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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진위대 1권 (7화)
제2장 과거를 준비하다 (3)
이윽고 손영일 박사의 발표가 끝나자 태진훈 교수는 다시 성영길 박사를 지목하며 다음 발표를 부탁했다.
“안녕하십니까, 경제학을 전공한 성영길입니다. 저 또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몇 가지 과제를 지적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손 박사님 말씀대로 광산을 개발하고, 또 교역을 통해 필요한 물품을 얻는다는 것. 거기에는 우리가 쓸 식량과 의류 같은 생필품까지 포함됩니다만, 정착 초기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경제적 수단을 어찌할까 참 많이 고민해 보았습니다.”
“…….”
잠시 뜸을 들이자 모두의 시선이 성영길 박사의 입으로 향했다.
“흠, 제 말을 듣고 웃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하하! 웃지 않을 테니 계속해 보시오.”
태진훈 교수가 얼굴에 미소를 머금으며 눈앞의 젊은 30대 경제학자에게 말을 재촉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수단은…….”
“…….”
“오로지 금밖에 없습니다. 황금 말이죠!”
“헛!”
“네? 풋! 큭큭!”
“거 보십시오. 다들 웃지 않습니까?”
약간 못마땅한 듯한 표정으로 모두를 나무라는 성영길 박사.
그런데 사실 청중들이 웃은 이유는 이 답변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에 내용보다 성영길 박사가 표정 때문에 웃는 것이었다.
평상시에 농담을 잘하고 장난기도 많은 성영길 박사가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잔뜩 무게 잡고 진지한 얼굴로 마치 중대 발표를 하듯 말을 이어 가니, 그 괴리감 때문에 말이다.
다들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분위기가 진정되자 성영길 박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현재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자금 중 사용하고 남은 것을 모두 금으로 바꿔야 합니다. 또한 도착하자마자 석탄 광산 개발과 동시에 금광부터 개발해야 합니다. 우리가 공장을 지어 상품을 출시하기 전까지는 팔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 그 무렵에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금본위제로 전환하기 시작할 때라 금을 확보하면 무역도 유리한 조건으로 가능하게 될 겁니다. 심지어 석유도 미국에서 사 올 수 있습니다. 대한제국이 휘발유를 1905년에 최초로 수입했다는 기록도 있고, 그전에 이미 등유도 들어왔다고 하니까요.”
“호오, 그렇습니까?”
“하지만…….”
“하지만?”
“기대를 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조그만 배로 그저 조금씩 실어 나를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니까요.”
“아하, 그렇군.”
이 젊은 경제학자는 전공만큼이나 의사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이 있었다.
덕분에 청중들의 시선과 의제 참여도가 남다르게 높아져 갔다.
“아무튼 최대한 금을 많이 갖고 가서 광산 노동자 고용비와 군대 유지비, 물론 우리 군인 말고 현지에서 모집할 군인들 말이죠. 그리고 물품 구매 대금으로 써야 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여기 지질학 전공하신 분이…….”
“접니다.”
이번에 새로 합류한 이태인 박사가 바로 손을 들었다.
“우리가 갈 곳 근처의 금광에 대한 데이터 확보가 되어 있습니까?”
“하하, 물론이죠. 여기에 오기 전부터 성영길 선생님처럼 저 또한 제일 먼저 이 데이터부터 챙겨 보았습니다. 자료 분석 결과를 한마디로 말씀드리자면…….”
“흠…….”
성영길 박사의 화법을 따라 하며 잔뜩 뜸을 들이는 이태인 박사.
모두의 시선이 향하자 활짝 웃으며 말을 꺼냈다.
“우리는 노다지 위에 앉아 있는 형국입니다.”
“헉! 노다지?”
