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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계보 1권(11화)
제2장 세련(細漣)(3)


“기왕에 이렇게 되었으니, 너도 손님들과 함께 저녁을 드는 것이 어떠니?”
누이 명신옹주가 슬쩍 옆구리를 찌르자, 김욱은 마지못해 식탁에 착석했다.
“허허, 저희가 이거 큰 폐가 된 것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내심 김욱의 언동이 못마땅했던 고재완 정령이 에둘러 쓴소리를 했다.
“내 언행이 과했다면 사과하겠소. 경우가 없었소이다. 어제의 기념식으로 몸이 많이 피로하여, 예기치 못했던 방문에 그만 날카롭게 굴었소. 언사가 지나쳤소이다.”
사교성이라고는 눈에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김욱이기는 하나, 부러 적을 만들고 경우 없이 행동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들은 누이와 어머니를 통해 공식적으로 집에 초대받은 사람들이었고, 아마도 자신의 초대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쌀쌀맞은 응대를 하니 당황하거나 기분이 나빴을 것이 당연했다.
특히 외교관 신분에 준하는 관전무관이라는 특수한 위치의 사람들에게 불편한 인상을 주어서 좋을 것이 없었다. 김욱은 자존심이 대단한 인물이었지만, 필요한 때에 사과 한마디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그것이 대부분 진심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중간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으니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집안 또한 정갈하고, 준비된 요리 또한 성찬이니 귀한 응접해 주신 것에 대해 저희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따로 준비한 선물은 없으나, 언제고 황성에 들를 일이 있으시면 저나 채 정위를 찾아 주시면 성심껏 대접하겠습니다.”
본래 꽁한 사람이 아닌 고재완 정령도 괜히 김욱의 사과를 물고 넘어지지 않고 웃는 얼굴로 식사를 들었다.
분위기는 한껏 풀어져서, 관전무관들도 감탄하며 잘 준비된 식사를 들고, 저택의 주인인 안혜은 또한 간만의 손님에 활짝 핀 얼굴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손님들과 나누었다.
중간에서 묘한 입장에 처할 뻔했던 채정혁은 그제야 한숨을 내려 보냈다. 괜히 처음부터 초대장에 자기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하마터면 싫은 소리를 자기가 다 뒤집어쓸 뻔했던 것이다.
‘도대체 이 왕자의 심중을 알 수가 없군. 보통 사람이 아니야.’
채정혁은 입안에 잡채를 밀어 넣고선 눈으로는 김욱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는 한 치 흐트러짐 없는 꼿꼿한 자세로 앉아서 기계처럼 식사를 들고 있었다. 가끔 누이나 어머니가 하는 말에 가벼운 고개 끄덕임으로 대응하는 것 외에는 완전히 어떠한 대화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았다.
김욱과 같은 사람이 흔한 것이 아니다 보니 채정혁은 조금은 악취미적인 호기심이 발동했다. 내심 그와 자신을 저울질해 보고서는, 그래도 인간미가 살아 있는 자기 인생이 낫지 않은가 자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은 완전한 조각과도 같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할 사람 같지는 않았다. 신분도 높았으나, 그만큼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을 터였다. 나이도 젊고 머리는 명석했지만, 그 또한 시간이 지나가면 예전 같지 못하리라.
비록 채정혁 자신은 잘생긴 편의 얼굴이기는 했으나 김욱처럼 누가 봐도 경탄할 만한 얼굴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모두 내어 줄 준비는 되어 있었다.
비록 인생 굴곡이 심하고 출생 배경과 성장 과정에서 드리운 그림자들이 그를 지배하고 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인생에 대해 심하게 비관적이거나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지는 않았다. 아마 아주 힘든 때에도 그는 웃음을 짓고자 노력할 사람이었다.
채정혁은 그런 점에서 김욱이 조금은 안쓰러웠다. 분명히 그는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존재는 다른 이들과 동떨어져 있을 때 빛이 나는 것이었다. 마치 천상의 영역에 속한 것 같은 그는 지상으로 내려와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 채정혁은 이미 첫 만남에서 그것을 직감했다.
“왜 나를 쳐다보는가?”
곰곰이 김욱에 관해 따져 보면서 그의 얼굴을 한동안 뚫어져라 본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김욱이 수저를 내려놓고 채정혁을 돌아보며 건조한 목소리로 물어보자, 채정혁은 아차 싶은 기분이 들었다.
“별것 아닙니다. 입가에 뭐가 묻은 것 같이 보여서.”
“……식사나 계속하게.”
