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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퍼1권(4화)
2. 사냥꾼 에반(2)
육체에 구애 받지는 않지만 정신이 흔들린다면 바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단점도 있었다.
그리고 의지력을 사용하는 만큼 기운도 소모되는 것을 느껴 필요한 정보에 집중하며 다른 정보는 무시했다.
정신은 형체를 이루는 기운이 차츰 소모된다는 것을 느끼고 어서 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지력이 미치는 범위에서 지형 정보를 찾아 인간이 많은 지역을 찾으며 움직였다.
정신은 사람이 살고 있다면 영혼이 빠져나간 육체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탐색을 계속했다.
곧 노인이나 칼을 맞고 죽은 시체를 몇몇 찾았지만 다시 소생할 수 있는 심장 마비 같은 경우가 아니라 다시 움직였다.
곧 허름한 오두막에 굶어 죽어 가는 어린아이의 정보가 들어왔다. 육체는 아직 미약하게 생명을 이어 가고 있지만 삶의 의지가 없는지 정신은 떠난 상태였다.
정신은 더 좋은 조건의 육체를 찾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어 어린아이의 육체라도 얻기 위해 정신과 육체의 연결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곧 의지력으로 선천진기와 상단전을 연결해야 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정신은 정보에 따라 아이의 머리 앞으로 움직여 정신체를 상단전에 연결하려 의지를 집중했다.
의지력과 기운을 집중하자 상단전과 연결할 수 있었다. 순간 육체의 감각이 쏟아지며 숨이 들어왔다 나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육체에 남아 있던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아직 아이고 굶어 죽을 정도의 집안이어선지 언어와 흉년과 전염병에 죽어 간 가족의 기억이 대부분이었다.
정신은 정신체로서 쏟아지는 정보를 다룬 경험이 있어 아이의 얼마 안 되는 기억을 쉽게 정리했다.
육체에 차츰 적응하자 본성인 정신은 몸과 마음의 장벽 너머에 머물렀다.
정신이 잠들고 육체와 마음에 따르는 자아가 깨어나며 강철호는 눈을 뜨고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강철호는 무아지경에서 관조를 하듯이 본성인 정신이 한 일을 지켜보고 있었다.
깨어난 본성은 프로그램에 따르듯이 강철호가 새긴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보석에 기운과 함께 봉인되지 못했다면 정신이 세상의 이치를 거스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강철호는 새로운 육체를 얻자 마치 윤회를 한 것만 같았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노력한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앞길이 막막했다.
정신체로 있을 때 세계의 지형과 인간 세상의 정보를 얻었는데 평민 아이가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이었다.
신분제가 있고 생활과 문화는 중세보다 못한 세계였으니 부모가 없는 자신은 노예로 팔려 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굶어 죽지 않고 무사히 성인으로 크려면 고생을 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강철호는 일단 걱정은 접어 두고 굶어 죽기 직전의 육체에 영양을 공급하기로 했다.
마을의 다른 집도 형편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아니 우선 집을 뒤져 보기로 했다.
보리를 보관하던 항아리의 바닥에 약간의 이삭이 있어 숭늉보다 못한 죽을 끓였다.
강철호는 냄비를 올려놓은 벽난로에 굶주림에 지친 몸을 녹이며 죽을 조금씩 마시며 몸을 풀었다.
전생에 선식을 먹으며 수련하기도 했으니 적게 먹으며 몸을 단련하던 시절을 생각하며 기공을 시작했다.
보통 인간은 먹는 음식의 영양분 대부분을 흡수하지 못하는 소화 기관을 가지고 있었다.
수련으로 몸의 기능을 끌어올리면 적은 양을 먹어도 흡수력을 높일 수 있었다.
강철호는 스트레칭과 기공을 하며 쇠약한 어린 몸의 기능을 끌어올렸다.
죽어 가던 아이는 굶주림보다는 외로움과 정신적 충격으로 정신줄을 놓았다.
강철호의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고 뜨거운 죽을 조금씩 마시자 차츰 손발에 온기가 돌고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강철호는 다시 집 안을 뒤져 말라 버린 약간의 고기와 집 주변의 호박과 비슷한 식물의 잎과 익지 않은 열매를 냄비에 넣고 죽을 끓였다.
하루 동안 뜨거운 죽을 먹으며 기공을 하자 회복이 빠른 아이의 몸은 거동에 문제가 없게 되었다.
이제 더 식량을 얻으려면 집 안의 뭔가를 팔거나 일을 해야 했다.
강철호는 살아갈 궁리를 하다가 어린아이 몸으로 농사짓기는 힘들고 덫을 놓으며 사냥을 하기로 했다.
