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간도진위대 1권 (5화)
제1장 2025년 - 한민족, 역사의 역류와 만나다 (5)
2025년 2월 25일 22:30.
서울 박준태의 집.
“첫 번째는 뮤우 대륙에서 사용되었다더군. 1만 2천 년 전에…….”
윤희는 준태의 설명에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말했다.
“아마 대륙이 종말을 맞았을 때 사용했겠군요.”
“그렇지. 그 종말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찾아왔을 거야. 대륙이 갑자기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으니까. 아무리 진보한 초고대 문명 집단이라도 대응하기가 어려웠기에 뮤우 문명의 지배 세력 일부가 천부인을 바로 가동한 모양이야. 천부인을 가동시키자 그들은 12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갔다더군.”
“120년? 그 시간 단위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민우가 의문을 제기했다.
윤희의 맑은 눈동자에도 의문이 가득했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모두 12진법을 쓰는 것은 알고 있지?”
“응.”
“네.”
“거기다 10을 곱해 봐. 게다가 60년을 회갑이라고 하잖아. 그러니 120년은 2주갑(周甲)인 셈이지.”
“아∼ 그래서 120년?”
“뭐, 사실 나도 정확하게는 몰라. 뮤우 대륙에서 그렇게 설계된 것이니까……. 그냥 그럴 거라 추측할 뿐이야.”
“아마도 그들의 12진법 체계로 유물을 설계하다 보니 그런 숫자가 나왔겠지.”
“그럼 120년 전으로 돌아간 뮤우 문명 세력은 어떤 조치를 취한 거지? 모든 주민을 대피시켰나?”
“아니, 그렇게 못했대. 그 당시 뮤우 문명도 상당히 문제가 많았다고나 할까? 정치적, 윤리적으로도 상당히 타락한 상태였고, 앞선 문명의 이기로 미개한 상태의 다른 대륙, 그러니까 우리 아시아 포함해서 아메리카까지 점령해서 노예 사회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해. 뭐, 어느 정도 진척된 상황이라 지금도 그 흔적을 고대 유적을 통해 찾을 수 있으니까. 근원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 거석 유적들이 그 증거라 할 수 있지.”
“아항∼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이해가 되네요. 그 유적들, 거대 피라미드, 오키나와와 대만 근처의 바다에서 발견되었다는 1만 년 이상 되었다는 해저 유적, 그리고 안데스 산록의 수만 년 전 유적까지…….”
윤희의 똑똑한 덧붙임이 이어졌다.
“석비에 따르면, 천부인이 열어 주는 웜홀은 만 하루 정도라고 해. 그래서 그들 뮤우 대륙인들은 웜홀을 열어 뜻이 맞는 사람 약 3,000명과 각종 문명의 이기를 소유한 채 대륙을 떠나 지금의 중국 남쪽을 통해 아시아 대륙에 상륙해서 다시 문명을 건설했다고 하더군. 그리고 세월이 흘러 원주민들을 교화하고 어느 정도 나라를 열 정도가 되자 최초의 나라를 세웠다고 하지. 바이칼 호 부근에서 말이야. 그리고 그 나라 이름이 바로 환국이었지.”
“오우!”
“와! 환인이 다스리던 환국. 그럼 우린 뮤우 문명의 후예인 셈이네요.”
놀라워하는 두 사람의 반응에 고개를 끄덕이며 준태가 말을 덧붙였다.
“물론 우리 말고도 인도 쪽과 남미 쪽에도 후예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한참 전에 건너간 사람들이니까. 그런 면에서 최고의 문명 수준을 가진 진정한 후예는 우리인 셈이지.”
“그렇다면 정말 그 석비는 보물이네요. 인류 문명의 역사를 명쾌하게 정리해 주었으니까.”
“그럼 그 석비를 만든 사람은 누구지?”
“헉! 진짜 중요한 질문을…….”
민우의 질문에 윤희가 손바닥으로 이마를 쳤다. 뿌듯한 마음에 가장 중요한 질문을 잊고 있던 것이다.
하여 그녀는 눈빛을 빛내며 준태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2025년 2월 25일 22:30.
삼지연군 지하 본부.