“그렇습니다. 노다지죠. 이 부근과 간도 지방에 엄청난 양의 금맥이 깔려 있습니다. 혜산, 삼수, 갑산, 부전, 풍서 등의 함경도 지방과 화룡, 용정, 훈춘, 안도, 연길 등 간도 지방에는 수많은 금광이 있습니다. 반경 수십 킬로미터 내에 말이죠. 금광뿐만이 아닙니다. 은광도 있고, 구리나 아연 같은 비철금속 광산도 종류별로 다양하게 있고, 또한 철광산도 많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특히 무산군에 있는 철광은 어마어마한 매장량을 갖고 있으면서도 노천 광산이라 개발도 용이합니다. 한마디로 지하자원에 관한 한 어떤 걱정도 필요 없을 겁니다. 게다가 그 당시엔 노출되지 않은 미개발 광산도 많고요. 하하!”
“허…… 정말 대단하군.”
“그러니까 진작 통일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 쯧!”
이태인 박사의 말에 모두가 잠시나마 시름을 내려놓은 듯 잠시 수군거렸지만, 성영길 박사는 여전히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하지만!”
“…….”
성영길 박사의 차가운 말투에 다시 분위기가 잡혔다.
“우리 조직의 구성원 수천 명이 최소 1년 이상 생활할 물품 구입비와 현지 노동력에 대한 인건비 등에 대한 과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을 하고 지도부와 상의하여 이미 남쪽의 요원에게 임무를 전달한 상태입니다. 그 임무라는 게…… 이번에도 웃지 마시길.”
“허허! 기대되는군요. 웃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그래, 그게 뭡니까?
“하이재킹입니다.”
“헉!”
“네?”
난데없는 선언에 깜짝 놀라는 사람들.
그러나 성영길 박사의 설명이 이어지자 이번에는 배를 부여잡고 대놓고 웃기 시작했다.
다만, 득의양양했던 성영길 박사의 표정은 사람들의 반응이 못마땅하다는 듯 잔뜩 구겨지고 있었다.
2025년 2월 25일 23:30.
서울 준태의 집.
“야! 이거 기획한 사람 누구야! 이 사람 이거, 미친 거 아냐?”
“왜 그러는데?”
민우의 격렬한 반응에 호기심이 동한 윤희가 서류를 빼앗아 훑어보았다.
“금괴…… 하이재킹…… 기획? 헉! 진짜?”
“야! 우리가 아무리 막 나간다지만,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민우의 반응을 즐기듯 지켜보던 준태가 살살 달랬다.
“어차피 우리 것이잖아. 그러니까 그것을 중간에서 쓱싹하는 거지…….”
말과 함께 섬세한 손짓까지 곁들이는 준태.
집에 오는 내내 어처구니없는 술주정을 당한 것에 대한 소심한 복수일까?
“그러니까, 한국은행에서 보관하던 금괴 일부를 일본으로 운송할 계획인데, 중간에서 가로챈다? 그것도 내가?”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키며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준태와 윤희를 민우는 흡족한 표정으로 번갈아 바라보았다.
“야! 그런데 우리나라 금은 모조리 영국의 영란은행에서 보관하고 있잖아?”
“예전엔 그랬지. 그런데 달러화가 급속도로 힘을 잃고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지속되자 정부도 불안했는지 3년 전에 한국은행으로 옮겨 왔대. 그게 15톤 정도 된다더군. 그런데 이번에 일본 중앙은행에 합병되면서 한국은행의 금을 모두 일본으로 옮기기로 했나 봐. 그래서 다음 달에 1차분인 5톤 정도의 금괴를 옮긴다더라. 요즘 시세로 치면 한 2,000억 원 정도 될까?”
한국의 금 보유량은 각국 평균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심하게 적었다. 국제 통화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별문제가 없지만, 기축통화가 일시나마 마비될 경우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결제 수단이 자국 통화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과 달리 다른 G20국가들은 금 모으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 근데 내가 무슨 수로 그 군용수송기를 털어?”
