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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퍼1권(9화)
3. 몬스터의 공격(4)


에반은 겨울 동안 데리가 있게 되자 식사 시간마다 이야기를 해 주기로 했다.
“그럼 데리는 글도 아는 거야?”
“응, 어머니가 어렸을 때 가르쳐 주어서 조금은 알고 있어.”
에반의 부모들도 에반에게 기본적인 글자와 글을 가르쳐 주었다. 정신이 성숙한 에반은 글자를 알고 있어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럼 책은 없어? 나도 글은 아는데 책은 아직 구경을 못했어.”
“책이 몇 권 있었는데 급하게 피하느라 챙기지 못했어. 너는 그럼 나에게 해 주는 이야기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어머니가 어렸을 때 해 주는 이야기를 기억해 나름대로 꾸며서 해 주는 거야. 내가 똑똑해서 들었던 이야기를 잘 기억하고 있어.”
“잘난 체하는 것은 얄밉지만 네가 똑똑한 것은 나도 인정해. 그럼 알리바바 이야기를 더 해 줘.”
‘아우, 내가 조금만 더 컸어도 작업을 거는 건데 아쉽네. 그래도 내가 크면 데리를 첫 번째 애인으로 만들어야지. 법도 없는 세상인데 능력을 키워서 다다익선을 실현시키겠다.’
에반은 새침한 데리의 모습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남자다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에반은 여성 취향의 동화 이야기가 떨어지자 여기서 볼 수 없는 사막이나 바다의 모습을 알려 주며 이야기를 해 주었다.
끊임없이 에반이 해 주는 신기한 이야기에 데리는 에반과의 식사 시간을 기다리며 점점 가까워졌다.
에반은 잠시 정신생명체로 지내며 인간적인 감정이 많이 없어졌었다. 육체를 얻었지만 정신과의 부조화가 컸다.
그동안 생존을 위해 움직이고 마을도 삭막해서 더욱 감정이 메말랐다. 감정이 메마른 에반은 육체와 정신의 부조화가 점차 커졌다.
그러나 감성 풍부한 데리와 한 집에 지내자 점차 신체에 맞게 어린애다워지고 감정에 눈을 뜨게 되었다.
감정은 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인간다워지는 감정이 생기자 기가 신체와 정신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에반은 데리를 보면 웃음을 머금고 심장이 빨리 뛰며 기운이 밝아졌다.
자연스러운 감정이 생기자 정신과 영혼과 육체가 하나가 되어 갔다.

사람들이 떠나고 겨울이 되자 에반은 가끔 데리의 말상대를 해 주며 본격적으로 몸을 단련했다.
그동안 에반은 신체 능력을 높이는 기공만을 하며 유연성과 기본 근력만을 단련했다. 기초 체력이 부족해서 수련을 미룬 것이다.
아직 근골이 자리 잡힐 나이는 아니라 무리하지 않으며 기초를 다졌다.
에반은 기초 체력을 갖추고 여건이 되자 기마자세로 수련을 시작했다.
기마자세인 마보는 수련의 기본이었다. 대부분의 문파에서 가장 먼저 마보를 수련했다.
기마자세는 다리와 허리, 팔을 단련하며 기본자세를 익히는 것이다. 단련보다는 기본을 몸에 익히는 첫 단계였다.
주먹을 날려도 힘은 다리와 허리에서 나온다. 그러나 주먹을 날리는 중에 다리와 허리의 자세를 떠올리지는 않는다.
다리와 허리의 자세는 마보 같은 기본을 익히며 저절로 익숙해지는 것이다. 움직이기 전에 기본자세를 완전히 익혀야 했다.
무의식에 각인될 정도로 꾸준히 익힌 기본 수련이 없다면 진도를 나갈 수 없었다. 서지도 못하는데 걸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수련의 시작은 움직임 없이 마보나 앞굽이와 뒷굽이 같은 기본자세를 오래 서는 것이다.
보통 어릴 때부터 청소년기까지 기본 수련을 해야 청년이 되어서 고수가 될 수 있었다.
가끔 기본 수련을 단기간으로 줄일 수 있는 천재들이 있었다. 집중력과 자질이 좋아 무의식의 영역인 몸의 자세까지 쉽게 익히는 천재들이었다.
무도나 도학은 무의식의 영역을 안전하게 진입하며 하는 수련이었다.
몸의 자세와 반응까지 조절하며 무도를 수련하는 것이다. 무기가 날아와도 본능대로 하지 않고 수련한 대로 반응하도록 하는 것이 반복 수련이었다.
