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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진위대 1권 (24화)
제5장 만남 (7)
굳은 표정으로 태진훈 대표의 이야기를 듣던 홍범도는 다짜고짜 장순택 사령관에게 군인들이 쓰는 무기를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장순택 사령관이 이내 지시를 내렸다.
“민정기 대장, 부탁해요. 아예 박격포 시범까지.”
탄약을 단 한 발이라도 아껴야 하는 시점이지만 큰 인재를 얻는 데 그 정도쯤이야 감수할 만했다.
“이 총은 우리가 개발한 총으로서 제1번 총입니다. 이름은 아직 짓지 않았습니다. 한 번 살펴보십시오.”
“오오, 구경도 짝고 가볍고만. 그런데 와 이름이 없습네까?”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서양 세계에 속해 있을 때, 그들의 언어로 지은 것이라서요. 홍 대장님께서 이름을 지어 주시겠습니까?”
“오찌 내래 그러갔소. 고건 안 될 말임네. 나중에 황제 폐하께 부탁해 보시라요 . 고거이 좋지 않갔소?”
홍범도는 K2 소총을 들어 올려 이것저것 살펴보더니 사격 자세를 취해 보았다.
“내래 체격에 아주 딱 맞는 게 아주 좋구만기래. 그런데 이 앞에 유리 달린 원통은 무엇이라요?”
“그것은 조준경이라 합니다. 적군을 중간의 십자선이 교차하는 부분에 놓고 쏘면 정확하게 맞힐 수 있습니다.”
“놀랍구만기래. 이런 게 가능하다니.”
“그럼 이제 사격 시범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민정기 대장은 사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사수는 반자동, 점사, 자동 사격 과정을 차례대로 보여 주었다.
K2 소총의 위력에 깜짝 놀란 홍범도.
“오찌 장전하지 않고 사격이 가능한 것임네까? 게다가 저런 속사가 가능하다니.”
“우리 총은 일본군이나 러시아 군이 쓰는 총보다 훨씬 성능이 좋습니다. 조준경이 있어 명중률이 높기 때문에 탄약도 많이 절약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쏴 보시겠습니까?”
“아, 그래도 되갔소? 고맙소.”
홍범도는 간단히 사용 방법을 전해 듣고 바로 사격을 해 보았다.
단발, 점사, 자동사격까지.
사격이 끝나자 홍범도의 마음속에서 탐욕이 일어났다.
이 총 정말 갖고 싶다는.
당시 러시아 군이 쓰던 베르그단 소총이나 일본군의 아리사카 30년식, 무라타 소총은 모두 볼트액션식 소총이었다.
대한제국군도 그 총들을 모두 사용했지만, 러시아 제 베르그단 소총이 가장 많이 보급된 상황이었다.
그러니 K2 소총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이어서 K11 복합소총, 유탄발사기, K3 경기관총과 81㎜ 박격포 시범까지 줄줄이 진행됐다.
“허어, 이게 말이 됨네까? 요 조그만 원통 모양의 포가 일본의 대포보다 더 성능이 좋다는 게? 내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임네?”
홍범도의 눈은 어느새 저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잠시 망부석이 되어 있었다.
하늘이 참 넓다.
그의 눈동자가 하늘을 향해 쏘아 내는 눈빛이 어느새 밝게 물들었다.
다시 찾아온 젊은 날의 꿈.
저 도적 같은 왜놈들을 물리쳐, 도탄에 빠진 나라와 백성을 구하겠다는 커다란 꿈. 그토록 갈구했던 염원이 마른 부싯깃에 불붙듯 다시 타올랐다.
“저어.”
민정기 특전대장이 말을 붙이려 하자 장순택 사령관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잠시 후.
털썩.
갑자기 홍범도가 무릎을 꿇었다.
“장 사령관! 내를 받아주시라요!”
“홍 대장님.”
“당신들이라면, 당신들과 함께 한다면 저 간악한 왜놈들을 내쫓고 우리나라를 구원할 수 있을 것 아니갔소. 조 기나긴 어둠의 끝에서 오늘에서야 내래 빛을 만난 것이라요. 부디 내를 왜놈들 심장을 향해 날아가는 한 발의 총탄으로라도 써 주시지 않갔소. 이렇게 부탁드리갔소.”
