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트랩퍼1권(19화)
6. 수련과 부작용(2)
제대로 된 전통무도는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배운다면 십 년이나 이십 년 이후에는 발경이나 검기 같은 것을 다룰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완전히 매진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전통무도들은 한두 시간이 아니라 하루 종일 십 년 넘게 수련해야 하니 사회생활 하며 수련할 수는 없었다.
어린애가 학교를 다니지 않고 몇 시간을 마보나 서며 보내는 것은 상상할 수 없으니 전통무도들은 점점 사멸할 수밖에 없었다.
태권도는 힘들고 재미없는 기본동작은 건너뛰고 간단한 발차기를 익히며 점차 숙련도를 높여 가는 체계였다.
처음부터 간단한 발차기를 배워 재미있게 익힐 수 있고 대련도 자주 할 수 있었다. 이후에 더 뛰어난 권법과 수련도 있으니 현대에 맞는 수련 체계였다.
무예의 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수련 체계의 문제였다. 재미있게 신체도 단련하고 즐길 수 있는 태권도가 현대인에게는 잘 맞는 무예였다.
옛날처럼 무도를 배워 도통하려고 평생 매진하지 않는 바에야 현대화된 무예들을 배우는 것이 훨씬 나았다.
에반도 강철호로 살 때 창천문을 배웠지만 3년 정도만 매일 두 시간 정도 기초 수련을 하는 정도였다.
3년의 기초 수련과 이후에도 꾸준히 수련해 간신히 발경을 익힐 수 있었다.
학교를 다니고 군대를 거치며 꾸준히 수련했지만 이런 짧은 시간으로 발경을 배운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기본 수련은 생각이 많고 기운이 넘치는 청소년이 쉽게 적응하기 어려웠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도 활발한 청소년에게는 힘든 시간이었다.
에반이 전생에 마보 같은 기초 수련을 꾸준히 한 것도 단지 건강을 위한 운동으로 생각을 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지겨워하면서도 에반은 꾸준히 마보, 뒷발에 체중을 싣는 뒷굽이, 앞으로 체중을 싣는 앞굽이 같은 자세를 수련했다.
어느 문파나 중심을 잡고 몸을 만드는 마보와 앞뒤로 체중을 옮기는 자세는 있었다.
이런 중심과 앞뒤로 자세를 잡는 것은 몸을 단련도 하지만 보법과 수법을 익히는 기초였다.
미리 중심 이동하는 자세를 잡아 주어야지 보법이나 수법을 하며 저절로 자세가 나오게 된다.
이런 기본동작을 수년간 몸으로 익히지 않고 고급 수를 배우면 무도가 아니라 춤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에반은 한동안 마보의 자세를 정확히 교정했다. 발과 다리, 허리와 어깨의 미묘한 각도와 위치는 흔히 말하는 비전이었다.
본다고 알 수도 없었고 사진을 찍어 똑같이 따라 한다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키가 다르듯이 정확한 자세는 사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오직 스승이나 완전히 체득한 사람만이 제대로 가르쳐 줄 수 있는 동작이었다.
혹시 다른 문파의 고수가 마보를 본다면 자신의 문파와 다른 점을 파악하고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높은 수준의 음악가와 미술가만이 다른 예술가의 작품과 음악을 파악할 수 있는 것과 비슷했다. 문외한은 사소한 음정이 틀렸는지 박자가 어긋났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에반이 수련하는 것을 더글라스나 마을 사람들이 가끔 훔쳐보고 있어도 이해하거나 배울 수는 없었다.
전설에나 나오는 천재라면 흉내를 내면서 직접 몸에 익히며 이해할 수는 있는 정도였다.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른 문화권의 정수가 깃든 동작이었다.
에반의 마보는 짧은 수련 기간이었지만 제대로 잡혀 있었다.
거쳤던 경험과 경지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서 정확한 자세를 빠르게 현재의 몸으로 익혔다.
짧은 수련 기간으로 완전히 몸에 체득하지는 못했지만 자세는 완벽해졌다.
빠른 진전이었지만 한 번 거쳤던 단계를 다시 하려는 에반은 힘들고 지겹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무의식에 새길 정도로 몸에 익혀야 상승의 경지로 나갈 수 있으니 견딜 수밖에 없었다.
에반은 집중이 깨져 가자 앞굽이 자세로 바꾸며 단전에 집중한 호흡을 이어 갔다.
원래 기초 수련을 하면서 내공심법을 함께 수련해야 했다. 마보를 서며 호흡과 운기를 같이 해야 수련의 효과가 배가 된다.
