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트랩퍼1권(5화)
2. 사냥꾼 에반(3)


에반이 조그만 동물을 잡아 온다는 것은 금방 마을에 소문이 났다. 어린 에반이 혼자서 동물을 잡아 오자 다들 신기하게 여기고 있었다.
콜린 마을은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따라 농지가 있었다. 계곡이라 농지가 작지만 물이 가깝고 지력이 좋아 소출은 높았다.
흉년과 전염병만 아니었으면 에반 정도의 아이는 공동으로 키워 줄 수도 있었겠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여러분들이 보살펴 주셔서 혼자 먹고살 정도의 동물은 잡고 있습니다. 여기 가죽만큼 끈을 좀 주십시오. 그리고 이건 제가 만든 육포인데 좀 드셔 보십시오.”
에반은 올무로 만들 끈을 사기 위해 작은 가죽을 팔며 촌장에게 인사를 하며 육포를 건넸다.
“너도 먹을 것이 부족할 텐데 뭐 이런 것을 가져오냐? 그리고 너희 농지는 좀 살펴봐라. 그래도 밀이 제법 자라고 있으니 잡초 정도만 뽑아 주어도 가을에 조금은 수확할 수 있을 것 같다.”
“예, 알겠습니다. 촌장님, 그럼 건강히 지내십시오.”
조그만 가죽들이어서 그렇게 값이 나가지는 않았지만 중고 끈을 많이 살 수 있었다.
에반은 촌장의 충고에 따라 며칠간 농지로 나가 잡초를 뽑으며 돌봤다.
한동안 돌보지 않아 잡초가 많았지만 촌장의 말대로 에반 혼자 먹을 정도의 밀은 가을에 수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식량으로 곡식이 있어야 하니 에반은 하루는 산에 오르고 하루는 농지에서 잡초를 뽑고 물길을 정리했다.

에반은 땔감도 떨어지자 산을 내려오며 벌목도로 벤 가지들을 가져오다 지게를 만들기로 했다.
어른들은 나무들을 베어 끈으로 묶거나 수레에 실어 오고 있었다.
에반의 몸에 맞는 작은 지게였지만 막상 만들고 보니 앞으로 잡은 동물이나 나무를 가져오기 편할 것 같았다.
에반은 막상 지게를 만들자 특허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런 용어도 없는 세상이었다.
에반은 지게를 사용한다면 하나둘 따라 하게 될 것이다. 에반은 마을의 인심도 얻고 똑똑하다는 평판을 들으려 먼저 알리기로 했다.
에반은 쓰러진 나무와 가지를 작은 지게에 차곡차곡 재어 마을로 향했다.
지게를 선보이기 위해 마을 주변을 돌고 만물상 앞에 지게를 지팡이로 받쳐 두었다.
“에반아, 그래 무슨 일로 왔느냐?”
“촌장님, 제가 지게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물건을 옮기기 편해 사람들에게도 알려 주기 위해 가져왔습니다.”
촌장은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에반이 만물상 앞에 둔 지게를 보자 요모조모 살폈다.
에반은 지게를 지고 움직이는 시범을 보이며 수레 없이 많은 물건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촌장도 수레가 갈 수 없는 산길에서는 지게가 편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게는 한쪽에 가지가 있는 나무줄기 두 개를 엮어 어깨에 멜 수 있는 끈만 달면 되니 만들기도 쉬웠다.
“편리한 물건이구나. 어떻게 만들게 되었냐?”
“땔감에 쓸 나무를 끌고 오기 힘들어 좋은 방법을 생각해 보다가 만들게 되었습니다. 여기 지게를 세워 둘 테니 마을 사람들에게 소개해 주십시오.”
주변의 마을 어른들도 가까이 다가와 지게를 보며 에반에게 똑똑하다는 말을 해 주었다.
그동안 마을 사람들은 어린 에반을 외면했던 기억으로 잘 지내냐는 말을 건네지도 않았다. 어려운 세상이었으니 그냥 외면하는 것이 편한 시절이었다.
그래도 어린 에반이 혼자 잘 살아가고 지게라는 것도 만들자 똑똑하다는 말이라도 해 주었다.
주변에 널린 것이 나무인 개척 마을이니 당장 크게 필요하지는 않은 지게이지만 산길에서 짐을 옮기려는 사람들은 차츰 만들어 사용할 것이다.
에반은 지게가 차츰 주변 마을로 퍼져 나간다면 지게를 만든 자신의 이름도 퍼져 나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지배층이나 지식층이 평민들이 사용하는 지게를 보고 그 효용을 깨달을 수 있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소문이 나면 누가 똑똑한 나를 입양하거나 후원하지는 않을까? 이 세상의 지식도 배워야 하고 무예도 수련해야 되는데 당장 배가 고프니 다 헛것이야. 그냥 이 세상에서 평범하게 살라는 하늘의 뜻인가? 하여간 지게의 효용성을 알아챌 지식인이나 지배층이 있으면 나도 좀 편하게 살 수 있겠지.’
