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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진위대 1권 (12화)
제3장 밀알이 떨어진 자리, 희망은 자라나고.. (3)


2025년 4월 29일 14:50.
삼지연 본부.

사람들이 석비 앞에 모여 있었다.
잠시 후, 해병대 정민창 중령이 앞으로 나섰다.
“자, 여러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저 문이 열리면 제일 먼저 저희 해병대 대원과 특전사 요원들이 먼저 주변을 수색할 겁니다. 그 뒤를 바로 공병대와 건설장비 팀이 따릅니다. 임무는 모두 아시죠? 오늘 하루 정말 서두르셔야 합니다. 여러분 뒤에 산더미같이 쌓인 화물들을 오늘 모두 옮겨야 하니까요. 그리고…… 지금도 밖에서는 시간을 벌기 위해 피를 흘리며 싸우는 우리 군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정민창 중령의 설명을 듣는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거웠다.
그동안 꿈에 부풀어 오늘을 힘들게 준비했다.
하지만 오늘은 슬픈 날이기도 하다.
이 시대와 이별하는 날이기에…….
또 지금 이 순간에도 밖에서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남과 북의 군인들이 죽어가고 있었기에…….
“그러면 교수님, 부탁드립니다.”
정민창 중령의 말에 태진훈 교수가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천부인(天符印)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떨렸다.
안 열리면 어쩌나 하는 염려로 얼굴이 굳어 있었다.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로 끔찍하다.
웜홀을 열기 직전까지 시험 가동을 해 보기는 했다.
하지만 일단 열면 24시간 내에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끝내 장치를 완전히 활성화시켜 보지는 못했다.
동공의 천장까지 뻗은 거대한 두 개의 팔각형 돌기둥.
태진훈 교수는 먼저 왼쪽 돌기둥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돌기둥의 한 면에 나 있는 홈에 천부인을 하나씩 끼워 맞췄다.
먼저 거울 모양의 원판을 일자로 뚫린 홈에다 밀어 넣었다.
마치 DVD 드라이브에 넣는 것 같은 느낌이다.
원판이 다 밀려 들어가자 윙― 하는 소리와 함께 양쪽 석주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우와!”
“진짜 신기하네.”
사람들의 술렁거림을 뒤로한 채 이번엔 팔주령(팔각형의 별 모양으로, 그 모서리 끝에 방울이 달린 형태)을 같은 형태의 음각 부분에 끼워 맞췄다.
그러자 팔주령이 석주에 박히듯 조금 밀려 들어가더니, 왼쪽으로 살짝 돌아갔다.
움직임이 멈추자 팔주령의 표면에 미묘한 빛이 감돌았다.
마치 우주의 휘황찬란한 가스성운을 보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검을 작은 홈에 끼워 넣고 돌기둥에 찌르듯 밀어 넣었다.
그 순간, 석주의 다른 면에 음각된 숫자가 환하게 빛을 발했다.
‘여기까지는…….’
그가 시험해 본 부분은 여기까지였다.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태진훈 교수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종이에는 총 81자의 ‘천부경(天符經)’ 경문이 적혀 있었다.

一始無始一析三極無
盡本天一一地一二人
一三一積十鉅無첉化
三天二三地二三人二
三大三合六生七八九
運三四成環五七一妙
衍萬往萬來用變不動
本本心本太陽昻明人
中天地一一終無終一

천부경은 최치원이 입수해 후대로 전한 민족 고유의 현묘한 경전이라 했다.
천부경의 경문은 마치 암호 같았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발견 당시, 천부인 유적지의 석비에 적힌 암호를 풀기 위해 태진훈 교수가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고 있을 때,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준 것은 박준태였다.
천부경의 존재를 알고 있는 준태는 석비가 가리키는 현묘한 경전이 천부경이며, 거기에 나온 숫자를 차례대로 누르면 될 것이라 했다.
문제는 그것 또한 가설이라는 사실이다.
유력했지만 어쨌든 가설은 가설이다.
태진훈 교수가 숫자를 꼼꼼히 차례대로 눌렀다.
무려 31자나 되는 암호 체계인 셈이다.

