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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진위대 1권 (8화)
제2장 과거를 준비하다 (4)
하기야 그보다 더 좋은 대안은 없었다.
사실 민간 요원들을 동원해 총 열 명 정도의 인원을 감시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스스로 먼저 나서서 감시당하겠다고 한 소찬섭 박사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울 따름.
소찬섭 박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며 이번에는 윤희가 나섰다.
“사실 감시라기보다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요원을 붙여야 될 상황이에요. 잘됐네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오히려 저희가 편하게 되었네요.”
준태도 나서서 한마디 덧붙였다.
“아무리 독신이라 해도 분명 부모 형제가 있을 테니까, 어쨌든 다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습니다.”
“후우, 그렇죠.”
대충 대화가 마무리되자 윤희가 화제를 돌리며 준태에게 물었다.
“민우 선배 임무, 내일인데. 괜찮을까? 워낙 어려운 임무라…….”
윤희의 말을 들은 준태의 낯빛 또한 어두워졌다.
“잘하겠지. 민우의 실력을 믿어 봐야지.”
2025년 3월 31일 14:00.
서울 을지로 거리.
봄답게 눈부시게 화창한 날.
밝은 햇살이 가시가 되어 눈을 찔러 온다.
의식과 현실의 지독한 괴리이자 역설.
그간 겪게 된 수많은 비극적 사건들이 이렇게 따뜻한 봄날, 봄볕이 부드럽게 흘러내리던 날에 일어났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집단의식이란 게 있다면, 또 그 집단의식이 하나의 가상 세계를 만들어 낸다면 이곳 한국 땅은 온종일 비가 내려도 시원치 않으리.
“제길, 오늘따라 날씨 한 번 좋군.”
긴장된 감정을 억누르며 민우는 집결지로 향했다.
그런 뒤, 그곳에서 작전에 대한 브리핑과 금괴 포장 및 인수인계 과정을 지켜보며 밤이 되길 기다렸다.
이윽고 밤이 되자 일본 내각조사실과 구한국 국정원 요원의 합동작전이 시작됐다.
5톤 상당의 금괴를 일본으로 수송하는 모든 과정 동안 호위하는 임무.
그다지 어려운 작전은 아니었다.
다만, 일본과 한국의 정보 조직이 통합되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는 차원에서 합동작전이 기획됐다.
그리고 이 작전에 거짓말처럼 민우가 차출되었다.
국정원 직원들은 모두가 의외라고 한마디씩 떠들어댔다.
언제 잘릴지 모르니까 불쌍해서 팀장이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라고 수군대는 것이었다.
물론 일본 측에서 그 사실을 알고 짜증을 냈다는 소문도 돌았다.
준태가 건넨 기밀 명령문에는 당일 아침 누가 동료인지 알게 될 거고, 그와 힘을 합쳐 임무를 완수하라고 써 있었다.
성남 비행장으로 향하는 특수 수송 트럭에서 그 사실을 상기하던 민우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인물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믿기지 않는 현실.
어떻게 이 인물이…….
마침 그 사람도 고개를 돌려 민우를 바라보았다.
민우와 눈이 마주친 그 사람.
왜놈보다 더 왜놈스럽다는 소문이 돌던 친일파 팀장이었다.
팀장이 낮게 말을 걸었다.
몇 대로 나눠 탑승하다 보니 마침 일본인 요원 두 명은 다른 차에 타고 있었다.
둘만 있으니 가능한 대화였다.
“고민우, 내가 그 동료라서 의외인가?”
“하아, 정말 놀랐습니다. 팀장님은 이 조직에서도 지독한 매국노로 소문이…… 헉! 죄송합니다.”
“아아, 괜찮아. 감쪽같았지?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여라. 뭐, 그런 셈이지. 그런데 나도 민우가 동료인지는 몰랐는데? 그 경박스럽고 어수룩한 사고뭉치가 말이지. 그래, 국정원에 들어와서 무슨 일을 벌인 거지?”
“목표가 될 만한 인사와 거점에 대한 정보를 빼내서 알려 주고…… 뭐, 다 짐작하실 텐데요?”
