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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계보 1권(5화)
제1장 풍운(風雲)(2)
「상뎨(上帝)는 우리 황뎨를 도으
셩슈무강(聖壽無疆)
옥듀(海屋籌)를 산(山)갓치 으시고
위권(威權)이 환영(環瀛)에 치사
오쳔만셰(於千萬歲)에 복녹(福祿)이
일신(日新)케 소셔
상뎨(上帝)는 우리 황뎨(皇帝)를 도우소셔」
열렬한 민족적 의식과 애국의 의지를 고취시키는 분위기는 점차 달아올랐다.
사람들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철옹성 같은 전함을 보면서, 그 전함이 저 멀리 뻗어 갈 남양(南洋)의 식민지들을 떠올렸다.
비록 연합 왕국과의 두 차례 전쟁에서 패배하고 일시적인 불황이 도래했다 하나, 제국의 번영에는 큰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들의 조국은 지난 수 세기에 걸쳐서 세계를 호령하던 강국 중 하나였으며, 지금도 예전 못지않은 동양의 맹주였다.
그들은 바다를 지배하고, 섬을 지배하고, 산업을 지배하고 있었다. 도독부들이 독립하고, 지난 시절의 제국은 해체되었으나, 새로운 제국이 그 뒤를 이어 달려가고 있었다.
말레이반도와 실론 섬은 여전히 제국의 주요한 식민지로 남아 있었고, 남양을 향한 제국의 지배력은 여전했다. 태평양을 제국의 상선과 군함들이 쉬지 않고 누비고 있었으며, 동서양을 막론하여, 러시아의 북방항구 아르항겔스크로부터 일본령 호주의 미츠가사키(三ケ崎)에 이르기까지 제국의 산품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비록 소소한 후퇴와 패전이 있을지언정, 그 어느 것도 위대한 제국의 체신에 조금 흠집이 될 수는 있어도 이 모든 영광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적어도 지금 그 식장에 나와서 애국주의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사람들 마음속에서 제국과 자신은 한 몸으로, 그 영광을 몸소 체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조장된 이러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꼭 그러한 분위기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단상 뒤 귀빈석에 앉아서 이 장관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던, 한 정정한 노인이 곁에 있는 장년의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를 바닥에 두드리며 못마땅하다는 듯이 입술을 움찔거렸다.
“이보시게, 석파(石坡).”
“예, 추사(秋史) 선생님.”
노인은 전 내무대신으로 시대의 명필이자 고고학자로서도 명성이 자자한 김정희(金正喜)였다.
그는 옛 김조순 내각에서 내무대신을 지내며 북해에 대한 강경책을 주장했으나, 1840년 합방기념식 테러 사건 이후 북해도지사로 파견되어 북해의 실상들을 체험한 이후 온건파로 전환, 북해에 대한 양보 정책을 주장했었다.
결국 그는 강경책을 고수하는 김조순과의 마찰 끝에 보수당을 탈당하고 연합당에 합류, 〈북해권익법〉의 입법을 주도했다. 이후 북해의 소요가 안정되자 그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정계에서 은퇴하고 자신의 취미인 금석학(金石學)에 몰두하여 옛 삼국시대의 비석들을 발견하고 해독하는데 열정을 다 하고 있었다.
“자네는 진정 북해가 내지와 완전한 일치를 이뤘다고 생각하는가? 북해로부터 천 리 떨어진 이곳에서 백 번 말로만 이를 칭송하면 무엇하는가, 글쎄…… 겉만 보면 근사해 보이긴 하지. 그런데 실상은 도무지 그렇지 않다는 말이야.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속에서 북해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은 몇이나 될지.”
김정희는 지팡이 끝으로 연단 가까운 자리에서 열렬히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는 김좌근을 가리켰다.
“저기, 저 하옥한테 굽실거리는 북해의 대표란 작자들이 참으로 650만 북해인을 대표할 수 있는가? 정부에는 단견의 소인배들이 판을 치고 있고, 의회에는 이권에 취한 모리배들만이 들끓고 있으니, 이 나라 꼴이 앞으로 참으로 볼 만하겠군그려!”
김정희의 이죽거림에, 석파라 불린 사내는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응답했다.
“선생님께서 이를 바로 잡아주셔야지요.”
옛 제자의 대답에 김정희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토했다.
“내 나이 일흔다섯이야. 난 이미 정계에서 물러난 몸인데다가, 살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그런데 나라 앞날이 걱정되는 건 어찌할 수가 없군……. 석파. 자네 같은 후인들이 이 나라를 바로잡는 데 애를 써주어야 할 걸세. 김좌근이 같은 노추가 행패를 벌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야. 때가 오면 기회가 올 걸세.”
“선생님, 그 무슨 말씀을…… 만수무강하셔야지요.”