에반은 오랜만에 마을 어른들과 이야기도 하고 칭찬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에반은 지게의 효과로 이제 조금은 지내기 편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반을 외면했던 마을 사람들이 이제는 아는 척도 해 주고 방패막이도 돼 줄 것 같았다.
고아인 에반은 이제 주변 어른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마을 주변에는 에반이 올무를 많이 놓아 작은 동물들이 차츰 줄어들고 있었다.
에반은 겨울을 나기 위해서 큰 동물을 잡을 준비를 시작했다.
에반은 큰 동물을 잡을 함정을 만들 곳을 따라 손수레를 끌 정도의 길을 만들었다.
큰 동물을 잡아도 가져올 수 없으면 헛짓이니 그동안 함정을 파지는 않았다. 산에서는 몬스터나 맹수를 부를 위험이 있어 해체를 해서 가져올 수도 없었다.
그리고 맹수에 대한 대비로 길 근처의 나무에 넝쿨을 메어 두어 나무 위로 피할 준비까지 했다.
초식 동물들은 개방된 물가보다는 산속에 있는 샘물을 주로 이용하고 있었다. 멧돼지도 진흙 목욕을 위해 샘물을 주로 찾고 있었다.
에반은 동물이 마시는 샘물 주위에 멧돼지나 큰 동물이 빠져들 구덩이 함정을 만들었다.
바닥에는 꼬챙이를 꽂고 입구는 나뭇가지와 흙을 덮고 냄새를 없애기 위해 나뭇잎을 짓이겨 발랐다.
개척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농노 출신이거나 도시의 하층민 출신이었다. 그런 이들이니 사냥이나 야생 동물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에반의 아버지와 같이 군에 다녀온 경험이 있어 무기를 쓸 수 있더라도 동물의 습성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에반의 아버지가 사냥했던 것도 활에 능숙하고 눈 위에 남은 동물들의 발자국을 추적해 사냥한 것이었다.
동물이나 사냥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 숲을 돌아다닌다고 해도 동물을 찾을 수는 없었다.
아직까지 사회는 책으로 지식을 공유하지 않고 아버지에서 아들로나 장인과 도제처럼 개인적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세계의 사냥꾼이라고 해도 현대의 사람이 다큐멘터리 등으로 배운 일반적인 동물의 습성 정도의 지식도 없었다.
사냥꾼들에게도 단지 동물을 잡는 경험만이 전해질 뿐이었다. 사냥꾼 사이에서도 동물을 자주 찾을 수 있는 장소나 방법은 비밀처럼 전해졌다.
에반은 초식 동물이나 육식 동물의 생태에 대해서는 다큐멘터리에서 본 기억만으로도 나름대로 전문가로 자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동물의 생태와 습성을 파악해 덫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이었다.
덫을 놓는 것도 습성을 따라 올무나 함정을 만들어 성공 확률이 높은 방법을 찾았다.
육식 동물의 위험은 별로 느끼지 못했다.
고양이과 맹수나 곰도 다큐에서 본 것처럼 갑작스럽게 만나지만 않는다면 짐승의 습성상 인간을 피하기 마련이었다.
맹수들도 평소 먹던 것만 먹지 위험할지도 모르는 인간을 공격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리고 맹수들은 영역을 침범당하면 우선 울음으로 경고를 한다.
늙어 사냥할 기력이 없는 맹수나 손쉽게 사냥할 수 있는 인간이나 가축을 노리지 보통의 맹수는 자신의 영역에 머물렀다.
에반은 뒷산에서 냄새를 퍼트려 맹수를 부르지 않는 한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에반은 사냥의 대상인 초식 동물들은 시행착오만 겪는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고 맹수들도 주의만 한다면 마주칠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에반이 산을 오르며 걱정이 되는 점은 몬스터뿐이었다.
몬스터는 오히려 인간을 먹이로 보는 점과 공격성이 문제였다.
오직 몬스터만 인간을 별미로 여기고 인간들이 약하다 싶으면 적극적으로 공격해 잡아먹었다.
마을 단위로 맹수와 영역이 겹쳐 싸운다고 해도 한두 마리 맹수와의 문제였다.
그러나 계절만 되면 몰려오는 몬스터는 계속 인간 영역이 늘었다가 줄었다 하는 근본 이유였다.
