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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계보 1권(13화)
제2장 세련(細漣)(5)
박람회의 전시장은 대동강 한가운데의 능라도(綾羅島) 위에 화려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대동강변을 따라 늘어선 능수버들이 마치 비단을 펼쳐 놓은 듯 미려하여 능라도라는 이름이 붙은 이 섬은, 자연적인 미를 최대한 배제하고 박람회를 위한 인공적인 구조물로 가득 채워져 몇 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장경(場景)이 되어 있었다.
거대한 철골 구조물과 유리로 만들어진 중앙 전시관을 중심으로 뻗어 나간 일직선상의 대동강 맞은편에는 대한제국의 산업기술을 상징하는 200m짜리두 개의 탑동(塔棟)을 포함한 거대한 「제국회관(帝國會館)」이라는 이름의 건축물이 세워졌다.
이것은 런던박람회의 수정궁을 건축적으로 이기고자 하는 한국 정부의 방침으로 막대한 자본금이 부어져 완성된 건물이었다.
능라도 전시장 어디에서나 강 너머를 보면 이 제국회관의 웅장한 모습과 함께, 금수산(錦繡山) 절벽 위 부벽루(浮碧樓)와 을밀대가 보였다.
능라도 섬의 여기저기에는 각국의 특징을 잘 살려 낸 전시관들이 들어서 있었고, 밤낮으로 사람들이 몰려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만국박람회를 맞이하여 능라도로 접근할 수 있도록 놓인 다리는 부러 전통적인 건조방식과 최신 공학을 결합시켜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놓았었다.
이 화려한 전시회에는 평양 시민들뿐만 아니라, 철도를 통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구경꾼들, 거기에 이를 위해 입국한 외국인들까지 그야말로 구름 떼처럼 모여들었다.
만국박람회라는 거대한 유흥거리를 즐기기 위해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시간과 돈을 할애해 평양에서 몇 달이고 체류하고자 찾아온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관건이라면, 런던이나 파리에서 개최되었던 박람회에 비해 더 성황을 이룰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한국 정부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첫날부터 이런 우려는 불식되기에 충분했다. 정확히 집계된 바는 없었으나, 평양 시내의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이었다.
“전선만 깔면 육성을 장거리로 전송할 수 있다고요?”
“정말 대단하기 그지없군. 설마 한국에서 이런 기계를 내놓을 줄은 몰랐는데. 그에 비해 러시아관에는 무슨 차르의 초상이나 걸어 놓고 말이지.”
“그래도 영국관이나 프랑스관은 볼 만하던 걸요.”
박람회장에는 드물지 않게 백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유럽에서도 유한 계층에 속하는 이들은 동양 유람을 겸하여 박람회 기간에 맞추어 한국 땅을 밟았다.
이들은 전시관을 둘러보며 각국의 기술력이나 국력을 견주어 보고서는 문명국과 비문명국의 줄을 세우며 묘한 경쟁심과 쾌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주최국에서 거창한 준비를 한 것이야 당연하지만, 영국 프랑스는 그에 못지않고, 기타 극동과 서유럽의 몇 개국을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는 미개한 전시품이나 늘어놓고 있다는 것이 중평이었다.
심지어 당대의 주요한 국가들 중 하나인 러시아, 폴란드―리투아니아, 오스만 제국이나 일본과 같은 나라들의 전시품들도 이들에게는 웃음거리에 불과했다.
“극동국가들 중에서는 한국관을 제하고 나면 요동관이나 양나라 전시관 정도가 볼 만한 것 같아요. 요동에서는 특히 막대한 돈을 들여서 전시관을 세웠던 걸요? 다른 나라와 다르게 완전히 철골과 유리로만 건물을 지었어요.”
“그, 요동의 성광사에서는 큰돈을 들여서 홍보 겸 최신형의 실제 기관차를 전시관 안에 들여놓았다지 뭡니까.”
“잉카관에는 가 보셨어요? 나는 타완틴수유라고 현판이 적혀 있길래 그 나라가 잉카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가져다 놓은 토산물이라고는 모직물이랑 황금 장신구, 그리고 라마 몇 마리와 목동들이더군요. 그럴 거면 뭣 하러 전시관은 만들어 놓은 건지.”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전시관들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막대한 돈을 들여서 자국 산업을 자랑하는 휘황찬란한 전시관을 지은 국가들에게는 찬사가 쏟아지는 반면에, 국제행사라는 것에 의미를 두고 어렵사리 돈을 마련하여 만국박람회에 참가한 많은 나라들에는 신랄한 혹평이 쏟아졌다. 그러면서도 묘한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 지저분한 심리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들 국가의 전시관을 찾고 있었다.
이렇게 국가 간에 우열을 평하며 돌아다니는 것은 비단 서양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이런 가학적인 쾌감은 본토의 한국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기 나라, 한국이 중심이 된 위대한 박람회의 모습을 보면서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하는 이들은, 어떤 전시관에 들어가서도 그 나라가 자신들보다 어디가 못한지 끊임없이 확인하려 했다.
