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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퍼1권(8화)
3. 몬스터의 공격(3)
에반은 회관에서 알포스라는 아저씨와 아들인 17살 더글라스와 딸인 14살의 데리를 소개받았다. 당분간 같이 지내게 된 것이다.
에반은 알포스의 부인이 원래 없는 것인지 이번에 화를 입은 것인지 궁금했지만 눈치 없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알포스와 더글라스는 대장간 일 때문인지 근육질이었다. 데리는 근육질의 부자 곁에 있어서인지 더 가냘파 보였다.
에반은 근육질의 알포스 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금발의 데리만 빛난다고 생각했다.
알포스는 대장장이로 개척 마을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콜린 마을은 개척 마을 중에서도 오지에 있고 마을도 작아 대장간이 없었다. 잠시 피난 온 것이지만 대장장이가 오자 모두 좋아했다.
마을 사람들은 대장장이라고 배려해서 알포스 가족을 에반의 집에 배당했다. 에반 혼자였으니 알포스 가족이 지내기 좋다는 생각이었다.
알포스 가족은 에반이 올해 전염병으로 부모를 모두 잃었다는 말에 잠깐 동정심을 보였다.
그러나 촌장에게 에반 홀로 사냥을 하며 잘 지낸다는 말을 들었는지 별다른 위로의 말은 하지 않았다.
에반의 집에 들어온 세 명은 거실의 벽난로에 연결된 온돌과 아궁이를 보고 뭔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겨울을 따듯하게 보내려고 제가 혼자 궁리해서 만든 침상입니다. 여기서 불을 때면 돌로 덮은 침상 전체가 뜨거워지고 오랫동안 온기가 유지됩니다.”
불을 다루는 알포스는 에반이 설명을 하자 금방 원리가 파악되는지 놀라워했다.
“이걸 네가 혼자 생각해서 만든 거냐? 알버트 촌장에게 영리하고 사냥도 잘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런 것을 혼자 생각해 만들 줄은 몰랐다.”
“따듯하게도 지내고 장작도 적게 쓸 방법을 생각해 봤습니다. 그럼 여기 방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에반의 집은 방 두 개와 거실 겸 부엌으로 되어 있었다.
에반은 알포스 가족에게 우선 방 하나를 비워 주었다. 이미 부모님의 방을 정리해 세간을 팔아서 알포스 가족에게 금방 방을 비워 줄 수 있었다.
여자인 데리가 있으니 알포스나 더글라스는 거실에서 지낼 것도 같았다. 피난을 와서 잠시 신세를 지내는 것이니 에반에게 더 요구할 형편은 아니었다.
알포스와 더글라스는 피난 오며 가져온 식량과 대장장이 도구를 거실에 놓고 밖으로 나갔다.
딸인 데리는 피난 오며 가져온 세간과 식량들을 정리하고 청소도 하며 당분간 지낼 준비를 했다.
에반도 거실에 놓아 둔 식량이나 세간을 자신의 방에 몰아넣어 정리를 하고 문을 닫아 두었다.
데리는 한창 피어나는 나이라서 그런지 에반이 보기에도 아름다웠다. 에반이 이 세상에서 깨어나 처음 보는 아름다움이었다.
문화권마다 여자의 미를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지만 데리의 나이 때의 여자는 모두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외형보다는 한창 피어나는 활기와 생명력만으로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래도 달걀형의 얼굴과 눈부신 금발은 에반의 시선을 강하게 끌었다.
에반은 데리와 같은 집에 있기가 어색해 알포스가 무엇을 하는지 보러 나갔다.
대장장이인 알포스는 촌장과 이미 협의를 했는지 마을 공동 창고 한구석에 방치된 화로를 고치고 있었다.
개척 마을에서는 무기나 농기구를 만들거나 고칠 대장간이 있었다. 콜린 마을도 토벌군이 사용하던 화로가 마을 창고에서 방치되고 있었다.
알포스와 더글라스는 방치된 화로를 수선하며 불을 피울 준비를 했다. 화로를 보수하며 바람을 불어넣는 가죽으로 된 풍로를 설치했다.
한나절 만에 풍로와 화로, 굴뚝이 수선되자 알포스는 불을 피워 철을 달굴 준비를 했다.
알포스는 곧 몬스터와 전투를 해야 하니 우선 낡은 창날과 검을 수선했다.
마을 사람들도 무기를 더 마련하기 위해 장작과 망가진 철제품을 내놓았다.
더글라스는 주조를 해서 화살촉을 만들려는지 화살촉 모양의 틀을 만들었다.
에반은 글로만 알던 실제 대장간 일을 직접 보게 되자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용광로와 여러 제련 방법, 철의 종류 같은 지식을 떠올려 봤지만 실제로 대장간에서 구현하거나 도움이 될 지식은 없었다.
