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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마경 1권(24화)
九章 생환(生還)(2)


단현의 머릿속은 여전히 자신의 미래에 관한 일들로 복잡하기 짝이 없었지만 단현의 걸음은 그와 상관없이 느긋하게 계속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삼청산의 중턱쯤 내려오자 작은 산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고작 스무 채도 넘지 못하는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삼청촌이라는 조그만 산촌 마을이었다.
삼청촌이 눈에 들어오자 단현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
이제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단현의 손이 부드럽게 자신의 얼굴을 스쳐 갔다.
그러자 단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단현의 얼굴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선이 가는 편이었다.
얼핏 스쳐 보면 여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고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단현의 의지가 그려지면 필설로 형언하기 힘든 마력을 갖춘 얼굴이 되었다.
한번 보면 뇌리에 깊게 각인될 정도의 미남자.
그것이 단현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변화된 단현의 외모는 전체적으로 선이 굵었다.
거친 느낌이 물씬 묻어나 호쾌한 기상이 엿보이는 듯했다.
단현이 이처럼 순식간에 외모를 바꿀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천변용안이라는 인피면구 때문이었다.
천변용안(千變容顔).
착용자의 의지에 반응하여 순식간에 외모를 원하는 어떠한 모양으로도 바꿀 수 있는 희대의 물건이었다.
과거 불세출의 지략가로 알려졌던 귀모(鬼謨) 기광이라는 인물이 남긴 삼대 귀물(貴物) 중 하나였다.
기광은 계략을 꾸미는 것을 너무 좋아하여 발길 닿는 곳곳마다 풍파를 일으키며 다녔다.
때문에 그와 원한 관계에 빠진 여러 문파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복수를 위해 기광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기광이 죽을 때까지 그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이는 천변용안이라는 만변의 힘을 가진 인피면구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도 또는 눈앞에 그를 두고도 알아볼 수 없었으니 기광은 그토록 많은 적을 만들고도 결국 천명을 다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광의 사후 삼대 귀물도 함께 모습을 감추었는데 뜻밖에도 이 물건을 제갈유가 소유하고 있었다.
천변용안처럼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에 유용한 물건도 없었다.
사 년 동안 단현이 모습이 제법 변하기는 했지만 천하에는 천마신교의 눈이 깔려 있었고 그들 중에 누군가가 단현을 알아보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었다.
무엇보다 단현은 강호행을 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단현이 강호에 드러낼 자신의 모습은 천마신교의 교주였던 단현이 아니라 새로운 가상의 인물이었다.
단현에게는 천마무학이 아닌 새로운 사선의 무공이 있었고 천변용안까지 있었기에 가능한 발상이었다.
현재 단현이 세운 계획의 큰 틀은 자신이 정도의 인물로서 강호의 전면에 나서서 조영의 천마신교에 대적할 세력을 연합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뒤로는 자신만의 암중의 사조직을 만들어 자신을 죽이려 했던 세력의 정체를 밝혀내는데 주력한다.
그것은 양동작전이 되어 조영과 적들을 압박할 것이다.
단현은 그 첫걸음을 이제 시작하는 것이다.
단현은 삼청촌의 촌장을 만나 자신의 가족이 모두 죽어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이곳으로 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당분간 천하를 유랑할 것이라고 했다.
인심 좋은 삼청촌의 촌장은 별다른 의심 없이 단현을 받아주었다.
단현은 사선의 물건과 재물들을 감출 요량으로 삼청촌 외곽에 허름한 집을 하나 구했다.
단현이 삼청산의 거처에서 가져온 사선의 재물들과 물건들의 가치는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물론 천마신교의 교주를 지낸 단현에게는 그것들이 별반 대단할 것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일단 사선을 경계하는 의미에서 삼청산의 거처에서 사선의 물건들 중 값어치가 나갈 만한 것을 탈탈 털어 왔다.
사선이 구석구석 숨겨 놓은 물건들까지 죄다 모아서.
단현은 우선 사선의 물건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몇 가지 물건들만을 추려내었고 남은 물건과 재물들은 이곳에 두고 떠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단현은 집의 바닥을 약간 들어낸 후 깊숙한 구멍을 팠다.
그러고 나서 아래쪽에서부터 유용한 물건을 넣어두고 다시 그 위를 덮어 나가며 층층이 위장을 하기 시작했다.
만일 누가 이곳을 발견한다고 해도 세심하게 살피지 않는다면 가장 윗부분의 물건만을 손에 넣고 돌아갈지도 몰랐다.
그렇게 나머지 물건과 재물들을 모두 감추고 나서 세심하게 흔적을 지웠다.
그 위에 다시 일상 생활에 필요한 가구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두고 가구의 한쪽에 다시 비밀 공간을 만들어 속임수 물건을 숨겼다.