그러나 현대라는 환경에서 배웠던 에반은 이런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도장에서 짧게 수련하는 상황에서 집중이 깨지면 위험한 내공심법을 익힐 수는 없었다.
짧은 수련 시간과 위험하고 비전이라는 여러 이유로 세상에 나온 전통무도에서는 내공심법을 소수에게만 공개하고 있었다.
도장에서의 수련으로 발경까지 익혔던 강철호는 드문 경우였다. 그래서 사범이 되지 않아도 내공심법을 전수 받을 수 있었다.
원래 내공심법은 간단한 편이었다. 축기와 소주천까지는 많은 경맥을 거치는 것도 아니고 내용도 이미 많이 알려진 편이었다.
눈 위의 눈썹처럼 몇 개의 중요한 비전을 조 박사가 알려 주자 외우기만 했던 창천문의 내공심법을 많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많은 기운 때문에 에반은 내공심법을 운용하지 않고 있었다.
이미 내공은 부작용이 생길 정도로 있었다. 정신과 육체를 조율했지만 쌓인 내공은 그대로였다.
에반이 수련을 시작하자 정확한 자세가 저절로 기운을 빨아들여 내공은 몸이 버틸 수 있는 한계까지 빠르게 차올랐다.
단전에 기운이 넘치면 대맥이나 소주천으로 단계를 나가면 되겠지만 어린 몸이라는 약점이 있었다.
몸이 작으면 기맥도 얇게 마련이었다. 게다가 에반은 어렸을 때 영양 공급도 좋지 못해 몸이 그렇게 튼튼하지도 않았다.
그동안 꾸준한 영양 공급과 수련으로 빠르게 몸이 강화되고 성장하고 있지만 몸이 단기간에 변하지는 않았다.
파이프에 너무 강한 수압을 가하며 터질 수밖에 없었다.
내공 수련은 몸의 한계와 단계를 차근히 밟지 않으면 주화입마라는 기운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부작용을 겪게 마련이었다.
그래도 정령을 수련시키며 기운을 많이 소모해 아직은 부작용이 덜했다.
이제 더 이상 해결 방법도 없으니 쌓이는 기운을 약간씩 소모하며 견딜 수밖에 없었다.
에반이 묵묵히 기본에 매진하자 점차 몸의 기맥과 근맥, 뼈들이 강화되어 있었다.
기초 수련이라는 것은 뼈와 기맥 같은 것들을 천천히 강화해 내공 수련의 기초를 다지는 단계이기도 했다.
곧 몸이 내공과 균형을 이룰 가능성이 보였다.
에반은 다시 한 번 어서 어른이 돼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에반은 정령을 훈련시키며 아직은 약한 몸과 많은 내공의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해 가고 있었다.
에반은 굳은 몸을 풀며 다시 마보 자세를 취했다.
처음 마보를 서면 굽힌 다리와 올린 팔을 지지하는 어깨가 아프기 마련이었다.
마보는 다리와 어깨를 단련하기보다는 힘을 빼는 것을 배우는 것이었다. 굽힌 다리와 올린 어깨가 아픈 것은 쓸데없는 힘이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이런 몸 전체의 미묘한 집중과 이완이 제대로 되어야 마보를 익혔다고 할 수 있었다.
에반은 천천히 단전에 숨을 끌어들이며 어깨의 쓸데없는 힘이 내려오고 이완되는 것을 마음속으로 그렸다.
그리고 숨을 내쉬며 기운이 발을 지나 땅으로 파고드는 것을 마음에 그리며 다리의 힘을 풀었다.
어깨가 풀어지자 자연히 손으로 기운이 뻗고 다리가 이완되자 지기가 올라오며 다리는 땅을 파고 들며 굳건해졌다.
오히려 팔과 다리의 아픔이 있었던 초기에는 아픔에 벗어나기 위해 집중이 되었다.
그러나 점차 몸이 이완되고 기운을 타기 시작하자 단전에 마음이 실리고 저절로 운기가 되며 육체적 고통이 없어졌다.
이미 거쳤던 단계를 다시 하려니 생각이 많은 에반이지만 빠른 속도로 몸에 익혀 갔다.
에반은 조급하고 빠르게 나가려는 마음이 주화입마를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급적 기초를 다지고 느긋하게 하려고 했지만 지겨움으로 일어나는 조급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다행히 늘어나는 기운과 조급함은 정령을 사용하며 기운을 소모하고 즐거움으로 완화하고 있었다.
그래도 빠르게 기운이 차오르며 정신까지 영향을 미치자 조급함이 솟아났다.
넘쳐 나는 내공에 운기를 시도해 봤던 에반이었지만 경맥이 버티지 못하며 기운이 폭주해 머리까지 솟아오르자 포기를 했다.