눈도 깜박이지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으며 사선으로 힘을 흘리며 반격하도록 하는 것이 수련이었다.
운기도 무의식의 영역이었다. 도학에서는 집착하고 집중하는 것의 위험을 많이 강조한다.
기운아 모여라 하고 소리치고 기운아 저 혈 자리로 가라고 집중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의식의 큰 힘으로 기운을 움직이는 것이다.
에반은 새로운 몸으로 수련의 시작인 기마자세를 수련했다.
그러나 에반의 정신은 이미 높은 수준에 올라서 있었다.
과거의 수련 경험과 경지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정신체의 경험까지 있으니 영성도 높고 기를 다루는 것이 익숙했다.
몸은 기본 수련을 하지만 정신은 어린 몸이 부담될 정도의 부하를 가했다. 무의식은 준비되지 않은 몸에 상승의 이치를 구현하려 했다.
아직 단련되지 않은 에반의 혈맥과 기맥, 골격은 정신의 부담스런 무게에 눌리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교역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그런데 알포스와 더글라스도 마차에 많은 물건을 싣고 돌아왔다.
“에델 마을이 너무 파괴되고 사람도 많이 죽어 재건과 방어를 못할 것 같아서 돌아왔다. 우리야 대장장이니 농사를 하지 않아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년이 걱정이야.”
마을을 떠난 알포스가 짐을 가지고 돌아온 이유를 에반에게 설명했다.
“마을 재건에 대장장이기 필요할 텐데 떠나올 수 있었습니까?”
“사람들에게 후방으로 옮겨 일단 일 년만이라도 마을 재건할 준비를 하자고 말을 꺼냈는데 대부분이 반대를 했어. 내가 보기에는 겨울 동안 소수의 마을 사람들이 마을을 지켜 봤자 봄에 몬스터가 산에서 내려오면 몰살할 것 같아. 그런데 사람들은 위험하지만 마을을 떠나려 하지 않아. 어려운 처지는 이해하지만 나까지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잖아.”
“영주의 도움이나 용병을 고용하고 유민이라도 받아들여 일단 마을을 지켜도 되지 않습니까?”
“영주야, 이런 개척 마을에 신경 쓰지도 않아. 오히려 방치하고 세금이라도 걷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리고 용병을 고용할 돈이 마을에 없고 이제 겨울이니 유민을 받아들일 시기도 아니야. 나는 그냥 마을 지분을 완전히 포기하고 오는 거야. 그러니 에반아, 당분간 신세 좀 지도록 하자.”
일반 농민 가족이 신세지겠다고 했으면 에반은 냉정히 거절했을 것이다. 농민 가족이라면 어린 에반을 압박해 차츰 집과 농지를 빼앗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장장이인 알포스 가족이라 허락했다. 데리와 지내는 것도 좋지만 에반에게 해가 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대장장이라서 개척 마을에서는 나름대로 전문적인 직업과 재산도 있는 알포스 가족이었다.
순간적인 계산을 끝낸 에반은 찬성의 말을 꺼냈다.
“저야 오랫동안 같이 지내도 좋습니다. 그럼 일단 온돌도 좀 넓혀야겠습니다.”
보통 겨울에는 난방이 잘 되지 않아 집에 있는 모든 사람이 벽난로 앞에서 잠을 자는 편이었다.
벽난로를 제대로 만들지 못해 집 안에 연기가 자욱하게 차는 일도 많았다. 벽난로는 열효율도 나쁘며 거주성도 좋지 않은 편이었다.
알포스 가족은 아궁이에서 식사 준비를 하며 뜨겁게 달아오르는 온돌을 경험했다. 추운 날에 뜨거운 온돌에 몸을 덥히는 경험은 귀족도 하지 못하는 사치였다.
알포스와 더글라스는 에반이 설계한 대로 아궁이 자리를 옮기고 온돌을 넓혔다.
“여기 구덩이와 높은 고개가 있어야 연기가 역류를 하지 않으면서 열기를 완전히 전달하고 빠지게 됩니다.”
에반이 온돌의 높낮이와 개자리인 구덩이를 설명했지만 평생 불을 만진 알포스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알포스는 에반의 연기 역류가 안 되고 더 따듯하다는 말에 지시하는 대로 거실을 개조했다.
집을 손보면서 대장간으로 사용하던 창고도 매입해 완전한 대장간으로 개조했다.
