 만나 보죠.”
등룡관 관주 처소인 등운각의 시비인 영령은 이곳으로 불려온 후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자신의 앞에 앉아서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위사가 너무 무서웠다. 특히 사람의 영혼을 빨아들일 것만 같은 그 깊은 두 눈과 마주치게 된다면 그분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만 같았다.
묘한 대치의 분위기를 깬 것은 밖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부전주님, 소인 단형입니다.”
“들어오게.”
진호와 영령이 다탁에 앉아서 대치하고 제갈진이 서서 둘을 지켜보는 묘한 상황에서 감찰전 검위사인 단형이 들어섰다.
“무슨 일인가?”
제갈진이 단형을 보며 물었다.
“그게…… 풍운대주님이 기별을 전해 왔는데, 항주 여화촌에 살고 있는 아낙 한 명이 조금 전 맹의 입구에서 딸을 찾는다고 소동을 벌였다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제갈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 아낙이 찾는 딸이 가영이라고, 수향전에서 일하는 아이라고 합니다. 풍운대주님이 수향전에 알아보니 그 아이가 어젯밤에 없어졌다고 합니다.”
“흠…….”
제갈진은 마뜩지 않은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고 있었다.
“아마 그 아이일 것입니다. 수향전 부근을 뒤져 보라고 하십시오.”
말없이 듣고 있던 진호가 입을 열었다.
“그렇군! 단형 자네는 먼저 가서 수향전 부근을 샅샅이 뒤져 보게!”
“옛!”
단형이 물러가자 진호가 입을 떼었다.
“영령이라고 했지? 몇 살이냐?”
진호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예? 열여섯입니다.”
영령이 황급하게 대답을 하였다.
“그렇구나. 그럼 가영이는?”
“열다섯…… 흡!”
영령은 황급하게 손으로 입을 막았다.
“가영이를 아는구나. 수향전과 이곳은 관계가 없을 터인데, 어찌 가영이를 아느냐?”
제갈진이 다그쳐 물었다.
“그게…… 어릴 때 한 동네 살았어요.”
“네가 가영이를 화 관주님께 소개하였구나.”
진호가 단정적으로 말하였다.
“아니에요. 제가 그런 게 아니라 관주님이 먼저 보시고 아는 아이냐고 물으셔서……. 흑.”
영령은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