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간도진위대 1권 (3화)
제1장 2025년 - 한민족, 역사의 역류와 만나다 (3)


2025년 2월 25일 22:00.
서울 박준태의 집 인근 도로.

박준태에게 업혀 가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고민우.
주사가 참으로 자심했다.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어 버렸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눈살을 찌푸리며 잔뜩 눈총을 주었다.
“야이, 준태! 이 나쁜 자식! 은주 빼앗아 간 뻔뻔한 새끼∼”
“시끄럿! 하여간 이 인간, 장점이 없어요. 유치한 주사까지……. 아주 총천연색 루저야 정말.”
옆에서 따라가던 윤희가 타박을 늘어놨다.
“불쌍한 은주∼ 어쩌자고 이런 놈한테∼ 못생긴데다 머리도 나쁘지, 성격도 더러운 저런 놈에게……. 어허헝!”
작심하듯 내뱉는 투정에 준태는 황당한 듯 고개를 돌려 민우를 바라보았다.
“뭘 봐! 짜샤!”
그에 준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낮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에휴, 이번 기회에 아주 속에 있던 말 맘먹고 내뱉는군. 너, 그 캐릭터 너무 즐기는 것 같다? 근데 은주가 누구냐?”
그러자 윤희가 잽싸게 준태의 말을 가로채고는 나직이 얘기했다.
“쉿, 설정이에요. 우리 셋이 만날 때를 대비한…….”
준태 또한 나직이 말을 받았다.
“아하! 그러니까 민우하고 나하고 사이 나쁜 이유에 대한?”
그때, 민우가 손가락 하나를 펴서 준태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그러자 일순간 준태와 윤희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일행은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돌아갔다.
누가 봐도 시끄럽고 모양 안 나는 취객 삼총사.
하지만 그런 세 사람을 조용히 따르며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가로등 그늘의 짙은 어둠 속에서 눈을 번득이며 세심하게 관찰하는 사내.
하지만 세 사람의 자연스런 술주정에 피식, 비웃음을 흘리더니 꼬나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는 발로 비벼 꺼 버렸다.