강철호는 일단 마을 사람과 대면해야 하니 우선 지금 언어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무의식적으로 한국말을 하면 안 되니 조그만 다리를 꼬아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겼다.
강철호는 정신체 때의 감각을 떠올리며 육체의 정보를 끄집어내어 기억을 하나하나 되새겼다.
강철호가 얻은 새로운 육체는 에반이라는 이름을 가진 9살의 아이였다.
에반의 가족은 개척 마을에 터를 잡아 농지를 개간하며 새로운 꿈을 키우고 있었다.
징집되어 병사의 경험이 있던 아버지는 겨울에는 사냥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흉년과 전염병에 부모는 차례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홀로 남겨진 에반은 외로움과 굶주림에 정신을 놓았지만 새롭게 강철호의 정신이 들어서게 되었다.
에반이 있는 콜린 마을은 몬스터를 몰아내고 세운 개척 마을이었다.
이 세계는 몬스터가 있어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 인간의 영역이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나 흉년으로 치안이 약해지면 외곽 마을부터 몬스터에 휩쓸리거나 줄어든 마을 인구로 영주성 근처로 철수했다.
에반의 아버지도 징집되어 싸운 전쟁이 끝나자 새롭게 개척의 시대가 시작됐다. 그러나 연이은 흉년과 전염병이 마을을 덮쳐 에반은 고아가 되었다.
기억을 모두 떠올려 언어와 마을의 사람들에게 익숙해지자 새로운 언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육체에 익숙한 언어인지 어색한 발음도 쉽게 할 수 있었다.
강철호는 일단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스스로 에반이라고 되뇌었다.
육체와 새로운 강철호의 정신이 얼마나 강력히 결합되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육체에 맞지 않게 스스로 강철호라고 생각한다면 정신 분열이 될 수도 있고 갑자기 육체에서 분리될 수도 있었다.
강철호는 이제 스스로 에반이라는 최면을 걸며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 삶에는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기로 했다.
외롭게 수련하기보다는 사람을 모으고 세상에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덧없는 것이겠지만 일단 이번 생에는 전생에 못한 것을 마음껏 하기로 했다.
에반은 외출을 위해 몸을 씻고 옷도 깨끗한 것으로 입었다.
작은 거울에 비친 얼굴은 초췌했지만 에반은 푸른 눈이 마음에 들었다.
‘몸은 앞으로 자라면 되는 것이고 얼굴은 이 정도면 미남이 되겠지.’
에반은 새로운 몸과 얼굴을 보며 밝은 미래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에반은 그런 미래까지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사냥 도구와 단검, 도끼, 곡괭이 등을 제외하고 가재도구를 정리했다.
그리고 손수레에 팔 것을 싣고 만물상을 겸하는 촌장 집을 찾았다.
개척 마을은 혈연 집단인 동족촌도 아니었고 모두 어려운 처지라 고아를 챙겨 줄 친분이나 형편은 없었다.
그래도 서로 이웃으로 살던 사이니 고아인 에반을 노예로 팔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현실을 냉정히 파악한 에반은 외면하는 이웃이 차라리 고마웠다.
만물상 문을 열고 들어가서 에반은 말을 꺼냈다.
“알버트 촌장님, 안녕하십니까?”
“오, 에반이구나. 얼마 전에 어머니도 돌아가셨는데 요즘은 어떻게 살고 있냐? 혼자 살 수 없으니 전에 얘기한 대로 영주님 하인으로 들어가는 것도 생각해 봐라.”
고아를 입양하거나 돌봐 주는 사회가 아니니 어린아이는 스스로 자립하거나 노예나 하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린아이는 성인 몫의 일을 할 수 없으니 에반의 부모가 개척한 농지와 집을 처분해 뇌물이라도 바쳐야 하인 자리라도 들어갈 수 있었다.
알버트 촌장이 그래도 신경을 써서 하인으로 들어갈 길을 에반에게 소개해 준 것이었다.
부잣집 하인이 가난한 평민보다 잘 먹고살 수 있으니 고아에게는 좋은 자리였다.
“괜찮습니다. 아버지께 남자는 큰 꿈을 가지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께 사냥 기술을 배웠으니 덫을 놓아 조그만 동물이라도 잡으며 살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농기구와 옷가지를 식량으로 바꿔 주시고 부모님이 개척한 농지는 처분해 주십시오.”
촌장은 어린아이인 에반이 제법 조리 있게 말하자 하인이 되라고 강권할 수는 없었다.
“지금 모두 어려워 장담은 못하지만 농지를 인수할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마.”
촌장은 중고인 농기구와 옷가지를 후하게 가격을 매겨 식량으로 바꾸어 주었다.