얼굴에 묻은 것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는 듯 김욱은 전혀 개의치 않고 식사를 계속했다. 괜한 변명을 했나 싶어 채정혁은 민망했다. 하긴, 그러고 보면 김욱은 식사를 하면서 뭔가를 묻히며 먹을 사람도 아니었다.

순과의 강화조약(講和條約)에 마지막 양국 군주의 도장을 찍는 일만 남겨 놓고 있던 요동국 정부는, 전승 기념식이 끝난 지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급작스러운 압력을 받고 동분서주해야만 했다.
순과 이미 구두로 정전협상을 마친 지 몇 달이 지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완전히 강화조약이 조인되기로 모든 이야기가 끝난 뒤였다. 준비된 조항에 근거해서 이미 순나라 일대에서 영토의 할양, 군대의 주둔, 철도의 관할 등의 문제들이 차근차근 요동국 관료들에 의하여 정지작업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요동국 주재 한국 고등판무관(高等辦務官, 대사에 상당)에 의해서 전방위적인 외교적 압력이 들어온 것이었다. 한국만이 아니었다. 한국의 요청을 받고 지금은 손을 놓았지만, 장기적으로 순나라를 자기의 영향권으로 보고 있는 양나라는 물론 요동의 오랜 숙적 러시아 제국 또한 공식 외교 서한을 통해 강화조약안의 조정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었다.
이른바 「삼국간섭(三國干涉)」이었다.
전쟁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요동국으로서는 외교적 마찰을 감수했다가 각종 제재라도 가해질 경우에 잃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때문에 외교가의 고급 관료들이 총동원되어서 이 압박의 강도를 타진하고, 어느 선에서 양보해야 할지를 밤새워 논의하기 시작했다.
“천진 일대의 할양은 절대 사수해야 합니다. 이건 양보할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사실상 천진은 이미 한 세기 가까이 우리나라의 항구나 다름없었어요. 천진 호적부에 기족 요동국적 인구만 해도 절반에 가깝습니다. 더군다나 북방의 주요 거점 도시인 북평을 지리적으로 압박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고 말입니다. 이미 이 지역에 진출해 있는 우리 자본이 투자한 산업들도 보호해야 합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충분히 문제를 인지하고 있으며, 동의합니다. 지금 한국이나 양나라에서 계속해서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것이 바로 산동조차 문제입니다. 이미 순나라와는 산동반도 전역을 향후 3년 내에 공식적으로 반환까지 99년 기한으로 우리측에 조차하기로 합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서 외교적인 압박이 들어온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 국민들이 전승의 당연한 결과로 산동반도를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미 여순 등지에서는 산동 이민을 알선하는 자들까지 등장했다고 합디다. 이거 양보했다가는 전후 처분 문제에 대해 여론이 들끓을 수도 있어요.”
“……사실 국가 전략적인 판단 하에서 산동 반도 전역을 조차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실익이 없어서 양보할 만한데 말입니다.”
“산동을 확보하고자 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발해만을 우리 내해로 전용하고자 함인데, 사실 이미 위해위와 교주만을 이미 우리 군항으로 사용한지 백 년 가까이 되어 갑니다. 이 두 주요 지점만 본래대로 쥐고 있어도 사실 정부에서 계획하는 발해에 이은 황해의 전방위적인 해상 통제의 목적도 달성하는 데 큰 지장은 없다, 이 말입니다. 더군다나 이 두 지역으로 들어가는 간선철도만 우리가 쥐고 있어도 사실 면으로 된 산동 반도의 땅덩어리는 별 실속이 없어요.”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국민감정이 그걸 용납하지 못한다는 거지요. 그렇게 대승을 거두고서 눈에 띄게 얻는 것이 고작 천진이라면 이걸 보고 있지만은 않을 거란 말입니다. 우리야 전략적인 입장에서 군대 주둔이나 철도 장악, 임업권 확보 등을 고려하지만, 국민들은 그게 아니에요. 땅덩어리를 뚝 하고 가져와야, 아, 우리가 제대로 순나라를 이겼구나, 하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한 내무아문(內務衙門) 관료의 말에 다른 이들은 일순 침묵에 빠져들었다. 특히 한국과 양나라의 요구를 수용하여 산동만 깨끗이 포기하자고 주장했던 외무아문의 관료들은 더 이상 양보론을 주장하기가 힘들었다.
그들도 요동의 국민감정이 어떠한지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승을 거두었다고 전국에 선전하며 성대한 개선식까지 치렀다. 그런데 이제 와서 막상 강화조약에 도장을 찍고 나니 산동 반도를 얻지 못한다고 하면, 그야말로 김빠지다 못해 분노를 일으키는 꼴이 될 것이었다.
