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진호전기 1권(10화)
제4장 위사 진호(衛士陳浩)(3)


‘음. 완벽한 풍림화산(風林火山)과 풍능삭암(風能削岩)의 연환식이군. 역시 무당인가? 이화접목의 묘리를 제대로 담았어.’
일각 정도가 지나자 더 이상 서 있는 살수는 없었다.
“살아 있는 자들은 없습니다. 부상을 입었던 자들은 모두 독단을 물고 자결하였습니다.”
백호단원의 보고를 받는 남궁전의 시선은 진호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호는 전당강에 손을 담근 채 무심하게 흐르는 전당강의 급류를 보고 있었다.
“뭘 보고 있나?”
어느새 남궁전이 진호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처음 유인을 했던 살수가 없습니다.”
“어느 놈인 줄 알고?”
“비도를 쓴 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기 있는 자들은 전부 은신을 오랫동안 한 자들뿐이었습니다. 급하게 은신을 하려면 모래 구덩이보다는 물속이 훨씬 나았을 겁니다.”
“음, 그렇군. 놈이 유인을 하고 사라졌단 말이지…….”
피잉!
진호와 남궁전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부양현으로 향하는 관도 쪽에서 신호가 올랐습니다.”
“그놈인가?”
“아닐 겁니다. 시간과 방향으로 봐서 나머지 한 놈일 것입니다.”
“그렇겠군. 가지!”
남궁전이 앞장을 서고 그 뒤를 백호단원들이 따랐다.
진호는 강 건너 산기슭을 무심히 한 번 보고는 자리를 떴다.



제5장 재회(再會)(1)


“오셨습니까?”
감찰전주 진천도 팽위산이 감찰전으로 들어서자 부전주인 철심수사 제갈진이 그를 맞이하였다. 팽위산은 칠 척 장신의 큰 체격에 부리부리한 호목을 지녔다.
“앉지. 그래, 어떻게 된 일인가?”
“처음 발견한 사람은 화 관주의 침상을 준비하러 들어갔던 시비였습니다. 시비의 말로는 그 시간이면 항상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던 화 관주가 엎어져 있기에 이상해서 보니 입가에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사인(死因)은?”
“내일 의당주가 다시 검시를 해 봐야 알겠지만 당직의의 말로는 외상이 없고 입가에 출혈이 있는 것으로 보아 독살의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습니다. 평소에 지병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흠, 자네도 보았나?”
“예. 보고를 받고 즉시 확인하였습니다.”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음, 확실히 외상이나 외부에서 충격이 가해진 흔적은 없었습니다.”
제갈진이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을 하였다.
“그럼 역시 독인가? 지금 추적 중인 살수들이 벌인 짓인가?”
“그게…… 그렇게 단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유는?”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시간상 화 관주가 잠드는 시간도 아니고, 아시다시피 화 관주는 화산에서도 손꼽히는 고수입니다. 그런 화 관주가 의식을 하지 못할 정도의 용독술은 독왕도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일개 살수가 펼쳤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제갈진이 고개를 저으며 답하였다.
“그도 그렇군. 만성독에 당했다고 봐야겠지?”
팽위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날이 밝는 대로 다시 한 번 정밀 조사를 벌여 봐야겠지만,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일단 화 관주의 처소에 드나드는 자들의 신변은 모두 확보하였습니다.”
“빠져나간 자는 없고?”
“현재 파악된 바로는 없습니다.”
“끙, 머리 아프군. 매화검제 화무진이 방방 뜨겠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친형이 독살을 당했으니…… 그것도 맹 내에서…….”
팽위산은 손가락 끝으로 책상을 몇 번 두드리다 이마를 짚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아마도 소식을 접하는 즉시 달려올 것입니다.”
“그래, 살수들은 어떻게 되었나?”
“지금 순찰부주가 직접 추적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곧 소식이 올 것입니다.”
“게으름뱅이 만리개가 모처럼 바쁘겠군.”
팽위산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

