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제국의 계보 1권(9화)
제1장 풍운(風雲)(6)
“군복을 입고서 이런 행동이 용인될 것이라 생각했나. 연약한 부녀자를 겁박하는 것은 군법으로 엄정히 다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아, 진짜. 간부들이야 보수도 짭짤하고, 집안도 넉넉하시겠지만 우리 같은 일반 잡병들은 전쟁터에서 목숨 팔아가며 얻는 게 전부지 말입니다. 전쟁도 이겼겠다, 이 정도 재미를 보는 건 한 번 허락해 주시지 말입니다?”
“너희 같은 쓰레기들이 있기에 순의 백성들은 요동군을 증오하고 있다. 이런 장면을 목도하고도 바로잡지 않는다면, 요동군의 장교 된 신분으로서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험한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잘못을 시인하고 조용히 견책을 받아들여라!”
“아, 시발 진짜! 귀족 나리가 전쟁터 나와서 칼 한 번 휘둘러보니 눈에 뵈는 게 없나 보네…….”
“하극상을 하겠다는 소리인가?”
요동군의 젊은 장교 한 사람이 군복을 대충 입은 병사 네 명을 향해 일갈하고, 한쪽에는 젊은 여성 둘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보아하니 상황은 뻔했다. 네 놈이 부녀자들을 겁간하려고 했고, 그것을 저 장교가 발견하고 막으려 하는 것이었다.
어설픈 억양의 한국어를 보건대 그 네 명은 화북 출신의 용병들 같았다. 요동군에는 적지 않은 수의 화북 출신 병사들이 있었고, 이들은 평상시에 북평에 주둔하는 요동군 병사들이었다.
이들은 요동군의 화북 진격에 안내자 역할을 충실히 하며 요동군을 인도했다. 그러나 그들의 전반적인 군기는 좋지 않았다. 애초에 돈을 보고 전쟁에 뛰어든 자들이니 만큼 약탈은 기본이었다. 요동군은 그들이 필요한 만큼 방종을 일부 묵인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저쪽은 겨우 한 사람이 아닌가? 채정혁은 일단 싸움부터 말려야겠다 싶어 말에서 내려 앞을 가로막았다.
“이보시오들, 불필요한 싸움은 삼가시오!”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난입에 일곱 명의 눈길이 일제히 채정혁에게 꽂혔다.
“이건 또 무슨 지랄 맞은 병신이야? 다치고 싶지 않으면 갈 길이나 가시지?”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이따위 기강 해이를 더 이상 용납하고 볼 수 없다. 다치고 싶지 않으면 명령에 복종하라. 너희들의 상관과 직접 대면해야겠다.”
청년 장교는 화난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표정을 일그러뜨리지도 않았다. 채정혁이 느끼기에는 이상하리만치 건조하고 사무적인 어조였다. 그가 보기에 이건 의협심이나 불행한 순나라 백성에 대한 위무(慰撫)의 자세는 아니었다. 그야말로 철저하게 군대의 원칙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처럼 보였다.
채정혁이 의아해 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이 장교는 그를 바라보면서 짧게 경고를 던졌다.
“이것은 요동군 내부의 문제이니, 외부인인 자네는 간여치 말도록.”
‘자네? 나한테 하는 말인가?’
채정혁이 그 장교를 바라보니 새파랗게 어린 청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상의 사내에게 하대를 한다는 것이 기묘하게 만큼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잘생긴 용모의 그는 딱 봐도 곱게 자란 귀공자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알 수 없는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 뭐라고 항의를 하려던 차, 겁간을 하려던 병사들이 이죽거리면서 군도를 빼어 들었다.
“야, 병신들 지랄도 꼴값이다. 어차피 우리 오늘 지나면 해산이거든? 좆나 몇 푼 안 되는 봉급도 받았고. 이제 요동군도 아니라고 시발!”
“좆만한 새끼가 뒤져봐야 정신 차리지. 너 하나 좆 되게 만들고 우리 그냥 째면 그만이거든? 이 좆나 넓은 대륙을 뒤져서 우리를 찾아낼 거 같아?”