미묘한 표정으로 김정희를 바라보는 장년의 사내는 다름 아닌 추밀원 의원이자 예산백 이하응으로, 김정희는 그의 글씨와 그림 스승이면서도 정치적 은사이기도 했다. 그는 어느덧 마흔한 살의 장년이 되어 명예로운 추밀원의 일원으로 있었다.
비록 이하응은 실권 없는 명예직인 추밀원 의원이었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권력에 대한 야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젊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한량으로 귀족 사회에 알려져 있었으나, 나라와 인민보다 파당과 이권을 쫓는 정계의 주도자들을 경멸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앞날을 위한 나름의 비책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진수식이 끝난 후에도 식장에선 오찬과 더불어 참석자들의 대화가 계속되고 있었다. 정치에 대한 이야기, 투자에 대한 이야기, 세계정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황성의 기방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들의 시시콜콜한 잡담에는 끝이 없었다.
실상 정부 고관이나 귀족, 혹은 지역의 유력자라는 사람들의 생활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소위 이러한 사교 활동을 빙자한 친목 도모였다.
이들은 자기들끼리 끈끈하게 뭉쳐서 권익을 사수하는 것에는 민감했다. 그런 만큼 실질적으로 중요한 결정들도 이러한 시답지 않은 사교 모임에서 이루어지기도 일쑤였다.
한 장교가 연회장에 들어온 것은, 이러한 술을 겸한 정찬이 무르익어 가던 시점이었다. 그는 절도 있는 발걸음으로 육군대신 하일오(河壹吳)에게 다가와 전신 내용을 옮겨 적은 군용 전보(軍用電報)의 용지를 내밀었다.
하일오는 이를 잠시 꼼꼼히 읽어 보고서는, 장교를 물려 보내고 황급히 자리를 일어나 김좌근에게 이를 전했다.
그 전보의 내용을 살펴본 김좌근은 고개를 끄덕인 후 주변에 있는 대신들을 손짓으로 불러 모았다.
“성경에서 날아온 급전이외다. 요동 정부가 순을 향하여 군을 출정시켰다고 합니다.”
수상 김좌근의 말에 좌중이 이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삼삼오오 쑥덕거리면서 갑작스러운 소식에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라 했다.
“요동이? 러시아와 평화 조약을 맺은 시점에서 이미 예상된 일이긴 하지만…….”
“요동놈들 입장에서도 실익 없는 북륙에서의 국경 분쟁보다야, 화북에서 얻어낼 것이 훨씬 많겠지만 말입니다.”
“뭐, 여러 해 안에 이런 사태가 터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야 기정사실이고, 문제는 얼마 만에 승리할 것인가요.”
“요동이 화북 제패에 얼마 걸리는지 내기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거야말로 관전거리 아니겠습니까.”
“자꾸 요동이 활개 쳐서 우리 한국에 좋을 게 뭐가 있을까요.”
“요동이 이기는 거야 좋은데, 그 후에 그들이 순으로부터 얼마나 뜯어 갈지가 중요하지요. 근자에 요동의 기고만장함이 분수를 모를 정도입니다.”
“사실상 내륙국인 주제에 무슨 식민지를 운영한다고 남양까지 기웃거리니. 허 참. 애초에 제멋대로 독립을 자청하고 있는 꼬락서니도 우스울 지경인데!”
“무엇보다 국내에서 설치는 요동 자본이 문제요. 제국의 시책에 충실한 내지 자본도 많은데, 어찌 성광사 따위가 저리 나대는지…….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어요.”
“언젠가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 합니다. 요동이야 그 뿌리가 우리 제국에 있거늘, 옛 주인도 몰라보고 날뛰기만 한다면 한 번 크게 혼을 내줘야지요. 아니, 애당초에 우리 정부는 요동의 독립을 일체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가 없지 않습니까? 그놈의 요동왕이라야 어쨌든 우리 황상 폐하의 조막만 한 신하들 중 하나였을 뿐인데, 언제부터 저렇게 대단한 나라였다고 열강들 사이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자 덤비는지. 허허.”
한 대신의 호쾌한 말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요동군이 비록 강하다 하나, 요동은 한국에 비하면 훨씬 격에 떨어진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제아무리 새끼 범이 자란다 한들, 어미 범 없이는 혼자서 겨울을 날 수 없는 법이다. 제국의 중진들이 바라보는 요동은 꼭 새끼 범 짝이었다. 한때 제국의 우산 아래에 있을 때는 이런저런 단물을 받아먹고 곱게 자랐을지 모르겠지만, 제 멋대로 뛰쳐나간 이상 그에 따른 혹독한 고난도 감수를 해야 할 터였다.
