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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전기 1권(4화)
제2장 회상(回想)(2)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숨이 다 되어 호흡이 정지된 상태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숨이 다 되는 순간 눈앞이 노래지고 이윽고 캄캄하니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그야말로 죽기 직전의 가사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그때까지도 숨을 들이켜지 않으면, 온몸의 피부가 따끔따끔해지기 시작한다.
물론 그 이후에는 의식이 없기 때문에 호흡이 정상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맨정신으로 자신을 죽음 직전으로 몰아넣는 경험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한 상태를 겪고 나야 호흡의 길이가 늘어나는 것이다. 진성은 아직 한 호흡으로 사십팔 식을 펼치는 데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동생인 진호는 얼마나 독종인지 이미 다섯 살 때 칠십이 식을 다 펼쳐 냈다. 그러곤 이미 물속에서 태극권 칠십이 식을 펼치는 단계에 들어갔다. 진성이 건곤공(乾坤功)의 일 단계인 건식공(乾息功)에 머물러 있다면 진호는 다음 이 단계인 습식공(퓪息功)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습식공의 과정은 건식공으로 피부호흡의 기초 방법을 터득한 이후 수중에서 피부호흡을 자연스럽게 심화하고 수기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 괴물 같은 동생은 이미 습식공을 완성했을지도 모른다. 부친은 이 건식공과 습식공을 합쳐 건곤공이라고 한다고 했다.
건식공으로 양기를 받아들이고 습식공으로 음기를 받아들여 음양이기를 단전에 축적시키는 것이다. 음양이기를 다루는 심공으로 무당의 양의심공(兩儀心功)이 대표적이다. 부친의 스승이신 운허도장은 건곤공은 양의심공의 원형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익히는 과정이 너무나 힘들어 아버지의 사문인 무당파에서도 이 건곤공을 익히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건곤공을 대성한 후에 익힐 수 있는 건곤태극공(乾坤太極功)을 익힌 사람은 건곤공의 당대 전수자들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건곤태극공의 다음 경지인 건곤무극공(乾坤無極功)은 그 요결조차 전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비록 건곤공이 완벽하게 음양이기를 다룰 수 있는 심공의 원형이라고는 하나, 무당의 제자들은 검증되지 않은 건곤공보다는 양의심공을 익힌다. 물론 양의심공을 대성한 후에는 양의태극심공을 익힌다. 무당 장문인조차 건곤태극공이 아닌 양의태극심공을 운용하여 태극혜검을 펼친다고 한다.
무당의 제자들은 기본공인 삼재심법을 익힌 후에는 진산제자와 속가제자로 구분하여 심공을 익히게 된다. 진산제자들은 양의심공을 익히고, 속가제자들은 무당심법의 요결을 간략하게 축소하여 만든 태극심공을 익히게 된다.
부친은 외아들인 탓에 가문을 이어야 한다는 조부의 고집 때문에 진산제자가 되지 못하였다. 부친이 비록 속가제자의 길을 택하였지만, 그 자질이 대단히 뛰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운허도장은 진산제자들이 익히는 양의심공을 전수하지는 못하지만, 비록 사장되었다고는 하나 오히려 양의심공의 원형이 되는 건곤공을 가르쳤던 것이다.
건곤공을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도록 수련한 부친은 속가이기는 하나 무당을 대표하는 제자가 되었다. 아마 그 일이 없었다면 부친은 건곤태극공의 당대 전수자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부친이 속가제자로서 두각을 나타낼 무렵, 우연한 기회에 무당을 대표하여 화산의 제일 기재라고 칭하여지던 화산파 장문인의 제자와 비무를 하게 되었다.
화산의 제자는 부친이 속가제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어느 정도 무시하는 마음으로 비무를 시작하였다가 궁지에 몰리게 되자 명문정파 제자들 간의 비무에서는 감히 생각할 수 없는 독랄한 살초를 쓰게 되었고, 정당한 비무에서 그와 같은 살초를 접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부친은 찰나의 실수로 단전을 다치고 말았다고 한다.
