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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퍼1권(13화)
4. 샤벨 타이거(5)


에반은 미끼로 축사 구석에 몸을 떨고 있는 염소 한 마리를 촌장에게 구입했다. 어차피 습격에 없어질지도 모르는 염소라고 생각해서인지 촌장은 싸게 팔았다.
에반은 염소의 입을 묶어 수레에 올려 두고 미리 준비한 자재를 싣고 알포스 부자와 함께 목책을 나섰다.
“에반아, 알포스 씨와 함께 어디를 나가냐? 그리고 그 염소는 뭐하려고 데리고 나가냐?”
순찰하던 토마스는 수레에 염소를 올려 두고 나가는 에반과 알포스 부자를 보고 물었다.
“장작을 좀 구하려고 합니다. 이 염소는 샤벨 타이거라도 나타나면 먹이로 주고 달아나려고 준비한 겁니다.”
에반은 미리 준비한 말을 날리며 목책을 나섰다.
수레에 벼락틀의 지붕으로 사용할 통나무를 묶어 둔 것도 있지만 도끼와 삽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토마스도 자경대장으로 샤벨 타이거를 어떻게 퇴치할지 고민이 많아 자세히 살피지는 않았다.
에반은 미리 생각해 둔 물가의 비탈진 장소에서 알포스와 더글라스에게 부탁해 땅을 파고 벼락틀을 설치할 준비를 했다.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구덩이도 파고 입구도 바위를 두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하며 지붕과 기둥을 세웠다.
땅이 얼었지만 근육질의 알포스 부자는 빠르게 흙을 파고 기둥과 지붕을 세웠다.
미끼를 물면 기둥이 쓰러지는지 확인도 하며 올려 둔 바위 무게도 생각해서 조정을 했다.
처음 만들어 보는 벼락틀이지만 오랫동안 계획했던 일이라 덫의 핵심인 기둥을 잘 세울 수 있었다. 벼락틀을 세우다 무너져서 다치는 경우도 많았다.
알포스 부자는 근처 물가의 바위까지 옮겨서 지붕의 무게를 늘렸다. 에반은 지붕 사이에 날카로운 꼬챙이를 박고 눈으로 꼬챙이를 숨겼다.
보통 벼락틀이 무너졌는지 멀리서 풍선이나 끈으로 확인을 하지만 마을과 가까워 생략했다.
에반은 미끼인 염소의 다리를 묶고 튼튼한 가죽 끈으로 기둥에 연결하고 입을 묶은 천을 풀었다.
조심스럽게 벼락틀에서 나온 에반은 알포스 부자와 빠르게 마을로 향했다. 바위를 옮기느라 시간이 많이 걸려 벌써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목책의 정문은 지키는 사람도 없고 잠겨 있지 않았다.
이제 눈도 많이 쌓인 겨울이라 마을을 찾을 사람도 없고 샤벨 타이거는 정문을 지킨다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데리가 준비한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더글라스가 오랜만에 에반에게 말을 걸었다.
“덫을 실제로 만들어 보니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알 것 같기는 한데 정말 효과가 있겠냐?”
“이번 덫은 사냥꾼들의 비법입니다. 알포스 아저씨도 대장장이만의 전해 오는 비법 같은 것이 있지 않습니까? 보통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면 안 되지만 제가 설치하기 어려워 도움을 청한 겁니다. 아직 제가 실제로 설치해 본 적이 없지만 맹수 상대로는 효과가 검증된 덫입니다. 비밀스럽게 전해 오는 비법 같은 덫이니 비밀을 지켜 주십시오.”
에반이 대장장이의 비법을 언급하며 비밀 유지를 다시 한 번 부탁했다.
보기에는 아주 쉽지만 이런 쉽고 효과가 많은 것이 비법이었다. 명검까지 만든 알포스는 비법이라는 의미를 알고 있었다.
“쉬운 듯하면서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 비법이겠지. 하여간 우리가 비밀을 누설하는 일은 없을 것이니 안심해라.”
알포스는 안심하라는 말을 했다.
“아버지가 눈 위의 눈썹처럼 가까이 있고 쉬운데 알아볼 수 없는 것이 비법이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에반이 알포스의 비유를 맞추기 위해 아리송한 말을 꺼냈다.
“그렇지, 달구어진 쇠의 색처럼 눈에 보이는데 알지 못하는 것이 비법이지. 더글라스야, 아버지의 가르침을 잘 기억하고 있는 에반처럼 내가 비법이라고 강조한 것들을 잘 새겨 둬라.”