아마 단현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선이 직접 오거나 어지간히 철저한 인물이 아니라면 물건과 재물들을 찾아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 와중에 단현은 환단전을 만들어 상청무상신공의 기운을 검으로 옮겨 놓고 단전을 완전히 비웠다.
이것으로 이제부터 단현과 만나게 되는 강호인들은 단현의 환단전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는 이상 단현을 평범한 삼류무사 이상의 인물로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친 단현은 삼청촌의 촌장에게 작별 인사를 남기고 삼청산을 하산했다.
단현은 우선 삼청산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횡봉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제는 정보를 수집할 차례였다.
단현은 한참을 터벅터벅 걸어서야 횡봉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그 속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정겨웠다.
실로 사 년 만에 보는 사람 사는 모습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제야 단현은 자신이 살아 있구나 하는 실감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단현은 우선 횡봉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객잔으로 향했다.
강호의 소문들은 대부분이 객잔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다. 이는 객잔이 사람들의 왕래가 잦고 강호인들도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드나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단현이 객잔에 들어서자 점소이가 쪼르르 달려왔다.
단현의 차림새는 수수한 편에 속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으로 통일된 옷은 낭인들이 즐겨 입는 차림새였다.
등에는 대부분의 낭인들처럼 제법 커다란 등짐을 졌다. 등짐 속에는 사선의 물건들이 다수 있었으니 만일 누가 그것을 본다면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그러나 등짐의 원래 목적 중의 하나가 안의 내용물을 감추는 것이니 이 역시 평범한 행색이라 할 수 있었다.
허리에 걸린 낡아 보이는 검과 깊게 눌러쓴 방립과 함께 단현의 차림새는 전형적인 낭인의 모습으로 강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류무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 본다면 단현이 차고 있는 낡아 보이는 검에 시선을 뺏길 것이다.
왜냐하면 그 검은 바로 검선 사무령의 애검 곤륜무령검이었기 때문이다.
사선의 무공은 이미 무검승유검의 경지를 논하고 있었다. 때문에 사선은 과거 그들이 애용했던 병기들을 평소에 휴대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리고 사선이 단현에게서 떠날 때에도 거처에 대부분의 소지품을 남겨두었다.
지금도 단현은 그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으나 덕분에 단현은 사무령의 거처에서 냉큼 곤륜무령검을 챙길 수 있었다.
곤륜무령검은 곤륜파 사무령의 검이라는 다소 유치한 소유권을 바탕으로 이름 붙여진 검이다.
물론 이러한 점이 사무령의 자유분방함과 소탈함을 나타내 주는 부분이기도 하였지만.
하지만 검의 이름과 상관없이 곤륜무령검은 강호에서도 손꼽히는 명검이었다.
명검 장인으로 손꼽히는 사무령의 형인 사무량이 반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명검으로 사무량이 만든 필생의 역작으로 꼽히는 무량십구검 중 서열 네 번째에 해당하는 명검이었다.
곤륜무령검의 겉모습은 수수함을 좋아하던 사무령의 바람대로 별다른 장식 없이 간결하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검을 뽑아 들었을 때의 예기와 손으로 전해지는 묵직한 무게감을 동반한 감각은 단연 발군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단현의 상청무상신공의 환단전까지 머금고 있었기에 검날에는 은은한 현기마저 감도는 상태였다.
하지만 객잔의 일개 점소이가 이를 알아볼 수는 없는 일이고 단지 검을 패용하고 있으니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단현이 강호인임을 짐작하였다.
그래서 점소이는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단현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단현을 식탁으로 안내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비어 있는 식탁에 자리를 잡은 단현은 등짐과 곤륜무령검을 풀어 놓은 후 점소이에게 간단한 음식과 술을 주문한 후 의자의 등받이에 상체를 기대어 느긋하게 객잔 안을 살펴보았다.
객잔에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고 개중에는 강호의 이야기도 섞여 있었다.
단현은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음혼색마가 분혼조양검법을 손에 넣었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이미 강서성 전체에 그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네. 수많은 무인들이 이미 음혼색마를 잡기 위해 천라지망을 펼쳤다고 하는구먼.”
“음혼색마도 간덩이가 부었군. 강서성이 어디라고 설쳐 대는지.”
옆의 식탁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의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번 일에 정일교가 움직일까?”
“생각해 보게 정일교가 이런 일로 움직일 리는 없지 않은가.”
“아니, 강서성에서 색마가 설쳐대는데 어찌 강서제일문인 정일교가 움직이지 않는단 말인가.”
“이런 무식한 친구를 봤나. 정일교는 십협의 일문이자 강서성의 패자이네. 만약 분혼조양검법이 음혼색마의 손에 없고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음혼색마를 쫓지 않는다면 당연히 움직이겠지.”
