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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진위대 1권 (16화)
제4장 을사년에서 을사년으로 (3)


“대대는 400명 내외로 구성하며, 3개의 중대와 40명의 본부 중대로 편성합니다. 그리고 연대는 완편이 아닌 1/2 정도만 편성이 되는 관계로 각 2개의 보병대대와 2개의 특임대로 구성합니다. 특임대는 특전사에서 차출하여 40명씩 1개 특임대를 구성합니다. 그리고 이 체제는 연대의 완편이 가능하게 될 때까지만 유지하도록 합니다.”
이 부분이 독특한 편제였다.
병력이 부족한 관계로 특전사에서 160명을 차출하여 4개의 특임대로 편성한 후 보병대대와 짝을 이루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특임대는 주로 선제 타격이나 특수작전을 담당하게 하고, 보병대대는 점령이나 방어 위주의 기능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설명드린 2개 연대 이외에 독립부대로 150여 명의 특전대와 300여 명의 해병대를 별도로 편성합니다. 특전대는 기존의 특수전 사령부가 맡았던 특수 임무를, 해병대는 대대 편성을 하고 부대 성격에 맞는 장비와 임무가 주어질 때까지 당분간 보병대대와 같은 임무를 담당하게 됩니다. 부대 편성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송상철 중령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해병대 출신의 정민창 중령이 손을 들었다.
“대대 내에 화기중대는 편성하지 않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내용대로 기동력을 중시해야 하기에 차량으로 이동해야 하는 화기들은 당분간 사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또한 각 중대에 배속된 화기소대의 화력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화력 수준으로 놓고 봤을 때, 우리 1개 중대가 1개 대대는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대장부터 소대장까지 중간 간부들에 대한 인선은 이틀 뒤에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공군의 진도형 대령이 나섰다.
“저어……. 육군은 그렇다 치고, 우리 공군이나 해군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물음에 송상철 중령 대신 장순택 준장이 나서서 설명했다.
“제가 사전에 양해를 구해야 했는데…… 죄송하군요. 최대한 노력해서 가급적 빨리 공군 및 해군 여러분의 부대를 창설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당분간은 앞으로 설립될 군사과학연구원에 배속되어 연구원들과 협력해 주십시오. 거기에서 앞으로 생산될 전투기나 함정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혹은 정훈장교 역할을 맡으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끄응, 그날이 언제나 올지…….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하겠습니다.”
공군의 진도형 대령과 해군의 간부들이 쓴웃음을 지으며 동의를 했다.

예상이 맞다면 오늘은 광무 9년(1905년) 5월 1일 일 것이다.
어쨌든 이 시대에서 맞이하는 첫날 아침.
누군가는 여기에 특별한 시간적 의미도 부여하고, 백두산이란 공간이 가진 신비로움도 찬양하며 마음껏 감회에 젖을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일상의 공간이었다.
시간에 매겨진 인위적 눈금만 다를 뿐, 그간 지내 왔던 익숙한 장소.
그리고 눈앞에 쌓인 산더미 같은 과제를 붙잡고 전전긍긍하게 될 골치 아픈 날의 아침일 뿐.
그러나 가슴 한편에서 희망이라는 물줄기가 조그맣게 솟아나는 것을 억제할 수는 없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얻어맞고.
길게는 50여 년, 짧게는 20년을 그렇게 살아온, 대한민국의 지난한 고통의 순간을 함께 겪은 이 시대의 후손들.
그들의 메마른 가슴에 말이다.
그렇게 복잡한 의미가 얽혀 있는 이 아침.
수뇌부들이 잠시 회합을 가졌다.
“정찰 결과가 무척 궁금합니다.”
“부관이 정찰기에 들어온 영상을 확인한 결과, 일단 맞는 것 같다고 합니다. 다만 정확히 파악하려면 아무래도 주민들과 접촉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일찍 사방으로 정찰기를 날렸으니까 더욱 자세한 정보가 들어오겠죠. 모레 즈음이면 영상을 분석해 분석 보고서가 나올 것 같습니다.”