一一三一一一二一三一十三二三二三二三三六七八九三四五七一一一一

마지막 숫자를 누르자 공동 전체가 밝아질 정도로 눈부신 빛이 석주에서 흘러나왔다.
“와아!”
모두가 환호했다.
태진훈 교수도 긴장을 풀고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눈이 빛에 익숙해졌을 즈음, 사람들의 얼굴이 점차 굳어 갔다.
두 석주 사이의 공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어?”
“뭐가 잘못된 건가?”
모두의 가슴이 조금씩 무겁게 가라앉았다.
태진훈 교수는 정신을 수습하고 석주 사이로 뛰어갔다.
“안 됩니다, 교수님!”
준태가 소리를 지르며 말렸지만, 이미 태진훈 교수는 석주 사이로 뛰어든 후였다.
그러나 그동안의 노력이 허무할 만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태진훈 교수는 식은땀을 흘리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왜…… 왜 안 되지?”
“아, 어떻게…….”
모두가 망연자실했다.
우리의 운명이 여기까지인가 하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떠올린 모양인지 머리를 감싸 쥐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터벅터벅.
그 순간, 민우가 앞으로 나섰다.
다른 사람과 달리 호기심이 가득 찬 표정이었다.
“흠…….”
그는 석주를 빙빙 돌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숫자를 다 눌렀을 때 반응이 있었으니까 암호가 틀리지는 않았다는 얘기고……. 어디 보자, 그럼…….”
민우는 팔주령을 붙잡고 돌려보았다.
역시나 꿈쩍도 하지 않는다.
뒤늦게 그런 민우를 발견한 태진훈 교수가 민우를 제지했다.
“이보게, 잘못 건드렸다 더 큰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는가? 그냥 놓아두고 조금 더 연구해 보아야…….”
“선생님,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밖에서는 지금도 군인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민우는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말하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순간, 민우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러더니 지체 없이 석주로 다가가 검의 손잡이를 잡고 뽑았다.
“저, 저…….”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마저도 술렁거렸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제일 앞에 있던 태진훈 교수가 민우에게 몸을 날렸다.
그러나 이미 민우의 손은 팔주령을 잡고 있었고, 그가 민우의 어깨를 잡아챘을 때는 팔주령을 오른쪽으로 잡아 돌린 뒤였다.
딸칵!
위잉!
순간, 팔주령이 자연스럽게 석주에서 분리되더니, 맨 위에 꽂혀 있던 원반이 미끄러지듯 원주 밖으로 나왔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석주로 향했다.
새로운 변화가 생기자 태진훈 박사 또한 민우를 제지하던 손을 놓고 시선을 석주로 향했다.
그사이, 민우는 원반마저 석주에서 지체 없이 뽑아냈다.
쿠르르릉!
치지직! 칙!
팟!
요란한 소리와 더불어 두 개의 석주 사이에서 번개 치듯 빛이 번쩍이더니, 석주 사이 공간이 새까맣게 변했다.
석주 사이의 동굴 벽마저도 그 어둠이 집어삼켰다.
마치 우주 탄생 이전의 어둠 같은 순수한 어둠이었다.
모두의 눈이 더는 커질 수 없을 만큼 동그랗게 변했다.
“허억!”
“저게…… 그건가?”
모두가 원했던 변화가 생겼는데도 사람들은 석상이 된 듯 가만히 서서 앞만 바라보고 있다.
“교수님, 성공한 겁니까?”
먼저 운을 뗀 것은 선발대를 책임진 해병대 정민창 중령이었다.
“그게…… 잘 모르겠소…….”
그때, 물리학자 변창섭 박사가 앞으로 나섰다.
물리학자로서 우주의 신비를 대면한 영광의 순간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학문적 호기심이 그를 그냥 놓아두지 않은 것이다.
그는 팔을 들어 어둠의 공간을 향해 천천히 뻗었다. 그러자 마치 어둠이 손을 집어삼킨 듯 손이 사라졌다.
변창섭 교수는 얼른 손을 빼냈다.
멀쩡했다.
“흠, 그렇다면 양방향으로 열려 있다는 말인데…….”
이번에도 민우가 나섰다.
“뭘 그렇게 고민합니까?”
민우는 짧게 말을 내뱉고는 공간으로 몸을 날렸다.
민우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모두가 깜짝 놀랐다.
“헉! 저, 저 사람이…….”
사람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조용히 민우가 사라진 공간만 응시하고 있었다.
잠시 후, 민우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헉!”
“우와!”
“성공! 성공입니다!”
사람들이 펄쩍펄쩍 뛰며 환호했다.
짧은 10분 동안 참으로 많은 감정의 변화를 겪어야 했던 그들.
“어떻습니까, 저쪽 편은?”
“그냥 어두웠지만, 동굴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또 하나의 이곳 같은…….”
“그런가? 그렇다면 성공! 성공이네! 하하!”
“고맙네, 고마워…….”
정민창 중령과 학자들이 저돌적인 민우를 치하해 주었다.
“자자, 우리 이럴 시간 없습니다. 계획대로 빨리빨리 움직입시다. 먼저 해병대 출발!”
정민창 중령은 곧바로 명령을 내렸고, 시범을 보여 준 민우를 보고 안심한 군인들은 망설임 없이 어둠을 향해 달려갔다.
“그런데…… 자네, 어떻게 알았나?”
“간단합니다. 절차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걸 알았으니까 뭔가 다른 최종 명령어 같은 조작이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 천부인이 이미 석주에 에너지를 공급했을 테고, 돌기둥이 암호 입력에 반응해 밝아졌다는 것은 모든 절차가 끝나 명령 대기 상태였다고 보았죠. 그리고…….”
“그리고?”
“이렇게 귀중한 천부인을 24시간 동안 석주에 꽂아 놓고 있다? 그거, 큰 문제가 아닐까요? 예를 들어 행렬의 마지막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고 뽑아서 도망쳐 버리면? 그래서 아마도 이걸 설계한 사람들은 그 문제를 염두에 두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하! 그렇군. 그래, 그랬어…….”
태진훈 교수와 변창섭 박사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선배야, 머리 하나는 정말 좋아!”
어느새 윤희가 목발을 짚고 민우에게 다가왔다.
“후읍∼ 당연하지. 몰랐냐? 내 머리 좋은 거? 하! 하! 하!”
한데 그녀의 맑던 미소가 민우의 말을 듣자마자 뿌옇게 변했다.
“아니, 내 얘기는 그 머리가 아니라 잔머리를 말하는 거라고……. 잔! 머! 리!”
“뭐? 잔머리?”
둘의 대화를 듣던 학자들이 큰 학문적 발견을 하기라도 한 듯 크게 웃었다.
“아하! 그렇군. 잔머리! 잔머리 맞네! 하하하!”
“유레카! 명쾌한 해석이야! 하하!”
대한민국 최고의 석학들이 단단히 지지해 주었기에 가슴을 쭉 펴고 ‘어때?’라고 말 없는 의중을 건네는 윤희.
“하여간 저 여자, 도움이 안 돼요.”
윤희의 도발적인 모습에 얼굴을 붉히며 괜한 말을 주절거리는 민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