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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진위대 1권 (4화)
제1장 2025년 - 한민족, 역사의 역류와 만나다 (4)
민우와 준태, 윤희 또한 한국독립전선의 조직원이었다.
“그래 아까 하던 얘기나 계속하자. 역사를 바꿀 수 있는 물건을 발견했다고? 무기의 일종인가?”
“우리 같은 역사학자들이 무슨 무기를 발견하겠어. 그냥 유물의 일종이야. 천부인이라고…….”
“뭐? 천부인? 그…… 단군 설화에 나온 천부인을 말하는 거야?”
그 말처럼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환국(桓國)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란 이가 있어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보내 그 땅을 다스리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응, 정말로 귀한 유물이지. 그런데 천부인 자체보다 그 유물이 보관되어 있던 곳에서 같이 발굴된 석비에 경천동지할 만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지.”
“석비?”
“너도 역사를 전공했으니까 알겠지만, 우리 민족사에 몇 번의 큰 전환점이 있잖아. 뭐, 자잘한 국난 극복사 같은 거 말고 말이야. 크게 봐서…….”
“나라를 완전히 잃는 위기의 때를 말함인가?”
“그렇다고도 볼 수 있고, 아니라고도 볼 수 있지.”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윤희가 거들고 나섰다.
그녀는 우울한 대화로 인해 감정이 복받쳐 촉촉이 젖은 눈에 조금은 활기가 돌아온 듯했다.
하얀 피부, 총기 넘치는 눈빛, 화려하지는 않지만 이목구비가 알맞게 균형 잡힌 얼굴, 쌍꺼풀 없이 시원하게 눈꼬리가 뻗은 전형적인 한국형 미인.
민우의 시선이 윤희의 눈망울에 가 닿았다.
“그럼 단절을 말하는 건가요? 정신의 단절…… 역사의 단절?”
대견하다는 듯 준태가 윤희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줬다.
“역시 똑똑해. 그 석비에 따르면, 지금까지 세 번 천부인이 사용되었다고 하더라. 첫 번째는…… 흠, 과연 이걸 믿어야 할지. 암튼 태평양에 위치했다고 전해지는 대륙 이야기인데, 지금보다도 훨씬 수준 높은 과학 문명을 보유하고 있었다가 1만 2천 년 전 갑작스럽게 멸망했다는 대륙 말이야. 뮤우라고…….”
“응, 당연히 알지. 뮤우는 몰라도 아틀란티스는 거의 존재가 인정되고 있는 분위기던데, 뮤우 문명도 그런가 보지?”
민우의 물음에 준태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바로 말을 이어 갔다.
“천부인은 뮤우 대륙에서 만들어졌다는군. 지구상에 떨어진 외계 물질이 엄청난 에너지를 품고 있는 것을 발견한 학자들이 후세를 위해 천부인을 만들었다고 하더라고.”
“놀라운 일이군. 도대체 어느 정도의 에너지길래…….”
“시간 여행이 가능할 정도?”
“헉!”
“선배! 그게 말이 돼요?”
동시에 비명을 지르는 두 사람.
“나도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잘 몰라. 물리학자가 아니라서. 다만, 평행우주론쯤은 들어 봤지?”
잘 모르겠다는 듯 멍한 표정의 민우, 그리고 그와 달리 잘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윤희였다.
“일종의 다른 차원의 평행우주로 웜홀(Worm Hole) 같은 것을 여는 장치라 보면 타당할 듯해.”
그에 윤희가 거들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우주와 평행하게 진행되고 있는 다른 우주와 시공간을 연결시키는?”
“그런 것 같아.”
민우는 아직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음을 던졌다.
“그게 시간 여행이랑 무슨 상관이지?”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듯 윤희가 설명을 덧붙였다.
“상관있죠. 나란히 진행되고 있는 우주란 의미는 여기 우주와 거기 우주가 같은 역사의 흐름을 갖고 흘러간다는 말이고, 웜홀로 연결되는 시공간은 그곳 우주의 미래든 과거든 어디든 가능할 테니까요.”
그제야 민우가 조금은 이해했다는 듯 말을 보탰다.
“그렇다면 역사를 바꾸기 위해 그곳 우주의 과거 시점으로 간다는 거군.”