당시 부친의 부상이 깊었지만 무당의 비전 영약인 자소단과 몇 명의 장로들이 추궁과혈로 치료하였다면 회복이 가능했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진산제자도 아닌 속가제자를 위해 무가지보의 영약과 힘든 수고를 내놓을 문파는 없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결국 회복 불능의 상처를 입고 부친은 낙향하여야 했다. 부친은 자신이 진산제자가 아니라 속가제자였기 때문에 사문에서 자신을 너무 쉽게 포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진성, 진호 두 형제 중 한 명은 진산제자를 만들어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생각지도 못한 때에 찾아왔다. 지난해 원단에 아끼는 제자에게 생긴 불행이 너무나 안타까웠던 부친의 스승 운허도장이 진성 형제의 집을 찾아온 것이다.
제자의 심정을 이해한 운허도장은 두 형제 중 한 명을 무당산으로 데려가 진산제자로 만들어 주마 하였다. 아마도 두 형제 중 차남인 진호를 무당산으로 데려가기로 한 것 같았다. 운허도장은 일 년 가까이 별채에 머물면서 진호를 데리고 있었다. 친손자를 대하듯이 자애로웠고 진호도 도사 할배라 부르면서 잘 따랐다. 운허도장이 그동안 진호에게 무엇을 가르쳤는지 진성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진호는 도사 할배에게 그저 춤을 배웠다고 한다.
운허도장께서 남해에 갔다 오는 길에 진호를 무당산으로 데려가마 하시곤 남해로 떠난 뒤, 진호의 수련은 다시 부친이 맡게 되었고 그 수련은 혹독하기 그지없었다.
그 반대급부로 진성은 혹독한 수련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래서 진성은 동생이 혹독한 수련을 받는 것이 어느 정도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서당에 다녀오는 길에 동생이 부친으로부터 엄하게 벌을 받는 것을 보고는 너무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에 진호에게 말을 건넸던 것이다.
부친의 엄격하고 혹독한 지도는 진호가 열세 살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명진도장, 부친의 사형이 되는 그 도사님이 찾아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픈 소식을 전한 그날까지…….
“아니, 명진 사형! 어찌 알고 이리 오셨습니까?”
진호의 부친 진가섭은 갑작스럽게 방문한 사형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명진도장은 운혜 사숙의 제자였지만, 무당산에서 수련을 할 적에 친하게 지냈던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이 사람 명운, 잘 지내는가?”
명진도장은 진가섭이 무당산에 있던 시절 불렸던 명운이라는 도호를 부르며 두 손을 마주 잡아 왔다.
“사형, 이리 드십시오. 밤공기가 찹니다.”
진가섭이 명진도장을 안채로 안내하며 들기를 청하였다.
“그럼세, 이거 내가 너무 늦은 시간에 온 것 같군.”
명진도장이 예를 차리며 진가섭과 함께 안채로 들었다.
진성과 진호는 중년의 도사님이 도사 할배 소식을 가져왔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부친의 방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난 후에 두 형제는 뜻밖에도 부친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다.
“흑흑흑, 그게 정말입니까? 사부님이 귀천하셨단 말입니까?”
“이 사람 명운, 마음을 다스리게. 지금 남해에 다녀오는 길이네. 다른 분들은 사백님의 유골을 모시고 본산으로 바로 향하셨네. 다행히 내가 전에 운허 사백을 뵈었을 때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어 자네에게는 알려야겠다 싶어 이리로 온 것일세.”
부친은 그날 이후 거의 술로 사셨고 진호도 멍하니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진호는 다시는 도사 할배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이제는 거의 완벽하게 시연할 수 있는 도사 할배가 가르쳐 준 춤을 정작 도사 할배에게는 보여 줄 수 없게 된 것이 너무 슬펐다.