“조직에서 그러더군. 네가 반드시 그 수송기를 타게 될 테니까 걱정 말라고.”
“뭐라고?”
“아마도 우리 조직원이 고위직 인사 중에도 있는 모양이야.”
“하긴 그렇겠군.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한 계획이지.”
민우는 고개를 끄덕인 후 서류를 신경질적으로 품 안에 우겨 넣었다.
2025년 3월 30일 20:00.
서울 시내 준태의 집.
한윤희의 무기 개발 전문가 포섭 임무는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먼저 윤희는 시내 모처에서 비밀리에 포섭된 연구원과 접선했다. 그리고 그의 인맥을 통해서 국방과학연구소의 전직 연구원들과 무기 개발 업체 직원 아홉 명을 더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그들은 보안을 위해 점조직 형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래서 연구원들은 자신에게 연락해 온 사람만 알고 있을 뿐, 누가 처음 연락했는지, 이 모임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다만, 20일 후 어디론가 떠날 예정이란 것, 그리고 저항 조직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일단의 인사 포섭 작업이 마무리되자 윤희와 준태, 그리고 최초로 포섭된 연구원인 소찬섭 박사가 조직의 안가라 할 수 있는 준태의 집에서 회동을 가졌다.
“소 박사님 덕분에 일이 잘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소찬섭 박사는 30대 중반의 화약 모델링 전문가였다. 깡마르고 다소 허약해 보이는 체구에 비해 깐깐하면서도 고집스런 분위기가 묻어나는 인물이었다.
“그보다…… 저희가 갈 곳은 아마도 북쪽 본부겠지요?”
“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곳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흠.”
준태는 조심스럽게 모든 계획을 설명했다.
소찬섭 박사는 이야기를 들을수록 표정이 변하더니, 종래에는 입을 쩍 벌리고는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그 모습이 많이 놀랐나 보다.
“그래서…… 독신자 위주로 알아보라 했군요.”
“그렇습니다. 이곳과 이 시대와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될 테니까요. 소 박사님은 어떻습니까? 계획이 마음에 드시는지요?”
그 말에 소찬섭 박사의 표정은 급격하게 밝아졌다.
“하하! 당연히 마음에 듭니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나라를 이렇게 만든 놈들에게 복수도 할 수 있으니까요. 거기다 새롭게 다시 써 내려갈 우리의 영광된 역사에서 제 역할이 있다는 것. 그것보다 좋은 일이 있겠습니까?”
“정말 다행입니다. 하지만 다른 분들은 어떨지…….”
“저도 그게 걱정이긴 합니다만, 대체적으로 저와 성향이 비슷하니까 문제는 없을 겁니다. 외부에선 잘 모르시겠지만, 무기 개발자들은 나름 애국심이 투철한 편입니다. 적과 싸울 때 어떤 무기를 우리 군인에게 쥐어 줘야 이길 수 있나. 우리는 늘 그런 고민에 싸여 일하던 사람입니다. 그 문제에 천착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모두가 애국자가 되는 거죠. 하하!”
“아,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모두에게 이별을 준비하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은 줘야겠지요.
“네. 그래서 소 박사님께서 나서셔서 잘 좀 다독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정보가 샐 염려도 있으니까 구체적으로는 말씀하지 마시고요.”
그 순간, 윤희가 끼어들었다.
“선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지금 북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흐름을 모두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냥 북으로 가자고, 또 지인들과 이별을 준비하라고 하면…… 그거 누가 봐도 그냥 죽으러 가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잖아요. 아무런 희망도 없는데 아무리 애국심이 있는 사람이라도 선뜻 나설 수 있겠어요?”
“맞습니다. 한윤희 씨의 말씀대로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이 이야기를 우리 연구원들이 들으면 엄청나게 고무될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모든 사실을 오픈하는 거지요. 대신 그들을 감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저부터 감시해 주십시오. 일부러 그러지 않더라도 실수로 말을 흘릴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