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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마경 1권(25화)
九章 생환(生還)(3)


그동안 단현은 술을 등한시 했었다.
사실 술을 즐길 나이도 아니었고 단현의 모든 관심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무공이었다.
뿐만 아니라 단현은 지금까지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고 무공을 수련해 왔다.
단현은 태어난 곳이 천마신교의 천마궁이었다.
그리고 당시 천마궁의 전부라고 할 수 있었던 단청의 최대 관심사는 무공이었다.
그리고 단현의 발길 닿는 모든 곳에 있던 사람들의 관심사도 무공이었다.
강자존의 세계.
그런 곳에서 단현은 태어났고 태어나면서부터 무공을 배우고 무공을 듣고 무공과 함께 생활했다.
그리고 단현이 조영의 검에 죽임을 당한 후 다시 눈을 뜬 곳에는 사선이 있었다.
사선 역시 한평생을 도검 아래서 살아온 무인이었다.
지금까지 단현의 인생은 무공으로 시작해서 무공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단지 오늘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술을 마시기에 튀지 않으려는 마음에 따라서 시켰을 뿐이다.
그리고 단현과 술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물론 객잔에서 파는 싸구려 술을 시켰으니 당연한 결과였지만.
‘더럽게 맛도 없네.’
그러나 단현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술잔을 들어 술을 입안에 털어 넣기 시작했다.
처음에야 그 맛을 전혀 모른 상태에서 마셨으니 그랬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미 술이란 것의 맛을 인지한 상태이니 대비를 할 수 있었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술을 마셨기에 쉽게 참아낼 수 있었다.
주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는데 자신만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튀어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나로 단현은 계속해서 술잔을 기울였다.
물론 취해 본 적이 없으니 지금 자신이 취기가 오르고 있다는 것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더구나 단현은 지금 내공이 전무하니 취했을 때 당장 해소할 방법도 없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그때 객잔의 입구가 소란스러워지더니 검은색 무복을 갖춰 입은 장한들이 우르르 들어와 객잔의 입구를 막아섰다.
특히 장한들이 입고 있는 옷에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모든 장한들의 가슴팍에 백색의 실로 수놓아진 구룡이란 두 글자였다.
단현은 이를 보고 그들이 최근 강서성에서 급격히 세를 불리고 있다는 구룡문의 사람들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강호동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장한들 중에서도 가장 선두에 섰던 가장 덩치가 건장한 장한이 예를 취하며 우렁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장한의 입가에는 득의양양한 웃음이 나타나 있었다.
단현은 비스듬히 의자에 기댄 자세로 술잔을 한 손으로 살짝 비켜든 채 장한들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저는 구룡문의 이부량이라고 합니다.”
“이제 보니 구룡문의 이부량 대협이셨구려.”
여기저기서 이부량을 아는 체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에 이부량의 얼굴에 더욱 만족스러운 웃음이 번졌다.
잠시 객잔 안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던 이부량이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
“강호동도 여러분들도 이미 익히 들어 알고 계시겠지만 최근 이 근방에는 음혼색마라는 용서 못할 음적이 출몰하고 있습니다. 이에 저희 구룡문은 강서성을 대표하는 문파로 관의 부탁을 받아 음혼색마를 함께 잡아내기로 하였습니다.”
이부량의 이야기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조금씩 동요를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단지 음혼색마를 잡는 일이었다면 어떤 문파가 앞에 나선다 하여도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강소성에 터를 잡고 있는 구룡문이 움직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음혼색마는 분혼조양검법이라는 절대검공을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음혼색마를 잡으러 서둘러 강서성에 모여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뿐만 구룡문이 광명회와 경쟁하며 분혼조양검법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였다.
이것은 구룡문이 관을 앞세워 분혼조양검법을 손에 넣으려는 너무나 속이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다.
사람들이 동요하는 것이 당연했다.
단현은 이부량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만일 구룡문에 조금이라도 머리가 돌아가는 녀석이 있었다면 이런 허무맹랑한 일을 꾸미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호 문파와 관이 서로의 경계를 건드리지 않는 것은 명기된 법이 없다 뿐이지 거의 상식적인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냥 이문이 걸린 일도 아니고 강호의 비급이 걸린 일에 관과 연계하여 움직이다니.
이러한 실상이 알려진다면 구룡문은 당장 여러 강호 문파들로부터 배척을 당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멍청하다고 해도 문파란 곳에서 그러한 상식을 모르고 있을 리는 없을 거 같은데. 하기야 분혼조양검법이라면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해 볼 만한 일이기는 한데 문제는 이렇게 허술한 검문으로 음적을 잡을 수 있나 하는 문제이고.’
단현은 지금의 상황이 무언가 교묘하게 어긋나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분혼조양검법이 아니라 다른 것이 얽혀 있다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해서 지금부터 객잔에 머물고 계신 분들의 신원을 조사할 것이니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당연히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뭣들 하느냐. 어서 나랏일을 수행하지 않고.”
이부량은 이에 개의치 않고 관을 들먹이며 호통을 쳐 구룡문의 장한들이 움직이게 했다.
이미 이러한 반발은 예상한 듯한 눈치였다.
객잔 안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불평을 하면서도 구룡문의 검문에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관과 연결된 일에 소란을 부리면 뒤처리가 귀찮아진다.
