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간도진위대 1권 (13화)
제3장 밀알이 떨어진 자리, 희망은 자라나고.. (4)
2025년 4월 30일 10:00.
삼지연군 간삼봉 부근.
중국군의 공세에 밀려 계속 후퇴하던 남북연합군은 삼지연을 지나 간삼봉 부근에 이르러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곳엔 신무성 노동자구로 향하는 산악 도로가 있고, 여기서 조금 더 북쪽으로 가면 지하 본부가 있는 용암대지가 나온다.
그야말로 코앞까지 밀린 엄중한 상황이었다.
삼 일 전, 남쪽 요원들이 도강을 완료했다는 보고를 받은 연합군은 먼저 갑산에 나가 있던 부대부터 차례차례 후퇴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에는 혜산에 주둔했던 병력마저 뒤로 물려 북쪽의 보천군에서 3차 전선을 형성했다.
그리고 어젯밤, 그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구북한군은 곳곳에 숨어 있던 포병 전력을 모두 꺼내 엄청난 포격전을 벌였고, 그다음에는 10군단과 북측 군대가 보유하고 있던 모든 기갑 전력을 동원했다.
남측의 군대 또한 자주포로 지원을 해 주면서 전선이 밀리는 기미가 보이면 주저 없이 기갑 전력을 지원해 주었다.
그 결과, 좁고 험준한 백두산 산록에서 엄청난 수의 군대가 밀집해서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구북한군의 포가 신속한 중국군의 대포병 사격으로 인해 하나둘 깨져 나가자 전선이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그때, 본부로부터 순조롭게 이동이 시작됐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남은 전력을 순차적으로 후퇴시켜 다시 전선을 형성해 놓은 상태였다.
아마 여기가 마지막 전선이 될 터.
그간 구북한군의 장비와 병력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물론 구남한군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남한군 기계화부대는 K2A1 전차 12대와 K9 자주포 21문, K21 장갑차 23대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전력이 반 토막이 나 자주포는 12문, 전차는 6대, 장갑차 또한 13대만 남은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장갑차의 하차 보병과 공병대 병력은 전투에 참가시키지 않아 인명피해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병력 손실은 깨져 나간 전차와 장갑차 승선 인원에서 발생했다.
그런데 사실 남북연합군보다 중국군이 더 큰 피해를 입었다.
백두산 산록의 경사면을 오르며 불리한 지형에서 전투를 벌였고, 산등성이 곳곳에 흩어져 있던 구북한군의 기습적인 포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다 보니 연합군보다 거의 세 배 가까운 인명과 장비의 손실을 입은 것이다.
그나마 막대한 물량 공세가 뒷받침되지 못했다면 중국군은 패퇴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후우, 이제야 숨 좀 돌리는군. 정말 대단한 전투였어…….”
장순택 부사령관은 간삼봉 능선에 설치된 지휘부에서 전장을 바라보며 지난 전투를 떠올리고는 치를 떨었다.
어제 전투에서 양쪽 합쳐 최소 5만 명은 전사했으리라.
큰 피해를 입은 중국군 또한 잠시 공세를 멈추고 숨을 고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얼마 남았지비? 닫히는 거이…….”
권두진 사령관이 막사를 나오며 장순택 준장에게 물었다.
“이제 다섯 시간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다섯 시간이라…… 기래, 상황이 어떻다 하오?”
“계획대로 잘 진행된다 들었습니다. 이제 민간 장비 일부와 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군 장비의 이동을 남겨 둔 상황이랍니다. 아마 세 시간은 소요될 듯합니다.”
“기래? 기럼 그것들 이동이 다 끝나면 우리만 남게 된단 말이디…….”
“그렇습니다. 문제는 시간입니다. 그 세 시간에 저희 이동 시간이 1시간 남짓, 또 거기로 넘어가는 데 얼마나 걸릴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들의 마지막 임무는 참으로 무거웠다.
모두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해서라도 시간을 벌어 줘야 하는 이타적인 임무.
하지만 그 와중에도 전력을 최대한 보전해야만 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은 더없이 이율배반적이었다.