네 명은 채정혁을 밀치고 젊은 장교를 에워쌌다. 주변에는 도와줄 사람도 없고, 야음(夜陰)은 짙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위협적인 상황에서도, 말에 올라탄 채 냉소를 머금고 있는 장교의 모습은 거만해 보일 정도로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아니, 대체 어쩌려고…….”
“자네는 끼어들지 말라니까.”
당연하다는 듯이 또 흘러나오는 반말에, 채정혁은 한편으로는 아니꼬우면서도 걱정된 마음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도와주고 싶어도 자신의 격투 솜씨가 형편없다는 것을 아는 채정혁은 여차하면 총을 뽑아 위기를 넘길 생각이었다.
“뒤져 좆만아!”
그것은 한순간의 일이었다. 젊은 장교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달려드는 놈을 칼등으로 뒷목을 쳐 쓰러트리더니 곧바로 뛰어올라 두 번째 놈의 면상을 가격했다. 이윽고 칼을 재빠르게 휘둘러 두 놈의 팔과 다리를 베어 쓰러트렸다. 전광석화와 같은 움직임이었다. 마치 어른 하나와 아이 넷의 싸움 같았다.
농락에 가까운 싸움이 끝나고 네 명 모두 쓰러진 것처럼 보였던 그때, 한 놈이 총을 집어 장교의 뒤를 노렸다. 채정혁은 무어라 외칠 틈도 없이 권총을 뽑아 쏘았다.
탕!
찰나의 위기 속에서 채정혁의 총알이 먼저 그자의 손등에 박혔다.
“고맙네. 아무리 비열한 자들이기로서니 등 뒤에서 총을 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네. 한 번에 제압하지 못하다니, 나도 아직 부족한 점이 많군…….”
젊은 장교는 혀를 차며 군복에 묻은 흙을 털었다. 그들이 싸우는 사이에 이미 두 여성은 자리를 피해 사라진 뒤였다. 이 젊은 장교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큰 낭패를 보았을 것이다.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시오? 솜씨가 대단하군요.”
채정혁은 이 조숙해 보이는 장교의 실력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한국군 장교 중에 이런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보아하니 단순히 군사학교에서 가다듬은 정도가 아니다. 실전을 통해서 갈고닦은 날카로운 실력이었다.
“전쟁터에서 제 한 몸 건사할 정도의 검술은 장교의 기본 소양이네.”
그는 말에 다가가 줄을 꺼내 쓰러져 있는 놈들의 손에 묶어 연결했다.
“미안하지만, 자네가 수고 좀 해줘야겠군. 나 혼자 이놈들을 다 묶어 갈 수 없는 노릇이니. 도와주게.”
이리하여 채정혁은 그와 정주까지 얼떨결에 동행하게 되었다, 말 뒤에 두 명의 사내를 연결해 놓고서.
채정혁은 가만히 이 젊은이를 쳐다보았다. 옆에서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사람들 위에 올라선 권위가 타고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곱상한 얼굴에 연약해 보이는 몸에서 어찌 저런 힘이 나온 것일까? 그때 장교가 입을 열었다.
“권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평범한 사람은 아니군. 말투는 서울 방언이고. 한국군 장교인가?”
“아, 전 한국군 관전무관단의 채정혁 정위입니다. 귀관께서는…….”
“그렇군. 나는…….”
그때 길 반대편에서 흙먼지와 더불어 한 사내가 말을 달려오더니 이내 상대편을 알아보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는 김욱의 부관인 지창명(池彰明) 대위로, 김욱보다 대여섯 살쯤 나이가 많은 청년 장교였다. 장교로 임관될 때부터 이미 뚜렷이 부각되는 능력을 보여준 그를 눈여겨 보았던 국왕 김호가 직접 김욱에게 붙여준 자였다. 그는 항상 지근거리에서 김욱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군 나리, 대체 어딜 혼자 가신 겁니까! 아직 적의 잔군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나는 군인 신분이니 관등성명으로 부르라고 몇 번을 더 일러줘야 하나.”
“아니, 그런데, 이자들은?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군 나리라는 말에 채정혁은 귀가 번쩍 뜨였다. 채정혁은 무릎을 치며 자신의 둔한 감을 탓했다. 매우 헌앙하고 귀티 나는 얼굴을 봤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이번 전쟁에서 가장 이름을 날린 사람이 바로 자신의 앞에 있는 이 장교가 아닌가.