“일단은 다행이군요. 제대로 왔다니. 저희도 민간인과 민간 장비에 대한 목록을 만들고 있으니 그 작업을 다 마치게 되면 확대회의를 열기로 합시다.”
태진훈 교수와 장순택 임시 사령관, 성영길 박사, 손영일 박사, 이태인 박사 등이 아침을 겸해 모인 자리.
수뇌부들은 시대 상황과 부근 지역에 대한 정보를 상세하게 수집해 전략과 전술을 치밀하게 세웠고, 이를 백서로 꾸려 사람들에게 다 돌린 상태이다.
생각보다 군인을 많이 데려오지 못한 것이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또한 아직 합의가 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지금 그 문제를 놓고 간단한 토론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토론 이후에 확대회의를 열고, 거기서 도출된 합의 사항에 대해 전체 구성원의 의견을 묻고 방침을 확정할 계획이었다.
“그러니까 한국독립전선이란 단체명을 당분간 유지하자, 그 말씀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다만 이 당시에 우리 스스로 대한국이라 불렀습니다. 대한제국을 줄여서 대한국, 그리고 그 국민을 대한국인이라 했으니 우리도 ‘대한국독립전선’ 혹은 이를 줄여서 ‘대한독립전선’이라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좋네요. 전 찬성입니다. 대한국독립전선, 대한독립전선…… 어감상 후자를 더 추천하고 싶네요.”
성영길 박사가 선뜻 동의하고 나섰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대한독립전선으로 하지요.”
단체 이름에 대해서 합의가 되자 태진훈 교수가 다른 제안을 했다.
“장 사령관님, 원래 계획대로라면 여기서 간도의 화룡까지 도로를 정비하고 전체가 한꺼번에 이주하기로 했지 않습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그런데 막상 이곳에 오고 보니 조바심이 나는 걸 참을 수가 없군요. 지금 간도엔 힘의 공백이 발생해서 우리 동포들이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겁니다. 간도를 지켜 주던 이범윤 장군의 부대가 떠나 있거나 곧 떠날 테니까요. 사료마다 내용이 달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이번 달에 연해주로 떠난다는 설도 있고, 지금 함경북도 두만강 연안에서 러시아 군과 더불어 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설도 있습니다. 어쨌든 간도 주민을 지켜 주던 울타리가 없어진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간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이범윤이다.
실제 역사를 보면, 광무 7년(1903년) 이범윤은 고종 황제에 의해 간도 관리사로 임명되자 주민의 안전을 지킬 군대 파견을 요구했다.
그러나 대한제국 정부는 형편상 이를 들어줄 수 없었다.
이에 이범윤은 정부의 허락을 받아 민병대라 할 수 있는 ‘충의대(사포대)’를 400명 정도의 규모로 조직했다.
이후, 대한제국 정부에서도 자금과 무기를 지원해 주어 마적들과 청나라 관리의 폭정에서 주민들의 안전을 어느 정도 지켜 낼 수 있었다.
이범윤은 간도 주민에게 세금을 걷어 충의대를 유지하는 자금으로 활용하는 한편, 청나라 관리에게는 간도는 대한제국의 땅이니 청나라에 납세할 의무가 없다고 선언했다.
나름대로 간도의 영유권에 대한 실천적 행동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작년(광무 8년, 1904년)에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고종 황제는 이범윤에게 군자금을 제공함과 더불어 비밀 명령을 내렸다.
러시아 군과 연합해 일본군을 공격하라는 것.
이에 이범윤의 충의대는 의병을 더 받아들여 부대의 덩치를 키웠다.
주로 함경북도 북부 지역에서 활동하며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고, 나름대로 전과도 올렸다.
그런데 이범윤은 이 기회에 눈엣가시 같던 간도의 청나라 관청도 공격했다.
