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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퍼1권(10화)
4. 샤벨 타이거(2)


에반은 기마자세로 몸을 만들고 동공으로 몸을 풀고 유연성을 위한 수련을 했다.
몸을 단련하며 단전 호흡도 시작했다.
내공을 모으면 장점도 있지만 몸의 기초가 있지 않으면 주화입마의 위험도 있었다. 몸이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에반은 기초 수련과 호흡법의 균형을 맞추어 갔다. 몸을 수련한 만큼 단전에 기운을 모으는 것이다.
에반은 육체 수련 후에 가벼운 조식을 하며 하단전을 튼튼히 하며 내공을 위한 기초를 잡아 갔다.
에반은 무의식적으로 육체와 정신이 아직 완전히 합일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에반이 무아지경에 빠지기라도 하면 완전한 합일이 되어 있지 않은 영혼은 육체에서 떨어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에반은 아직 깊은 명상이나 본격적인 내공 수련을 하지 않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한계를 그어 둔 것이다.
그리고 에반은 당장 도움이 되는 무기를 수련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
그러나 기초가 쌓인 만큼 경지가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충동을 억눌렀다.
공부도 시기가 있는 것처럼 어렸을 때 하는 기본 수련은 고수가 되기 위한 조건이었다.
에반은 스스로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육체의 자질도 좋지 않았다.
오로지 튼튼한 기초만이 에반이 경험하지 못한 검기 같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에반은 폭탄을 안고 수련하고 있었다. 정기신이 조율되고 있지만 정신이 육체보다 크다는 문제는 남아 있었다.
육체가 빠르게 강해지지 않으면 너무 강한 정신은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데리는 뜨끈한 구들장에 완전히 사로잡혀 아랫목에 배를 깔고 누워 바느질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데리는 마을에 또래 여자가 없고 아줌마들과 어울리기도 어색해 주로 집에 있었다.
마을의 청년들은 새로 나타난 처녀인 데리에게 눈독을 들이지만 아직은 말을 붙이는 용감한 청년은 없었다.
“넌 방에서 매일 뭐를 하고 있니?”
“수련한다고 전에 말했잖아.”
“조그만 게 무슨 수련이야. 여기서 나와 함께 바느질이나 하며 얘기라도 하자.”
에반은 세상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리고 너무 큰 꿈도 있었다.
지금은 알포스 가족과 함께 지내며 편히 지내지만 언제까지 평온한 생활이 이어진다는 희망을 품고 있지는 않았다.
에반은 꿈도 많고 세상을 밝게 보는 데리에게 냉정한 현실을 말해 주기는 어색해 그냥 둘러대었다.
“난 사냥을 하며 무술을 단련해 기사도 되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관리도 할 거야.”
에반이 아이 같은 꿈을 말하자 데리도 어린애가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괴롭히기를 멈췄다.
“그리고 이 책은 다 봤는데 다른 책은 없어?”
알포스가 가져온 짐에 책이 있어 에반은 이 세계의 책을 접할 수 있었다.
알포스가 자녀 교육에 신경을 썼는지 기초적인 글쓰기 방법을 소개한 책이었다.
에반은 책을 보며 알파벳 같은 기초 글자를 다시 확인하고 문법이나 용법을 다시 익혔다.
책을 접하기 힘든 세상이라 얼마 되지 않는 내용을 완전히 외어 소화를 했다.
“벌써 다 봤어? 방에서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책만 봤어? 그럼 이건 이야기책인데 한번 읽어 봐라.”
데리가 몇 번을 반복해 보았는지 닳고 닳은 책을 에반에게 건네주었다.
“왕국의 정치체제나 사회, 역사, 숫자, 마법에 대한 책은 없어?”
“정치 같은 것은 귀족이나 배우는 거잖아. 그런 책은 없고 이야기책 하나와 신화를 소개한 책밖에 없어. 그런데 넌 그런 것은 또 어떻게 아니? 조그만 게 어려운 말도 잘하네. 아이 귀여워. 이리 와 봐.”
데리는 어려운 말을 척척 잘하는 에반이 귀엽게 느껴지는지 머리를 쓰다듬었다.
“누워만 있어서인지 머리가 엉켜 있는데 내가 빗질해 줄게. 데리는 머릿결이 참 좋아.”
에반은 데리에게 느끼한 말을 하며 나머지 책을 모두 품에 넣었다.

에반은 데리와의 접촉이 좋지만 새로운 책에 신경을 빼앗겼다. 신화를 적은 책이라면 지금 사회를 이루는 근본 뼈대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에서 소개할 정도의 신화이면 세계의 이면이나 사람들의 깊은 무의식을 지배하는 내용일 가능성이 많았다.