원래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얻을 것을 확신하고 있다가 잃게 되면, 본래 있던 것을 빼앗긴 것 이상으로 화가 치밀어 오르는 법이었다. 더군다나 전쟁으로 고양된 국가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국가와 자신을 일체화된 몸으로 여기고 있는 많은 국민들이 산동 반도를 얻지 못하게 된다는 소식에 자기 집 소를 빼앗긴 것처럼 들고 일어날 것은 자명했다.
관료들은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뚜렷한 해답을 내어놓지는 못했다. 그들은 으레 그래 왔듯이, 결국 이 문제가 최종적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 국왕의 앞으로 보고서를 올렸다.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려도 분수가 있지.”
꽤나 두껍게 작성된 보고서를 천천히 훑어보고서, 요동국왕 김호는 노기가 잔뜩 실린 음성으로 한마디 감상을 내뱉었다.
그는 한 번 혀를 끌끌 차고서는, 옆에 놓여 있는 타구(唾具)에다가 가래침을 뱉고서는 화를 다스리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그러나 좀체 화가 가라앉지 않았는지, 가만히 거친 호흡을 뿜어내던 국왕은 보고서가 올라와 있던 탁상을 엎어 버렸다.
“이놈의 자식들이……!”
국왕의 일갈에 깜짝 놀란 일직관리들이 헐레벌떡 뛰어와 왕에게 허리를 조아렸다. 국왕은 그제야 자신이 잠시 침착함을 잃은 것을 알고 손을 내저었다.
“별일 아니다. 오늘은 그만 잠자리에 들겠으니, 내일 오전에 영의정, 좌의정, 그리고 외무아문과 내무아문의 대신들을 궁궐로 들라고 하라.”
“예. 전하.”
다음 날이 되자마자, 국왕의 명을 받은 대신들이 궁궐에 들어와 김호의 면전 앞에 섰다.
국왕 김호는 빠져나갈 궁리를 더 이상 따져 보지 않고, 간략하게 산동반도의 조차를 주장하되 실행하지 않는 방향으로 타협하라고 대신들에게 주문했다.
물론 그 또한, 한국이나 양나라에서 산동에 대한 권리를 공식적으로 포기하라고 조문화할 것을 요구할 것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내적 사정에 비추어서 최대한 양보할 수 있는 선은 공식적인 산동반도의 조차권에 대해서는 주장을 하되, 실질상으로 이를 집행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것은 대내적으로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였다.

***

1861년, 건흥 4년 7월, 평양.
세계 최초의 철교인 대동철교 건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평양 만국박람회가 개최되었다. 연합 왕국과 프랑스에 이어 세 번째로, 또 동양에서는 최초로 한국이 주최하는 박람회였다.
1838년 수정궁으로 대표되는 최초의 박람회가 런던에서 성황리에 개최된 이후, 동양의 번영하는 산업 국가인 한국과 양 등지에서도 만국 박람회의 개최를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전쟁에 발목이 잡혀 개최가 연기되었다. 그러다 마침내 대동철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박람회가 한국 공업의 심장, 평양에서 열리게 된 것이었다.
“……우리는 이제 강철로 놓은 다리 위로 힘찬 철마를 달리게 하고, 전신은 사방으로 뻗어 제국 사방의 끝에서 서로 소식을 전하는 데 단 하루도 걸리지 않습니다. 방직기는 면직물을 뽑아내고, 용광로에는 철물이 부어지며, 바다로는 거대한 기함을 띄우니, 역사 이래 이러한 시절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세계가 하나로 묶이는, 인류 역사에 유래 없던 새로운 지점에 서 있습니다. 오늘의 박람회는 이제 구태한 과거와 결별하고 인류의 산업과 문명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가 되어 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려 오늘, 이 영광스러운 철탑의 광장에 모여 주신 내외귀빈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황공하옵게도 이 자리에 친림하여 주신 황제 폐하께 특별히 제국의 영광을 감히 바치고자 합니다.”
제국의 산업을 찬양하는 휘황한 언어로 다듬어진 축사를 나열한 공부대신(工部大臣)이, 최고 귀빈석에 앉아 있던 황제를 바라보며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동서(東西)가 절충된 양식의 화려한 제복을 차려입은 젊은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내 좌중이 모두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여 황제에게 경의를 표했다.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한 박람회장의 군중들을 바라보며 황제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