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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퍼1권(6화)
2. 사냥꾼 에반(4)


에반은 구덩이에 빠진 동물을 끌어내기 위해 준비한 끈을 멧돼지에 묶고 통나무를 반대쪽에 묶어 무게를 맞추어 끌어 올렸다.
미리 준비했지만 다 큰 수놈이어서 통나무에 에반의 체중까지 올려서야 멧돼지를 덫에서 끌어 올릴 수 있었다.
이미 상처 입은 멧돼지의 괴성과 피 냄새가 퍼졌지만 함정에 남아 있는 것을 보니 근처에 맹수나 몬스터는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도 만약을 위해 에반은 물로 대충 멧돼지의 피를 씻고 흙과 풀을 짓이겨 피 냄새를 조금 줄였다.
에반은 대충 조치를 한 후에 수레를 힘겹게 끌고 마을로 향했다.
힘들게 수레를 끌며 에반은 사냥용 나무집이라도 지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잡는 동물마다 이렇게 위험하게 마을까지 끌고 갈 수는 없으니 덫 근처에 목책을 두른 작은 통나무집이라도 만들 생각을 했다.
뒷산에 접한 마을의 목책에는 작은 문만 있었다.
큰 문을 내면 몬스터가 내려올 때 쉽게 부서질 수 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 올 때나 쓰는 작은 쪽문이었다.
에반은 쪽문을 열고 마을 사람을 찾았다. 자신의 힘으로는 멧돼지를 들 수 없으니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도움을 받은 만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겠지만 큰 멧돼지를 해체하는 것도 힘드니 조금은 인심을 써야 했다.
마을을 돌아다니는 어른이 없자 에반은 촌장이 있는 만물상으로 달려갔다.
“촌장님, 제가 멧돼지를 잡아서 쪽문까지 끌고 왔으니 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해체하는 것을 도와주십시오.”
“뭐라고! 멧돼지를 어린 네가 잡았다고?”
“운이 좋아 잡게 되었습니다.”
동물들이 다니는 길이나 먹이나 물을 먹는 장소와 비법인 덫을 설명할 수 없으니 에반은 그냥 운이 좋다는 말을 했다.
자신의 영업 비밀을 알려 준다고 고마워할 이 세상의 사람들도 아니었다.
에반은 알버트 촌장을 안내해 쪽문으로 데려와 수레에 실린 멧돼지를 보여 주었다.
곧 알버트 촌장은 사람들을 모아 멧돼지를 목책 안으로 옮겨 해체에 들어갔다.
남자들을 따라 여자들과 몇 명의 아이들도 멧돼지를 해체하는 근처로 다가왔다.
개척 마을은 전쟁이 끝나고 십 년 전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에반의 아버지는 몬스터를 토벌했던 병사여서 개척 마을에 일찍 자리를 잡은 편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정착한 사람들의 아이는 에반보다 한참 나이가 많거나 어렸다.
에반보다 나이가 많은 청소년들은 이미 어른들을 도와 농사일을 하고 있고 어린아이들은 아직 어머니의 품에 있어 에반은 친구가 없었다.
그런 아이들도 흉년과 전염병으로 수가 더 줄어들어 마을에서 아이들을 보기가 힘들었다.
에반은 새삼 마을의 아이들을 보자 살기도 힘든데 친구나 부하로 만들 아이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음, 부하로 만들 아이도 없군. 세력을 키우려면 믿을 만한 부하가 많아야 되는데 정말 조용히 살라는 계시인가? 이제 부하는 내가 성장해서 확실한 능력 차를 보여 주며 만들어야겠어.’
에반은 부하를 키울 여건도 안 되자 자신의 실력을 키워 미래를 준비하기로 했다.

어른들이 달려들자 멧돼지는 금방 해체가 되었다.
멧돼지를 잡아 온 에반에게 사람들의 눈치가 모였다. 에반은 수레에 가죽과 어금니, 간과 심장, 등뼈와 다리 두 개를 싣고 촌장에게 분배를 부탁했다.
“이번에 운 좋게 멧돼지를 잡았으니 나머지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에반이 고기를 나누자 어른들은 어린 에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기도 어려워 머뭇거렸다.
에반이 아직 어리니 마을 사람들에게 인심을 얻어야 안전하지만 이웃들은 에반이 굶어 죽는 것을 방치한 사람들이었다.
에반도 막상 필요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이웃들과 깊은 친분을 나눌 생각은 없었다.
에반은 영리하게 중요한 촌장에게만 살갑게 굴며 친분을 다지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에반은 뼈는 냄비에 넣고 끓여 골수와 연골을 우려내었다. 고기들은 손질해 벽난로 위에 걸어서 훈제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소금도 떨어지고 있네. 가죽이나 어금니와 소금을 교환해야겠군. 그리고 석궁도 구해 봐야지.’
아버지가 쓰던 활은 힘이 부족해 사용할 수 없었다. 에반은 장거리 공격을 위해서는 석궁이라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에반은 멧돼지 한 마리를 덫으로 잡고 벌써 자신감이 넘쳐 몬스터와 싸울 생각을 했다.
에반은 조금씩 뼈를 우려낸 국물을 먹었다. 그리고 아직 보잘것없는 몸을 돌아보았다.
‘이제부터라도 수련을 해야겠지.’
에반은 배가 부르니 미래를 준비할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3. 몬스터의 공격(1)