일본도를 접쇠해서 만드는 다큐를 보기는 했지만 어설픈 지식을 떠들 수는 없었다.
에반은 일단 알포스가 일하는 것을 지켜보며 적용할 지식이 있는지 생각했다.
에반이 곁에서 지켜보고 있지만 원래 아이들이 호기심이 많은 것을 아는지 알포스는 묵묵히 일만 하였다.
더글라스가 풍로를 당겼다 밀어서 바람을 불어넣자 알포스는 우선 낡은 창날을 달구고 두들겨 수리를 시작했다.
“그렇게 백설공주는 왕자님과 행복하게 살게 되었어.”
“정말 재밌다. 에반아, 일곱 드워프가 왕자님을 만난 장면부터 다시 말해 줘. 아, 왕자님.”
“금방 말했던 것을 다시 들으면 무슨 재미야. 이번에는 신데렐라와 유리구두 이야기를 해 줄게.”
에반은 여자에게 확실히 먹히는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이야기를 시작으로 한 집에 살게 된 데리와 친해졌다.
사춘기로 꿈도 많을 나이인 데리는 에반이 해 주는 동화에 완전히 빠져들게 되었다.
데리는 두렵고 힘든 피난을 하고 달라진 환경에 주눅이 들었다. 개척 마을에 살고 있지만 어린 소녀가 쉽게 감당할 일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같이 살게 된 어린 에반이 신기하고 꿈같은 이야기를 해 주자 금방 밝아졌다.
에반의 이야기만으로 데리는 웃음을 짓고 눈부신 금발도 윤기가 돌았다.
에반은 전생에도 여자와 가까워 본 적이 없었다. 남학교와 군대를 거치며 여자와 가까워질 기회 자체가 없었다.
그런 에반이 어린 나이를 방패로 데리와 친해지고 눈부신 금발을 빗질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여자와는 웃겨 주고 재미있게 해 주면 쉽게 친해진다는 말이 사실이었어.’
에반은 여자와 관계된 많은 말들을 떠올리며 데리에게 계속 이야기를 해 주었다.
데리를 꼬신다는 생각보다는 여자와 친해지고 가까이 있다는 것이 즐거운 에반이었다.
데리와 친해진 에반은 알포스 가족의 식사에 끼어들어 편하게 식사를 해결했다.
그리고 낮에는 대장간 일이나 마을 사람들이 모여 훈련하는 것을 보며 오랜만에 어린이다운 일과를 보냈다.
그러나 편한 생활도 3일 만에 깨어지게 되었다.
밤에 경계 종이 울리면서 마을 사람들은 고블린을 시작으로 오크들까지 상대해야 했다.
여러 마을을 공격했던 몬스터들이 조금씩 흩어져 후퇴를 하는지 계속 여러 무리가 강을 따라 올라왔다.
에반도 활을 들고 목책 가까이에서 화살을 날려 몇 마리 몬스터에게 화살을 꽂아 주었다.
에반은 몽둥이나 농기구, 칼과 도끼를 들고 달려드는 몬스터를 실제로 보게 되자 왠지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전투와 피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지만 몬스터의 존재에 대해서는 왠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두 발로 걷지만 흉포하게 생긴 몬스터는 생김새만으로 인간 입장에서 공포심이 들었다.
외형을 많이 따지는 인간에게 두 발로 걷는 괴물은 원초적인 공포를 떠올리게 했다.
처음 겪는 전투였지만 안전한 장소에서 몬스터를 상대로 활로 쏘아서인지 전투 후유증이 생기지는 않았다.
“몬스터가 많이 몰려오지는 않으니 너는 그만 들어가라.”
에반이 목까지 오는 목책에 발판을 두어 활을 날리자 촌장이 배려의 말을 했다.
“저는 산에서 사냥을 하고 있으니 미리 몬스터와 싸우는 경험을 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위험하면 피할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촌장님.”
에반이 생전 처음 보는 몬스터이고 처음 겪는 전투였다. 에반은 안전한 장소에서 미리 전투를 겪는 것이 좋다고 여겨서 어른 틈에서 화살을 쏘았다.
마을을 공격하는 작은 몬스터 무리는 피난 온 마을 사람들까지 합세해 쉽게 막아 내고 있었다.
소수의 고블린이나 오크는 마을을 지나쳐 강을 따라 올라가기도 했다.
뒷산과 상류에서 덫을 놓는 에반은 이런 무리가 더 신경 쓰였다. 상류의 절벽과 폭포에 막힌 몬스터들이 산을 돌아갈지 그냥 자리를 잡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보통 가을에 공격 나온 몬스터 무리들은 암컷들을 둥지에 두고 온다. 그러나 오우거에게 몰려 나왔다는 의견도 많아 저 무리에 암컷이 끼어 있을 수도 있었다.