단군신화나 여러 민족의 신화는 그 사회의 기본 품성을 규정짓는 경우가 많았다.
홍익인간이라는 이념이 한민족을 지배하지는 않지만 한민족이 정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무의식을 지배하는 신화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었다.
에반은 방으로 돌아와 신화를 소개한 책을 읽었다.
책의 서두는 창조신이 혼돈에서 세상을 꺼내어 빛과 어둠을 나누고 마나를 가득 차게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주신인 그라니아를 만들어 이 세계를 다스리게 하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떠났다고 쓰여 있었다.
주신인 그라니아는 정령과 영혼의 씨앗을 만들어 세상의 기초를 놓았다.
정령이 세상에 생명이 퍼질 환경을 만들자 영혼의 씨앗 중에 처음으로 생명이 생겨났다.
최초의 생명체들은 커다란 힘이 있었고 곧 주신인 그라니아를 보좌해 각자의 임무를 수행했다.
최초의 생명체이자 신적인 여러 존재가 나오는데 그리스 신화처럼 인간과 같이 감정이 있었다.
최초의 생명체들이 각자 성향에 따라 만든 것이 여러 종족과 동물과 식물이고 서로 힘을 모아 창조한 것이 인간이었다.
그리고 빛과 어둠에 물든 영혼들이 천족과 신수, 마족과 몬스터라고 쓰여 있었다.
‘빛과 어둠은 주로 신으로 보는데 여기서는 성향이고 영혼이 물든다고 보는 것이 특이하네. 창조신과 그라니아라는 주신이 있어서인가. 이러면 그리스 신화와 비슷하다고 봐야 하겠지.’
에반은 빛과 어둠이라는 존재가 없자 이 세계의 신화가 그리스 신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창세기에 빛과 어둠에 물든 존재들이 싸워서 주신인 그라니아가 직접 천계와 마계를 만들어 나누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라니아를 주신으로 보고 있지만 정령과 같이 세상의 중심을 잡는 존재도 있고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최초의 생명체도 있었다.
에반은 창조자와 주신이 있고 신이라는 존재를 최초의 생명체로 밝히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영혼의 윤회전승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러나 영혼이 빛과 어둠에 물들어 천족과 마족, 신수와 몬스터로 변해 가는 것을 보면 윤회의 의미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그리스 신화와 동양의 윤회 시스템을 합친 신화 같았다.
혼돈에서 빛과 어둠을 나누어 마나가 가득 차게 했다는 표현에서는 마법의 근원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죽음을 다루는 네크로멘서도 있을 것으로 보였다. 신화에서 저승에서 죽은 자를 데려오는 이야기처럼 죽음도 삶의 연장으로 보는 유연한 체계였다.
책의 마무리에는 귀족은 빛의 축복을 받아 빛나는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귀족은 빛의 축복을 받아 태어났다고 설명한 것을 보니 귀족들이 실력보다는 혈통의 권위를 내세우고 있었다.
귀족들이 뛰어나서 지도하는 자리라고 설명한 것도 아니고 단지 잘 태어났다 정도의 의미였다.
‘빛의 축복을 받은 귀족이니 정당성을 세우기 위해 마족이나 어둠의 마법사에 대해서는 탄압을 하겠지. 괜히 무서운 아이로 몰리지 않게 조심해야겠네.’
책에 신이나 신관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에반은 대충 그리스 문화권에서의 신에 대한 숭배 정도로 파악했다.
절대신과 흑백을 확실히 나누는 종교가 아니라면 종교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신이 많으면 사람들은 적당한 신을 골라 믿으면 된다. 강에 있으면 물의 신을 믿고 농부는 대지의 신을 믿고 상인은 행운과 여행의 신을 믿기 마련이다.
경쟁이 있으면 독점의 폐단은 적은 편이다.

추워지자 데리가 겨울옷을 꺼내 입었다. 그러면서 목도리를 두르며 자랑을 해 댔다.
“이게 어떤 목도리인지 알아? 아빠가 내 생일 선물로 사 준 것인데 굉장히 비싸고 구하기 어려워 귀족만 하는 모피야. 산맥 깊이 있는 요새에서 잡은 건데 상단이 통과하는 에델 마을에 있어서 구할 수 있던 거야.”
에반은 산맥 깊이 요새가 있고 족제비나 담비로 보이는 가죽이 비싸다는 말에 흥미가 생겼다.
