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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퍼1권(17화)
5. 새로운 친구(4)


에반이 저녁 식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오자 정령들이 달려들어 칭찬해 달라며 마음을 보냈다.
‘내가 넘어트렸어. 기운 줘.’
‘나는 코를 눌렀어.’
‘나도 배가 고파.’
“뭐야, 왜 그래?”
에반이 질문을 하자 풍과 오행은 토마스가 넘어져 코가 다치는 장면을 에반에게 보여 주었다.
‘이제 혼자말도 제대로 못하겠네.’
“그래, 잘했어. 여기 손가락의 기운을 나누어 먹어라. 그리고 앞으로 내가 이름을 부르며 부탁해야 행동에 나서라.”
에반은 잘못하면 사람을 잡을 수도 있으니 정령들의 행동 교정에 시간과 기운을 쓰며 훈련을 시켰다.
아직 정령들의 자아가 발달하지 않아 에반이 세심하게 관리해야 했다.

에반은 정령을 얻은 후 교육의 필요성을 느꼈다.
교육의 주요 내용은 정령들 스스로 생명을 유지하고 수색과 정찰 임무 수행이었다.
정령도 생명체라고 보는 에반은 스스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속성에 맞는 기운을 찾아내고 흡수할 수 있도록 교육했다.
교육의 영향인지 본능이 있어서인지 기운 덩어리인 정령들은 스스로 기운을 흡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많이 먹어라. 내가 찾지 않으면 각자 좋아하는 기운을 흡수하고 있어야 한다.”
에반은 정령들이 전해 오는 소리를 들으며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에반은 당분간 정령을 공격보다는 수색 같은 것에만 이용하려 했다.
에반은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기운 덩어리인 정령을 대가 없이 마구 부릴 수는 없었다.
아직 에반 자신도 수련 중이니 정령에게 자꾸 기운을 공급할 수 없어서 수색 같은 간단한 일만 부탁하려고 했다.
에반은 수색에 주로 이용할 풍과 오행에게 몬스터나 맹수와 동물의 형상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움직이는 것을 보면 바로 보고하게 했다.
며칠간 수련하며 정령을 연습시키던 에반은 산을 올라 실전 훈련을 하기로 했다.
전에 치쿠를 잡으려고 놓아 두었던 통방이덫도 회수하고 정령을 이용한 정찰과 수색도 시험하려는 것이다.
“풍, 내 주변을 잘 수색해서 몬스터나 맹수가 오면 알려 줘.”
‘알았어. 잘 보고 있을게.’
에반은 정령이 있어 안심하며 눈이 많이 쌓인 산을 올랐다.
에반은 눈에 찍힌 발자국을 보며 어떤 동물이나 몬스터가 뒷산에 있는지 살폈다.
‘저것은 사슴 종류의 발자국이겠지. 토끼도 아직 많은 것 같네.’
에반은 동물의 발자국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정령을 이용하면 작은 동물 정도는 잡을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수련할 시기이고 기운을 허비할 때는 아니지.’
에반이 덫을 놓던 곳을 다니는 중에 갑자기 풍이 경고를 발했다.
‘큰 것, 큰 것.’
에반은 정령에게 맹수나 몬스터의 모습을 심상으로 알려 주면서 자신보다 큰 것이 움직이면 경고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몬스터나 맹수의 종류도 많으니 에반보다 큰 것이면 바로 알리게 한 것이다.
바람의 속성으로 가장 먼 거리를 돌아볼 수 있는 풍이 큰 것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영상을 보여 주었다.
풍이 보여 주는 영상에는 마을 어른과 청년 몇이 활을 들고 에반의 발자국을 따르고 있었다.
“잘했어, 풍. 이거 좀 먹어라.”
에반은 풍에게 칭찬을 하며 손가락에 모은 기운을 먹였다.
‘이거 설마 날 잡아 심문하려는 것은 아니야. 그래도 저렇게 한꺼번에 올라왔다면 본 사람도 많으니 그 정도는 아니겠지.’
에반은 사람들이 뒤를 따르며 자신의 비법이라도 캐려는 것이라고 좋게 생각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따르는 것은 꺼림칙하니 나뭇가지로 쓸어서 발자국을 지우며 움직였다. 그러나 발자국을 쓸어도 자국은 남았다.
에반이 발자국을 지우는 방법을 생각하자 갑자기 오행의 수가 말을 걸어왔다.