알포스는 잘 나가다가 남과 비교하기로 더글라스의 속을 긁었다. 그래도 비교 대상이 어리고 불쌍하다고 할 수 있는 에반이니 더글라스는 묵묵히 식사만 했다.
에반은 벼락틀을 설치한 후에 돌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지는 않는지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고 샤벨 타이거를 잡으면 가죽같이 값나가는 것은 어떻게 할지 즐거운 상상을 했다.
그러나 에반은 샤벨 타이거가 미끼를 문다고 해도 단번에 잡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샤벨 타이거가 상처만 입을지도 몰라 살피러 가는 것이 걱정도 되었다.
에반이 쓸데없는 즐겁고 걱정스런 상상을 하는 가운데 며칠이 지났다.
‘미끼로 묶어 둔 염소가 추위에 죽었을 수도 있겠네. 샤벨 타이거라는 놈이 호랑이보다 똑똑한가.’
에반은 오랫동안 덫이 발동하지 않자 염소가 아까웠다. 그러나 목숨 걸고 찾으러 갈 수도 없으니 단념을 했다.
우르릉, 쾅, 쾅, 쾅.
에반은 잠결에 갑자기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며칠간 쓸데없는 생각에 잠을 설쳤지만 무너지는 소리를 듣고 바로 잠을 깼다.
다른 사람들은 눈사태나 눈의 무게에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에반은 돌이 굴러가는 소리에 벼락틀이 발동한 것을 알았다.
옆에서 자던 데리도 에반이 일어나는 소리에 잠이 깼는지 뒤척거렸다.
“음냐, 무서워서 깼어. 이리 와. 아직 날이 밝으려면 멀었어.”
데리는 깨어난 에반을 품에 안으며 다시 잠에 들었다.
거실에 만든 온돌 침상에 함께 잠자리를 마련하고 있었다. 사춘기인 데리는 어린 에반을 곁에 두고 알포스 부자와 떨어져 있었다.
에반은 아직 날이 어두워 용감히 확인하러 갈 수도 없어 데리의 품에서 샤벨 타이거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했다.
‘상처 입어 지르는 커다란 울음소리가 없었으니 순식간에 깔려 죽었겠지. 벼락틀 무게에 기둥이 저절로 쓰러졌을 수도 있잖아. 이거 확인해 보러 가기는 정말 겁나는데.’
에반은 온돌에 누워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데리가 아침에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려고 하자 에반도 일어나 자신의 방에서 천천히 몸을 풀었다.
일단 확인은 해야 하고 도망쳐야 할 수도 있으니 컨디션을 최상으로 만들기 위해 기공과 조식을 했다.

에반은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몸에 부작용이라도 있을까 걱정이 되어 미뤄 두었던 내공 수련을 하기로 했다.
에반은 그동안 조식으로 호흡법에 익숙해졌다. 몸의 기초도 있고 호흡법에 익숙하니 심법에 따라 내공을 모으는 단계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에반은 좌식을 취하고 심법을 마음에 새기며 단전을 내관하기 시작했다.
연구소에 잡혀 있던 때와 같이 죽음의 위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곧 마음을 단전에 모을 수 있었다.
에반이 심법이 새겨진 마음을 하단전에 모으자 빠르게 기운을 모았다. 에반의 강한 의지에 주위의 기운은 호흡과 피부를 통해 강하게 몰려왔다.
심법은 무의식에 새기는 프로그램이었다. 무아지경에 들어 자신을 지우면 하단전에 실린 심법이라는 프로그램에 따라 축기나 운기를 하는 것이다.
처음 내공 수련치고는 너무 빠른 진전이었다. 이런 현상은 에반이 영성이 강하고 이미 경지가 높기 때문이었다.
육체의 한계가 있지만 기의 세계는 의지가 곧 법칙이었다. 내공 수련을 하자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 주위의 기운을 장악한 것이다.
무아지경에 든 에반은 너무 빠른 진전을 제어하지 못했다.
피부로 들어오는 맑은 기운으로 에반의 몸은 좀 더 수련에 적합하게 변하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수련을 하면 이런 피부 호흡이 쉽게 이루어지기도 했다. 어렸을 때 수련을 시작해야 상승의 경지에 이르기 쉽다는 것은 피부 호흡 때문이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 기맥도 막히지만 피부 호흡의 감각도 잃기 마련이었다. 피부 호흡의 효율과 몸을 기운으로 씻는 점에서 에반에게 중요한 도약이었다.
그러나 육체의 강화보다는 내공이 너무 빨리 늘고 있었다. 피부 호흡이 시작되자 에반의 단전은 더욱 빠르게 기운을 축적했다.
아침 식사 준비가 끝났는데도 에반이 방에서 나오지 않자 데리는 방문을 두드렸다.
