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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진위대 1권 (17화)
제4장 을사년에서 을사년으로 (4)


정민철 중령은 모두가 들으라는 듯 종이를 들고 소리 내어 읽었다.
같이 갈 일행도 있으니 같이 숙지하자는 의미였다.
“그럴 확률은 거의 없지만, 만약에 일본 군대와 조우할 경우 반드시 전멸시켜 우리 군의 존재가 노출되지 않도록 것. 청국 관리는 마적과 다를 바 없으니 가차 없이 응징할 것. 청국 관리가 군대를 이끌고 와도 주저 없이 전투를 벌여 무력의 격차를 확실히 보여 줄 것.”
실제로 그랬다. 이 당시 간도에 파견된 청나라 관리는 깡패 집단이나 다름없었다.
한국인 주민을 대상으로 한 폭행, 청부 폭력, 금품 갈취 등이 빈번히 일어났다.
그리고 어차피 이들의 1단계 전략이 간도에서 청의 세력을 몰아내는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설사 청나라에서 대군을 보내 큰 전쟁이 벌어진다 해도 지도부는 감수하기로 했다.
간도는 대한독립전선의 근거지이자 고토 회복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당분간 청과 관련된 영토 문제에 있어서는 철저히 ‘비타협적 전략’을 유지하기로 이미 계획된 바인 것이다.
“행군 시에 항상 태극기를 앞세워 주민들을 안심시킬 것. 그런데 태 교수님, 지금 일반 대중들이 보편적으로 태극기를 우리 국기로 인식하고 있습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태극기가 보급된 지도 꽤 오래 지났고, 관청이나 군인들이 태극기를 계속 사용했을 테니까요.”
대한민국의 역사서에서는 한때 가장 악질적인 친일 역적 박영효가 태극기를 도안했다고 잘못 가르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고종이 도안했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확인되었고, 박영효의 태극기가 등장한 시점 이전에 인쇄된 미국 해군부 문서에서도 태극기가 당시 조선(1882년)의 공식 국기로 소개되었다.
그리고 고종의 명을 받아 최초로 태극기를 그린 이도 역관 이응준이라는 인물로 밝혀졌다.
“그리고 마적을 토벌할 때, 한두 명은 사로잡아 그들의 근거지를 확인한 후, 그곳을 찾아 납치된 한인들을 구출하고 마을 사람들을 응징할 것. 이 조항은 좀 못된 군대가 되란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우리 장병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안인데, 지금은 야만의 시대라는 사실입니다. 주먹 하나만 믿고 상대방을 약탈하는, 아주 악랄하고도 잔인한 힘의 시대이죠. 그것은 일본이나 청이나 러시아나 모두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렇게 변해야 살아남고 나라도 찾을 수 있습니다. 또 간도나 만주 지역은 무법지대나 다름없습니다. 기록을 보면 많은 한족 마을이 마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원래 마적의 출발이 마을 자경대니까요. 일단 마적을 보낸 것이 확인된 한족 마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응징하십시오. 너무 괴로워 떠날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하도록.”
“허! 알겠습니다, 무슨 뜻인지…….”
군인들끼리 하는 전투라면 누구보다 용맹한 해병대이지만 아무리 적이라 하나 민간인을 과격하게 몰아붙여야 하는 상황이 그리 탐탁할 리 없었다.
그러나 임무는 임무.
정민창 중령은 새삼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우리는 간도의 영유권 문제에 대해 합리적으로 접근하지 않기로 이미 결정했습니다. 백두산 정계비 따지고, 외교 문서 따지고 그럴 것 없이 ‘우리의 옛 영토를 되찾는다’란 명분만 내세우기로 했습니다. 덧붙여 우리 ‘대한제국 국민을 보호한다’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명분이 될 겁니다.”
“하하! 시원시원하네요. 정말 그거 하나는 마음에 듭니다. 경제학의 게임이론에도 있지요. 치킨 런 게임. 어떻게 보면 이 시대에 걸맞는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한 셈이네요.”