에반은 만물상에서 멧돼지의 가죽과 어금니로 소금과 곡식을 교환하며 무기들을 구경했다.
“이건 지난 전쟁에서 기사가 썼다는 칼인데 너에게는 너무 크니 이 석궁을 한번 사용해 봐라.”
에반은 촌장이 권하는 석궁을 들고 한번 시위를 당겨 보았다.
석궁은 십 년 전의 전쟁에서 기사나 중갑 보병의 갑옷을 뚫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그러나 에반에게는 무겁고 시위도 당기기 어려웠다.
“이것도 제가 쓰기에는 너무 무겁습니다. 이번에 운 좋게 멧돼지를 잡았지만 아직은 큰 동물을 사냥할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금니와 가죽만큼 보리와 소금을 주십시오.”
에반은 용병들이나 자경대가 쓰는 석궁을 당겨 보고는 바로 주제 파악을 했다. 석궁을 들거나 당길 힘도 부족하자 어린 몸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위험한 숲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무기를 들고 돌아다녀 봐야 사용도 못하고 위험만 커진다는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에반은 한동안 곰탕으로 몸보신을 하며 기존의 덫만 살폈다. 그리고 농지에서 조금씩 자라는 밀을 돌봤다.
한동안 덫에 큰 동물들이 걸리지 않았다. 에반은 궁리를 해서 덫을 개선했다.
덫 앞에 통나무를 둬서 동물들이 통나무를 뛰어넘다가 덫에 빠지도록 바꾸었다. 그리고 덫 주위에 가시덤불도 두어 길을 좁혔다.
에반은 차츰 짐승들의 배설물을 보고 잡식성인 멧돼지나 설치류의 것인지 채식을 하는 사슴 종류인지도 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동물들의 흔적을 보고 얼마나 지난 것인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차츰 지식을 체득하고 경험이 쌓이는 것이다.
설치류나 토끼는 계곡 주변에 먹을 것이 있어 숫자가 많은지 작은 올무에 꾸준히 잡혔다. 작은 동물이라도 꾸준히 잡히자 에반은 생활을 안정적으로 꾸려 갈 수 있었다.
태양이 점점 기울며 가을이 되어 갔다. 다행스럽게 에반은 겨울 전에 사슴 한 마리를 잡았다.
적당한 크기의 사슴이라 에반은 수레에 실어 집으로 가져와 직접 해체를 했다. 정문으로 수레를 끌고 오며 마을 사람을 만났지만 무시하고 지나갔다.
에반은 힘들게 잡은 동물을 더 이상 마을 사람에게 무상으로 나눠 줄 생각이 없었다.
에반이 사람들의 시선을 모른 척하자 어른들도 먼저 말을 못 붙였다.
이미 에반의 얼굴은 어린애다운 표정은 사라지고 무표정한 얼굴을 보일 수 있었다.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표정에 어린애라고 쉽게 대할 수 없었다.

