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간도진위대 1권 (10화)
제3장 밀알이 떨어진 자리, 희망은 자라나고.. (1)
2025년 4월 5일 13:00.
양강도 삼지연군 본부.
“와아!”
“대단하군, 대단해!”
“수고 많았습니다. 하하!”
“설마 했는데 이런 작전을 성공시키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금괴를 싣고 본부에 도착한 민우 일행은 역시나 조직원들의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특히 이 작전을 제안한 성영길 박사의 반응은 대단했다.
그는 민우를 격렬하게 껴안고는 어깨를 팡팡 두드리며 연신 칭찬을 쏟아 냈다.
“큰 걱정을 덜었습니다. 이제 우리 계획은 반은 성공한 셈입니다. 핫하하!”
“그럼…… 이 미친 작전을 제안한 그 미친놈이…… 흠흠, 죄송…… 그분이 박사님이셨군요?”
“하하, 좀 빡셌지요? 네! 제가 했습니다! 핫하!”
이를 뿌드득 갈아붙이는 민우의 표정을 보며 당황하기는커녕, 성영길 박사는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난 이래서 펜대 잡은 사람들이 정말 싫다니까요. 자기들이야 기획이랍시고 쓱쓱! 펜대만 놀리면 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놈들은 그놈의 펜이 가는 길을 따라 목숨이 왔다 갔다 하고 말이죠. 세상 참∼ 불공평하네.”
그제야 살짝 미안한 표정을 짓는 성영길 박사.
그러나 이내 그 표정을 지워 버리고는 다시 귀에 입이 걸렸다.
정말이지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가 보다.
민우 일행과 금괴를 실은 배들은 동해 먼바다 공해상까지 나아가 조업을 하는 것처럼 위장하며 머물다 바다를 빙 둘러 북상해 청진항을 통해 들어왔다.
문제는 김재덕 소령이었다.
그는 처음에 남쪽에서 일할 줄 알았다가 북쪽으로, 게다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는 민우의 설명을 듣고 망연자실해했다.
졸지에 가족과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남게 해 달라고 졸라댔지만, 민우는 그 말을 들어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 시대에 남게 될 조직을 위해서라도 절대 그럴 수 없었다.
물론 김 소령은 자기를 믿어 달라고 했지만, 사람 일이란 모르는 일이 아닌가.
아울러 민우는 학교 은사인 태진훈 교수와도 반갑게 해후했다.
태진훈 교수는 장한 일을 해낸 제자를 데리고 다른 이들에게 인사시키며 본부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우와! 엄청나네요.”
지하 본부에 처음 와 보는 민우는 지하 공동의 규모에 놀랐다.
공동은 지름 길이만 거의 800미터에 달했다.
벽면을 따라 건물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고, 중앙 광장에서는 한창 화물들을 수합하느라 난리가 아니었다.
곡물이나 비상식량과 같은 식료품에서 건설 장비, 공작기계, 광산 개발에 소요될 굴착 장비 등의 기계류까지.
특히 기계류의 경우, 소모성 부품들까지 몇 세트씩 포장되고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거대한 증기터빈이 기중기에 매달려 바닥에 내려지고 있었다.
보기엔 거대해 보여도 일반적인 증기터빈치고는 소형이었다.
함경도 지역에는 선봉에 20만㎾, 청진에 15만㎾ 급의 화력발전소가 있었다.
그래서 엔지니어들과 공병대가 출동해 증기터빈과 보일러, 발전기, 변압기와 송전 설비까지 모조리 해체해서 가져온 참이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워낙 노후화된 장비라 잘 돌아갈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어마어마하군요. 도대체 저런 장비들은 어떻게 다 구했습니까?”
“여기 함경도 일대와 러시아에서 구했지. 나선공단에서 소형 용광로도 분해해 가져온다더군.”
“우와! 용광로까지요? 정말 놀랍습니다. 근데 이들 장비만으로도 여기가 꽉 찰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핵심 설비나 장비는 어떻게든 가져가고 나머지 부분은 분해해 다시 녹여서라도 써야지. 어쨌든 처음에 제일 필요한 게 전기와 철이니까. 뿐만 아니라 강판이나 알루미늄 같은 각종 금속 원료와 원자재도 계속 구하거나 사들이고 있다더군.”