“이 비석은 대진국이라 불린 발해의 마지막 황제, 애제(哀帝)의 막내아드님이신 대야한 님이 작성하신 것입니다. 대야한 님에 대한 기록은 물론 어떤 역사서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화면을 보시죠. 이것은 비문의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
태진훈 교수의 설명과 함께 회의실 벽에 비문의 내용이 영상으로 나타났다.
오호, 통재라! 분하고 원통하도다!
하늘이 우리 대진국(발해의 원 이름)을 버렸음인가!
성산 백산의 갑작스런 분출로 나라가 혼란한 사이, 우리의 보호를 받던 거란인들에 의해 나라의 운이 다하였구나.
처음 안파견 환인께서 우리 겨레에게 전하신 천부인은 배달의 환웅과 조선의 단군, 그리고 고구려의 태왕, 아조 진국의 열제들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국통맥을 따라 대대손손 전해져 왔음이라.
나 또한 부황에게 천부인의 유래와 고사를 전해 들었기에 이에 그 유래를 후손들에게 전하노라.
망국의 한이 절절이 배인 비문의 내용은 천 년의 시간을 넘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가슴을 또다시 비통하게 물들였다.
“대야한 님의 말씀에 따르면, 천부인은 최소 1,200년 주기로 가동할 수 있다고 합니다. 처음, 그러니까 1만 2,000년 전 우리의 조상이 뮤우 대륙을 떠나올 때 사용되었고, 두 번째는 환국 말기에 환웅께서 배달국을 건국할 때에, 세 번째는 고조선이 북부여로 이름을 바꾸고 나서 얼마 후.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북부여가 후일 고구려로 계승됩니다만…….”
이 자리에 있는 상당수가 군인과 이공계 전문가들이란 점을 잠시 망각했나 보다.
태진훈 교수는 사람들의 리액션이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자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러니까…… 물론 저도 강단 사학자다 보니 잘 몰랐던 사실입니다만, 놀랍게도 제가 그토록 맹렬히 비판했던 재야 사학자들의 주장이 석비의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다시금 공부해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험험.”
태진훈 교수는 자신의 과거 행적이 부끄러웠는지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고조선은 47대 고열가 단군까지 이어 내려갔지만, 이후 국력이 약화되자 수도를 옮기며 북부여로 이름을 바꿉니다. 그리고 북부여의 4대 고우루 단군 대에 이르러 거듭되는 외침과 내란으로 인해 국력을 잃고 존망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때, 고열가 단군의 후손이신 고두막한이란 분이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고 북부여의 5대 단군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그분의 후손이 바로 해모수와 주몽이죠. 이 과정을 통해 결국 자연스럽게 고구려로 국통의 맥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 고두막한이란 분이 천부인을 가동시키고 웜홀을 열어 과거로 타임 슬립한 분이겠군요.”
남한의 특전사 대원들을 이끌고 온 김기륭 대령이 질문을 던졌다.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고두막한이란 분은 고열가 단군의 후손이었기에 천부인을 계승했던 것이고, 위기의 때로부터 120년이나 후세 인물이었던 그분이 우리 민족이 망하고 나자 천부인의 권능을 빌려 그 시점의 과거로 넘어갔던 것이군요. 그리고 같이 일어났던 의병들은 모두 미래로부터 넘어온 후세 인물들이었겠죠?”
이번에는 여의사인 이수진 박사가 질문을 했다.
“네, 정확합니다.”
설명을 이해한 듯한 사람들의 모습에 태진훈 교수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건 그렇고, 그럼 대야한 님은 천부인을 사용할 수 없었겠네요. 1,200년이란 주기 때문에…….”
이수진 박사는 손가락을 꼽으며 연대 계산을 해 본 후, 이내 대야한이 처한 상황을 곧바로 유추해 냈다.
“그것도 그렇지만, 대야한 님은 남쪽에서 성장하고 있던 고려의 존재를 눈여겨보셨습니다. 그래서 천부인을 가동시킬 수 있다 해도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셨습니다. 다만, 발해의 망국 과정에서 얻은 병으로 고려 왕조에 천부인을 전달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석비에 천부인의 유래와 활용법을 남긴 것이로군요. 그럼 저희가 바로 가동시킬 수 있겠습니까?”
