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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진위대 1권 (20화)
제5장 만남 (3)
이들이 처음 특전대원과 마주쳤을 때 보인 반응은 민우 일행의 경우와 똑같았다.
그렇기에 특전대원들은 이들을 어르고 달래 겨우 여기까지 데려올 수 있던 것이다.
한데 서경영이라 자신을 밝힌 이는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 까무러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집채만 한 괴물들이 굉음을 내지르며 흙을 마구 퍼 나르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독특한 옷을 입은 수많은 거인들―그들의 눈엔 그렇게 보였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으니.
게다가 지금 자신이 만나고 있는 사람이 무리 중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라고 하니 극존칭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행여나 높은 분의 심기를 건드릴까 싶어 한껏 조심하고 있는 상태에서 어찌 제안을 거절할 수 있으랴.
“부관, 이분들께 거처를 제공하고 식사를 내어 드리도록.”
서영경이 나가자 앞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장교가 들어왔다.
“그래, 어떤가? 지금이 1905년이 맞다 하나?”
“네, 그렇습니다. 유민들의 말을 들어 보니 지금이 광무 9년, 을사년이라고 합니다. 날짜도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그래, 지금 함경도의 사정은 어떻다던가?”
“많은 수의 일본 정규군이 원산에 있고, 헌병이 치안을 담당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관청이 있는 곳이면 헌병대가 주둔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악랄한 헌병대가 독버섯처럼 벌써 곳곳에 퍼진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앞으로 저희는 정규군 이외에도 헌병대와 같은 보조 부대의 움직임도 계속 감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 바로 밑에 있는 삼수와 갑산에 대한제국군 소속 북청진위대의 분견대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들의 움직임 또한 계속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대한제국군은 친위대, 시위대, 진위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친위대와 시위대는 중앙군, 진위대는 지방군을 일컬었다.
총 병력은 약 3만 명.
그중 진위대는 6개 연대로 편제되어 있었고, 무장도 꽤 훌륭한 편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대한제국이 북청진위대의 일부 병력을 뽑아 올려 삼수와 갑산에 분견대를 배치한 이유가 중국 마적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중국 마적의 활동 범위가 만주 지역에 그치지 않고, 국경까지 넘어올 만큼 넓었다는 이야기였다.
함경남도 갑산군 관청 앞 공터.
“아이구, 이를 우짜슴메…….”
짝!
“으악!”
일본 헌병이 매질을 시작했다.
공개적으로 태형을 집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데 지금 일본 헌병이 집행하는 태형은 평소 봐오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수형자의 둔부를 노출시킨 다음 형틀에 매달고는 최소 80대씩을 집행하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소의 생식기로 만든 채찍의 끝에 달린 납덩이가 살을 파고 들어가 더 큰 고통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말이 태형이지, 실상은 많은 사람들이 그 후유증으로 죽어 사형에 가까웠다.
게다가 죄목도 자의적으로 붙이기 나름이었다.
일본인에게 폭언을 해도, 일본 순사들에게 조금만 불경스러운 행동을 해도, 심지어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일본 순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는 이유로도 붙잡아 태형을 가했다.
일본군의 시설을 훼손하거나 공격하면 무조건 사형이었다.
즉결 처형도 가능했다.
지금 벌을 받는 사람은 술자리에서 분통을 터트리며 헌병들 욕을 하다가 누군가의 밀고로 붙잡힌 경우였다.
“크흑!”
“음…….”
“팀장님, 이렇게 계속 참고 지켜보기만 해야 합니까?”
“나라고 피가 안 끓겠나? 마음 같아선 당장 뛰어 내려가 다 때려죽이고 싶지만, 방침이 그런 걸 어쩌겠나. 절대 우리 존재를 노출시키지 말란 명령 말이야…….”
“후우, 어떻게 사람이 저리도 잔인한 수가……. 정말 인간 말종들이군, 말종들이야!”
특전대 1개 팀이 갑산군까지 내려와 정찰을 하다 우연히 공개적으로 태형을 가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그중 한 대원은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마을의 지형지물을 일일이 지도로 그리느니 찍는 게 더 낫다는 생각에서 지급해 준 카메라였다.
일본군의 야만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전국시대를 거쳐 오며 형성된 무력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그들의 양심과 인성을 앗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훗날 벌어진 남경대학살에서는 재미 삼아 양민을 학살했다고 한다.
그중 일본군 간부 두 명이 누가 많이 중국인들의 목을 베나 내기를 했는데, 서로 100명가량을 베었다는 일화가 있었다.
더 놀라운 점은 그것이 마치 자랑거리라도 되는 듯, 일본 신문에 그대로 보도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신문에는 그들의 얼굴 사진까지 게재될 정도였다.
특전대원들이 일본 헌병들의 잔혹한 처사에 치를 떨고 있을 무렵, 갑자기 군중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눈을 가린 죄수가 끌려 나온 것이다. 헌병들은 그를 관청 뒤의 언덕으로 끌고 갔다.
호기심에 따라가려던 군중을 헌병 하나가 채찍을 휘두르며 막아섰다. 공개 태형은 심리적 공포를 자극하기 위해 벌인 일이지만, 총살형까지 목격하게 되면 군중들이 동요를 일으킬 수 있었기에.
언덕에 오르자 헌병은 나무둥치에 죄수를 묶어 세웠다.
“저, 저…….”