겨울에는 집에만 있던 에반은 겨울옷이 없었다. 에반은 가죽이 좋은 사슴을 잡자 겨울옷을 마련하기로 했다.
에반은 스스로 무두질하고 재단해서 가죽옷을 만들 수도 있지만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했다.
개척 마을에 무두질과 가죽옷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사람은 있기 마련이니 고기를 좀 써서 좋은 옷을 마련하기로 했다.
사슴을 해체한 에반은 가죽과 다리 두 개를 들고 촌장에게 갔다.
“촌장님, 제가 사슴을 잡았는데 이거 다리 하나 드셔 보십시오. 그리고 제가 겨울옷이 있어야 할 것 같으니 이 가죽으로 옷과 신발, 장갑을 좀 만들어야겠습니다. 이 다리 하나로 무두질과 가죽옷을 만드는 비용으로 되겠습니까?”
“우리 할멈이 가죽을 다룰 수 있으니 만드는 거야 어렵지 않지. 할멈도 요즘 하는 일이 별로 없으니 금방 될 거야. 그리고 이 다리 두 개면 품삯으로 충분해. 그런데 사슴은 또 어떻게 잡은 거야.”
그동안 에반이 설치류나 작은 동물을 올무로 잡아 넘기면 촌장의 부인이 가죽을 다듬었다. 촌장은 사슴 다리 두 개를 품삯으로 쳐 주었다.
“아버님이 사냥을 잘 가르쳐 주셨고 어린 사슴이라 운이 좋아 잡았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곰의 흔적을 봤는데 마을 사람들에게 조심하라고 전해 주십시오. 가을에는 곰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많이 먹으려고 사나워진다고 들었는데 잘못하면 사람이 다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곰이 가을에 사나워진다는 말은 들었어. 어린것이 아는 것도 많고 아주 똑똑해. 어차피 이번 가을에는 몬스터도 올 수 있으니 추수 후에는 목책도 보수하고 싸울 준비를 해야겠지.”
전쟁이 끝나며 영지에서 징집되었던 군사들이 전쟁 기간 중에 없어진 마을 근처를 돌며 몬스터를 토벌했다.
몬스터의 영역이 넓어지면 도시 근처까지 피해가 올 수 있으니 영주들도 줄어든 인간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전쟁 후에는 많아진 병력으로 몬스터 토벌을 하는 것이 오래된 전통이었다.
영주들 입장에서는 많은 전장 경험을 가진 징집병과 몬스터 모두를 줄여 놓는 것이 좋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몬스터 토벌을 한 징집병들은 보통 개척 마을의 땅과 면세를 미끼로 정착을 강요받았다.
이렇게 전장 경험을 한 징집병들의 수를 줄이고 그들을 개척 마을로 몰아넣어 영지의 안정과 몬스터 대비도 하는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개척 마을이라고 해도 초기의 몬스터 토벌의 여파로 한동안 몬스터 구경을 못했다. 그러나 번식력이 좋은 몬스터들이 조금씩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십 년이면 개척 마을들도 자리를 잡게 되니 5년이나 10년은 안전이 보장될 거리까지 토벌을 했다.
다른 개척 마을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몬스터와 가을마다 싸우고 있었으니 콜린 마을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사실 콜린 마을이 다른 개척 마을보다 몬스터의 공격을 늦게 받는 것은 운보다는 지형의 영향이 컸다.
계곡 상류에는 절벽과 폭포가 있어 몬스터가 직접 계곡을 따라 마을로 내려오지 못했다.
몬스터를 토벌했던 에반의 아버지도 이런 계곡 상류의 지형을 보고 콜린 마을에 정착한 것이었다.
“그래도 우리 마을은 몬스터가 오기 힘든 지형이니 소규모 고블린이나 오크 정도만 올 거라는 말을 아버지께 들었습니다.”
“계곡에 막혀 있으니 산을 돌아 우리 마을로 대규모 몬스터가 오기는 힘들지. 그래도 주위의 다른 개척 마을이 무너지면 물을 따라 우리 마을로 몬스터가 몰려오게 되니 계속 목책 보수를 해야 해. 올해는 흉년과 전염병의 여파로 주위 마을의 방어력이 약하니 우리 마을까지 몬스터가 올 가능성이 많아.”
에반이 적절히 대꾸를 하자 촌장도 어린 에반에게 걱정스런 상황을 말했다.
“목책도 튼튼하고 아버지처럼 병사였던 분들도 많으니 우리 마을은 안전할 겁니다.”
“일단 우리 마을까지 오는 몬스터 무리는 다른 마을에서 전투를 치렀을 테니 상대하기 쉽기는 하겠지. 하여간 너도 이제 산에 올라갈 때는 조심하거라.”

촌장의 경고도 있어 에반은 기존의 덫만 살피며 산에 오르는 시간을 줄였다.
그리고 추수할 때가 된 농지만 살피면서 겨울을 나기 위해 땔감을 모으고 집을 개조하기로 했다.
에반은 벽난로가 있는 서양식 집에서 겨울을 지낼 생각을 하니 난방이 걱정되었다. 벽난로는 열효율도 나쁘고 나무도 많이 사용해야 했다.
에반은 침상이라도 온돌로 만들기로 했다. 우선 조그맣게 온돌식으로 침상과 훈제실을 만들어 벽난로에 연결하기로 했다.
굴뚝으로 벽난로를 이용하며 고기를 장기 보관하기 위한 훈제실도 설계했다.
에반은 아궁이 방향의 불고개와 굴뚝 부분의 개자리만 제대로 만들면 연기가 역류하지 않는다는 상식을 알고 있었다.
온돌과 아궁이는 불과 연기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전체적인 높낮이를 조절해 만들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