때문에 끊임없는 불만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구룡문의 검문은 그럭저럭 진행되고 있었다.
당연히 단현의 앞에도 구룡문의 장한이 다가섰다.
장한이 입을 열기도 전에 단현의 냉랭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꺼져.”
장한은 느닷없는 단현의 목소리에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 들었나 하는 표정으로 단현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얼마나 황당한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듯했다.
“귀가 먹었나? 꺼지라고 했잖아!”
이어지는 단현의 채근.
장한은 단현을 차림새를 살피며 코웃음을 쳤다.
보아하니 전형적인 삼류무사로 낭인 차림에 나이도 어려 보였다.
게다가 그것도 모자라 술에 취해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라 고함치는 모습이 영락없이 애송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장한은 단현의 치기로 단정했다.
객잔에서 취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미 옆에서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투덜거리는 중년인을 자신의 동료가 힘들게 검문하고 있다.
하지만 짜증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장한은 싫은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네놈의 말은 지금 감히 관을 대행하는 구룡문의 검문에 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냐?”
장한의 말투에는 힘이 한껏 들어가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관을 들먹이는 것이 최고였다.
아무리 배짱이 좋은 놈들도 관을 언급하면 꼬리를 접는 경우가 파다했다.
장한의 이 말 한마디면 아무리 술에 취했더라도 대부분 주눅 들게 마련이다.
더구나 단현은 일행도 없이 혼자였다.
주위에 동조자가 없으면 기세는 금방 꺾인다.
그러나 장한이 관이 아니라 나라를 언급하여도 단현은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할 것이었다.
마의 하늘이라는 천마신교의 교주로서 당대 최고를 다투는 천마신교의 최강의 고수들과 사선의 엄청난 존재감 사이에서 평생을 보낸 단현이다.
그런 단현에게 장한의 위협은 어떠한 느낌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단현의 입에서 나오는 대답은 더 가관이었다.
“굴욕문? 그게 뭔데?”
단현의 비꼬는 듯한 대답에 장한도 이제는 짜증을 넘어서 슬슬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재수 없게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무식하고 경험이 일천한 애송이 녀석에게 걸려들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에 장한의 기세가 한층 강해졌고 목소리에 담긴 위압감도 더욱 깊어졌다.
그러자 주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단현과 구룡문의 장한에게로 집중되었다.
“저 아이는 누군데 구룡문에 맞서는 것이지?”
“낭인 같은데.”
“뭐야 술에 잔뜩 취한 거 아냐? 저거 저대로 두면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데.”
여기저기서 안 됐다는 속삭임이 이어졌다.
“마지막 경고다. 다시 한 번 구룡문의 검문에 불응한다면 힘으로 너를 다스릴 것이다.”
단현은 태연스럽게 술잔에 남은 술을 입속에 털어 넣으며 웃었다.
“할 수 있으면 해 봐.”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단현의 대답이 결국 장한이 분노했다.
이미 장한은 단현의 차림새와 기세를 보고 단현을 삼류무사로 확신했다.
장한 역시 거칠 것이 없었다.
“오늘 일을 너는 평생 후회하게 될 것이다.”
“후회? 지랄하네. 그래 이제 문파란 걸 만들어서 조금씩 커 가니까 눈에 뵈는 게 없지. 그러니까 강호의 불문율까지 마음대로 어겨 가면서 관에 빌붙어 개처럼 꼬리나 흔들며 살아가는 거지.”
단현의 이야기에 장한이 인상을 팍 구기며 이부량 쪽을 바라보았다.
이부량이 조용히 자신의 손을 들어 목 언저리를 사선으로 그었다.
죽여도 좋다는 신호였다.
장한의 입에 싸늘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진작 검을 뽑아 들고 싶었으나 지금은 관과 구룡문의 행사다.
구룡문은 자칭 정도를 걷고 있는 문파.
이곳에 오기 전 매사에 신중 하라는 문파의 엄중한 경고가 있었기에 참고 또 참았지만 이부량의 허가가 떨어진 이상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럼 어디 입만큼 실력도 살아 있는지 볼까?”
장한의 이죽거리며 검을 뽑아 들었다.
검을 뽑아 들자 순식간에 장한의 기세가 바뀌었다.
장한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신형을 빠르게 움직였다.
검과 함께 장한의 검이 단현의 목을 노리고 횡으로 베어져 들어왔다.
오랜 시간 수련을 해 왔음을 말해 주듯 장한의 검은 빠르고 깨끗했다.
이를 알아본 몇몇 사람들은 벌써 탄성을 터트리기까지 했다.
단현의 입가에 웃음이 짙어졌다.
단현의 손에 곤륜무령검이 잡혔다.
장한의 검이 단현의 목을 향해 치달아오는 순간에도 단현은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살짝 뒤로 신형을 젖혔다.
간발의 차이로 장한의 검이 단현을 스쳐 갔다.
첫 번째 공격이 실패하자 장한의 검끝이 부르르 떨리며 변화를 일으키려는 찰나 단현의 곤륜무령검이 발검되었다.
아래쪽에서 위로.
비스듬한 사선이 너무나 간결하게 단현의 손에서 그려졌다.
그리고 단현의 손짓에 의해 허공에 붉은 혈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올랐다.
일검의 미학.
그렇게 단현은 강호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천부마경』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