산업 강대국인 연합 왕국, 프랑스, 요동 등의 전시관에도 굳이 트집거리를 잡아 혹평하는 한편, 아예 한국정부에서 조성한 식민지 전시관에서는 조롱과 비웃음을 서슴지 않았다.
식민지 전시관들은 그 나라 민족과 정부가 직접 참여하여 전시관을 지은 것이 아니었다. 강대국들은 앞다투어 자국의 산업 위용뿐만 아니라, 자기네가 보유한 식민지에 대한 지배를 과시하고자 했다.
한국에서 또한 말레이반도, 동인도제도, 실론 등지를 포함하는 남양식민지의 산물을 전시하는 전시관을 크게 지어 놓았는데, 이곳의 전시 품목에는 원주민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놓고 인종 전시관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각 식민지 별로 나누어진 전시 구역마다, 해당 지역의 풍경을 재현해 놓고 그 안에 해당 지역의 주민들을 헐값에 돈을 주고 데려와서 전통복장을 입고 생활하는 모습을 연기하도록 해 놓았던 것이다.
이 악명 높은 전시에 일부 지식인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국적과 계층을 막론하고 이 박람회를 찾은 사람들은 그러한 전시를 제일 즐겼다.
“남양 깜둥이들이 전시관마다 원시 복장을 입고 전시되어 있다는 데, 한번 꼭 가보지 않으면 후회한다더군.”
“아니, 어떤 전시관에는 다 큰 여자가 가슴을 다 내놓고 있다는데?”
“그게 어디야? 꼭 봐야겠는걸.”
“내가 갔다 와 봤는데 그, 얼굴이 떡판이라서 가슴 봐도 꼴리질 않아.”
“미개족속들이 다 그렇지 뭐. 최근에 그놈들한테 글자를 가르치고 한국어도 교습시키는 방안을 놓고 국세를 투입하니 마니 하는데, 그딴 데 돈을 왜 쓰나. 어차피 가르쳐도 쫓아오지도 못할 반편이들인데.”
“그, 뭐더라? 평양제국대학의 모 교수도 그러지 않았었나? 온대나 냉대 지역의 인종들은 근면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환경이라 열심히 일해 국가를 발전시킬 수밖에 없는데, 그 열대의 야만인들은 과일이나 따 먹고 낮잠이나 자니까 자연스럽게 미개하게 도태된 것이라고. 그게 인종의 진화가 아니겠는가?”
“아, 요즘 유행하는 진화론 말인가?”
“내가 보기엔 맞는 말 같아. 인간도 더 진화된 인종이 있고 그렇지 못한 인종이 있다니까. 그니까 그 남양 미개인들은 인간과 원숭이의 중간에 있는 것이지.”
“가장 위에는?”
“가장 위에는 당연히 한국인이고, 좀 넓게 봐주면 요동 사람이나 일본 사람, 그 다음이 양나라나 월나라 같은 강남인. 서양 백인들은 대충 강남인과 비슷하거나 위에 있고. 그 뒤는 뭐 회교도나 화북인, 몽골 사람이고……. 척 봐도 인종에 서열이 있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소똥으로 불이나 지피는 인도 놈들은 반편이고.”
연합 왕국의 학자 찰스 다윈이 근년에 《종의 기원》이란 책을 내어 진화론을 설파한 뒤, 이 이론은 정작 유럽보다 극동에서 폭넓게 퍼져 나갔다.
인간이 동물에서 진화해 나갔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의 교조적인 종교가 지배적이지 않은 동양권에서, 오히려 이 혁신적인 학술적 업적은 크게 환영받았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그 학술적 의미를 제대로 읽어 내기 보다는 자신들의 우월함을 증명하고자 하는 수단으로 원용하고자 했다.
다윈의 아이디어를 제멋대로 해석한 「사회진화론(社會進化論, Social Darwinism)」이 최근에 유행을 하고 있는 것부터가 그랬다.
연합 왕국의 스펜서가 《종합철학체계(The Synthetic Philosophy)》에서 주장한 사회진화론은 마치 들불처럼 산업국가들 사이에 번져 나가고 있었다.
인간 사회 또한 진화하며, 우월한 사회와 미개한 사회가 있다는 해석이 덧붙여졌고, 이내 한국에서도 자신들의 인종적 우위성을 증명할 방법으로 각광받고 있었다.
계급을 막론하고 만연해 있는 이러한 생각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 바로 만국박람회의 인종 전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었다.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열등한’ 종족들을 보며 대한제국의 국가와 민족이 가진 탁월성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만국박람회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능라도 일대의 대동강변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 외곽의 한 공장에는 쉬는 일요일임에도 남루한 옷차림과 찌든 모습의 노동자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보통 공장은 한 달에 두 번, 격주로 쉬곤 했다. 하루에 12시간이 넘게 일하는 그들의 노동 강도는 세고, 일은 고됐다. 하지만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할 책무가 있는 그들은 몸이 부서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해야 했다. 그 대가로 얻는 것은 겨우 하루의 생계를 간신히 책임질 정도의 금액이었다.