‘내가 할 수 있어. 눈은 좋아.’
눈도 물이라고 수가 에반이 고민하는 것을 해결해 준다며 마음을 보내 왔다.
“고마워, 수. 내가 부탁하면 발자국을 지워 줘.”
에반은 자신의 발에 눌린 눈이 다시 평평하게 되는 것을 상상하며 수에게 말을 걸었다.
에반은 크게 원을 그리며 걸어 뒤를 따르는 마을 사람들이 원을 따라 헤매게 만들었다. 그런 후에 눈에 찍힌 발자국을 지우며 벗어났다.
정령 수는 에반의 발에 눌린 눈을 다시 부풀려 주변의 눈과 똑같이 만들었다.
사람들을 따돌린 후 에반은 통방이덫을 둔 곳으로 갔다. 덫은 눈에 쌓여 보이지 않았지만 나무에 표시한 자국을 확인해 파내었다.
통방이 안에는 운이 좋은 건지 너구리 종류의 동물이 잡혀 있었다. 너구리나 오소리처럼 통통해서 영화에서 보았던 사냥꾼이 모자로 쓰던 가죽과 비슷했다.
나무로 만든 통은 너구리의 발톱과 이빨로 심하게 뜯겨져 거의 부서져 있었다.
‘이거 오소리는 뱀까지 잡아먹는 동물이라고 하는데 이놈도 성질이 꽤 험한데.’
에반은 덫을 놓았던 흔적을 지우며 망가진 덫을 분해해 하나하나 버리면서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눈에 찍힌 발자국까지 정령으로 지울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며 정령을 이용할 방법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최소한의 기운으로 다양하게 정령들을 활용하면 편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도 있을 것 같네.’
에반은 마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하는 것이 불안했지만 정령을 활용할 방법이 많다는 것과 모자로 쓸 너구리도 잡아 기분은 좋았다.

마을에 접근하니 코가 삐뚤어진 토마스가 목책 위에서 지키고 있었다.
코의 연골이 부러지면 잡아당겨 맞춰야 하지만 그냥 아물게 두어서인지 토마스의 코는 약간 삐뚤어져 있었다.
나이가 들었지만 근육질의 토마스가 용병 시절의 흉터에 코까지 삐뚤어져 더 험악하게 보였다. 그러나 에반은 사람의 얼굴에 위축될 아이가 아니었다.
에반이 혼자 내려오는 것을 보자 토마스의 얼굴에는 약간 당혹스런 감정이 떠올랐다.
토마스는 원래 사냥에 에반을 데려가며 친해지려 했지만 코를 다치며 사냥은 시작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에반이 산에 오르자 자경대를 뒤따르게 해서 자연스럽게 만나고 동행하며 덫을 놓는 방법을 배우려고 했었다.
에반이 처음부터 비법을 말해 주지는 않겠지만 일단 친해지며 말이라도 나누는 것이 토마스의 계획이었다.
에반이 목책을 나서는 것을 보며 급히 사냥을 하던 사람들에게 에반의 뒤를 따르게 했었다. 좀 늦었지만 눈에 발자국이 남으니 따라잡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토마스는 코가 낫지 않아 목책을 지키며 자경대와 에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에반 혼자 너구리 한 마리를 들고 내려오자 일이 잘못된 줄 알았다.
토마스는 속으로 어린애 하나 따라잡지 못하냐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토마스가 주도한 것이군.’
에반은 잠시 스쳐 지나간 토마스의 표정과 지금 목책에 있는 이유를 생각하며 짐작을 했다.
그래도 에반은 토마스가 목책 위에 있자 먼저 말을 건넸다.
“수고하십니다. 자경대장님.”
“그래. 에반아, 또 사냥이라도 한 거냐?”
토마스는 나이도 많고 용병을 하며 산전수전 다 겪었는지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아닙니다. 답답해서 산을 올랐는데 운 좋게 얼어 죽은 것을 발견한 겁니다.”
“그래, 운이 좋았구나. 그런데 뒷산에 몬스터도 있을 수도 있는데 이제 산에 오를 때는 어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
토마스는 에반의 안전을 염려하듯이 말을 꺼냈다.
“괜찮습니다. 제가 냄새를 잘 맡아 몬스터나 동물들이 나타나면 금방 알아냅니다. 위험한 것이 있으면 조용히 피하면 됩니다. 그동안 계속 혼자 산에 올랐어도 위험한 경우는 없었으니 바쁘신 어르신들에게 신세질 수는 없습니다.”