몸과 기맥이 감당하지 못하면 기운은 상단전으로 치솟아오르기 마련이다.
만일 내공이 더 많았다면 제멋대로 솟아오른 기운에 반신불수나 정신을 놓아 버리는 부작용까지 겪었을 것이다.
에반은 주화입마의 여러 증상이 다시 생기자 점차 위기감을 느꼈다.
과거에 느리게 가고 기초를 단단히 하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들었지만 실감하지 못했다. 현대에서 기운이나 내공은 부족할 뿐이었다.
그러나 기운이 몸의 한계를 계속 압박하자 실감을 하게 되었다.
‘이래서 내공심법을 알려 주지 않았었나?’
에반이 마보만 서도 저절로 운기가 되었다. 자연스런 운기는 제대로 수련한다는 증거이지만 에반은 반갑지가 않았다.
원래 축기했던 내공도 많았고 기초도 너무 빠르게 익혀서 내공은 속도를 높이며 커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기운이 풍부한 세계라서 간단한 호흡법만으로도 내공이 빠르게 쌓였다.
이런 경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이지만 기운이 몸의 한계를 넘어 에반에게는 불행이었다.
수련할수록 에반은 몸에 열이 나고 붉어지고 머리가 뜨거워졌다. 편법으로 새로운 몸을 얻은 대가를 계속 치르는 것이다.
에반은 곧 기운이 몸을 달구는 날에는 정령들을 불러 해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불이 금속을 단련하듯이 이런 열기는 몸을 강화하는 면이 있지만 주화입마의 전조이기도 했다.
이제는 한 발만 잘못 디디면 반신불수나 정신이 나가 버릴 수도 있었다.
“각자 내 몸에서 기운을 조금씩 가져간다.”
에반의 말이 있자 정령들은 자주 기운을 흡수하는 손발의 경맥에서 기운을 빨아들였다.
‘아, 좋아.’
‘헤헤.’
‘감사히 먹겠습니다.’
정령들이 손발의 경맥을 통해 천천히 기운을 빨아들이자 몸에 넘치던 기운이 빠져나가며 에반은 약간의 허탈감을 느꼈다.
그래도 뼈에서부터 쌓이는 기운이 천천히 근맥과 경맥으로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몸이 식어 가자 에반은 정령들을 멈추게 했다.
“이제 그만 기운을 먹고 각자 기운을 소화한다.”
에반의 말이 있자 정령들은 각자 좋아하는 장소로 가서 에반에게 흡수한 기운을 천천히 소화했다.
에반이 음양으로 이름 지은 정령은 태극처럼 서로 붙어 다니는 편이었다. 그리고 오행과는 다르게 여러 경맥이 교차하는 정수리에서 기운을 흡수했다.
머리는 경맥과 예민한 신경도 많아 침을 잘 놓지도 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음양은 능숙하게 정수리인 백회에서 여러 경맥의 기운을 골고루 흡수했다.
아직 음양을 활용할 방법은 모르지만 지금은 넘치는 내공을 빼는 용도로 쓰고 있었다. 덩치도 커서 흡수하는 기운도 많았다.
몸에 넘치는 기운도 문제이지만 머리에 몰리는 기운이 더 걱정스러운 에반은 음양이 머리에서 주로 기운을 흡수하자 더욱 장려하고 있었다.
흡수한 기운을 음양은 태극을 그리며 압축하고 정화하며 흡수했다.
에반이 이름 지어 주고 개념을 주었어도 음양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에반은 음양의 이름을 감히 태극으로 짓지는 못했다. 도학에서 태극은 이론적으로만 그리는 완전함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에반이 음양을 만들며 태극을 심상으로 그려서인지 자주 태극 모양을 그렸다.
그래서인지 다른 정령들은 자아가 어린애 수준으로 애완동물처럼 굴었지만 음양은 말투가 달랐다.
음양은 기운의 크기나 질과 자아가 훨씬 나아 보였다.
에반은 부작용을 겪고 있지만 더욱 수련에 매진했다. 가만있어 봤자 부작용을 줄일 수 없으니 수련으로 해결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가끔 기운이 넘쳐 몸이 달아오를 때가 있지만 불에 철이 단련되듯이 몸이 강화되었다.
이미 마보나 뒷굽이, 앞굽이를 취하면 다리는 굳건하고 팔은 자연스럽고 허리는 기둥과 같은 기세를 풍기기 시작했다.
기본자세에서 저절로 기운이 넘쳐 기세를 풍기기 시작하면 기초가 완성된 것으로 본다.
저절로 기세가 발산되는 것은 자세가 몸에 완전히 익었다는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