“에델 마을 너머에 요새가 있어? 거기는 농사짓기도 힘들고 주위에 몬스터도 많을 텐데 왜 요새가 있어? 그리고 그건 무슨 동물의 가죽인데 귀족이나 가질 정도로 비싸?”
“모리스 요새인데 몬스터 헌터와 트래져 헌터, 용병들이 모이는 곳이야. 산맥에 가까운 이 근처의 개척 마을이 무사한 이유가 모리스 요새가 있기 때문이래. 그리고 이건 치쿠 가죽인데 잡기 힘들고 모피가 부드럽고 따듯해서 최고의 가죽이야. 너도 사냥꾼이니 한번 잡아 봐.”
에반도 마을 사람들이 몬스터 부산물을 챙길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몬스터는 값나가는 상품이었다.
그리고 치쿠라는 동물 가죽이 비싸다는 것을 알았다. 담비나 족제비는 지구에서도 모피로서 비싸게 거래되었다.
‘몬스터를 막으며 부산물로 요새를 유지할 정도라면 몬스터 헌터도 꽤 장래성 있는 직업이겠지. 실력을 키우면 모리스에서 명성을 얻어서 부하들을 모아야겠어. 지금은 일단 덫으로 모피나 구해서 팔아야겠지.’
에반은 데리의 설명에 현실적으로 돈을 모으기 위해 모피가 귀한 동물을 잡기로 했다.
고기를 얻기 위한 덫이 아니라 비싸게 팔리는 동물을 노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에반은 족제비나 수달 같은 동물의 생태에 대한 다큐와 상식적인 것을 떠올리며 어떻게 덫으로 잡을지 고민했다.
에반은 고민 끝에 쇠로 만드는 다리잡이 덫은 제작이 어려우니 미끼를 물면 문이 닫히는 통방이를 만들기로 했다.
에반은 통방이 종류인 쥐덫을 떠올리며 치쿠를 잡을 덫을 설계했다. 작은 나무를 묶어 통을 만들고 미끼를 물면 문이 닫히도록 만들었다.

에반은 돈이 된다는 소리에 몬스터의 위협이나 겨울 날씨를 무릅쓰고 며칠 동안 만든 통방이덫을 가지고 산으로 올랐다.
족제비류는 설치류를 먹이로 삼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 설치류의 사지를 묶어 미끼에 달아 두었다.
뒷산에는 곳곳에 첫눈이 녹지 않고 있었다. 에반은 몬스터나 맹수의 발자국 살피며 미리 생각해 둔 곳에 덫을 설치했다.
발자국이나 나무에 맹수나 몬스터의 흔적이라도 있을지 살펴보며 내려오던 에반은 큰 발자국을 발견했다.
인간형 발자국이 아니라 대형 고양이류인 호랑이 같은 발자국이었다.
맹수 발자국을 보자 에반은 뒷골이 서늘했다.
원래 이곳도 영역이었는지 몬스터가 설쳐서 밀려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마을 근처에서 맹수가 다니는 경우는 없었다.
맹수는 인간을 피하기 마련이었다. 맹수가 인간 마을 근처를 지날 이유는 없었다.
에반은 고양이과 맹수가 사람을 노리고 공격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이 세상에서는 어떨지 몰라 서둘러 내려왔다.
에반은 맹수의 정확한 정체를 알기 위해서 용병이었던 토마스에게 갔다.
토마스는 도끼로 장작을 마련하고 있었다. 용병을 했던 사람이어서인지 나이가 들어도 농부와는 체구와 근육이 달랐다.
은퇴한 용병이 보통 그렇듯이 자유로웠던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의 자신에 대한 혐오 때문인지 술만 먹으면 마을을 뒤집는 주사를 부렸다.
문제가 많은 자경대장이지만 마을의 2인자였다. 어린 에반과 마주칠 일은 없지만 평범한 마을 어른처럼 무시할 수는 없었다.
“토마스 아저씨, 안녕하십니까?”
“그래 에반이구나, 무슨 일이냐?”
“뒷산에 올라갔었는데 제 주먹보다 큰 고양이 발자국 모양을 보았습니다. 고양이 같은 발자국을 가진 맹수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울음을 듣지 못했는데 뒷산에 맹수가 있었나? 주먹만 한 고양이 발자국에 포효를 하지 않는 맹수는 샤벨 타이거가 있다. 타이거는 울음으로 영역을 사람들에게 알리지만 샤벨 타이거는 조용히 습격하는 습성이 있어 울음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들었다.”
위험한 맹수인지 토마스는 샤벨 타이거의 습성을 자세히 말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