장오를 비롯한 소하촌의 아이들과 진호가 어울리게 된 것이 그 무렵이었다.
진호가 소하강가에 멍하니 앉아 있을 때 장오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야! 뭘 그렇게 보고 있냐?”
진호가 힐긋 고개를 돌려 장오를 쳐다보곤 다시 강물을 보며 나직이 대꾸했다.
“그냥…… 강물 흘러가는 거…….”
도사 할배는 진호에게 늘 흐르는 강물처럼 살라고 했다. 흐름을 거스르지도 말고 항상 낮은 곳을 향하며 넓고 원대한 대해를 향하는 꿈을 멈추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살라고 말이다.
“오늘은 수련 안 하네. 진성이 형님이 너는 수련광이라 밥 먹고 수련만 한다던데…….”
“진성이 형님? 너 우리 형을 알아?”
“엉. 우리 형이랑 성이 형님이랑 같은 서당에 다녔거든. 우리 집에도 가끔 놀러 오곤 했는데, 내가 너는 서당에 안 다니냐고 물어보니깐 넌 오로지 밥 먹고 수련만 하는 수련광이라던데…….”
“치, 나 이제 수련 안 해.”
진호는 여전히 강물만 바라보며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그럼 우리랑 장어 잡으러 안 갈래? 장어 잡아서 춘삼이 형한테 가져다주면 맛있는 거 많이 얻어먹을 수 있거든.”
***
“뭔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냐?”
장오가 진호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건넸다.
“그냥 강물 흘러가는 거……. 이젠 흐르는 강물처럼 살 수 있을까…….”
진호는 나직이 혼잣말을 뇌까렸다.
“아! 너 그거 모르지? 귀도가 없어진 거.”
장오가 귀도가 있던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엉? 귀도가 없어져?”
“어. 너 떠나고 조금씩 가라앉더니 결국 사라졌어. 신기하지? 멀쩡한 섬이 사라져 버렸으니.”
‘흠, 나 때문인가?’
진호는 고개를 갸웃하며 옛 추억을 떠올렸다.
“춘삼이 형은 만날 어두탕만 해 주냐?”
여상이 입을 삐죽거리고 있었다.
“마! 그래도 맛있잖아!”
장오가 배를 두드리며 여상을 보고 말했다.
“치! 그래도 우리가 잡은 장어를 소향로에 가서 팔면 철전 사, 오십 문은 받을 건데.”
여상은 못내 불만이 많은 모양이었다.
“돈 받아서 뭐 하려고?”
진호가 한마디 툭 내뱉었다.
“아니…… 내 말은 그냥 당과도 사 먹을 수 있고…….”
여상은 주저거리며 말을 했다. 진호는 같이 어울리기는 하지만 아직도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존재였다. 장오만이 겨우 편하게 이야기하는 정도였다.
“그냐? 그럼 담에 장어 많이 잡아 줄 테니 네가 팔아 와라.”
“진짜?”
여상의 눈에 기대감이 어렸다. 진호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장어보다 거북이 알이 더 많이 받는데!”
두철이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거북이 알? 그게 어디 있는데?”
진호가 물었다.
“거북이 알이야 귀도에 가면 많지!”
장오가 참견하고 나섰다.
“칫! 귀도는 아무도 못 가잖아!”
여상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펄쩍 뛰었다.
“귀도?”
진호가 처음 듣는 지명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 너 귀도가 어딘지 모르냐? 저기 저 조그맣게 보이는 섬이 귀도야.”
장오가 소하강의 하류 쪽으로 조그만 섬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기를 왜 아무도 못 가냐?”
진호가 보니 강물 위로 제법 큰 바위 봉우리 하나가 솟아나 있을 뿐 그다지 특징이 없는 평범한 바위섬일 뿐이었다.