요즘 같은 세계의 만국이 앞으로, 앞으로 경쟁하는 난세는 이를테면 전례 없는 혹독한 겨울이었다. 세계 제일의 해군을 자랑하던 대한제국도 인도양 전역에서 연합 왕국에 패퇴해 물러나는 일을 겪기도 하는 것이 요즘의 일이었다.
마치 옛 춘추전국의 시대처럼 열강들은 합종연횡하며 서로를 물어뜯고, 약자를 집어 삼키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인근에 우호국 하나 없는 요동이 제멋대로 군다면 긴 겨울을 나기 힘들 터였다. 적어도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생각은 그랬다.
그러나 그 새끼 범이 지금은 썩 많이 자라 있음을 눈치채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요동국 성경부에서 긴급히 타전된 소식에 연회장이 술렁이는 동안, 그 바깥은 귀빈들을 보호하기 위해 병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비록 근자에 북해 독립 세력의 공격이 잠잠해졌다지만, 20년 전 영안부의 참사를 기억하는 이들로서는 행사의 안전에 만전을 기울여 엄중한 경비 태세를 갖추고자 했다.
그러나 차양막이 설치된 연회장과 달리 8월의 뜨거운 햇볕을 그대로 받는 경비병들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후끈 달아오른 조선소의 바닥으로부터 태양의 복사열이 고스란히 군복에 부딪히며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하아, 정말 덥군.”
행사장 경비를 맡고 있는 스물다섯의 젊은 장교 채정혁(蔡政革) 정위(正尉)도 그중 하나였다. 군인답지 않은 부드럽고 이지적인 용모를 가진 사내였다. 깔끔하게 자른 수염이 날카롭게 솟은 콧날 아래에서 전체적으로 잘생긴 용모를 더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군모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몇몇 귀부인의 눈길을 사로잡게 할 만큼 눈에 띄는 편이었다.
키는 평균보다 조금 큰 정도였으나 균형 잡힌 체격과 말끔한 군복이 그 몸 위에서 태가 살았다. 그러나 그의 똑 부러지는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눈가에는 짜증이 가득 밀려와 있었다.
‘전쟁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저들 중에 전장의 비참함을 아는 이가 도대체 몇이나 될까. 아무리 남의 집에 불이 났다지만 저리 태평하게 몇 명이 죽어 나갈지, 요동이 얼마나 빨리 이길지를 한가하게 논하고 있다니.’
채정혁은 어느새 다시 활기차게 전쟁을 남 이야기하듯이 말하고 있는 행사장 안을 흘긋 쳐다보았다.
그는 불과 2년 전에 인도에서 겪은 전쟁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었다. 전장의 자욱한 화약 연기가 그에게는 아직 생생했다. 아직 20대 초반의 갓 임관한 애송이 장교에 불과했던 그는, 전쟁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때 처음 경험해 보았다.
나라를 위해 죽이고 죽는 일, 곧 위국헌신(爲國獻身)이 군인 된 자로서의 본분이라고 하나, 도대체 그 전쟁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묻는다면 누구 하나 속 시원히 답해줄 자 없을 터였다.
‘제국의 영광,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비록 그는 운이 좋게도 살아남아 공훈을 세우고 영웅 대접을 받으며, 이른 나이에 정위 계급에 올랐지만, 적지 않은 전우들이 머나먼 인도 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그 대가로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동작나루 인근에 조성된 국립묘역에 빼곡하게 새겨진 이름뿐인 비석들이 대가의 전부였다. 다들 그렇게 석판 위에 정과 끌로 석 자 이름만을 남겨 놓았을 뿐이다.
대부분이 전쟁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그 아수라장 속에서 젊은 청춘을 바쳤을 터였다.
채정혁 자신부터가 원해서 군인이 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생부(生父)가 15년 전에 반역 사건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서명이 아니었다면, 그는 아마도 평범한 직업을 선택해 인생을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홀아버지가 죽은 후에 첩자로서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당하고 말자, 먼 친척집에 양자로 들어가 부득이하게 이름과 신분을 세탁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양부모는 좋은 사람이었으나, 모아둔 재산이 없었고, 집안은 항상 빈궁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과 10살 터울의 어린 여동생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 의식, 그리고 양부모의 은혜에 대한 부채 의식이 그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어린 그가 생계를 부양하면서도 입신양명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은 군대밖에 없었다. 일찌감치 군인이 되기로 자의 반 타의 반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고, 그는 소학교를 마치자마자 육군 유년학교에 진학하여 죽은 생부처럼 직업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가 군인이 되고서부터 늘 아버지의 그림자는 그의 주변을 어른거렸다. 군대는 아버지가 인생을 바쳤으나 버림을 받은 곳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간첩죄에 연루된 것은 모함이라고 내심 믿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증거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