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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퍼1권(20화)
6. 수련과 부작용(3)


가끔 에반을 훔쳐보는 더글라스는 작은 에반이 서 있기만 해도 위압감을 느꼈다. 이상한 자세를 취하면 맹수가 노리는 것 같은 압박감도 생겼다.
더글라스는 에반이 취하는 이상한 자세가 뭔가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도 봄이 되어 밖으로 나온 에반을 오랜만에 보자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느꼈다.
알 수 없는 기세는 개척 마을 사람들이 싫어하는 귀족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용병을 했던 토마스만이 왠지 몇 번 보았던 귀족이나 기사 같은 느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인지 에반에게 비법을 배우려 했던 마을 사람들의 생각이 없어졌다. 귀족이라면 피하는 것이 본능에 새겨진 어른들이었다.
자신을 개척 마을로 내몰던 지배층을 떠올리게 하는 에반의 기세에 평범한 마을 사람들은 마주치는 것도 피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매일 에반과 얼굴을 맞대는 알포스 가족은 그런 기세에 조금씩 적응해서 그런지 아직은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
“에반아, 이제 날도 풀리는데 그만 방에서 나와서 나하고 나물이나 캐러 가자.”
봄이 되면 나오는 식물 중에서 먹을 수 있거나 값이 나가는 것들이 많았다.
조금씩 여자들이 마을 주변을 돌며 꽃이나 나물들을 캐려고 하자 데리도 에반을 데리고 나가려고 말을 꺼냈다.
여전히 나이에 맞게 별생각 없이 말을 하는 데리였다. 기세까지 풍기는 에반이지만 데리에게는 유독 약했다.
여자라는 면도 있지만 에반은 데리에게 진한 정을 느끼고 있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데리는 에반을 동생처럼 대하며 이득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가는 정이 있으니 에반도 데리에게 더욱 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제 겨울에 하지 못했던 사냥도 해야 하고 수련도 더 해야 돼. 그냥 아줌마들하고 다녀.”
오랜만에 데리가 함께 나가자는 요구에 수련으로 생각이 많았던 에반은 냉정히 거절의 말을 했다.
봄이 되면서 에반의 기운도 날씨에 맞추어 더욱 달아오르고 있었다.
데리에게 약한 에반이지만 요즘 몸과 정신을 달구는 내공에 맘 편히 나물을 캐러 다닐 수는 없었다.
“흥, 이제 야채도 없는데 앞으로 딱딱한 육포나 먹어라. 하여간 방에서 혼자 뭐하는지 모르겠어?”
에반의 냉정한 말에 십 대의 여자인 데리는 바로 삐치게 되었다.
“화 풀어, 내가 전에 얘기했던 오뚝이 인형 만들어 줄게.”
데리가 먹는 문제로 에반을 응징하자 에반은 바로 꼬리를 내리고 이야기 중에 나온 오뚝이 인형을 만들어 주겠다는 말을 했다.
여성스러운 인형은 에반으로서도 자신이 없어 오뚝이 인형을 꺼내었다. 나무를 둥글게 깎고 내부에 쇳덩이를 둔다면 간단히 오뚝이 인형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에반은 인형을 만들 시간도 아까웠지만 삐친 데리를 달래기 위해 잠깐 시간을 내기로 했다.
“내가 뭐 인형 가지고 싶다고 했나? 그런데 인형은 예쁘게 꾸며야 한다.”
어린애나 여자가 가지고 놀거나 꾸미는 소품이 없는 세상이었으니 데리는 인형이라는 말에 흥미를 보였다.
에반은 잠시 수련을 쉬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서인지 기회가 되자 데리를 위해 오뚝이 인형을 만들기로 했다.
장작으로 잘라 둔 통나무 중에서 나무를 고른 에반은 단도를 가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우선 나무를 둥글게 깎고 아래를 파서 무거운 추를 넣기로 했다.
그러나 단도로 나무를 깎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끼로 결에 맞추어 내리쳐야 하는 나무를 단도로 깎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에반은 금방 단도로 나무를 깎는 것이 어림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자 고민이 되었다.
‘이거 그냥 돈을 써서 반지라도 살까? 나무를 깎는 것이 이렇게 어려웠나. 그냥 하루 정도 데리를 따라다니며 시달릴 것을 잘못했네.’
에반은 뒤늦게 데리에게 생각 없이 말하고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 인형을 만들어 주겠다는 말을 한 것을 후회했다.
간단히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무를 깎는다는 것부터 힘들었다.