아직 콜린 마을 근처에는 몬스터들의 대집단이 없지만 마을 뒤의 산맥 안에는 많은 몬스터가 있어 언제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아득한 과거에 마을 뒤의 산맥 안에까지 인간의 영역이어서 성과 농지가 있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만 있었다.
에반은 몬스터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을까지의 길에 줄을 건드리면 통나무가 떨어지는 함정들도 만들었다.
만일 몬스터에게 쫓긴다면 맹수와는 달리 나무 위로 오른다고 피할 수 없으니 함정을 발동해 몬스터를 저지할 계획이었다.
에반은 동물을 잡고 몬스터에 대응하기 위해 점점 많은 함정을 설치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전을 위한 함정 수를 늘려 갔다.
바닥에 꼬챙이가 있는 함정부터 그물이 떨어지거나 가지를 구부려 만든 활까지 다양했다.
그물이나 활이 나가는 함정 등은 발동 방식도 줄을 건드리거나 밟으면 발동하는 등 여러 가지를 시험해 보았다.
몬스터를 노리는 함정을 늘려 가며 덫도 점점 진화를 했다.
올무도 땅을 파서 구덩이에 빠지며 동시에 올무로 잡는 것과 나무줄기를 구부려 올무에 걸린 동물을 위로 잡아채는 것까지 만들어 보았다.
올무에 잡히며 구덩이에 빠지거나 공중에 들리면 쉽게 벗어나지 못해 성공률이 높아졌다.
그리고 나무통의 한쪽 문을 위로 올려 두고 미끼를 물면 문이 내려와 통 안의 동물을 생포하는 통방이도 생각해 냈다.
에반은 밤에 자기 전에 기억나는 여러 함정과 덫을 떠올리고 구상해 보는 것이 일과였다.
그러면서 일제 때 한국호랑이를 많이 잡았던 낙석함정인 벼락틀까지 생각해 내고 나중에 맹수나 몬스터를 잡아 볼 계획까지 세웠다.
낙석함정인 벼락틀은 나무 기둥을 세우고 위에 나무와 돌을 쌓아 놓고 기둥에 미끼를 거는 간단한 함정이었다.
맹수가 기둥에 달린 미끼를 물어 당기면 기둥이 쓰러지며 쌓아 둔 나무와 돌이 떨어지는 덫이었다.
간단한 덫이지만 벼락틀로 일제 시대에 한국호랑이의 씨를 말릴 수 있었다.
보통 호랑이 같은 맹수는 영역이 넓어 겨울에 눈이 내리지 않으면 추적하기도 어려웠다.
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숲에서 찾기도 어렵고 사냥꾼이 오히려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간단한 벼락틀로 많은 호랑이가 깔려 잡히는 것을 보면 영리하고 강하다고 해도 짐승으로서의 한계는 있었다.
에반은 벼락틀을 생각해 내자 맹수나 몬스터를 잡고 싶은 생각이 났지만 어린 나이를 생각해 나중으로 미뤘다.
밟으면 덫이 다리를 잡는 다리잡이 덫도 스프링과 철로 만드는 문제가 있어서 나중으로 미뤄 두었다.
에반은 기억해 낸 벼락틀이나 통방이, 쇠로 만든 여러 덫은 비밀로 해 두기로 했다. 아직은 자신만의 비법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
쉽게 동물을 잡을 수 있는 덫이 퍼져 나간다면 동물들의 씨가 마를 수도 있었다.
에반은 설치하는 올무나 함정도 마을 사람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하면서 숫자를 늘려 갔다. 올무나 함정을 놓는 위치나 방법도 중요한 비법이었다.
이 세상에서는 주로 활로 동물을 잡아 올무를 놓는 여러 방법도 비법이었다.
‘여기도 사냥꾼 길드라는 것이 있을까? 길드는 보통 폐쇄적이고 기술 보호가 심한데 영역 침범한다고 쫓아오지는 않을지 모르겠네.’

에반은 아침에 일어나자 예감이 좋았다. 에반의 영성이 높아 예감을 느낀 것이다.
산에 오른 에반은 멧돼지가 덫에 잡힌 것을 발견했다. 진흙 목욕의 흔적이 있는 곳에 파 둔 덫에 수놈으로 보이는 놈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멧돼지의 피하 지방이 워낙 두꺼워 꼬챙이가 치명상을 입히지 못해 아직 살아 있었다.
에반은 가지고 다니는 창으로 멧돼지의 경동맥이 있는 곳을 겨냥해 힘껏 찔렀다.
멧돼지를 죽이려 창을 움직이면서도 에반은 소리와 피 냄새로 맹수나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을지 걱정이었다.
멧돼지는 한동안 나무 꼬챙이에 찔려 피를 흘리며 힘이 빠져서 어린 에반이 목을 찔러도 반항도 못하고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