또 무리에서 떨어진 소수가 근처에 자리를 잡거나 떠돌이가 되어 습격할 수도 있었다.
산을 자주 오르는 에반은 마을을 지나치는 적은 고블린이나 오크들이 위협적으로 보였다.
오크까지 나타나자 마을 사람들은 오우거까지 나타날 우려가 있다며 짐을 꾸려 피난할 준비를 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전투 후에는 몬스터가 들고 있던 장비와 약탈한 식량을 거두었다.
그리고 피 냄새를 풍기면 오우거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강으로 몬스터를 실어 갔다.
사람들은 재빨리 가죽이나 송곳니, 손톱 등 팔 수 있는 부위를 해체하고 나머지를 강에 버렸다.
에반은 몬스터들의 녹색 피가 신기해 지켜보며 어른들이 몬스터를 해체하는 것을 배웠다.
여자들도 몬스터의 가죽을 무두질하며 나름대로 바쁘게 지냈다.
에반은 몬스터들의 가죽과 들고 있던 무기나 식량이 탐이 났다. 그러나 어른들은 에반이 조금 전투에 끼어들기는 했지만 몫을 쳐 주지는 않았다.
‘가죽 갑옷이라도 하나 장만을 할까? 아니야, 몬스터를 만나면 도망쳐야 하는데 가죽 갑옷이라도 나에게는 무거운 짐이지.’
에반은 분배를 받지 못하자 투덜거리다 갑옷을 마련할지 고민을 했다.
소규모 몬스터가 마을을 공격하는 것을 막는 가운데 첫눈이 내렸다.
그리고 말을 탄 수색대 겸 전령이 마을에 도착했다. 콜린 마을은 괜찮은지 살피러 온 것이었다.
“덴버 마을까지 오우거에게 무너진 후에 영주님이 보내신 기사와 마법사가 오우거 두 마리를 잡았습니다.”
전령은 마을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오우거에 대한 소식을 먼저 전해 주었다.
“세 개의 개척 마을이 무너지고 소규모 몬스터가 강을 건너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몬스터가 토벌됐으니 이제 마을로 돌아가도 될 겁니다. 그래도 여기 콜린 마을은 피해가 없어 운이 좋았습니다. 몬스터들이 내려오는 길목인 에델 마을은 오우거에게 처음 공격당해 미처 피난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전령이 에델 마을에 대한 말을 꺼내자 피난 온 사람들은 안색이 흐려졌다.
개척 마을치고는 넓은 평야를 끼고 있고 주요 통행로가 있는 에델 마을이었지만 역설적으로 몬스터가 산맥에서 내려오는 길목이었다.
방어가 잘되어 있지만 난데없이 오우거가 나타나자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다른 마을은 오우거가 나타났다는 피난 온 사람들의 말에 오크들을 막으면서도 피난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오우거가 나타나자 재빨리 사방으로 도망을 칠 수 있어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전령이 다녀가자 겨울이 더 깊어지기 전에 피난 온 에델 마을 사람들은 빠르게 돌아갔다.
피난민들은 마을의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그러나 어서 마을로 돌아가 재건을 해야 내년을 기약할 수 있었다.
봄에도 겨울 동안 굶주린 몬스터가 조금씩 공격해 오기도 한다. 에델 마을이 크다고 해도 목책 없이 봄을 견딜 수 없었다.
콜린 마을에서 겨울을 보낸다면 봄에 농사 준비를 하며 마을을 정비할 수는 없었다.
돌아가는 피난민과 함께 콜린 마을에서도 밀을 팔러 어른들이 무장을 갖추어 길을 나섰다.
알버트 촌장까지 만물상에 필요한 물건을 구하려고 동행했다.
에반의 집에서 지내던 알포스 가족은 알포스와 더글라스만 에델 마을로 가기로 했다.
겨울 동안 마을 재건을 해야 하니 데리를 남겨 둔 것이다.
“에반아, 데리를 잘 보살펴 주고 잘 지내야 한다.”
알포스는 에반이 어리지만 홀로 사냥도 하고 목책에서 몬스터에게 화살도 날려 데리를 부탁하는 말을 했다.
물론 에반이 10살이니 딸과 한 집에 있어도 걱정하는 마음은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데리는 제가 잘 지키겠습니다.”
“아빠, 조심하고 봄에 꼭 나 데리러 와야 돼.”
“올 겨울은 위험하니 여기서 잘 지내고 있어라.”
알포스는 데리를 남겨 두고 에델 마을로 향했다.
그동안 에반은 집을 빌려 준 값으로 편하게 식사 대접을 받았다. 고기는 에반이 훈제한 것을 사용했지만 오랜만에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