이런 노동자들이 귀한 휴식을 마다하고 공장에 오늘 모인 것은, 바로 이날이 「형제」가 찾아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든 마음껏 쓰고 버릴 수 있는 소모품 취급을 당하는 노동자들을 형제라고 부르는 그 남자는, 언제나 교육받지 못한 이들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간결한 언어로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처음에는 모두들 이 남자를 피했었지만, 이제는 그가 오는 날이면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물론 그 자리에는 불청객들도 빠지지 않았다.
점차 이 남자의 행동이 알려지자 감시 격인 당직 경찰과 공장의 작업반장이 따라붙은 것이다. 그들은 남자의 언행과 노동자들의 반응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남자는 아직 젊었다. 그는 단상에 올라서 앳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힘찬 걸음으로 연단에 올라섰다.
그는 이관휘(李關輝)라는 청년으로, 황성제국대학 철학과를 졸업했으나, 관료나 학자가 될 수 있는 전도유망한 길을 포기하고 노동운동에 합류한 사람이었다.
그는 제국대학 선배이자 운동의 막후 지도자인 구범준의 후원을 받아 황성과 평양 일대에서 노동자 야학을 조직하고, 노동자들에게 계급의식을 불어넣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관휘는 연단에 올라선 뒤 힘이 들어간 눈동자로 빼곡히 들어앉은 남루한 옷의 노동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노동자 형제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정당한 요구를 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우리가 쟁취해야 할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10시간 이하 노동, 매주 일요일은 휴식 보장, 최저 임금 도입, 산재 적용, 체벌 중지, 부당 해고 반대 등 다양한 외침들이 터져 나왔다.
“그렇습니다. 모두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요구를 어떻게 얻어 낼 수 있을까요? 형제 여러분, 오직 노동자계급의 조직된 힘만이 그것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연합 왕국과 프랑스 공화국, 북독일 연방에서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법이 제정되어 실행 중입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일까요? 정부가 베푼 은혜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싸워 왔습니다. 자유, 평등, 우애의 기치를 내건 프랑스 대혁명에서 노동자들이 떨쳐 일어나 구체제를 무너트린 1848년을 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노동자들의 국제 조직인 인터내셔널(International)이 결성되어 노동자계급의 권익을 위하여 국경을 넘어 투쟁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러한 투쟁을 함으로써 우리의 요구를 쟁취해 낼 수 있습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지금껏 우리의 외침을 들어주는 집단이 있던가요? 정부, 정당, 자본, 언론 모두 우리의 외침을 무시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조직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공장 밖으로 나가 우리의 요구를 외칩시다. 지금 평양에는 황제 폐하께서 친림해 계십니다. 황상께서는 폐하의 백성들이 비참한 삶 속에서 계속 두지 않으실 겁니다.”
물론 이관휘는 노동자들의 외침이 황제에게 닿으리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박람회가 성황리에 진행 중이고, 황제까지 평양에 찾아온 지금이야말로 세간의 주목을 받을 절호의 기회였다.
그가 보기에 아직 한국은 노동계급의 단결이 미약하여 독자적인 노동계급의 투쟁은 어려웠다. 그의 선배인 구범준과의 오랜 토론 끝에 얻은 결론이었다.
지금 당장은 자유주의자들과 협력 없이는 원하는 것의 쟁취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노동자들은 그들의 피와 땀을 쥐어짜는 자본가들은 증오할지언정 제국의 어버이인 황제는 진심으로 존경했다.
황제에게 가서 탄원하자는 외침이 그들에게는 자극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발언을 뒤에서 주시하고 있던 경찰이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중지, 중지! 이 무슨 무엄한 소리야! 당장 중지해!”
두세 명의 경찰이 곤봉을 휘두르며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섰다. 단상 위의 이관휘는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큰소리로 경찰을 향해 반박했다.
“대한국 헌법에는 집회와 결사의 자유, 정치적 발언의 자유가 있소.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이 권리를 빼앗겠다는 거요?”
“아, 헌법. 거 좀 배웠다는 선동꾼들이 그런 거 진짜 좋아하지. 그러나 헌법에는 엄연히 국가안보에 위해가 될 경우에 위와 같은 조항들이 금지될 수 있다는 것도 알지? 황공하옵게도 대황제 폐하께서 지금 박람회 친림을 위해 평양에 와 계시고, 내외귀빈들이 다 평양에 모여 있는 상황에서 이런 행동이 안보에 위험이 아니라면 대체 뭐냐? 너는 무지한 노동자들을 꼬여 반란 선동과 존엄한 국체에 대한 변란을 꾀한 현행범이다. 당장 중지하지 않으면 제국안보법 위반으로 체포하겠다!”
이윽고 노동자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오랜 억압과 착취에 지쳐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소외받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 그들은 다수였으며, 그들을 탄압하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