“말이 끊겼군. 반갑네. 나는 요동군 제3근위기병연대장 김욱일세.”
여전히 무표정하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채정혁은 김욱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스쳐 지나가는 느낌을 받은 것 같기도 했다.
멀리서 정주성의 허물어진 성채와 그 앞의 요동군 둔지에서 올라오는 연기가 보이고 있었다.
1860년 가을, 요동과 순의 짧은 전쟁은 완전히 끝이 났다. 채정혁의 나이 스물다섯, 김욱의 나이 열아홉이었다.
제2장 세련(細漣)(1)
「세계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새로운 사회, 즉, 새로운 시장이 서양에서는 지금껏 버려진 땅이었던 지역에서, 동양에서는 구세계의 전통적으로 기름진 땅에서 날이면 날마다 솟아나고 있다.」
―필로포노스(philoponos),
《1851년 만국박람회: 세계의 공장, 세계의 부(富)를 진열하다(The Great Exhibition of 1851 ; or the wealth of the World in its Workshops)》
「도처에 야만적인 무관심, 한편에서는 냉혹한 이기심, 다른 한편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비참함, 도처에 사회적 전쟁에 널려 있고…… 곳곳에 법의 비호 하에 약탈을 일삼는 약탈자들이 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잉글랜드 노동계급의 상태(Die Lage der arbeitenden Klasse in England》
「만약 그들(빈민들)이 생존하기에 충분히 완벽하다면, 그들은 생존할 것이고 그들이 살아야 하는 것은 잘된 일이다. 만약 그들이 생존하기에 충분히 완벽하지 않다면, 그들은 죽어야 할 것이고 또 그들이 죽어야 한다는 것은 가장 잘된 일이다.
……그 평균적 효과는 이런 면 혹은 저런 면에서 본질적으로 결점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사회를 정화하는 것이다.」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사회정학(social statics)》
1860년이 저물고 1861년의 새해가 밝아왔다. 지난 가을 순나라에 대하여 거둔 전승(戰勝) 분위기에 아직 요동산하는 들떠 있었다. 전후 주둔을 위해 순나라 각지에 남게 되는 3만여 병력을 제외한 남은 병력들은 요동 본토로 개선하여 돌아왔다. 전몰자에 대한 추념(追念)보다는 전승을 기리기 위한 축배(祝杯)가, 전쟁 때문에 잃게 된 많은 목숨보다는, 얻게 된 옥토(沃土)에 대한 환호가 거리를 뒤덮고 있었다.
전승 분위기를 더욱 타오르게 한 것은, 그 해가 요동국왕 김호의 즉위 50주년이라는 점이었다.
전승 기념식과 함께 국왕의 어극(御極) 50주년 기념식이 함께 치러지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미 정초부터 이 준비를 위해 심양부 내성의 왕부(王府) 앞 광장에는 차례차례 조형물과 가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15세기에 조성되어 세월의 때를 타면서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요동의 중심으로서 상징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왕실 문장인 목화문(木花紋)이 선명하게 좌측 상단에 자리하고 있는 흰색과 푸른색이 조합된 요동국의 국기가 광장에 휘날리고 있었고, 그 좌우로 요동군의 군기(軍旗)와 국왕이 궁정에 주재 중임을 나타내는 어기(御旗)가 함께 휘날리고 있었다.
이 뒤로 높게 전승 및 어극 50주년 기념식을 위한 연단이 이미 세워졌고, 이 연단으로부터 일직선상의 광장 중앙에는 이미 오래전 압록강 유역에서 발굴하여 가져와 국가의 기념비로서 세운 광개토왕릉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비석은 자신들의 연원을 고조선으로부터 이어지는 요동의 역대 반유목국가들에게서 찾는 요동의 민족적 상징이 되어 있었다. 호태왕은 고구려의 심지어 광개토대제(廣開土大帝)라는 극존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일부 민족주의자들은 이 광개토왕을 국가 주화에 새겨 넣어야 한다고 탄원하기도 했었다.
여하간 요동의 국가적 단결을 상징하는 전시장이나 다름없는 이곳이 바로 요동의 빛나는 승리와 국가적 업적을 기념하는 제전의 장이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