에반은 대장간에서 화로에 바람을 넣는 풍로를 개선한 설계를 알포스에게 보여 주었다. 회전식 풍로로 만들어 쉽게 화로에 바람을 넣는 설계였다.
회전식 풍로를 사람이 돌려도 되고 바람이나 수력을 이용하는 설계도도 보여 주었다.
알포스는 에반의 설계도를 보고 풍차나 물레바퀴가 너무 복잡하고 비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더 많은 공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고 보았는지 회전식 풍로를 만들어 대장간에 사용하기로 했다.
에반은 또 특허라는 제도를 간절히 생각했지만 알포스에게 빚을 지운 것으로 생각했다.
“에반아, 네가 많이 똑똑한 것 같은데 대장간 일을 배워 보지 않겠냐?”
알포스는 에반이 똑똑하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다. 대장간 시설을 개선하는 여러 제안까지 듣자 실감을 하며 에반에게 좋은 제안을 했다.
지금 시대에 철을 다루는 도제로 들어가는 것도 특권이었다. 생판 남인 어린 에반에게 일을 시키며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은 많은 호의를 보여 주는 제안이었다.
“감사하지만 저는 다른 길이 있습니다. 저는 학자나 관리, 마법사가 되고 싶습니다.”
“네가 똑똑하고 숫자 계산도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관리를 꿈꾸는 것도 좋겠지. 마법사는 어렸을 때부터 스승을 모셔야 된다는데 좀 어려울 것 같으니 관리를 목표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열심히 공부해서 수도와 자유도시에 있다는 학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에반은 알포스에게 적당히 대꾸를 해 주었다.
신분과 학자금, 인맥을 봤을 때 고아인 에반이 학교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에반도 당연히 알지만 일단 적당한 장래 희망을 포장한 것이다.
에반에게는 창천문과 지구 지식이라는 무기가 있어 수련을 하며 무사히 성인이 되는 것이 일차 목표였다.
적당한 무력을 가지고 성인이 되면 무엇을 하든지 이 세계에서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에반이 비록 어설프게 제철 기술이나 단조 기술을 알고 있지만 알포스와 함께 연구한다면 더 좋은 무기를 만들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에반은 좋은 무기를 만든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영주나 힘 있는 자들에게 잡혀가 평생 무기나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풍로 설계를 보여 준 후에 더 이상 대장간 일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냥 한평생 안전하고 조용히 산다면 영주의 그늘에서 무기나 만들며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에반은 기적적으로 다시 생명을 얻었으니 이번 삶에서 무언가는 이뤄 볼 생각을 했다.
‘이번 생에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맘대로 살아 봐야지. 그래 세상을 내게 맞춰야지, 내가 세상에 맞출 필요가 있는 세상이 아니잖아. 아, 어서 크고 싶다.’



4. 샤벨 타이거(1)


알포스는 창고를 완전히 대장간으로 개조를 하자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대장간은 농사와는 달리 언제든지 일을 할 수 있고 현금을 만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보통 기술자는 권력자들이 모아 두고 대대로 부리는 경우가 많았다. 지구에서도 장인은 관리들이 특별히 관리하며 부려 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몬스터가 있고 개척 마을이 있는 이 세상에서는 쇠를 다루는 장인들의 이동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수준 높은 무기를 만든다는 소문이 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개척 마을이나 도시에서 자유로운 대장장이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알포스는 우선 몬스터에게 거둬 두었던 쇠를 농기구와 무기로 만들었다. 마을을 옮기며 사용한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아들인 더글라스와 열심히 일을 했다.
에반은 아직 눈이 쌓이지 않은 산에서 덫을 놓을 수는 있지만 몸조심을 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마을을 지나간 소수의 몬스터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에반은 절벽으로 막힌 상류에 무리에서 떨어진 몇 마리의 고블린이나 오크가 있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했다.
낙오병이야 늘 발생하는 것이니 인간형 몬스터인 고블린이나 오크라도 뒤처져 물가에 자리 잡았을 수도 있었다.
에반은 산에 오르지도 않으니 냉기가 드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서는 미래를 준비했다.
더 나이가 들면 유연성은 평생 노력해도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없다는 점도 에반이 수련을 서두르는 이유였다.
근골이 다 자라면 골격이 굳으며 유연성은 줄어들게 된다.
유연하면서도 탄력 있는 몸을 만들려면 어렸을 때부터 스트레칭 같은 수련을 꾸준히 해 주어야 했다.
기맥의 순수함과 함께 유연성은 어렸을 때부터 수련을 해야 얻을 수 있는 조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