“우리 할배가 그러던데, 귀도는 섬 모양이 거북이를 닮아서 귀도라 하기도 하고 바다거북들이 알을 낳는 곳이라 귀도라 하기도 하는데, 마을 사람들은 귀신이 나오는 섬이라고 귀도라 한대. 섬 주위로 소용돌이가 쳐서 근처에 가면 다 죽는대. 밤마다 그동안 빠져 죽은 사람들이 귀신이 돼 나타나서 울곤 한다더라. 어른들도 아무도 근처에 못 간대. 아마 이때까지 모영이가 젤루 가까이 갔을걸.”
장오는 말을 하곤 모영을 슬쩍 보았다.
“에헴, 아무리 진호 너라도 내가 간 곳까지는 못 갈걸.”
금모영은 어깨에 힘을 잔뜩 주며 의기양양해 하며 말을 했다.
“뭐? 얌마, 너 일루 와. 네가 간 데가 어디까지야?”
진호가 아이들 가운데 유일하게 싫어하는 녀석이 모영이었다. 말 그대로 주는 거 없이 미운 놈이었다. 주는 걸로 따진다면 오히려 모영이 많이 뺏겼다. 진호가 나타나기 전까지 대장 노릇을 했지만 진호에게 대들다가 딱 한 방에 개구리처럼 뻗고 난 다음부터는 늘 기죽어 지내는 모영이었다.
“어…… 저, 저기 중간에 보이는 암초까지.”
모영은 진호가 눈을 부라리며 말을 하자 엉거주춤 다가가서 강변과 귀도 사이의 중간에 삐죽 솟아 있는 암초 하나를 가리켰다.
“뭐야, 겨우 저기까지? 저 정도는 지금 당장이라도 갔다 오겠구만!”
진호가 별거 아니네 하는 투로 말했다.
“호야, 그게 아니야. 저 근처에만 가도 소용돌이가 느껴진대. 아차, 하는 순간에 말리면 끝이야!”
장오가 걱정이 되는지 진호를 말리려고 했다.
“누가 그래? 모영이 저놈이? 진짜야? 내가 갔다 와 볼까?”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진호가 강으로 뛰어들었다.
진호는 마치 물고기처럼 유유하게 물살을 헤치며 나아갔다.
이미 건곤공을 익히고 건곤태극공을 수련하고 있는 진호에게 물이란 육지와 다름없는 곳이었다. 건곤태극공을 수련하기 위해서는 태식(胎息)을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건곤공은 태식을 익히기 위한 기본 수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운허도장은 떠나기 전 진호에게 자신이 가르치던 건곤태극경의 필사본을 남겨 두었다. 건곤태극경에는 다음과 같이 태식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었다.
眞人曰, 胎息者 如창兒在母胎中 氣息自在 上至氣關 下至氣海 不假口鼻之氣 故能閉氣不息 能入深泉旬日不出也. 又曰, 內觀之要 靜神定心 亂想不起 邪妄不侵 氣歸臍爲息 神入氣爲胎 胎息相合 混而爲一名曰, 太乙…….
진인이 말씀하기를, ‘태식이란 것은 아이가 태 속에 있을 때 숨을 쉬는 것처럼 숨을 마음껏 들이쉬어 위로는 기관(氣關)에까지 가게 하고 아래로는 기해(氣海)에까지 가게 하며, 입과 코로 숨을 쉬지 않는 것과 같이 되기 때문에 숨을 쉬지 않고 깊은 물속에 들어가서 열흘 동안 있다가 나올 수 있다’ 또한 말씀하시기를, ‘내관(內觀)하는 요령은 정신과 마음을 안정하고 잡념을 없게 하며 옳지 못하고 허튼 생각이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 기가 배꼽으로 돌아가는 것을 식(息)이라 하고 신(神)이 기(氣)로 들어가는 것을 태(胎)라 한다. 이 태(胎)와 식(息)이 서로 배합하여 하나로 뭉친 것을 태을(太乙)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