이번엔 장순택 장군이 현안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네, 할 수 있습니다. 대야한 님의 안배로……. 하하, 사실 그 안배로 인해 자칫 우리 또한 사용하지 못할 뻔했지만요. 타 민족이 사용하게 될까 저어해서 그랬는지, 가동할 때 필요한 암호 체계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남기지 않으셨죠. 다만, 석비 끄트머리에 단서만 남기셨습니다. 현묘한 경전을 아는 자, 열 수 있으리라고…….”
제2장 과거를 준비하다 (1)
2025년 2월 25일 23:00.
서울 박준태의 집.
“디데이는 앞으로 두 달 후, 4월 30일.”
“그럼 우린 두 달 후에 1905년으로 가는 건가?”
“그렇지. 그때까지 두 사람이 할 일이 있어. 넘어가기 전에 가져가야 할 것과 데려가야 할 사람에 대한 문제인데…….”
“데려가야 할 사람이라면…… 당연히 믿을 만한 사람이어야겠죠?”
“그렇지. 조직의 지도부들이 매국노들한테 이를 가는 것 잘 알지? 과거로 가면 당장 친일파들 목부터 따야 한다고 난리도 아니야. 심지어 아직 매국 행위를 하지 않은 사람들도 사전에 씨를 말려야 한다고 이를 박박 갈고 있거든. 그러니 데려갈 사람들은 오죽하겠어. 우리 중에서 배신자가 나오면 정말 큰 문제니까 전문성이나 실력 보다 정치적 성향을 제일 먼저 고려해야 돼.”
“기술이야 이미 120년을 앞선 상태니까 누가 가든 뭐 잘해 내겠죠.”
“그리고 사람만 가는 게 아니라 현대 과학기술과 세계사, 지리 등 모든 분야에 대한 디지털화된 데이터도 가져가니까. 자동차, 공장용 기계, 항공기, 선박, 심지어 산업용 로봇까지……. 120년 전부터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기계들의 설계도를 싹 모아 갈 기세야.”
“대단하군.”
“지금 군인과 학자 그룹은 어느 정도 포섭이 됐고, 우리 조직원 중에 엔지니어 출신, 그러니까 기계 제작, 재료 공학, 광산 개발, 유전 개발, 조선, 제철, 제강에 중장비 기사까지 분야별로 골고루 분포돼 있어서 큰 문제는 없는데, 지도부는 무기 쪽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가자마자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르니까.”
동의한다는 듯 민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받았다.
“그렇겠지. 아무리 앞선 무기를 들고 간다 해도 곧 탄약이 소진될 것이고, 장비도 부품 연한이 다되면 말썽을 일으킬 테니까. 그러니 무기를 만들어 써야겠지. 결국 생존과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거야.”
“맞아. 그래서 말인데…… 먼저 윤희.”
박준태는 본격적으로 민우와 윤희에게 임무를 전달했다.
“윤희의 임무가 중요해. 마침 국방과학연구소 출신의 어느 연구원이 자기가 도울 일이 없겠냐고 조직에 연락을 해 왔어. 당연히 우리의 계획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고. 안 그래도 무기 개발 전공자가 없어 고심하던 지도부는 쾌재를 불렀지.”
“그것참 다행이네요.”
“그래서 먼저 그 사람과 접촉해 설득하고, 그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과거에 그 분야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포섭해서 본부로 인솔해 와야 돼. 각 분야별로 말이야. 그중에 특히 독신인 사람 위주로. 그리고 국방과학연구소나 방위산업체에 잠입하여 각종 무기의 설계도를 빼 오는 것까지. 여기까지가 윤희에게 주어진 임무야. 어때? 할 수 있겠어?”
“…….”
윤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곧 입을 열었다.
“지원은…… 있겠죠?”
“당연히 있지. 특전사 1개 팀과 민간 요원들 몇 명이 임무를 도울 거야. 신분 위조에서 잠입과 인솔, 이 모든 과정에 필요한 전문가들이 준비되어 있어. 이건 그들과 접촉하는 방법이고…….”
준태는 윤희에게 메모지를 건넸다.
그런 다음 메모지에 시선을 주고 있는 윤희를 보며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인솔 경로는 동해안 육로. 휴전선을 넘으면 차량과 안내인이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최소 디데이 열흘 전까지 휴전선을 넘어야 돼.”
앙증맞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생각에 잠긴 윤희.
이윽고 그녀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고는 기대가 된다는 듯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