“맞아. 하지만 다른 평행우주가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잘 모르겠어. 다만, 우리가 과거로 간다면 그곳이 전혀 다른 차원의 우주가 된다는 이야기 정도는 알고 있지. 뭐, 그것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그럼 역사를 바꾸는 게 아니라 이주하는 것 아닌가? 다른 시공간으로?”
“맞아요, 그런 셈이죠.”
민우가 윤희를 보고 다시 되물었다.
“그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결국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건데? 지금의 현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잖아?”
“그건 그렇죠. 하지만 차원이란 건 결국 우주론적 이야기일 뿐, 현상에 대한 인식과 기억만으로 자아를 구성하고 인지하는 우리 인간에게 그런 구분이 의미가 있을까요? 그저 우리에겐 둘 다, 두 차원 모두 현실 그 자체로 느껴질 텐데요.”
윤희의 대답에 민우는 한참 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지. 결국 현실은 현실이란 말이군. 완전 철학적인 소재로군.”
다들 어느 정도 이해가 된 듯하자 준태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다는 것도 확실한 것은 아니야. 그저 물리학에서 말하는 가설에 불과할 뿐. 본부에 있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는 모양이야.”
잠시 숨을 돌리며 물 한 컵을 들이켠 준태가 계속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까 그 석비에 따르면, 우리 한민족은 시공간의 여행자라더군. 지금까지 모두 세 번 천부인을 사용한…….”
2025년 2월 25일 22:00.
양강도 삼지연군 지하 회의실.
“태진훈 교수님, 그럼 브리핑 부탁드립니다.”
지하 회의실에 모인 30여 명의 사람들.
군인이 반, 민간인이 반이었다.
남쪽의 최고위 장교인 장순택 준장이 남북합동군의 총사령관을 맡고 있는 북한 출신의 권두진 상장에게 살짝 목례를 하고 회의 시작을 알렸다.
장순택 준장은 강원도에 주둔하고 있던 제104기갑여단의 여단장이었다.
미국과 일본군에 뒤통수를 맞던 날,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
―미일연합군이 다가오면 포탄 몇 발 날리는 시늉을 하다 항복하고 무장해제하라.
하지만 그는 명령을 거부하고 제대로 싸웠다.
덕분에 미일연합군에서 최초의 전사자가 나왔다.
그로 인한 대가 역시 컸다.
분노한 미일연합군이 날리는 엄청난 양의 미사일과 항공 폭격을 뒤집어 쓴 장순택 준장의 부대는 상당수의 장비와 병력을 잃었다.
그리고 북쪽으로 후퇴해 얼마 안 남은 부대원들에게 의향을 물었다.
“우리는 북으로 간다. 북한군은 더 이상 적이 아니다. 이미 통일 한국에 흡수된 한국군이다. 북쪽행을 모두에게 강요하지는 않겠다. 아마도 우리는 모두가 죽을 것이니 내가 어찌 그대들에게 죽음을 강요할 수 있겠나. 하지만 최소 군인이라면 이런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일본인으로 더 길게 살다가 죽을 것인가, 아니면 조금 덜 살더라도 한국인으로 죽을 것인가. 한국인으로 남길 원하는 사람은 나를 따르라!”
그의 연설을 듣고 남기로 한 군인은 500여 명이나 되었다.
이미 격한 전투를 치러 전우를 잃은 이들.
한껏 감정이 복받쳐 오른 상황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생각보다 많이 남아 주었다.
장순택 준장은 병력을 재편성하고 그나마 운용이 가능한 K2A1 전차 12대와 K9 자주포 21문, K21 장갑차 23대, 그리고 각종 지원차량과 수송 트럭을 있는 대로 동원했다.
그리고 군단 탄약고와 무기고, 보급품 창고 등을 습격, 탄약고에 보관되어 있던 포탄이며 소총탄, 유탄 등과 무기류, 군 보급품 등을 트럭에 가득 싣고 북으로 향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이, 미일연합군은 그의 부대를 저지하지 않고 오히려 호위를 하듯 길을 터 주었다.
심지어 탄약고와 무기고, 보급품 창고들을 습격했을 때도 근처에 빈 트럭을 잔뜩 세워 놓은 채 경계 병력마저 후퇴시켰다.