장순택 사령관은 얼른 그를 일으켰다.
어느새 장순택 사령관의 눈은 벌게져 있었다.
“홍 대장님, 저희야말로 홍 대장님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에 홍범도는 진정으로 기뻐하였다.
“술 있소? 이런 날 마시지 않으면 언제 마셔 보갔소?”
그날 저녁에 벌어진 술자리에서 그는 예의고 뭐고 다 잊어버리고 대취했다.
그의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던 위엄과 용맹스러움도 다 벗겨져 나갔다.
목청껏 큰소리로 노래 부르며 동료 포수와 덩실덩실 어깨춤까지 추었다.
그는 에미네를 만난 날 빼고, 태어나서 최고로 기쁜 날이라고 했다.
홍범도는 가족과 동료들을 데리고 오겠다며 다음 날 아침 바로 본부를 떠났다.
또한 돌아오는 대로 포수 동료들과 더불어 입대하여 군사훈련을 받겠다고 했다.
본부에서는 간부 교육 과정을 권했지만 홍범도는 이를 고사했다.
오랜 기간 진행되는 간부 교육을 받느니 빨리 훈련을 끝내고 전장에 나가고 싶다는 이유로.
태진훈 대표는 홍범도에게 예전에 같이 일했던 광산기술자들도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다.
홍범도는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가족과 동료를 챙기고, 부탁받은 광산 기술자들까지 데려오려면 훗날 직접 화룡으로 합류할 터였다.
화룡 방향으로 길을 내는 공사는 점차 속도가 오르고 있었다.
간이 목재 교각을 만드는 노하우가 쌓인 탓이다.
또 중장비들을 일정 시간씩 교대로 운용하는 방식으로 24시간 공사가 가능해졌다.
군 사령부에서는 도로의 주요 지점에 중대 병력을 보내 공사 구간에 대한 수색과 경계를 담당하게 했다.
1차로 토문강에서 대마록구하 구간이 교차되는 산록에 공터를 만들고 1개 중대를 배치했다.
이 구간도 마적의 주요 통행로였기 때문이다.
이곳으로 오는 마적들은 말 달리기 편한 백두산 고원지대를 거쳐 두만강을 따라 달리다 국경 너머 무산 등지로 내려가곤 했다.
중장비들 또한 이 군 주둔지에서 서로 교대하며 공사를 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대마록구하 구간도 완성이 될 터였다.
그래서 본부에서는 1개 중대를 더 파견해 대마록구하와 홍기하의 접점 지역에 배치시켰다.
한편, 1차로 간도 주민 및 유민에 대한 교육 계획을 수정 입안한 후, 본부에서 기숙하고 있는 유민 2백여 명을 대상으로 교육을 시작했다.
유민이나 현지 주민 교육은 두 가지 시스템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먼저 모든 성인을 대상으로 한 2개월 기한의 공통 교양과정.
아직까지는 문맹률도 높은 터라 교양과정에서는 기본적인 읽고 쓰기와 기초 수학, 한국사 등의 과정을 개설했다.
교양과정을 마치면 면담을 통해 기술과 행정직으로 인원을 구분하여 2차 전문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2차 전문교육은 따로 교육기관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각 부서에 인원을 배치하여 실습과 추가 교육이 같이 진행되도록 했다.
다들 2개월 공통 교양과정이 너무 짧다고 한마디씩 했지만, 극심한 인력난이 예상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입대 희망자는 훈련소에서 기초 교양과정을 병행하기로 했다.
기술이나 행정 교육의 주된 대상자는 간도 주민 보다는 유민들이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아직 터를 잡지 못한 유민들은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전문 기술자로 키워 나가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또 다른 시스템은 정규 학제 편성과 관련된 것이지만, 이 교육 제도는 화룡으로 이주한 후, 천천히 시행하기로 했다.
특전대의 작전은 명성 그대로 엄청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게다가 함경도 북부 지방의 지형이 특전대의 작전을 더욱 용이하게 해 주었다.
워낙 산세가 험하다 보니 유민이든 적이든 지나다니는 길이 일정할 수밖에 없었다.