“일단 군부의 인물에 대한 포섭은 끝났고, 이제 민간인에 대한 포섭이 시작된 상황이야. 남쪽 군대와 북쪽 군대가 무사히 합류해 함경도 일대에 전선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은 잘 알고 있지?”
침착한 준태의 설명에 민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북쪽 사정은 어떤가?”
“한결 낫긴 하지. 함경도와 강원도 이외의 서부 지역은 중국군의 물량 공세에 밀려 이미 게릴라전으로 전환된 지 오래고, 조만간 함경도에 최후의 전선이 형성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지…….”
“함경도도 위험하지 않나? 북쪽에서 바로 내려오면…….”
“아직 중국군이 그쪽으로 부대를 이동시키지는 않나 봐. 러시아와의 접경지대라 좀 껄끄러운 면도 있을 테고…… 중국군도 우리가 하나로 뭉치기를 약간 기다려 주는 상황인 거 같아. 어차피 피아가 섞여 있으면 작전을 펼치기도 힘들고 예상치 못한 피해를 볼 수 있으니까 전선이 형성되길 기다리는 거지. 게다가 함경도에는 핵 시설도 있으니…….”
이야기를 들을수록 분노를 참을 수가 없는 듯 민우는 주먹을 꽉 쥐고 손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쉬고는 공허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절망적인 현실에 잠시 말을 잃은 삼총사.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민우는 힘없이 혼잣말을 내뱉으며 상념에 잠겼다.
윤희와 준태 역시 마찬가지 심정인 듯 입을 열지 못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도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다.
그 일은 불과 1년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2024년 4월.
한반도는 극적인 통일을 이뤘다.
북한 지도부의 극심해지던 내분이 결국 파국을 맞이한 것이다.
이후 대부분 붕괴된 지도부 인사 중 간신히 정권을 잡은 군부의 장군이 결국 남쪽에 무조건 통일을 요청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전역은 축제 분위기였다.
전 국민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춤을 추었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위기는 곧바로 닥쳐왔다.
2024년 7월, 한국군 2개 군단이 치안 확보를 위해 북쪽으로 움직일 무렵.
한반도 통일 상황에 대해 이례적으로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던 중국이 본격적으로 남하를 시작했다.
동북 3성에 주둔하고 있던 심양 군구 병력이 압록강을 넘은 것이다.
북한군 지도부의 요청을 받았다는 이유로.
아마도 권력 투쟁에서 밀린 몇몇 친중파 요인이 파병요청을 한 것으로 보였다.
아니, 했든 안 했든 그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요청이 없었다 해도 그런 명분을 내세우며 중국군은 움직였을 것이 빤하니.
그래도 국민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남북 군대가 힘을 합치면 희생이 크다 해도 중국군을 밀어낼 것이라 믿었다.
하나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정권을 장악한 남한의 수구 세력, 친일 뉴라이트 정권은 한미일 공조 움직임을 더욱 확고히 하며 마지막 퍼즐이라 할 수 있는 한미일군사동맹조약을 체결했다.
붕괴된 한국 경제의 유일한 탈출구란 것이 그 명분이었다.
이미 한국은 몇 년 전에 제2의 IMF를 맞아 경제가 완전히 붕괴된 상황.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던 모든 경제지표들이 경착륙을 한 상태였다.
결국 부동산 거품이 터져 버렸고, 연쇄적으로 내수 시장마저 붕괴되었으며, 이에 따라 기업들은 부도를 피할 수 없었다.
물론 그런 기업들은 대부분 중소기업에 국한되었다.
이미 다국적 기업이 되어 버린 한국의 10대 재벌은 여전히 건재했다.
본사만 한국에 두고 이미 대부분의 생산 시설과 시장을 외국에 두고 있었기에 그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재벌과 유착된 정권은 온갖 특혜를 몰아주었고, 그로 인해 마음껏 배를 불릴 수 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경제 위기를 핑계로 50∼70%에 달하는 직원의 정리 해고를 단행했다.
이제 거리는 실업자와 노숙자로 넘쳐 났다.
그야말로 상위 1%만 제외하고 전 국민이 빈곤층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수많은 시민의 저항이 있었고, 정권이 바뀔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검찰, 경찰, 국정원, 언론, 심지어 선관위까지, 모든 권력기관을 장악한 수구 세력은 시민들의 저항을 무자비하게 탄압했고, 그릇된 정보를 퍼트려 여론을 왜곡시켰으며, 심지어 부정선거까지 공공연하게 저질렀다.
너무나 공고한, 어떤 면에서는 3공 때보다 더 강고한 장기 집권 체제가 만들어진 상황이었다.
명실상부한 빅브라더의 통치 체제.
가난에 지쳐 죽지 못해 살아가는 나날들.
십 수 년간 진행된 거짓 선동에 세뇌되어 서서히 저항하는 방법마저 잃어버린 시민들.
그렇게 대한민국은 서서히 붕괴되어 가고 있었다.

다시 2024년으로 돌아와, 중국군이 압록강을 넘자 한국은 한미일군사동맹조약에 따라 일본과 미국에 파병 요청을 했다.
그런데 그게 바로 결정적인 실수로 돌아왔다.
중국과 일본은 이미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 3개국 비밀 회담을 열어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해 버린 상태였다.
제2의 IMF 사태로 인해 붕괴된 한국 경제는 미국 내의 다국적 기업에게는 더 이상 매력이 남지 않은 시장이었다.
아니, 이미 단물이 다 빨린 상태였기에 더 이상 관심을 둘 이유가 없었다.
결국 지정학적 역학 관계와 국제정치적 환경만이 고려 사항이었을 뿐.
수차례 대지진을 겪으며 국가의 존립 자체에 대해 위협을 받던, 속된 말로 열도 침몰이 현실화될 위기에 처한 일본은 새로운 영토의 확보가 절실한 과제였기에 미국과 중국에 제안을 한 것이다.