에반은 그동안은 신경 쓰지 않았으면서 왜 지금에야 말을 하냐고 돌려 말했다.
“마을을 지나간 몬스터도 있으니 어른들과 동행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
토마스는 어린 에반이 돌려 말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몬스터를 강조하며 다시 설득을 했다.
“혼자 다니는 것이 더 안전합니다. 혼자 다녀야 냄새를 먼저 맡고 조용히 피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에반이 직접적으로 혼자 다녀야 한다는 말을 하자 토마스는 믿어야 할지 어린 에반이 변명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 그럼 힘들게 돌아다녔으니 쉬어라.”
토마스는 더 이상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답은 주지 않고 말을 돌렸다.
“춥고 눈도 쌓여 몬스터의 습격은 없을 텐데 자경대장님도 다른 사람들이 산에 오르지 않았다면 그만 들어가십시오.”
에반은 살짝 마지막으로 암시를 던지며 집으로 돌아갔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에반이 뒤를 따랐던 사람들이 돌아왔다.
“눈에 발자국이 있는데 어린애를 따라가지도 못한 거야?”
토마스는 눈에 흔적이 있는데 왜 따라잡지 못했는지 추궁을 했다.
“저희가 분명히 발자국을 따라가는데 어느 순간 출발한 곳으로 오는 겁니다.”
“맞습니다. 한참을 가는데 저희 발자국이 다시 보여 정말 놀랐습니다.”
“나는 우리 발자국을 몬스터 발자국으로 생각해서 엄청 놀랐어.”
사람들은 에반이 원을 그려 걷다가 사라진 곳에서 겪은 일을 말했다.
“에반이 눈치채고 나뭇가지로 발자국을 지웠겠지. 눈에 남겨진 흔적을 잘 살피면 되는 거잖아.”
토마스는 그것도 생각 못했냐며 말을 했다.
“저희도 그렇게 추측해서 다시 걸으며 눈에 남겨진 흔적을 자세히 살폈습니다. 그런데 눈을 치운 흔적이 없는 겁니다.”
“정말 발자국을 지운 흔적이 없었습니다. 저희도 자세히 살피다가 이렇게 늦은 겁니다.”
“대장님, 이렇게 해서 에반에게 비법을 캐낼 수 있겠습니까? 음식과 술이라도 주며 우선 친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은 변명을 하다가 에반의 뒤를 따르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말을 했다.
“활도 없이 조그만 에반이 어떻게 동물을 잡고 맹수를 잡겠어. 덫을 찾으면 우리도 바로 따라 할 수 있어. 에반이 덫을 멀리 놓지는 못하니 뒷산에 있을 거야. 앞으로는 내가 뒤를 따르겠어.”
토마스는 답답한지 앞으로 자신이 먼저 나서겠다고 말을 했다.

에반은 마을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도 있고 산에서 마주칠지도 모를 것들에 대비하기로 했다.
에반은 덫으로 먹고살 방도가 생겨 조용히 수련이나 하면서 지내려 했지만 샤벨 타이거를 잡은 파장은 너무 컸다.
‘이거 기초를 굳건히 하지 못하고 기운을 쓰면 고수가 되지 못하는데 걱정이네.’
위험도 많은 세상이지만 무력이 사회적 지위와 연결되는 세상이었다.
지구에서는 학벌을 챙겨야 했다면 이곳은 무력을 높여야 하는 세상이었다. 무력과 세력이 없다면 지위와 재물을 쌓을 수도 없는 세상이었다.
교육기관이 많은 것도 아니고 평민이 기사의 종자로 들어가거나 노력할 기회조차도 없는 세상이었다.
평민이라면 병사나 용병으로 험한 전장을 거치다가 우연히 검기라도 깨달아야 인생 역전이 되는 형편이었다.
에반은 어린 몸이라는 제약으로 우선 정령을 활용할 방법을 궁리했다.
‘이거 몸도 어린데 기운을 계속 쓰면 뼈가 삭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네.’
에반은 당장 급한 무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정령을 활용하려 하지만 걱정이 많았다.
요즘 잘 먹고 열심히 수련을 하는 에반에게 기운을 좀 쓰는 것은 큰 장애가 아니었다. 그러나 기운을 소모한다는 사실이 계속 신경이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