“부주님, 우리 아이들 세 명이 또 당했다고 합니다.”
“뭐야! 이런 니미럴! 어느 쪽이야?”
순찰부 부주인 만리개 궁연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백호단주가 추적하고 있는 전당강 쪽입니다. 그리고 부양현으로 가는 관도 쪽에서 신호전이 올랐습니다.”
순찰부 일호 전령 비응신풍 마동천은 궁연과 일 장 떨어진 곳에 서서 보고를 하고 있었다. 마동천은 자신의 상관인 궁연이 성질이 나면 머리를 벅벅 긁는다는 것과 그로 인해 비듬과 이가 사방으로 비산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야, 동천! 부양현으로는 누가 가고 있냐?”
“총순찰님과 주작단주님요.”
“주작단주? 걔가 참가했어?”
“예, 이번 달 지원대가 주작단인데요.”
마동천이 생뚱맞은 표정으로 대답을 하였다.
“잉! 백호단이 지원대가 아니었어? 그럼 백호단주 그 자식은 뭐야?”
정의맹 무력 부대의 핵심인 사신단은 전체 인원이 맹에 상주하지 않는다. 각 단원들은 일정 교육 기간이 끝나면 자파로 돌아가 활동하며 비상시에 소집되어 주로 대외적인 무력 지원을 한다. 그것은 대부분이 등룡관 출신인 사신단원들은 각 문파들의 중요한 인재들이기 때문에 맹에만 상주하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맹에서의 지원 임무를 위해 소수의 상주 인원이 각 단별로 남아 있는데 이들이 일 개월씩 순회하며 내부의 비상시에 무력을 지원하는 지원대 임무를 한다.
“백호단주는 안휘 본가를 다녀오다 신호전을 보고 끼어든 건데요.”
“지랄! 하여튼 전이 그놈은 오지랖이 넓어 가지고…… 쯧쯧.”
“부주님! 전당강변에서 급보입니다.”
순찰부 대원 하나가 급하게 보고를 하러 왔다.
“뭐야!”
“전당강변에 살수로 보이는 자들의 시체 열다섯 구가 발견되었습니다. 남겨진 표식으로 보아 백호단주 일행과 교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싸우면 싸운 것이지, 교전은 뭐고 추정은 또 뭐냐? 니미럴, 애새끼들이 말투가 왜 이따위로 고상들 하냐. 마! 고상한 놈 백호단주는 어디로 갔다냐?”
“예. 그게 신호전을 보고 부양현 쪽으로 갔을 거라고 추…… 확신합니다.”
퍽!
시커먼 신발 한 짝이 날아와 보고를 한 순찰대원의 안면을 강타하였다.
“니미…… 추정이나 확신이나! 동천 너 이 새끼, 애들 교육 똑바로 안 시킬래!”
‘젠장, 그럼 뭐야 이거. 살수 나부랭이들이 정의맹을 상대로 시비를 걸어? 도대체 이 새끼들 원하는 게 뭐지? 니미럴…….’