한국독립전선은 철저한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다 보니 같은 직장에 동료가 소속되어 있어도 알 수가 없었다. 실제로 민우와 윤희는 준태의 지시만 받는 상황이었다.
상관이라서가 아니라 준태가 먼저 이 조직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는 민우.
그런 민우를 빤히 바라보던 팀장이 몇 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고민우, 너 좀 위험했던 거 알아?”
“네?”
“내가 약간 냄새를 맡아 내사에 들어갔거든. 한 달 전인가? 윤희랑 자네의 대학 동기인 박준태라는 인물과 자주 만나더군. 뭔가 미심쩍은 면이 있어서 현장 요원한테 미행해 보라고 지시했는데, 그 요원이 툴툴거리며 시간만 버렸다고, 그저 일상적인 만남 같다고 보고하더라고. 크크.”
“그 요원을 붙인 게 팀장님이셨군요. 놀라운 일이네요. 다행히 제가 먼저 발견했지만.”
“뭐, 쉽게 뭔가를 흘릴 네가 아니라는 생각에 더 감시를 붙일까 했는데, 상부에서 어떻게 알고 조사를 중단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더라고.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 조직에서 명령하는 직접적인 중대 임무를 맡기 전까지 위장된 지위에 충실하라는 지침이 위로부터 내려진 상태였거든. 그래서 본의 아니게 철두철미한 매국노가 됐지만. 휴우.”
“그러셨군요. 정말 무척이나 괴로우셨을 겁니다. 그런데 제 어떤 점 때문에 의심을 하신 겁니까?”
“그게 말이야, 너 대학교 다닐 때 총학생회 간부였지? 물론 뉴라이트 계열의 학생회였으니까 위에서는 별 의심을 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참 대단하긴 해. 학교 다닐 때부터 가면을 쓰고 다녔다는 사실이 말이야. 그 피 끓는 젊은 나이에 말이지. 학교 다닐 때면 우리 조직이 생기기 전일 테니까, 아마도 반체제 학생운동 조직에 속해 있었겠군. 그렇지 않은가?”
“네, 맞습니다. 팀장님, 그런데 그게 의심 살 만한 일이었습니까?”
“난 뉴라이트, 그쪽 애들 속성을 잘 알거든. 근데 넌 너무 달라. 그래서 의심을 시작했지. 생각해 봐. 그런 부류의 애들이 너처럼 특전사에 자원입대하겠냐? 그런 기회주의자들이? 그게 바로 네 첫 번째 실수였던 거야. 그래서 의구심을 갖고 널 살펴보니까 모든 게 의심스럽더라고. 유능해 보이는 친구가 최고로 무능한 요원 행세를 하지 않나,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많고 말이지.”
“헉! 진짜 큰일 날 뻔했네요. 제가 아직 세상을 모르다 보니. 정말 위에서 그런 지시가 없었다면…… 어? 그렇다면 위에도 누군가가…….”
“네 짐작이 맞아. 어차피 자네에겐 이게 남쪽에서의 마지막 임무니까 알려 줘도 괜찮겠지. 한국독립전선의 최고 책임자가 아직 누군지 모르지?”
“그거야 우리 조직의 최고 기밀이니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렇지. 그분은…… 우리 국장님이셔.”
“네에? 어떻게 그런…… 후와! 그분도 참 엄청난 두 얼굴의 사나이셨군요.”
“진짜 대단하지? 그런데 그런 인물이 아니면 이런 조직을 어떻게 만들겠어. 생각해 봐. 정보에 어두운 사람들이, 또 공권력 밖의 인물들이 이런 엄청난 규모의 비밀 조직을 이끌 수 있을까?”
“아, 그러고 보니까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이해가 됩니다. 우리가 벌였던 모든 무장 투쟁 과정에서 조직이 입은 피해는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요. 그럼 국장님도 이번에 북으로…….”
팀장은 대답 대신 고개를 흔들었다.