“가격을 잘 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곧 조그만 동물이라도 사냥해 고기라도 가져와 보겠습니다.”
노인들은 일단 예의 바른 어린이를 좋아하니 에반은 감사의 인사와 곧 사냥한 고기를 가져오겠다는 말까지 날려 주었다.
아직은 개척 마을에 세금을 걷지 않아 촌장이 큰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촌장이 세금을 걷어야 한다면 권력을 가지게 되고 탐욕을 부린다면 어린 에반의 농지와 집을 뺏고 노예로 팔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 촌장도 이웃들의 시선을 신경 써야 했고 고아를 노예로 팔 정도의 성품은 아니었다.
수레에 한 포대의 조와 보리를 싣고 집으로 돌아온 에반은 식량을 여러 곳에 잘 숨겨 두었다. 모두 어려운 처지이니 이웃이 어떻게 행동할지 몰라 조심하려는 것이다.
사냥하려고 생각한 에반은 아버지가 쓰던 사냥 도구 중에서 자신이 쓸 만한 것을 찾았다.
무기로 동물을 잡을 수는 없으니 덫을 놓을 준비를 했다.
에반은 아버지에게 배운 사냥 지식과 전생의 상식을 떠올려 끈을 꼬아 올무를 만들고 함정에 세워 둘 나무 꼬챙이를 깎았다.
에반은 동물이 다니는 길만 잘 찾는다면 올무와 함정으로 동물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침이 되자 에반은 죽을 끓여 먹고 스트레칭과 기공을 한 후에 산을 오를 준비를 했다.
이미 오래전에 개척된 콜린 마을의 주위에 큰 몬스터는 없었다.
산에 올라 냄새만 강하게 퍼트리지 않는다면 몬스터와 맹수를 불러들이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래도 에반은 만약을 위해 멀리서 찌를 수 있게 창을 준비하고 단검과 덫을 놓을 것들을 챙겼다.
에반은 가까운 뒷산에 올라 동물들이 다니는 길을 찾았다.
숲에는 작은 동물들이 주로 다니는 길이 있었다. 동물이 다니는 길은 나무와 가지 아래에 있어 사람이 찾기 쉽지 않았다.
에반은 지형과 동물들의 생태를 추측해 동물의 길을 찾았다. 동물들이 다녔던 흔적을 찾자 따라가며 올무를 설치했다.
숲에는 큰 설치류나 토끼와 멧돼지와 사슴 같은 동물도 있었다.
에반은 풀과 나뭇가지 상태를 살펴 동물의 크기를 추측해 올무의 크기와 위치를 조절했다.
원시림에 가까운 숲을 돌아다니자 어린 에반의 체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에반은 지칠 때까지 올무를 설치하고 돌아왔다.
에반은 세간을 팔아 사 온 식량을 아껴 먹는다면 한 달은 버틸 수 있을 것으로 계산을 했다.
지금 여름이니 가을까지는 덫을 놓아 멧돼지라도 잡아야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에반은 아침저녁으로 죽을 끓여 먹고 산을 올라 덫을 설치하고 벌목도로 길을 개척했다.
곧 설치류와 토끼 같은 작은 동물들이 올무에 걸리기 시작했다. 멧돼지 같은 큰 동물도 올무에 걸린 것 같았지만 끈을 간단히 끊고 지나갔다.
에반은 잡은 동물을 가져와 서툰 솜씨로 가죽을 벗겼다. 동물을 처음 해체하는 것이지만 배고픔에 징그러운 생각도 없었다.
‘당분간 큰 동물은 잡을 생각을 말고 작은 동물들을 노려 올무를 늘려야겠군. 너무 주변의 동물을 잡으면 개체수가 급격히 줄지만 일단 이번 겨울은 넘겨야겠지.’
한 달간 올무로 잡은 작은 동물의 고기를 먹고 가벼운 수련과 산행으로 에반은 차츰 체력을 늘렸다.
많은 지식과 고급 무예를 가지고 있지만 어리고 고아인 에반은 당장 생계가 급했다.
에반은 동물들이 올무에 잡혀 들자 미래를 생각할 수 있었다.
에반은 작은 동물들의 무두질한 가죽과 연기에 훈제한 약간의 육포를 가지고 촌장이 있는 만물상에 들렀다.
“알버트 촌장님, 그동안 건강하셨습니까?”
“오, 에반이구나. 요즘 동물들을 덫으로 잘 잡는다는 말은 듣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사냥 기술을 잘 배웠구나.”
개척 마을은 몬스터를 방비하기 위해 주변을 목책으로 두르고 있어 집들이 붙어 있었다. 인구도 얼마 없고 집도 붙어 있어 비밀이 있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