러시아 사료에도 이범윤 부대가 대한제국 정규군과 더불어 청의 훈춘부를 공격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러나 앞서 체결된 한일의정서에 따라 일제의 고문 통치가 본격화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청나라가 이범윤 부대의 철수를 계속 요구해 오자 대한제국의 행정을 장악한 일제―공식 명령문에는 대한제국 황제의 명령으로 둔갑한다―가 이를 받아들여 이범윤을 소환한 것이다.
하지만 이 명령 자체가 일제의 강압에 의해 내린 조처라는 것을 알고 있던 이범윤은 명령에 불응하고 부대를 이끌고 연해주로 들어가 의병 활동을 계속하게 된다.
그 시점이 바로 이번 달, 5월이었다.
물론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었다.
사료마다 달랐기에.
“그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이범윤 장군의 부대는 주로 함경북도 회령 지역에 머물러 있다 합니다. 그러니 간도는 무방비 상태인 거나 마찬가지지요. 그래서 장 사령관께서 어떤 조처를 취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렇다면 서둘러야 하겠군요. 그쪽으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으니…….”
이 시대의 군인들이 그랬듯 이들 또한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이곳에서 화룡 삼도구(三道溝)까지는 100㎞ 이상 떨어져 있다.
무거운 군 장비를 휴대한 채 걸어가기에는 상당히 먼 거리인 것이다.
“지금 보병은 새로 편제하느라 정신이 없으니…… 부관, 가서 해병대 정민창 중령을 불러오게.”
“해병대를 파견하실 생각이시군요.”
“그렇습니다. 해병대는 앞으로도 독립부대로 운영할 계획이니까 지금 바로 출발시켜도 문제가 없을 겁니다.”
정민창 중령이 들어오자 장순택 임시 사령관은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바로 출발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 시간부로 해병대의 편성과 인사권은 정 중령에게 일임하겠네. 300명 조금 넘어가니까 어제 회의에서 나온 대로 본부 중대 외에 3개 중대로 구성하고, 보병과 똑같이 1개 소대는 화기소대로 편성하는 걸 잊지 마시게. 최소 한 달은 보급 없이 버터야 될 테니까 탄약이나 기타 보급품은 갖고 갈 수 있는 한 많이 가져가고. 송골매 2도 챙겨 가면 좋겠지만, 도저히 들고 갈 수 없을 테니 아쉽게 됐군. 해병대는 준비가 되는 대로 가급적 빨리 화룡으로 출발하게.”
“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그리고 감사합니다!”
정민창 중령은 군인으로서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자 기쁨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정민창 중령이 경례를 하고 바로 나가려 하자 지질학을 전공한 이태인 박사가 나섰다.
“저도 같이 가면 안 되겠습니까? 광산을 미리 확인해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특히 우리가 1차적으로 개발하기로 한 송하평(松下坪) 탄광의 구체적인 위치와 상태가 너무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이 작업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 같습니다만…….”
“흠, 이태인 박사의 말도 일리가 있군요. 그렇다면 제 제자 삼총사도 데리고 가시지요. 고민우, 박준태, 한윤희. 이 셋 말입니다. 민우는 앞으로 정보팀장의 역할을 담당하게 될 테니까 그렇고. 허참, 그러고 보니 고민우한테는 아직 얘기 안 했군.”
“하하, 고민우 씨가 이 얘길 들으면 깜짝 놀라겠군요. 최연소 팀장이라……. 하하!”
“한윤희도 정보팀에서 일할 예정이고, 박준태는 주민교육을 담당해야 하니까 미리 주민들과 접촉하는 것도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정 중령, 괜찮겠소?”
장순택 사령관은 조금 걱정이 되었다.
다들 중요한 인적자원인 만큼 어느 하나라도 다쳐선 안 된다.
특히 이태인 박사는 초기 정착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광산 개발의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하하! 저희 해병대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아주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긴 태진훈 교수는 종이에 뭔가를 쓱쓱 적더니 정민철 중령에게 건넸다.
“몇 가지 활동 지침입니다. 물론 여기 오기 전에 이미 계획된 것이지만 잊지 말고 숙지하시라고 이렇게 적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