과연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게 가능할까?
모든 문제를 되짚어 가며 묵묵히 생각에 잠긴 권두진 사령관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장 장군, 우리 인원들 중에 누가 제일 중요하다 생각하기오?”
“예? 무슨…….”
“내래 답하리다. 바로 장 장군의 부대라 말할 수 있디. 좋은 장비와 좋은 인적자원……. 그 전력이 제대로 보전되지 못하면 우리 계획은 분명 큰 어려움에 처할 게 빤하디 않갔어? 아니, 넘어가서도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 앙이오.”
“…….”
“이제 조금 있으면 저 뙤놈들이 다시 공세를 시작할 기고, 그러면 장 장군 부대는 또다시 큰 피해를 입게 될 기야. 설사 저들을 물리친다 해도 말이디. 그러면 넘어가서 누가 민간인들을 지키고 누가 일본 놈들과 싸우갔어?”
“사령관님, 왜 그런 말씀을…….”
“내래 우리 군대를 이끌고 버텨 보갔어. 그러니 장 장군은 지금 당장 떠나 그쪽으로 넘어가기요!”
“안 됩니다. 끝까지 같이 싸우다 가셔야지요.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내래 이럴 줄 알았디…….”
순간, 권두진 사령관은 권총을 뽑아 장순택 준장에게 겨누었다.
“헉! 사령관님!”
“이거이 명령이야. 사령관 명령!”
권두진 사령관은 한 팔로 장순택 준장의 목을 낚아채 그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대고는 지휘소로 끌고 갔다.
지휘소로 들어온 두 사람을 보고 장교들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거기 남쪽 출신 장교들은 잘 들으라우! 지금 즉시 병력과 장비를 인솔해 여기를 빨리 떠나라우! 안 기러면 너희 장 장군 확! 쏴 버리갔어! 알간!”
장교들은 이내 권두진 사령관의 의도를 알아챘다.
잠시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도 카랑카랑한 권두진 사령관의 목소리에 오래가지 못했다.
“이 종간나들, 정말 내래 장 장군을 죽이는 꼴 보고 싶나? 이건 사령관의 명령이야! 알간?”
남측 장교들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장순택 준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장순택 준장은 허공을 향해 한숨을 쉬더니 눈짓으로 부하들에게 명령에 따르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우리 공화국 병력 중에 비전투 요원과 부상병들을 챙겨 데려가라우.”
“사령관님…….”
어느새 장순택 준장을 비롯해 남측 장교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북측 장교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서…… 본때를 보여 주라우! 나라를 팔아먹은 놈들과 왜놈들, 뙤놈들헌티. 이건 내 마지막 명령이야!”
남측 장교들은 권두진 사령관의 말이 끝나자 경례를 힘차게 하고는 막사를 나갔다.
“장 장군은 나한테 좀 더 붙잡혀 있어야갔어. 지금 풀어 주면 당신이나 저 인간들 내 말 안 들을 거이니…….”
“사령관님, 꼭 이렇게 하셔야……. 그럴 바에야 당장 저희랑 같이…….”
“장군! 말 말기요! 상황을 잘 알고 있지 않티? 여기서 군대를 물리면 당장 적들이 우리 꼬리를 잡을 기고……. 적 공중 전력에 어케 대응하며 후퇴하갔어? 누군가는 여기 남아 미사일로 적 공중 전력도 견제하고 전선을 유지해 놓아야 안전해질 것 아이간? 장 장군의 군대도 그렇고, 아직 넘어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권두진 사령관의 판단은 분명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의 희생을 대가로 살아남는 사람에겐 지독할 만큼 악랄한 합리성이었다.
사람의 목숨이 저울대에 올라 가치가 매겨져야 하는 합리성.
이를 어찌 온전히 제정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권두진 사령관은 강압적 방법을 선택한 것이리라.
결국 권두진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남측과 북측의 일부 전력이 북으로 후퇴했고, 그제야 마지막으로 장순택 준장을 풀어 주었다.
남쪽 군대가 떠나고 다소 휑해진 지휘소.
