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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마경 1권(23화)
八章 마경(魔經)(4)


단현은 천부마경이 보관되어 있는 석실로 들어갔다.
돌 탁자 아래의 공간을 열어 보니 여전히 천부마경의 목갑이 들어 있었다.
단현이 목갑을 꺼내어 확인해 보니 천부마경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단현은 천부마경을 품속에 챙겨 넣고는 석실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석실 안은 천부마경을 연구하기 위해 모아 놓은 책들로 난장판이었다.
단현은 언제나처럼 스르륵 책장을 넘기며 책들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석실 안의 책의 내용들을 외우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조된 천부마경을 밖으로 가지고 나와 태우기 시작했다.
일단 석실의 정리가 끝나고 나자 사선의 거처와 건물들을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단현의 짐작대로 사선은 물건들을 거의 챙겨가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단현이 이곳을 떠난 후 사선은 어느 곳에선가 단현을 살펴보고 있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겠다는 것으로 생각했다.
단현은 느긋하게 사선의 물건들을 꼼꼼히 챙겨 넣었다. 물론 사선이 비밀 공간을 만들어 숨겨 놓은 물건들뿐만 아니라 사선의 비밀 연공실까지 뒤져 가며 유용한 물건들을 챙겼다.
그리고 단현은 차분하게 그동안 자신이 배웠던 무공들과 새로 만든 무공들을 다듬어 갔다.
‘정말 사선이 하려던 일이 천부마경의 해석일까? 그리고 정말 사선의 무학적 심득이 나보다 아래일까? 무엇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과 어긋난 기억은 어째서일까?’
단현은 아직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것들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다.
단현은 최대한 자신의 기억들을 수습하고 무공을 다시 재정비했다.
그렇게 단현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시 가다듬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일 년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쌀쌀한 바람이 불던 어느 날 단현은 드디어 삼청산을 떠날 결심을 했다.
단현은 사선의 물건들과 그동안 자신이 정리한 모든 것들을 꼼꼼히 챙긴 후 마침내 삼청산의 거처를 나섰다.
단현이 삼청산을 떠나자 단현의 예상대로 단현의 뒷모습을 주시하는 네 쌍의 눈동자가 있었다. 사선이었다.
“정말 무섭도록 치밀한 녀석이구나.”
남궁천의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저곳의 모든 것을 파악했겠지.”
제갈유였다.
“그렇다고 봐야겠지. 일 년의 시간은 짧지 않으니까. 겉으론 저토록 순종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우리에 대한 증오와 의심을 풀지 않았기에 모든 것을 추스르는데 다시 일 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겠지.”
“그런데 정말 이대로 저 아이를 강호로 내보내도 괜찮은가?”
사무령의 목소리였다.
“현기란 것은 도가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 때 생겨나는 것일 거야. 나는 그렇게 알고 있네.”
“그렇기는 하네만 저 아이가 현기의 경지에 올라선 건 틀림없어. 하지만 현기의 경지에 접어들면 어느 정도 세상에 초탈한 모습을 보이네. 저와 같은 집착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아. 나는 그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네.”
남궁천이 삼청산의 거처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우리가 행했던 기억의 조작이 원인일 수가 있네.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을 수도 있고. 하지만 한 가지만은 내가 확신할 수 있네.”
남궁천의 목소리에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녀석은 천재야. 그것도 무학에 관해서는 감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일파의 무공을 배우는 것도 평생을 걸리는 자들이 수두룩해. 그런데 녀석이 정도 사파의 무학을 끝내는데 걸린 시간은 겨우 일 년 남짓이야.”
네 사람은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아직도 단현의 재능에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남궁천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정말 무서웠지. 뭔 세상에 이런 괴물이 존재하는가 하고 말야. 내가 십 년이 걸려 이룩한 성취를 녀석은 한 달 만에 섭렵했어. 뿐이던가, 그 와중에도 녀석은 단 하루도 쉬지 않았지.”
당벽이 남궁천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 상청무상신공의 괴력이 발휘되었지. 남들은 평생을 가도 이르기 어렵다는 현기의 경지를 연이 닿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는 도가의 그 지고한 경지를 녀석을 불과 반년 만에 도달했네.”
당벽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떨림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천부마경을 접하자마자 그 속에 담긴 오의를 일부분이나마 해석할 수 있었지. 강호 역사상 이런 성취를 보인 인물이 있었던가.”
남궁천의 마지막 말은 반문이었다.
하지만 애당초 대답을 바라고 있지는 않았던지 곧장 말을 이었다.
“녀석은 진정한 무재야. 천하에서 독보적인 일가를 이루었다는 우리 사선이 파악하기 힘에 부칠 정도로 녀석의 힘은 막강하지. 어쩌면 녀석은 천부마경의 오의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르지.”
“만일 그렇다면 저 녀석의 강호행을 정녕 막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제갈유는 무엇이 불안한지 자꾸 단현이 사라진 방향을 돌아보고 있었다.
“일단 녀석이 충돌할 곳은 마교야. 그곳에 녀석의 인생이 있고 그곳에 녀석의 집념의 근원이 있지. 어째서 마교가 천마의 후손을 죽이려 했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오판이야. 이제 녀석은 무시무시한 괴물이 되어 마교로 돌아갈 테니까.”