성영길 박사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그렇죠. 전략은 단순 무식하게, 전술은 대단히 섬세하고 유연하게. 그게 바로 우리의 모토이죠.”
산업공학을 전공한 손영일 박사도 거들고 나왔다.
군인과 달리 학자들이 한술 더 떴다.

방금 해병대 대장으로 임명된 정민창 중령은 병력 전원을 소집했다.
모두 합해 311명. 해병대는 이곳에 오기 전에도 뭉쳐 지냈기에 편제가 어렵지는 않았다.
계급과 군번 순서대로 중대장과 소대장을 임명하고 소대원들을 고루 배치했다.
또한 소대원들에게 무기와 탄약을 지급했다.
병사들은 개인화기 챙기랴, 군장을 꾸리랴 정신없이 바빴다.
그러던 중 해병대원들은 출동 명령이 떨어졌단 말을 듣자 모두가 쾌재를 불렀다.
안 그래도 지난 전투에서 제외되어 다른 부대원들에게 죄인이 된 것처럼 미안했다.
부상병들이 피투성이 상태로 들어오고, 전사 소식이 들릴 때마다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그러던 차에 출정 명령을 받게 되자 이 시대에서 제일 먼저 출동하는 군대가 되는 영광을 얻었다고 뛸 듯이 기뻐하는 것이었다. 무거운 보급품까지 들고 수백 리를 행군해야 한다는 부담 같은 것은 잊은 지 오래였다.
그런 해병대원들을 보고 분통을 터트리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당연히 특전사 대원들이었다.
해병대와 달리 여러 특수작전에 투입되기는 했지만, 그들도 마음의 짐은 해병대와 다를 바 없었다.
특전사 또한 재편할 필요 없이 언제나 출동이 가능한 부대였으니 더욱 애가 닳았다.
김기륭 대령이 1연대장으로 차출되는 바람에 그 뒤를 이어 특전사를 책임지게 된 민정기 중령이 바로 사령관에게 뛰어갔다.
마침 군 수뇌부 회의를 하고 있어서 김기륭 대령도 그 자리에 있었다.
“사령관님! 화룡에 저희가 가면 안 되겠습니까?”
“허허, 특전사 대원들도 몸이 달았나 봅니다.”
“암, 그래야 특전사답지요. 안 그렇습니까? 하하!”
김기륭 대령은 득달같이 달려온 부하를 책망하기는커녕 자랑스럽게 여기나 보다.
이렇게 와서 항의하지 않았으면 한 따까리 할 생각이었다.
그때, 장순택 사령관이 나서서 민정기 중령을 달랬다.
“민 중령, 마침 잘 왔네. 안 그래도 특전대에게도 임무를 줄 생각이었어.”
“에? 그렇습니까? 전 그것도 모르고…….”
“허허, 아니네. 괜찮아. 그건 그렇고, 일반 보병대를 지원해 줄 특임대 차출은 다 끝났나?”
“그게…… 아직입니다. 다들 특전대에 남겠다고 고집부리는 통에…… 나가면 바로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시게. 그리고 특전대에 남는 대원들을 데리고 이곳부터 남쪽으로 혜산과 갑산, 동쪽으로 무산군 지역에 대한 정찰을 해 주게. 조금은 위력적으로…….”
“조금 위력적이라 하심은…….”
“역사를 보면 지금 함경도 지역엔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고, 이쪽으로 조금씩 소규모 병력들이 올라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네. 앞잡이인 일진회 놈들을 데리고 말이지. 어떤 기록에는 이 시점에 간도에도 정찰대를 파견했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확실하지 않으니 모르겠고…….”
장순택 사령관의 말이 이어지자 민정기 중령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위력정찰은 아니지만 위력적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드나 보다.