“그쪽 담당자들, 참 머리 아프겠네요.”
“허허, 그렇지. 지금 공학자들은 매일 밤새고 난리도 아니라네. 그래도 더 많이 가져와야 된다고, 아직 목표량의 반도 못 채웠다고 계속 닦달하고 있다네. 아니, 목표량이 딱히 정해지지 않았다고 해야 맞겠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렇겠습니다. 많을수록 좋겠죠.”
민우는 어두운 공동에서 희미한 조명에 의지한 채 분주히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그런데 선생님, 윤희 소식은 없습니까?”
“잘하고 있다더군. 벌써 필요 인원에 대한 포섭이 거의 끝난 모양이야. 일주일 후에 출발할 거라던데…….”
4월 중순이 되자 결국 중국군의 총공세가 시작됐다.
북한의 서부 지역이 어느 정도 평정되자 중국군은 한국독립전선 저항군의 주요 거점에 대한 미사일 공격과 공중폭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중국군의 1차 공세는 거의 효과가 없었다.
함경도 지역의 산세가 워낙 험한데다 수십 년 동안 구축하고 보강해 온 지하 방공호 시설 덕분이었다.
저항군은 중국군의 공격에 앞서 이미 대부분의 병력과 군 장비를 지하 방공호로 옮긴 상황이었다.
다만, 중국 측이 그동안 철저하게 감시해 온 핵 시설은 1차 공세에 모두 무력화되었다.
중국군이 특수군을 투입해 공세를 시작하기 직전, 순식간에 모두 장악해 버린 것이다.
중국군은 1차 공세가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음에도 바로 육군을 투입해 육로로 진격을 시작했다.
풍부한 병력 자원을 믿고 벌이는 전통적인 인해전술 방식이었다.
평안도와 함경도 지방의 분수령이 되는 낭림산맥과 동해안의 함흥 지역을 잇는 라인이 현재 저항군의 1차 저지선이었다.
그런데 중국은 이곳에 심양군구의 전 병력을 투입했다.
그중 제16집단군은 북부의 압록강을 따라 김형직군을 거쳐 혜산 방면으로 진격했고, 제39집단군은 낭림산을 우회해 장진군으로 들어가는 중부 전선을, 그리고 제40집단군은 함흥 방면의 남부 전선을 담당했다.
총 병력 25만 명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군대였다.
게다가 이들 중국군은 계속되는 군 장비 개량 사업을 통해 첨단 무기로 무장한 강군이었다.
누가 보아도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었다.
이미 권두진 상장은 1차 저지선을 담당한 부대에게 특별한 명령을 내려놓았다.
―최대한 저지하되 전선이 뚫리면 끝까지 저항하지 말고 흩어져라. 그리고 개마고원의 험한 지세를 이용한 유격 전술로 전환, 보급선을 괴롭혀라.
어차피 이번 전쟁의 목적은 승리보다는 시간 지연이었다.
그런 면에서 군인들의 목숨을 최대한 많이 살려야 했다.
그것이 이 시대에 남을 사람들과 이 시대를 떠날 사람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었기에…….
2025년 4월 18일 14:00.
강원도 휴전선 이북의 강원도 산간지대.
서쪽 하늘이 노랗다.
중국에서 불어온 봄의 불청객 황사가 한반도의 하늘을 장악한 것이다.
“이놈의 지긋지긋한 황사! 매년 봄마다 맞닥뜨리는 데도 익숙하지가 않아.”
민우는 중국군의 공세가 시작되기 직전, 윤희 일행을 맞이하러 특전사 1개 팀과 더불어 본부를 빠져나왔다.
지금 이들이 위치한 곳은 강원도 북쪽 휴전선 부근의 산악 지대.
강원도는 상대적으로 평온했다.
이미 함흥 지역에 전선이 형성된 터라 이곳은 후방에 불과했으므로 소수 병력만이 남쪽에서 휴전선을 지키고 있었다.
그 소수 병력도 중국군에 투항한 옛 북한군.