“미안하오, 동무들. 내래 민족의 앞날을 위해 크게 결단한 것이라우. 문제는 시간이디. 우리가 최대한 시간을 벌어 주고 그다음에 우리도 바로 후퇴하도록 합세다. 조금 희생은 있갔지만…….”
꽝! 꽈광!
권두진 사령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중국군의 공세가 다시금 시작되었다.
잠시 떠올라 그들의 뇌리에 머물렀던 복잡한 심사와 상념들이 포성 속에서 흩어져 나갔다.
지휘소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다소 무거운 활기를…….
2025년 4월 30일 14:30.
삼지연군 지하 본부.
먼저 부상병들이 웜홀로 들어갔다.
그리고 전차와 같은 기갑 장비들이 그 뒤를 이었다.
동굴 입구에서 이를 지켜보던 장순택 준장의 시선은 다시 밖으로 향했다.
그의 눈엔 초조한 기색이 가득했다.
순간, 무전병이 무전기를 들고 그에게 다가왔다.
“여단장님, 사령관님입니다.”
“오, 그래?”
낚아채듯 무전기를 받아 든 장순택 준장.
수화기에서는 권두진 사령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더불어 온갖 포성과 총성, 비명 소리가 같이 흘러나왔다.
[사령관님! 접니다!]
[기래! 급하니끼니 간단히 말하갔어. 우리 마지막 병력이 그쪽으로 향했으니까 그들도 마저 데려가라우. 그리고 폭약을 터트려 동굴 입구를 막아 버리라는 것 잊디 말고…….]
[네, 알겠습니다. 근데 사령관님은…….]
[무운을 빌기오.]
무전이 끊겼다.
장순택 준장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무전이 끊기 무섭게 입구에서는 북측 병력들이 뛰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중의 절반은 부상병이었다.
“뭐하는가? 빨리 저들을 부축하지 않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최대한 많이 살려 데려가는 것이 권두진 사령관의 뜻을 받드는 것이기에…….
대기하던 병력들이 서둘러 이들을 맞이했다.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공동에 들어서자마자 실신하는 병사마저 있었다.
이제 10분 전.
장순택 준장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하염없이 동굴 밖을 바라보며 권두진 사령관을 기다렸다.
“여단장님, 이제 가셔야 합니다. 저게 언제 닫힐지 모르고, 동굴 입구를 폭파할 시간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보고…….”
“안 됩니다. 더 이상 늦으면 곤란합니다.”
“아니, 조금만 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송상철 중령이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여단장님을 모셔라.”
“안 돼! 조금만 더…….”
“여단장님, 제발…….”
결국 장순택 준장은 부하들에게 끌려 유적지로 향했고, 폭파병은 폭약과 연결된 라인을 끌고 유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장순택 준장이 웜홀 너머로 사라지자 지체 없이 스위치를 누르고는 자신 또한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꽈광!
우르르르!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동굴 입구가 무너져 내렸다.
이윽고 웜홀이 팟! 소리를 내며 닫히더니, 석주에서 나오던 빛도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지하 본부에서 약 1㎞ 떨어진 곳에서는 마지막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시간을 충분히 벌었다고 판단한 권두진 사령관이 후퇴를 명령했지만, 결국 꼬리가 잡히고 만 것이다.
그 순간, 권두진 사령관은 마지막 결단을 내렸다. 자신이 표적이 되어 중국군의 주의를 끌고, 얼마 안 남았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병력을 보내 주기로 한 것이다.
본부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병력이 바로 그들이었다.
전장에 잔류한 일부 병력과 지휘관들을 이끌고 이리저리 중국군을 유인하던 권두진 사령관은 끝내 포위되고야 말았다.
중국군은 그런 권두진 사령관에게 투항을 요구했다.
“죽기에는 좋은 날씨군……. 동무들, 정말 미안하오. 동무들은 항복해서 후일을 기약하기요.”
하늘을 한 번 우러러 바라본 권두진 사령관.
그는 짧은 유언을 남기고는 거침없이 권총을 들어 자신의 머리에 대고는 방아쇠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