“방에서 자는 거야. 그만 나와서 식사해라.”
갑작스러운 소리에 에반은 무아지경에서 깨어나 관조의 시선도 사라졌다.
‘이거 정말 주화입마를 걱정해야 하는 것 아냐.’
에반은 의식을 회복하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았다.
에반은 너무 빠른 진전에 기쁘기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불균형은 독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불덩어리처럼 뜨거운 단전을 느끼며 에반은 조용히 수련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늘어난 내공에 몸의 활력이 넘쳐 들뜨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기운이 많아지면 담도 커지지만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야, 안 나오면 아침은 안 준다.”
데리가 재차 무서운 소리를 하자 에반은 가볍게 몸을 풀면서 빠르게 문을 열고 나왔다.
“수련하는데 좀 늦게 먹을 수도 있지. 어차피 할 일도 없잖아.”
“나도 빨리 정리하고 쉬어야지.”
“그렇게 자꾸 밥만 먹고 온돌에 누워 지내면 살찐다.”
“조그만 게 어디서 대들어. 너 당분간 간식 없어.”
“데리야, 뜨거운 온돌에 땀을 내면 피부에 좋다는 소리를 들었어. 괜히 밖에 나가서 햇빛 보면 뽀얀 피부만 망가지니 데리처럼 예쁜 여자는 집에만 있어야 돼.”
쿠키 같은 간식이 없다는 말에 에반은 수련을 방해해 약간 심통이 나서 했던 말을 수습했다.
“어서 먹고 물이나 떠 와. 오랜만에 물이라도 끊여서 좀 씻어야겠다.”
데리는 에반이 궁지에 몰린 듯 보이자 물을 길어 오라고 해서 부려 먹었다.
곧 덫을 살펴야 하지만 데리에게 잘 보여야 하는 에반은 조용히 물을 길어 왔다.
에반은 방에서 몸을 풀고 기본 수련을 하며 단전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너무 늘어난 내공에 마음이 들뜨네. 이러다 내공이 머리로 치솟아 말로만 듣던 주화입마 당하는 거 아니야. 뭐, 잘못되면 이참에 귀족 몸으로 갈아타는 거지. 그동안 너무 구질구질했어.’
에반은 단전에 뜨거운 기운이 있자 배짱과 여유를 찾게 되었다. 활력이 넘치자 덫을 살펴볼 용기도 쉽게 낼 수 있었다.
“아저씨, 새벽에 덫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제가 먼저 살펴보고 오겠으니 기다려 주십시오.”
“위험하지 않겠냐? 좀 더 기다려 보며 샤벨 타이거가 건재한지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사냥하다 상처를 입힌 경우와는 달리 덫을 벗어난 맹수는 놀라서 달아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위험할 수 있으니 멀리서 보고 오겠습니다.”
에반은 알포스를 안심시키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에반도 덫을 벗어난 맹수의 습성을 알지는 못했다. 잡지 못해도 놀라서 달아난다는 것은 희망 사항에 가까웠다.
그래도 며칠 만에 덫이 작동된 것으로 봤을 때 샤벨 타이거가 미끼를 며칠간 지켜본 후에 공격한 것으로 생각했다.
짐승의 조심성을 보여 주는 기간이기는 했지만 또 짐승의 한계를 보여 주는 일이었다.
인간 냄새가 나고 의심스러운 덫을 지켜보는 조심성은 있지만 역시 그런 덫에 걸리는 짐승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짐승들도 바보가 아니니 한 번 걸린 덫에 다시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문제는 상처를 입거나 놀랐다면 도망갈지 역습을 할지 여부였다.
에반은 든든해진 배짱으로 놀라서 달아날 것이라는 생각에 점수를 주었다.
그래도 만약을 위해 맹수가 싫어하는 쇳가루를 몸에 바르고 창을 하나 들고 목책을 나섰다.
에반이 조심스럽게 접근하자 덫을 설치한 비탈진 곳에 바위들이 굴러 내려온 것이 보였다.
‘바위가 굴렀으니 발이라도 다쳤겠지.’
에반은 주위에 핏자국이라도 있는지 확인하며 벼락틀을 설치한 곳에 접근했다.
에반이 긴장해서 침을 삼키며 천천히 다가가자 지붕으로 세운 통나무 아래 검은 형체가 보였다.
샤벨 타이거의 몸체는 벼락틀에 깔려 있고 머리는 입구를 좁힌 바위 위에 올려져 있었다.
머리는 입구를 좁힌 바위에 고정되고 몸은 통나무에 깔리면서 운 좋게 한 번에 목이 부러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