남쪽은 일본이, 북쪽은 중국이 차지한다.
대신 미군은 한반도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중국과 새로운 영토를 얻어 당연히 좋은 일이었고, 재정 위기에 몰려 있는 미국 또한 중국과의 신경전을 일본에 떠넘기는 것과 동시에 일본으로부터 예전보다 더 많은 무기를 구입하겠다는 약조까지 받아 냈다.
새롭게 발견된 자원으로 힘을 키우던 러시아는 국내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 소요 사태로 인해 3국의 협상 테이블에 끼지 못했다.
어쨌든 긴밀히 이루어진 비밀 회담에서 3국 모두 이 계획에 흔쾌히 동의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에 이른 것이다.
옛 북한 지역은 연변 조선족 자치주와 한데 묶어 ‘동북변 조선족 자치구’란 중국식 행정구역으로, 남한 지역은 일본식의 1개 도와 5개 현으로 편성하기로 계획되었다.
경성도와 경기현, 강원현, 충청현, 경상현, 전라현으로. 이 계획에 따라 세종시에 임시 총독부를 설치하기로 했다.
다만 당분간 치안과 행정 체제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어 1∼2년간 기존의 한국 정부를 임시 정부 형태로 존속시켜, 국가 통합 과정을 진행시키기로 했다.
그렇게 이들 세 나라의 이해관계에 휩쓸려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이미 남한에 상륙한 미일연합군에게 뒤통수를 맞은 한국군은 금세 지리멸렬하며 항복을 선언하고야 말았다.
그와 함께 뉴라이트 출신의 대통령이 거짓눈물을 흘리며 항복 선언과 한일 병합을 선포하고 한일협약에 조인했다.
붕괴된 경제를 살리고 국민을 잘살게 하기 위한 고육책이란 핑계를 대고.
결국 그들은 마지막까지도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나라를 넘기는 것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며.
그날이 2024년 10월 3일, 개천절이었다.
한민족이 처음 나라를 연 날이 나라가 망한 날이 되는 아이러니.
친일 매국노들과 일본이 꾸민 치밀하고도 치졸한 쇼였다.

“그거…… 쇼였겠지? 우리 몰래 3개국이 합의한 게 아니라, 그놈들까지 4개국이 합의한 거겠지?”
넋두리하듯 힘없이 말하는 준태의 물음에 민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말이 필요 없었다.
그때 대부분의 한국군은 싸워 보지도 않고, 전투를 하더라도 시늉만 하고는 바로 항복을 했으니까.
마치 서로 짠 듯이.
당시 대부분의 군 장성들이 뉴라이트 소속이었고, 또 그 계열이 아니면 진급도 안 되는 상황이었기에 불을 보듯 빤한 일이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저항은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에 분노해 떨쳐 일어난 소장파 장교 그룹이 이끄는 몇몇 하위 부대가 벌이는 일이었다.
그나마 극소수의 자원병을 통해서.
한줄기 희망이랄까?
썩어 버린 지도층과는 달리 일반 국민 중에서 애국자들이 속속 집결해 점조직 형태의 저항 세력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던 저항 세력들은 ‘한국독립전선’이라는 이름하에 하나로 합쳐졌다.
군인뿐만 아니라 여러 시민 그룹도 합류했다.
양식 있는 지식인, 대학생, 일반 시민, 심지어 고등학생까지.
그들은 지하로 잠적해 다양한 저항운동을 펼쳤다.
그중 군인들은 중국군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북쪽으로 집결해 함경도와 양강도에 거점을 두고 남북 합동 저항군을 조직했다.
그런 뒤, 통일된 지휘 체계로 전투를 벌여 나갔다.
비록 개미와 코끼리의 싸움에 불과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