신나게 말을 하던 장한은 목이 타는지 걸쭉하게 술을 한 잔 들이키고는 이야기를 이어 갔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천라지망을 펼치고 있는 중인데 여기에 정일교가 끼어든다면 그야말로 비급을 탐내는 모양새가 되지 않겠는가. 분혼조양검법이 대단한 검법임이 틀림없지만 정일교의 명성보다 중요하지는 않다는 말이지.”
“그도 그렇군.”
“그렇다면 강서성의 다른 문파들은 나서지 않는 것인가?”
“그건 아닌 모양이야. 최근 무섭게 세를 불리고 있는 신흥 문파인 구룡문과 남창의 정통적인 명문인 광명회가 이미 나섰다는군.”
“이야 대단한데. 만약 구룡문과 광명회가 충돌한다면 분명 분혼조양검법을 손에 넣은 문파가 향후 강서성의 다음 자리를 논할 수 있겠는걸.”
단현이 이야기를 들어 보니 지금 강서성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는 분혼조양검법의 출현과 이를 가진 음혼색마라는 음적의 존재인 것 같았다.
분혼조양검법(分魂朝陽劍法).
지금으로부터 백 년도 전에 조양 대협이라 칭송받던 무인의 절대검공이었다.
조양 대협은 어느 날 홀연히 강호에 그 모습을 나타내어 협을 행하였으며 죽는 날까지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고 전해졌다.
그야말로 그 시대에는 비할 바가 없는 절대강자였다.
하지만 그런 조양 대협도 한 가지 이루지 못한 소망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자신의 무공을 이어 줄 제자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조양 대협의 분혼조양검법은 천하를 호령하던 검법이었기에 아무나 제자로 삼아 전수해 줄 수 없는 무공이었다.
결국 조양 대협은 죽는 날까지 분혼조양검법을 전수할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조양 대협이 그의 아들의 인성을 믿지 못하여 아무에게도 분혼조양검법을 전해주지 않았는 것이다.
결국 조양 대협의 죽음과 함께 당시 최고의 검법으로 손꼽히던 분혼조양검법도 강호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것이 단현이 기억하고 있는 분혼조양검법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분혼조양검법이 음적의 손을 빌어 강호에 모습을 나타내다니 단현은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단현이 분혼조양검법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의심을 갖는 이유는 그가 과거 천마신교의 교주로서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분명 강호에는 때때로 절학이나 신병이 주인을 잃은 채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하지만 그러한 세계에도 엄연히 급이란 것이 존재했다.
진정한 절학이 모습을 드러낸다면 가장 먼저 강호의 초거대 문파들이 은밀하게 움직인다.
구파구방과 십협을 필두로 오교까지 감히 중소 문파나 개인으로서는 자웅을 겨룰 엄두도 내기 힘든 절대강자들이 움직인다.
그리고 그런 절대강자들이 움직였을 경우에는 예상외로 강호에 소문이 거의 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의 힘은 이미 수위를 달리하고 있었고 규모와 정보력에서도 여타의 세력들이 넘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강호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떠한 낌새를 눈치도 채기 전에 정보를 통제하며 조직적으로 은밀하게 움직였다.
결국 개인이나 중소 문파는 아무런 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주인 없는 절학들은 거대 문파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그런 절학들은 다시 거대 문파의 무공을 발전시키는데 자양분이 된다.
이러한 순환은 다시 중소 문파와 절대강자인 거대 문파 사이에 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한다.
그러니 중소 문파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자리를 잡은 거대 문파들을 넘어선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객잔의 풍문을 종합해 보면 분혼조양검법을 노리고 이미 수많은 낭인들과 중소 문파의 사람들이 강서성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단현의 기억 속의 분혼조양검법은 충분히 거대 문파들이 탐낼 만한 절학이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거대 문파들이 움직였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과연 거대 문파들이 분혼조양검법과 같은 최강의 무공이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방관만 하고 있을까.
단현의 생각에는 거대 문파들은 절대 그렇게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기에는 분혼조양검법이 가지는 매력이 너무나 거대했다.
이 점에서 단현은 하나의 추측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것은 분혼조양검법의 소문 자체가 거짓인 경우다.
이 경우에는 거대 문파가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음혼색마가 음적이라면 자신의 존재를 철저하게 숨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
색마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감추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으니까.
그런데 색공을 익힌 것으로 추정되는 음혼색마가 분혼조양검법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너무나 쉽게 퍼진 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단지 그러한 사실만이 퍼져 있고 무언가 세세한 내용들이 빠져 있었다. 아무리 소문이라도 너무 부실한 감이 없지 않았다.
‘누군가가 무엇을 노리고 조작한 정보라는 것인데.’
단현이 그런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점소이가 술과 음식을 가져왔다. 단현은 자연스럽게 점소이가 가져온 술을 술잔에 담아 입에 털어 넣었다.
“켁!”
단현은 목을 타고 넘어오는 화끈한 느낌과 요상한 맛에 마른기침을 계속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