“정말 우리의 바람대로 마교에 혈풍이 불까?”
“어차피 지금의 마교는 예전의 마교가 아니야. 천마의 핏줄이 사라지자 아주 엉망이 되었지. 지금 녀석의 무공의 근원은 우리의 무공이야. 이것이 우리가 천부마경의 심득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일지 몰라.”
사선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들의 뒷모습이 점차 삼청산의 안개 속으로 희미해져 갔다.
그렇게 삼청산의 한쪽에서 작은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九章 생환(生還)(1)


단현은 삼청산을 벗어나자 마음의 평정심이 살짝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묘한 감정이었다.
사 년의 시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단현은 스스로 많은 것을 털어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마음 한편이 아련하게 아려 왔다.
아직도 이런 감성이 남아 있었던가.
단현은 새삼스러운 감정의 변화에 조금 당황했으나 있는 그대로 그 감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단현은 천마신교의 교주가 되고부터 단 하루도 자신의 감정을 외부로 표출하지 않았다.
그것이 어렸던 단현이 할 수 있는 살아 가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제 단현은 강한 힘을 손에 넣었다.
더 이상 과거처럼 자신의 감정을 감추며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지금의 단현은 혼자였다.
당분간은 마음가는 대로 자유를 만끽해도 상관없을 듯싶었다.
그렇게 단현은 자신의 감정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일단 천마신교로의 복귀는 미루어야 했다.
조영은 치밀한 인간이다.
그런 조영이 자신을 배신하기로 결정했다면 수년간 치밀한 준비를 해 왔을 것이다.
조영이 조직한 암중의 세력인지 아니면 암중의 세력에 소속된 것이 조영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암중의 세력은 조영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제는 조영이 천마신교의 교주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영의 세력이 천마신교를 어디까지 잠식했는지 모른다.
단현이 천마신교로 복귀한다면 천마 단휘의 후손으로서 다시 천마신교의 교주자리에는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의 상황에서 단현이 다시 천마신교의 교주가 되더라도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나마 단현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한선의 복귀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은 무작정 천마신교로 복귀하는 것보다는 외부에서 그리고 천마신교의 안에서 단현의 생존 사실을 감춘 채 적을 색출해 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현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기억의 왜곡이었다.
그것이 생사뇌중혈의 영향인지 아니면 사선의 다른 안배인지는 몰라도 단현은 지금 자신의 기억조차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무려 일 년이라는 시간을 소모하면서까지 단현은 자신의 모든 것을 점검했다.
물론 그 시간 동안 단현의 무공도 또 다른 경지로 들어서는 성취를 보았으나 언제까지 복수의 비수만을 가슴에 품은 채 숨어서 살아 갈 수는 없었다.
그때마다 단현은 금제와 봉인의 술을 풀까 하는 유혹을 느꼈으나 이를 꾹 참아내었다.
단현의 지금 자신의 진정한 힘을 스스로도 측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짐작컨대 단현의 무위는 사 년 전과는 비교할 바가 못되었다.
당장 상청무상신공만 하더라도 사 년 전의 단현을 압도할 수 있을 정도의 무력이었다.
봉인과 금제를 풀지 않아도 그동안 깊어진 천마무학에 대한 단현의 심득을 바탕으로 추정해 본다면 단현의 진실된 힘은 그 위력을 가늠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적어도 사 년의 기간 중 삼 년 동안은 천마기를 축기했고 천마기가 상청무상신공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강력한 힘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위력은 압도적일 것이다.
그 엄청난 존재감과 사위로 뿜어지는 마기는 도저히 단현의 존재를 감출 수 없음이 자명했다.
단현이 지금 봉인과 금제의 술을 푼다면 당장의 상황을 파악하는데 틀림없이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천마령혼의 불가사의한 힘은 단현의 왜곡된 기억을 되돌릴 만한 공능을 가지고 있었고 단현도 자신의 정확한 무공 수위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단현이 쉽게 봉인과 금제의 술을 풀지 못하는 것은 그때 수반되는 엄청난 육체적인 피해 때문이었다.
단현은 만일의 경우 사선에게 고문을 받을 상황까지 가정하여 당시에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지 않는 한 봉인이 풀리지 않도록 안배해 두었다.
만일 단현이 봉인과 금제의 술을 푼다면 천마령혼의 복원력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지는 몰라도 당분간 거동이 불편할 정도의 타격을 받을 것은 뻔했다.
그리고 다시 봉인과 금제의 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천마기의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단현은 자신의 힘을 개방하는 것을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자신의 정확한 무력을 자신이 모른다.
그렇다면 천하의 그 누구도 지금 단현의 진정한 힘을 단현의 무위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었다.
자신의 정확한 무위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 그것은 또한 양날의 검이기도 했지만 단현은 이를 감수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단현은 자신을 배신한 세력을 파악하는데 오히려 그 편이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우선은 자신을 감추고 음지로 숨어들어서 그들이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단현이 반대로 그들을 속이고 계략을 꾸밀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적의 정체를 파악하게 된다면, 그들의 계획의 전모를 밝혀내게 된다면 그날이 바로 천마의 무학이 다시 이 땅에 재현되는 날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단현은 당장의 불편함을 감수하기로 하였다.
지금의 고통은 언제가 단현의 복수를 더욱 완전한 것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