에반은 새로운 이야기를 해 주거나 돈을 써서 반지나 귀걸이 같은 것을 살지 고민을 했다.
그러나 개척 마을의 만물상에 액세서리 같은 것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아 다시 나무를 깎는 것에 집중했다.
일단 언제까지 준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니 에반은 느리지만 나무를 깎기로 했다.
나무를 조금씩 깎아 가자 에반은 어떻게 하면 나무를 쉽게 깎을 수 있을지 생각을 모았다.
조금이지만 손에 모이는 기운에 쓰려고 했지만 기본인 근력이 부족했다.
나무이니 오행 중에서 목의 기운을 활용해 모양을 변형시켜 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에 죽은 나무는 목의 기운보다는 단단하고 건조한 금의 기운이 강했다.
에반은 오행의 이치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 보지 않아 그냥 목의 정령의 능력이 부족하다고만 생각했다.
오행이라는 것은 단순히 나무, 불, 흙, 금속, 물이라는 것보다는 더 깊은 의미가 있었다.
나무는 겨울을 견디고 뻗어 나는 현상과 성질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봄이 되어 나무가 자라고, 여름에 화려하게 피어나고, 토로 조화를 이루고, 가을에 열매를 맺고, 겨울을 견뎌서 다시 봄에 피어나는 현상 자체를 오행으로 상징한 것이다.
단지 나무가 목이라는 것은 피상적으로 파악한 것이다. 오행은 태극처럼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였다.
봄의 나무가 목의 기운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고 가을과 겨울의 나무는 다른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뿌리와 줄기, 잎, 꽃, 열매는 서로 다른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에반이 정령에게 이 세계의 이름을 주었다면 다르겠지만 이미 정령에게 오행을 심어 주었다.
아직은 작은 정령들이지만 신과 같은 현상을 상징할 정도로 클 수 있는 씨앗을 가지고 있었다.
목의 기운으로 나무를 변형시키지 못하자 에반은 금기를 활용했다.
“오행, 금기를 단도에 넣어 단단하고 날카롭게 해 봐라.”
에반의 명령이 있자 오행은 에반의 단도를 금의 성질대로 단단하게 했다.
그러나 날카로움은 잘 구현하지 못했다. 단지 단도의 날을 더 단단하게 하는 것은 쉽게 하지만 날카로움은 다른 성질이었다.
에반은 별다른 고민 없이 오행의 이름을 따서 지었던 정령들의 성질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기와 동양철학에 대한 많은 글을 읽었지만 한의사도 아니고 실제로 활용할 기회는 없었다.
에반은 오행이 단지 한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식을 활용해 보지 않아 목과 금의 기운을 단순하게 활용하려 한 것이다.
에반은 실제로 정령을 활용하다 막히자 바로 오행의 의미를 깊이 파고들었다. 그러면서 단도를 날카롭게 할 방법을 고민했다.
에반은 한참을 지식으로만 알던 상대적인 오행의 성질을 떠올렸다. 그리고 뻗어 나가는 성질인 목과 수렴하는 금의 성질을 합쳐 단도에 적용해 봤다.
합쳐진 기운은 단도의 날을 더욱 단단하게 하며 예리한 기운을 뻗었다. 날카로운 기운이 서린 단도는 나무를 쉽게 깎았다.
에반은 다른 오행의 기운을 합쳐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물처럼 유연하고 응집력 있게도 하고 불처럼 퍼지는 날카로움도 만들 수 있었다. 풍까지 도와주면 날카로운 기운을 더 멀리 뻗을 수 있었다.
몸의 제한으로 많은 기운을 활용하지 못하는 에반은 정령들로 검기의 흉내를 내게 되었다.
에반은 정령들에게 기운을 주며 처음 만든 유사 검기로 여러 실험을 했다.
‘이것도 검기 아니겠어. 이제 나도 고수야.’
에반은 작은 단도를 휘두르며 단도의 날에 일렁이는 기운을 유사 검기로 이름 지었다.
창천문에서 수련을 했던 강철호 시절에도 말을 들었지만 실제로 검기는 보지 못했었다.
강철호를 가르치던 사범들이 검기의 경지에 올랐었는지 사람들 앞에서 시범 보이는 경우는 없었다.
무도에 인생을 걸고 수련하던 사람들은 자신의 경지가 자존심과 같아 일반인들 앞에 광대처럼 보여 주지 않았다.
수련자에게도 앞선 경지를 보여 주면 방해가 되니 보여 주지 않았다.