***

남궁전과 진호 일행은 일각 정도 달려가자 관도 위에 모여 있는 순찰부 대원들과 주작단을 만날 수 있었다.
“총순찰님을 뵙습니다.”
“왔는가? 그놈은 어떻게 되었는가?”
총순찰 만리독행 염자개가 남궁전의 옷에 묻어 있는 핏자국들을 보면서 말을 건넸다.
만리독행 염자개는 중년의 나이였지만, 깡마른 체구에 한일자로 다물어진 입매가 꽤나 강단이 있어 보이는 사내였다.
“놓친 것 같습니다. 강변에 매복이 있었는데, 그놈은 이미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남궁전은 말을 하면서 진호를 흘깃 보았다.
“남궁 단주님을 뵙습니다.”
주작단주인 소검후 연지하가 가볍게 목례를 하며 다가왔다.
“아, 오셨는가?”
“매복을 만나셨다고요.”
“그게 이해가 안 됩니다. 단순히 살수 세 명이라면 맹에 있는 누구와 원한을 가진 자의 청부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매복이라면 맹 자체에 대한 도전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데…….”
“그자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네요, 일개 살수 집단이 먼저 도발을 하다니…….”
“혹시…….”
“마교!”
“마교!”
남궁전과 연지하는 동시에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염자개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도 상황을 보면서 마교를 떠올렸다. 당금 무림에서 마교가 아니고서 누가 정의맹에 도발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천천히 고개를 젓고 말았다.
“마교는 아닐 걸세.”
남궁전과 연지하가 염자개를 쳐다보았다.
“현재 마교 교주인 혈천마는 정면 돌파를 좋아하는 사람이지. 그가 도발을 하였다면 감숙으로 바로 밀고 들어올 사람이야. 이런 방법은 그의 방식이 아니야.”
염자개는 마치 마교 교주인 혈천마를 잘 아는 사람처럼 말을 했다.
남궁전과 연지하가 의문의 눈으로 그를 보았다.
“흠흠, 너무 이상하게들 보지 말라고. 내가 뭐 혈천마와 잘 알아서 그렇다는 게 아니라, 나 같은 일을 하다 보면 많이 돌아다니니까 얻어 듣는 게 많아지지.”
남궁전 역시 이런 저런 경로로 들은 바가 있어, 현 마교 교주인 혈천마의 방식이 아니라는 데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그가 아닐지라도, 군사인 마뇌자가 움직였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는 있겠지. 그놈은 진짜 사악하니까. 이놈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마교의 개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
남궁전과 연지하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놈은 어디로 갔습니까?”
“여기서 종적이 끊어졌네. 아무래도 이 숲으로 들어간 것 같군.”
염자개는 관도 옆의 숲을 가리키며 말했다.
“흠, 인원이 좀 되니 산개해서 숲을 탐색해 보면 어떤가?”
남궁전이 뒤쪽에 서 있는 진호를 돌아보며 물었다. 남궁전이 진호에게 조언을 구하자 모두의 시선이 진호에게 향했다. 곧 진호를 보는 시선에는 궁금함이 가득하였다. 남궁전과 같이 왔으니 당연히 백호단이겠거니 생각했다가 진호가 풍운대의 복색을 하고 있자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연지하도 무의식중에 진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저 사람! 맹의 무사가 되었나 보네. 백호단에 들었나? 아, 풍운대구나.’
만복루에서의 인상이 강했던 탓인지 연지하는 진호를 알아보았다.
“누구인가?”
염자개가 모두의 의문을 해소하는 물음을 던졌다.
“풍운대의 위사입니다.”
남궁전이 그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왜?”
“그가 바로 소하귀동입니다.”
“소하귀동? 아, 그 매풍검을 밟아 버렸다는…….”
“추적에 일가견이 있더군요. 강변에서의 매복도 저 친구가 먼저 알아차렸습니다.”
“호, 그런가! 그래,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염자개가 진호를 보며 다시 물었다.
“산개하여 탐색하면 안 됩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를 모르니…….”
“어둠 속에서 숲으로 들어갔다간 각개격파를 당하기 쉽습니다.”
“그놈 혼자서 이 인원을 해치우려 한단 말인가?”
“아마도 조금 전 강변에서와 같이 매복이 있을 겁니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하고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 아닌가?”
“합격진을 펼칠 수 있는 진형을 유지하십시오. 그리고…….”
말을 끊은 진호는 관도 옆의 숲으로 몇 보 걸어가더니 도를 꺼내 들고 가볍게 내밀었다.
팅!
진호의 도에 실이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헛! 그건 뭔가?”
남궁전이 놀라며 물었다.
“은형마삭입니다. 진의 선두인 건위(乾位)에 서시는 분은 은형마삭을 조심하십시오.”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를 해 놓은 모양이군. 얼마나 더 설치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염자개가 나서며 물었다.
“은형마삭은 대량으로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많이 설치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도 그 효과는 대단히 큽니다. 은형마삭이 있는 것을 알고 나면 추적자는 속도를 내지 못하니까요.”
“그도 그렇군.”
“제가 먼저 앞장서겠습니다. 세 분이 한 방향씩 맡아 주십시오.”
진호가 앞으로 나섰다.
“그럼 내가 좌측을 맡지. 남궁단주는 우측을, 주작단이 중앙을 맡아 주시게.”
선두에 나서는 진호를 보며 염자개가 일사불란하게 지시를 하였다.
진호가 선두에 서서 서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순찰부의 대원들은 팔각형으로 대형을 이루는 팔괘진을 짰다. 상대적으로 순찰대원들에 비해 무위가 강한 백호단과 주작단은 마름모 형태의 사상진을 이루며 앞으로 나아갔다. 방어진을 짜고 나아가게 되면 배후에서 공격당할 염려가 없기 때문에 자신이 맡은 전방만 주의하면 되므로, 이처럼 어둠 속이나 적의 위치를 모르는 상황에서는 대단히 유용한 진형이다.
탐색을 하는 동안 간간이 은형마삭을 제거하는 미세한 소리만 날 뿐, 십 장 정도를 지나칠 때까지 침묵이 계속되었다.

“기창아!”
“예, 호법님.”
“앞에 서서 오고 있는 저자에 대해 들은 게 있느냐?”
“전혀 없습니다. 복장은 풍운대 복장입니다만.”
“흘흘, 영특한 놈이야. 힘들게 구한 은형마삭이 무용지물이 돼 버렸어. 저놈 때문에 아이들이 힘들어지겠군.”
“어차피 이번 목표는 적당히 타격을 주고 빠지는 것 아닙니까?”
“아니 아니, 기창아. 아이들을 좀 포기하더라도 제대로 일을 벌여야 할 것 같다.”
“호법님…….”
“안다. 그러나 살다 보면 많은 것을 잃더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 있는 법이다.”
“네, 알겠습니다.”
“천하제일이라는 미모가 아깝기는 하지만, 소검후라고 불리는 아이가 피를 보면 날뛰는 놈들이 많아지겠지.”
“…….”
“아이들에게 내가 비도를 날리면 모두 공격하라고 일러라.”
“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