“헉, 총살형?”
“팀장님, 설마 이거…… 역사 교과서에서 사진으로 봤던 그 장면 아닌가요?”
“그런 것 같군. 그런 게 어디 이곳뿐이겠나?”
“팀장님, 정말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큭.”
그 순간, 헌병 한 명이 총을 들어 죄수에게 겨누자 특전대원들은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질끈 감았다.
탕!
“엇! 이게 무슨?”
총소리가 너무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황당한 표정의 팀장.
앞을 보니 총을 조준하던 병사가 쓰러져 있고, 당황한 헌병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총소리가 난 곳을 찾고 있었다.
“이런 시발, 젠장! 다들 사격!”
탕! 타당! 탕!
일본 헌병대가 순식간에 몰살당했다.
조준경이 달린 개량형 K2 소총으로 한 사격이라 빗나간 탄환은 없었다.
“뭐해! 빨리 구하지 않고!”
팀장의 지시에 재빠르게 뛰어나가 죄수를 구한 대원들은 은폐했던 숲 속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사이, 언덕 아래에서는 남은 헌병들이 뛰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워낙 특전대원들의 동작이 빨라 뒤를 밟히지는 않은 듯했다.
한참 더 깊은 숲 속으로 들어와 일본군을 따돌린 특전대원들.
어느 정도 숨을 돌리게 되자 팀장은 원인 파악에 나섰다.
“누구야!”
“하사 김환경! 죄송합니다, 팀장님.”
팀의 막내인 김환경 하사였다.
젊은 피가 끓어올라 본능적으로 일을 저지른 것이다.
팀장은 큰소리로 야단칠 수도 없어 씩씩거리며 애꿎은 땅만 차댔다.
다른 대원들 또한 얼굴이 바짝 굳었다.
그렇다고 명령을 어긴 막내를 두둔할 수도 없었다.
최정예 부대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졌기에.
한편,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의 위기에서 구출된 죄수는 아직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헉!”
또 그런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 위장 크림 바른 얼굴은 늘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고 잠시 숨을 고른 죄수가 그제야 말을 꺼냈다.
“갑산 사는 허진임메다.”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 그는 의병 부대에 소속된 인물은 아니었다.
다만, 헌병대가 설치는 꼴을 보고 분개하여 마을 청년 두 명과 더불어 밤중에 헌병대의 전신선을 절단했다고 한다.
한데 문제는 그 후에 벌어졌다.
젊은 혈기에 또래들에게 자랑하다 이를 엿들은 일진 회원의 밀고로 붙잡히고 만 것이다.
허진의 말에 따르면, 일본 헌병대에 붙잡힌 죄수의 상당수가 현장에서 잡히기보다 그처럼 밀고에 의해서 잡힌다고 했다.
팀장의 무전을 받은 본부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당장 작전을 중지하고 복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군 수뇌부는 상황 보고를 들은 뒤, 민정기 특전대장에게 사후 수습을 일임했다.
“후우, 이것들을 어떻게 한담? 어이, 정 팀장. 그리고 김 하사, 군인은 뭐라고?”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산다고 했습니다!”
특전대 막사에서 정 팀장과 김환경 하사가 머리를 땅에 박은 채 고함을 질렀다.
“그래, 잘 알고 있구만! 그런데 특전대의 명예를 떨어트리고, 상부의 명령을 제 맘대로 어겼으니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겠지?”
머리를 박은 두 사람은 특전대원답게 미동도 하지 않았다.
“군인은 의무도 있지. 영토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 하지만 우리 민족의 운명이 우리한테 달렸다 생각한다면 그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하면 안 되겠지?”
“네, 그렇습니다!”
“좋아! 정 팀장은 팀원들과 완전군장하고 연병장을 일주일간 매일 50바퀴씩 돈다. 또 당분간 너희 팀은 작전에 투입되지 않고 본부 경비만 담당한다. 그리고 정 팀장과 김 하사는 연병장을 돌고 난 후, 막사에서 일주일간 자숙하는 기간을 갖는다. 사실상의 영창이지. 영창이 없으니까 막사에서 자숙하라는 거야.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일어서! 그리고 말이야, 그거 알아? 너희들이 무심코! 명령을 어겨 가며! 벌인 일이 우리 군대가 이 시대로 넘어와 벌인 첫 전투였다는 거.”
“헉, 그렇습니까?”
“그래서 더 창피하게 되었다. 이만 해산!”
한데 우습게도 그 일은 본부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삽시간에 화제가 되었다.
민간인들은 계획이 어그러질까 싶어 이번 일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다.
그러나 군인 중 일부는 그렇지 않았다.
“이야, 이거, 김 하사. 스타 됐네?”
하루 종일 막사에 앉아 자숙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김환경 하사의 뒤통수를 팀원들이 툭툭, 치며 장난을 쳤다.
김환경 하사가 고개를 내밀어 막사 앞을 보니, 지나가는 여군들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활짝 웃고 있었다.
남쪽 출신 여군들의 반응이다.
무리에 같이 있던 북쪽 출신 여군들은 수줍게 웃으며 손을 살짝 흔들었다.
예상치 못한 인기에 김환경 하사의 표정은 머쓱해졌다.
이를 보던 정 팀장이 한마디 덧붙였다.
“김 하사, 그렇다고 또 사고 칠래?”
“아닙니다, 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