“국장님은 남으실 거야. 남아 있는 사람도 중요하니까. 남과 북의 애국 세력들의 힘을 합쳐 끝까지 싸우다 보면 언젠가 다시 나라를 찾게 될 거라는 희망을 품고 계시지.”
“그러면 그분께서는 이번 프로젝트에 반대하셨겠네요.”
“확실히 그러셨지. 그래서 조직이 둘로 나뉜 상황이야. 갈 사람과 남는 사람.”
“그럼 이번 작전은…….”
“이번 작전은 갈 사람과 남는 사람 모두에게 중요하지. 남을 사람에게도 자금이 필요하니까. 그런 이해가 일치해서 국장님이 이번 작전을 승인하신 거야. 그리고 난 남을 사람의 대표로 너와 작전을 같이하는 거고.”
“팀장님이? 그럼 팀장님은 남으실 겁니까? 왜 같이 안 가시고?”
“난 가족이 있어, 지켜야 할 가족이. 그래서 난 국장님과 더불어 끝까지 싸워 보려고. 대신 난 이번 임무를 끝으로 국정원에서 나오게 될 거다. 아니, 공식적으로는 죽은 사람이 되겠지.”
민우는 말없이 팀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팀장을 비롯해 이 시대에 남을 인물들이 겪을 고초를 떠올리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자연 눈빛도 깊어졌고.
민우의 눈을 응시하던 팀장은 그런 속내를 알아채고는 호탕하게 웃어 주었다.
“하하! 역시! 이게 바로 자네의 본모습이었군. 진짜 고민우의 얼굴 말이지. 하하! 재미있군, 재미있어. 마지막 작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군.”
“저어, 근데 전 이번 작전 계획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전달받지 못해서 말입니다.”
“아아, 미안. 오늘이 자네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는 날이라서 그런지 쓸데없이 사설이 길어졌군. 일단 수송기가 이륙하면 말이지…….”
2025년 3월 31일 22:30.
경기도 상공.
구한국 공군 소속의 군용기가 어둠을 틈타 은밀하게 이륙을 했다.
기체의 화물칸 중간에는 금괴 5톤이 나무 상자로 포장된 채 떡하니 놓여 있고, 그 옆에는 무장한 일본 군인 두 명이 긴장된 표정으로 지키고 있다.
또한 아침부터 긴장 상태를 유지하느라 지친 일본인내각조사실 요원 두 명은 나른한 표정으로 민우 일행의 맞은편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 와중에도 민우는 무척이나 산만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더니 수송기가 이륙 과정을 마치고 안정고도에 다다르자 슬며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평소 모습대로 다리를 건들거리며 화물칸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민우.
그 모습에 팀장이 민우에게 핀잔을 주었다.
“야! 고민우! 정신없으니까 가만히 앉아 있어!”
“네, 팀장님.”
사무실에서 늘 보던 풍경이다.
산만한 민우와 그런 민우를 책망하는 팀장.
민우는 팀장에게 슬쩍 손을 들어 올려 알았다는 표시를 했지만, 말과는 다르게 눈을 빛내며 금괴로 다가갔다.
“근데 저거, 진짜 금괴 맞아요? 우와, 신기하네. 도대체 저거 팔면 얼마나 될까나. 저거 한 덩이만 있어도…….”
민우는 호기심이 가득 찬 표정을 짓더니 금괴 더미로 바짝 접근해 갔다.
그 순간, 일본군 병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민우를 제지했다.
“아이참, 내가 이거 갖고 튈까 봐 그러나. 잠깐 보겠다는데 그것도 안 되나?”
기내에서 벌어진 작은 실랑이.
일본 측 요원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이내 상황을 파악했다.
평소에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었기에.
그들의 표정은 ‘그러면 그렇지’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시선을 앞으로 향하는 순간, 그들이 발견한 것은 팀장의 손에 들린 권총이었다.
푸슉! 푸슉!
소음기가 달린 총구에서 거침없이 불이 뿜어져 나왔다.
“윽!”
“억!”
평소에 워낙 협조적이고 자신들보다 더 일본에 충성하던 팀장이었기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들은 그렇게 죽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