검기라도 보여 주면 낮은 경지의 수련자가 욕심이 생겨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저 지금 자신의 경지를 완벽히 하며 정진해야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에반은 실제로 일렁이는 유사 검기가 신기했다. 희미한 기운이었지만 기를 눈으로 보니 자신의 경지가 높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에반은 넘쳐 나는 기운을 소모하고 정령을 활용할 방법으로 유사 검기를 연습했다.
유사 검기가 가장 길게 나오는 조합인 금목풍의 기운을 묶어 검기라는 단어를 말하면 바로 유사 검기를 만들도록 훈련을 시켰다.
유사 검기는 정령들이 협력해야 나오니 순간적으로 만들고 유지하는 연습을 했다.
에반은 정령을 활용해 검기 흉내를 내자 주화입마의 걱정으로 늦췄던 수련에 더 집중했다.
유사품이지만 검기를 보자 지루하고 주화입마로 침체된 수련의 의욕이 샘솟았다.
에반은 자주 유사 검기를 연습하며 기운을 소모했지만 열심히 수련을 하자 또다시 기운이 넘쳐 났다.
에반은 넘치는 기운에 더 이상 방에 있지 못하고 야외로 나갔다.
내공이 넘치지만 운기나 고급 수를 수련하기는 위험해 그냥 달리며 기초 체력을 높여 갔다.
달리기는 기초 체력을 높이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에반은 기운이 넘쳐 들뜨면 진정될 때까지 숲을 달렸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너무 빨리 겪는 것이다.
에반은 달리기를 하며 복식호흡을 하지만 기운을 강하게 흡수하지는 않았다. 많은 활동량으로 안정적으로 기운이 모이지는 않았다.
에반은 달리기가 기초 체력을 높이고 몸을 단련하며 기운도 적당히 소모하자 현재의 자신에게는 적합한 수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에반에게 비법을 배우려는 마을 사람의 관심도 없어지던 시기였다. 그리고 봄이 되며 농사 준비로 다들 바빴다.
숲을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니는 에반을 방해할 사람은 없었다. 내공 때문인지 오래 달려도 지치지 않자 숲은 에반의 수련 장소가 되었다.

넘쳐 나는 내공에 숲을 달리며 몸과 내공을 조절하는 에반은 점차 깊은 곳까지 활동 범위를 넓혔다.
봄이 되면 몬스터나 맹수들이 겨울의 굶주림을 보충하려 움직였다. 그러나 에반은 정령들의 정찰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정령들을 활용한 유사 검기도 빠르게 만들고 오랫동안 유지하는 데 익숙해져 자심감도 있었다.
에반은 투척용 단검과 매운 가루를 벨트에 넣어 더욱 무력에 자신을 가졌다.
냉정히 보자면 현재 에반의 실제적인 무력은 나이프뿐이었다.
검은 어린 몸도 문제지만 실전에 사용할 정도로 익히지는 못했다.
현대에는 제대로 된 무도들도 실전에 사용할 수법들은 가르치지 않고 있었다.
사람을 치면 감옥에 가는 사회이니 실전에 사용할 효과적인 방법은 아예 공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현대의 무도들은 대부분 실전이라는 부분이 빠진 경우가 많았다.
사람을 치는 연습을 한다면 무의식적으로 손이 나가게 되니 산에서 지낼 사람이 아니라면 아예 연습을 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기초를 넘긴다면 어떻게 실전에 사용할지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에반이 창천문을 제대로 익혔지만 냉정히 보면 기초뿐이었다.
권법으로 겨루거나 사람을 직접 때려 본 경험도 없었다. 진짜 비전인 공방비결은 구결로만 알고 있었다.
검법은 그런 제약이 없어 많이 배웠지만 수련용인 검법이었다. 현대라는 환경에서 검은 멋을 위한 장식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에반도 실전에 쓸 만한 것은 배우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안전하게 지내려 했다.
그러나 기운이 넘치는 청소년들이 사고를 치는 것처럼 에반도 기운이 넘쳐 다시 담이 커진 상태였다.
정령의 정찰도 있고 유사 검기도 만들자 현재 더욱 겁을 상실하게 되었다.
에반은 단검집에 꽂아 둔 단검을 빠르게 뽑아 목표로 한 나무에 던졌다.
무게 중심이 잘 맞춰진 단검은 빠르게 날아가 나무에 꽂혔다.
‘그래도 투척술은 배워서 연습한 보람이 있네.’
표창이나 단검을 던지는 투척술은 그래도 재미 삼아 자주 연습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