사정이 이렇다 보니 휴전선을 넘는 건 예전보다 더욱 쉬웠다.
남쪽이나 북쪽이나 대혼돈의 시기를 맞아 이미 군기를 잃어버린 부대들만이 남아 휴전선을 지키고 있었기에 경계가 심하지 않은 것이었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더니 바위에 기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민우.
하지만 특전사 대원들은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으며 바짝 긴장한 눈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순간, 갑자기 소형 무전기에서 소음이 들려왔다.
칙! 치칙! 칙!
역시나 간단한 신호음이다.
지금 한반도 상공과 지상엔 매우 촘촘한 통신 감시망이 펼쳐져 있어서 음성 무전은 엄두도 못 냈다.
답신을 보내자 얼마 안 있어 30여 명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윤희와 연구원들, 그리고 남쪽의 민간인 요원과 파견 나간 특전사 작전팀이었다.
모두가 지치고 초췌한 표정들. 계속 산을 타느라 심한 고생을 했는지 그들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 있었다.
“여어, 윤희! 수고 많았어.”
“선배!”
윤희는 손을 들어 반가움을 표하는 민우를 발견하고는 얼굴에 함빡 웃음을 머금었다.
천천히 민우를 향해 다가가는 윤희.
바짝 다가온 윤희에게 민우는 대견하다는 듯이 팔을 들어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러자 윤희는 갑자기 민우를 와락 껴안았다.
“헉?”
깜짝 놀란 민우.
둘 사이에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민우의 품에 안긴 채 윤희가 나직이 속삭였다.
“살아서 만나니 좋네∼”
“어…… 고, 고생 많이 했나 보다. 임무가 어려웠니?”
“침투해서 설계도 빼 오는 일이 좀 힘들었지. 뭐.”
그 장면을 지켜보던 특전사 대원들은 탄성을 지르며 휘파람까지 불어댔다.
“휘유∼”
“와우! 그림 좋∼네.”
윤희와 같이 작전을 수행했던 대원들이나 민우와 더불어 내려온 대원들이나 서로 스스럼없이 친해진 사이.
그래서인지 다소 과장된 표현을 하는 그들이었다.
휘파람 소리까지 들리자 민우는 조금 난감했다.
“그, 그런데 윤희야, 우리 떨어져서 얘기하면 안 될까?”
그 말을 듣고 민우의 품에서 빠져나온 윤희가 배시시 웃어 보였다.
“왜?”
“사람들이 보잖아. 오해하겠다.”
“오해? 무슨 오해? 사투 끝에 오랜만에 재회한 동료를 만나 반가운 감정을 좀 강하게 표현했기로서니.”
역시 당찬 윤희였다.
“뭐, 그렇기는 하지만 저 사람들 표정이…… 좀…….”
어느덧 주변은 조용해진 상태.
민우의 말을 듣고 윤희가 고개를 홱 돌려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두 그룹 간의 상견례와 재회의 인사를 이미 마친 듯 보였고, 마침 새로운 화젯거리를 찾고 있던 모양이었는지 모두의 시선이 둘을 향해 있었다.
게다가 흐뭇해하는 미소가 입들마다 걸려 있었다.
민우는 나름 이 난감한 상황을 특유의 가벼움으로 돌파하고자 했다.
어느새 몸에 배인 사회화된 목소리로 톤을 바꾼 민우.
“아니, 이 사람들이? 우린 당신들이 오해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윤희, 그렇지 않냐? 한윤희! 빨리 해명 좀 해 보라고!”
순간, 윤희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무슨 해명?”
“보면 모르냐? 저 사람들 우릴 커플로 오해하고 있잖아!”
그 말에 윤희의 얼굴에서 그나마 남아 있던 웃음기마저 빠져나갔다.
윤희는 쌀쌀맞게 몸을 홱 돌려 민우를 등졌다.
그러고는 몇 걸음 걸어가더니, 다시 등을 돌려 민우에게 나직이 한마디를 던졌다.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기나 해?”
민우의 시선이 윤희의 눈동자에 가 닿았다.
윤희의 맑은 눈망울에는 뜻 모를 원망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