“그러니 일본군은 만나는 족족 다 사살해 버리게. 일진회 첩자들은 죄다 체포해 오고. 그 와중에 우리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네. 그러니 수류탄이나 유탄 등은 절대 사용하지 말고 소총만 사용하게. 그냥 도처에서 출몰하는 의병들의 소행으로 위장하라는 말이지. 아울러 주민들과 접촉하여 이 시대에 대한 정보를 얻어 내도록. 우린 아직 오늘 날짜도 확인 못했어. 또 군 소재지의 관청이나 일본군 주둔지에서 정체를 드러내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하게. 중요한 것은 정보니까 일본군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살펴보되, 일본군의 정찰 활동은 철저하게 제지하라는 뜻이네. 또한 간도로 이주하는 유민들을 만나면 이곳으로 안내해 주는 것도 중요한 임무이네.”
“네, 잘 알겠습니다!”
대한독립전선 구성원들의 성향은 전반적으로 과감하고 과격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미 그들의 현실에서 당한 경험이 있고, 피 튀기는 전투도 치렀기에 그런 것이리라.
이번에는 김기륭 대령이 덧붙였다.
“어차피 특전대는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활동하기로 했다. 우리 조직의 남쪽을 담당한다는 말이지. 우리의 임무 특성과 다르게 이곳을 방어하는 역할도 맡게 될 테니까 이번 기회에 지형지물을 잘 파악하도록.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전체 회의가 끝나면 민 중령을 특전대 대장으로 정식 임명할 것이네. 그러니까 지금 부여받은 임무를 시작으로 자율적으로 작전을 펼쳐 가시게.”
이미 해병대도 정민창 중령을 해병대장으로 임명해 보낸 상황이라 내친김에 특전대 또한 민정기 중령을 특전대장으로 임명하고 임무를 부여한 것이다.
“그럼 이만 나가 보고. 아, 잠깐. 공병부대나 다른 중장비 기사에게 남쪽 혜산 방향으로 진입로를 15㎞만 우선적으로 내달라고 부탁하게. 다소 거칠더라도 상관없으니 트럭 한 대 정도는 다닐 수 있는 폭으로 말이지. 간도로 가는 유민들의 통행과 전력을 긴급하게 투사하는 용도로 쓸 길이니까.”
“그러면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일본군의 눈에 띌 것 같습니다만…….”
“상관없어. 걔들 와 봐야 소규모 부대일 테니 오는 족족 다 전멸시켜 버리라고. 일본군은 포로도 허용하지 않겠네. 그리고 도로 초입에는 경계 병력을 배치하게나. 한 팀이나 두 팀을 교대로 돌리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박격포도 배치하도록.”
특전사의 한 팀은 10명 안팎으로 구성되고 중대 급의 대우를 받는다.
그러니 장순택 사령관의 지시를 따르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터였다.
“준비가 되는 즉시 떠나도록 하고, 최초로 유민 접촉이 이뤄지면 한 명을 차출해 이쪽으로 모셔 오게.”
민정기 특전대장이 힘차게 경례를 붙이고 나갔다.
조금 있다가 막사 밖에서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그 의미를 충분히 짐작한 장순택 사령관과 김기륭 대령의 얼굴에도 미소가 감돌았다.

특전사 대원 무리들은 지금 한창 제비뽑기를 하고 있었다.
누가 특전대에 남고 누가 파견을 가느냐 하는 문제로 옥신각신하다 결국 추첨으로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추첨 결과에 따라 환호하는 사람도 있고 실망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재미있는 풍경을 뒤로한 채 태진훈 교수는 제자 삼총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뭐라고요? 제가 정보팀의 책임자로 내정되었다고요?”
“허허, 미안하네. 깜박 잊고 미리 얘기 안 해 줬구먼. 하기야 말할 틈도 없었지만…….”
“아니, 제가 어떻게……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부족한데…….”
“여기 정보 전문가가 누가 있나, 자네 말고.”
“그러고 보니 없군요. 저와 윤희 빼고는…….”
“그러니 잘 다녀와. 가자마자 정보 열심히 수집하고. 특히 주민들 중에 일진회 놈들이 끼어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럴 경우 바로 색출해서 처리하고.”
“네, 선생님.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뿌득!
일진회란 말을 듣자 민우는 분노가 솟구쳤다.
가장 극단적이며 악질적인 친일단체, 일진회.
첩보를 담당할 민우가 앞으로 내내 싸워야 할 대상에 다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