덕분에 장순택 준장은 엄청난 양의 탄약을 챙길 수 있었다.
아마도 미일연합군 측이 정보원을 통해 그들의 행선지를 미리 알아내고는 그렇게 배려해 준 것으로 보였다.
북쪽으로 넘어가 중국군과 피 터지게 잘 싸우라는 배려 아닌 배려였을 터.
장순택 준장은 자신과 같은 경우의 부대가 꽤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북으로 올라와 보니 부대 단위로 올라온 것은 그의 부대뿐이었다.
나머지 육군 병력은 소규모이거나 개인 자격으로 이탈한 장교 몇 사람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육군 특전사와 해병대 병력 중 상당수가 합류해 있었고, 해군과 공군 장교들 또한 이후 개별적으로 하나둘 조직에 들어왔다.
장순택 준장의 선언에 좌중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태진훈 박사가 입을 열었다.
“그럼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저희는 그날의 사태 이전…… 흠, 앞으로는 국치일이라고 통일하겠습니다. 국치일 몇 달 전, 그러니까 남북통일선언 1개월 후, 북쪽 역사학자들의 급한 요청으로 이곳을 조사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백두산의 지하에서 마그마가 계속 올라와 언제 분출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잖습니까? 계속되는 지진에 북한 10군단 사령부 지하 본부의 한쪽 벽이 무너지며 유적지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바로 이곳에 말이지요.”
“호오, 기가 막힌 우연이네요. 그런데 왜 이 동굴이 그전에는 발견되지 않았을까요?”
이번에 새로 합류한 30대 후반의 지질학자 이태인 박사는 자신의 전공과 관계된 이야기가 나오자 바로 호기심을 표했다.
“우리가 있는 이곳 10군단 지하 사령부는 백두산 산록의 자연 동굴을 넓히고 개조해 건설한 것입니다. 이 자연 동굴은 원래 막혀 있었는데, 불과 10년 전 지진으로 인해 입구가 드러났다고 합니다. 처음 발견했을 당시, 입구는 사람 한 명 정도만 걸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들어가자 사령부가 통째로 들어갈 만한 거대한 공동이 나타났고, 그래서 차량 2대가 오갈 수 있을 정도로 입구를 넓히는 공사를 한 후 사령부를 바로 이곳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태진훈 교수는 북한의 10군단장인 권두진 상장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의 예를 표한 후 말을 이어 갔다.
“사실 권두진 장군님 덕분에 이 유물이 세상에 알려진 것입니다. 아무리 통일이 됐다 해도 남쪽의 연구진을 초빙해 군 시설을 보여 준다는 결심을 하기가 쉽지 않으셨을 테니까요.”
“거, 낯 뜨겁구만. 이쪽 교수 말 들어 보니 한민족의 최고 보물이라 하지 않갔어. 기래서 당연히 알린 거지. 암튼 일 없으니까 계속하기요.”
북한 10군단은 이곳 양강도를 위수지역으로 하는 부대였다.
그런 이유로 전쟁 초기, 중국군에 초토화된 서부 지역 군대와 달리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상태였고, 군단장인 권두진 상장 자신이 민족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 흔쾌히 남쪽 군대의 합동군 구성 요청을 수락했다.
또 합동군 구성 인원 중 가장 계급이 높다 보니 자연스레 사령관으로 추대된 상태였다.
“맞습니다. 우리 민족 역사상 최고의 유물인…… 바로 천지인 유물입니다.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알 수 없는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 검과 거울, 방울 등의 유물 세 점. 유물의 유래가 기록되어 있는 석비, 그리고 두 개의 석주. 두 석주 사이의 폭은 5m 정도 됩니다. 그리고 왼쪽의 석주엔 이들 유물이 결합될 곳으로 보이는 장치들이 있고, 다른 면에는 한자로 숫자가 1∼10까지 음각되어 있었습니다.”
“태 교수! 거, 날래날래 진행하기요. 그 정도는 다들 아는 사실 아입네?”
늘어지는 설명에 답답한지 권두진 사령관이 태진훈 교수를 재촉했다.
“네. 그럼 바로 석비에 적힌 내용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