특전대원들은 이러한 길목들을 감시하기만 하면 되었다.
혜산 방면은 보천보와 백두산을 잇는 노선이 주요 통행로였다.
이 길에서는 주로 유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성군 만두산(2,009m)에서 발원하여 무산 근처에서 두만강과 합류하는 서두수 노선에서는 양상이 달랐다.
무산을 거쳐 홍기하를 통해 화룡으로 가거나 두만강을 따라 용정으로 가는 길이 나 있다 보니 유민들 이외에 일본군 정탐병과 일진회의 첩자들도 간혹 나타났다.
특전대원들이 이곳을 잘 막아 주어야 화룡으로 들어가는 첩자들을 최소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작전상 매우 중요한 노선이었다.
이를 잘 아는 민정기 특전대장은 서두수 인근에 조그만 주둔지를 하나 더 만들고 활동 반경을 무산 부근까지 넓혔다.
그리고 지금, 서두수 통로를 정찰하던 팀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수상하지?”
“그렇습니다. 성인 남자 세 명이니까 유민은 아닌 것 같고, 조금 더 접근해서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게 나을 것 같군. 김 상사와 신 소위는 여기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나머지는 날 따른다.”
팀장은 나머지 인원을 이끌고 포위 대형으로 벌리며 은밀히 접근했다.
숨을 죽이고 관찰하고 있으려니 두런두런 주고받는 일본어가 들렸다.
이런 경우, 볼 것조차 없다.
팀장은 대화 속에서 누가 일본군인지, 누가 통역과 안내인인지 금방 구분해 냈다.
팀장이 수신호를 보내자 팀원 중 한 명이 나서서 저들 일행 중 한 명에게 총을 겨누더니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윽!”
“어이쿠!”
일본군이 총에 맞고 쓰러지자 동행하던 이들이 땅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상황이 대충 정리되자 특전대원들은 숲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일진회, 이 쓰레기 매국노 새끼들!”
“아이고! 살, 살려 주십시오.”
한결같이 목숨을 구걸하는 일진회원의 구차한 행태에 팀장은 혀를 찼다.
“지긋지긋하군.”
“지금 함경도에만 수십만의 일진회원들이 득시글대고 있다고 했으니, 앞으로도 엄청나게 올라올 겁니다.”
실제로 일진회는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20만 명을 동원하여 ‘북진 수송대’란 이름을 내걸고 군수물자의 운반과 통역 등을 담당했다 한다.
함경도에서도 연 인원 11만 4,500명이 동원되었다.
평안도 지방과 달리 함경도 일진회원들은 러시아 군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간도에 사람을 보내 일본군과 더불어 첩보 수집 활동까지 벌였다고 한다.
그들 중, 상당수가 이쪽 서두수 길로 오고 있었다.
특전대는 간삼봉 남쪽 삼지연 근처에 본부 건물을 세웠다.
서쪽 베개봉(1,621m), 동쪽의 북포태산(2,288m)과 남포태산(2,433m)의 중간 지점에 자리한 이 지점은 천혜의 요새 같은 곳이었다.
본부까지는 외길이었기에 방어하기에는 최적의 지형이었다.
또한 근처 삼지연에서 식수도 구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통나무집 형태로 급조해 만든 특전대 본부 건물.
요즘 들어 특전대 본부의 업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었다.
팀들이 여기저기 분산해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인근 지역 정보, 유민, 적과의 조우 등에 관한 무전이 쉴 새 없이 들어오고 있는 탓이었다.
“지금까지 몇 명인가?”
“벌써 12명입니다. 그냥 죽여 버리지 왜 본부에서는 이들을 모아 달라고 하는 걸까요?”
“아무래도 우리 인력이 워낙 부족하니까 활용하려고 그러는 것 같아.”
“활용이라면 무슨…….”
“재활용이지. 하하!”
실제로 본부에서는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특히 자금을 담당하고 있는 성영길 재정경제부장이 강하게 주장했다.
과거로 오기 전부터 ‘오로지 금!’을 외쳤던 그는 이태인 자원개발부장으로부터 화룡에 사금광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이를 어떻게 확보할까 엄청나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