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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마경 1권(20화)
七章 무후(武侯)(3)
남궁천은 가슴이 답답해 오는 것을 느꼈다.
중단전의 힘은 신묘하기 그지없었다.
평소에는 심법을 통해 조금씩 쌓아 나가야만 했던 진기들이 순식간에 대추만 한 중단전에 흡수되어졌다.
뿐만 아니라 그 힘은 기존의 천뢰제왕신공보다 더욱 위력적이었다.
남궁천은 중단전의 그 힘이 천뢰제왕신공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지만 의식 깊은 곳 어디에서는 그것이 천뢰제왕신공이 아니라고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남궁천은 끊임없이 중단전의 힘을 관조하고 또 관조했다.
그의 눈은 극도의 피로감으로 충혈되어 적광으로 번들거렸다.
순간순간 치솟는 중단전의 맹렬한 기운을 참아내기 위해 꽉 다문 입술에는 가느다란 핏물이 흘렀다.
중단전의 순간적인 증폭력은 대단하여 남궁천의 무쇠 같던 근육이 군데군데 손상 가고 장기의 곳곳은 자작하게 핏물이 고여 있었다.
남궁천의 뇌리에는 묘한 느낌을 주는 여인의 환영이 끊임없이 남궁천에게 무엇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남궁천은 사력을 다해 천뢰제왕신공을 운기하며 천부마경의 내용을 떠올렸다.
그리고 쉼 없이 중단전을 살폈다.
‘끔찍하도록 괴롭구나. 평소에는 중단전을 깨우친 선조들이 남긴 말들 중에 미쳐서 남긴 쓰레기라고 치부했던 말들이 오히려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되어 주는구나.’
그랬다.
남궁천은 천부마경에 심각한 오점이 있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콕 집어낼 수는 없었지만 천뢰제왕신공의 중간중간에 간섭하는 천부마경의 구결이 남궁천의 모든 것을 뒤흔들고 있었다.
남궁천의 정신이 암흑을 헤매고 있을 때 그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주는 말들은 남궁천이 과거 그렇게도 경멸했던 남궁세가의 광인들이 남긴 말들이었다.
그리고 남궁천은 지금 남궁세가의 광인들의 말 중에서 공통점을 읽어낼 수 있었다.
중단전을 깨우칠 경지에 다다르면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에 매달려라. 중단전이 열리면 끊임없이 천의 무학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것은 가짜다.
거기에 정신을 분할하게 되면 자아가 흐려진다.
중단전이 열리면 보이지 않던 세상이 보인다. 그것은 사후의 세상.
죽음의 기운.
그들과 교섭하게 된다.
원하든 원치 않던.
남궁천은 그것이 다 미친 광인들의 헛소리라고 단정했다.
그런데 지금 그러한 헛소리들이 남궁천의 정신을 지켜주고 있었다.
중단전의 힘은 끔찍했다.
가장 무서운 점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존재들과 접촉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가진 거친 의식.
집요한 원념.
그리고 가공할 지식까지.
그동안의 상식들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들.
광인을 누가 미쳤다고 했던가.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던 존재들.
그리고 이를 이야기했던 사람들.
하지만 세상은 이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들을 외면하고 배척했다.
“으아!”
거친 비명이 남궁천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괴로웠다.
미칠 것 같았다.
그러나 남궁천은 불굴의 의지로 이를 이겨내고 있었다.
다시 환영이 남궁천의 눈앞에 펼쳐졌다.
검무.
여인의 검무는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속에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오의가 넘실거렸다.
부드러운 검무가 지나는 곳은 모두 녹아내리고 있었다.
천하를 지배하는 검의 모습이.
남궁천이 그토록 그려 왔던 궁극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저건… 진짜다.’
남궁천의 눈이 검무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남궁천의 의지가 검무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하가 남궁천의 발아래로 놓이기 시작했다.
‘제 검을 받아 주실 수 있으세요?’
오랜 시간 동안 남궁천의 귓가를 간질였던 그 목소리였다.
“이 검은 무엇인가?”
남궁천의 목소리는 메말라 있었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듣기 힘들 정도로 미약했다.
‘제왕무적검공이에요.’
남궁천의 마음이 흔들렸다.
그 강렬한 열기 아래 모든 것을 녹여 버리던 그 모습의 한 자락은 남궁천이 평생 가슴속에 간직한 비밀이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남궁장만의 여식이랍니다.’
남궁천의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믿을 수 없군.”
남궁천의 의식 속으로 구결이 흘러들어 왔다.
구결을 살피는 남궁천의 의식이 요동쳤다.
‘이래도 믿을 수 없다는 건가요?’
남궁천의 의식을 떠도는 구결은 진짜였다.
뿐만 아니라 완벽한 모습이었다.
남궁천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자네의 존재는 부정할 수밖에 없지만 검은 진짜로군.”
여인이 남궁천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계약의 대가가 있다고 들었다.”
‘남궁세가의 군림천하.’
여인의 목소리에 남궁천의 신형이 떨림을 일으켰다.
“어째서?”
‘제 아버지는 남궁장만이니까요.’
여인의 웃음이 처연해 보였다.
여인의 검이 빛을 잃어 가고 있었다.
“나쁘지 않군. 그럼 어떻게 하면 그 검을 받을 수 있나?”
여인의 입술이 남궁천에게 다가왔다.
‘거부하시지만 않으면 되요.’
남궁천이 눈을 감았다.
남궁천의 중단전이 알 수 없는 기운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궁천의 중단전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이 더욱더 남궁천의 중단전을 가득 채워 왔다. 그리고 그 기운이 천천히 남궁천의 몸속으로 스며들고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남궁천의 몸이 치유되기 시작했다.
잃었던 힘들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다.
표현할 수 없는 맑은 기운이 남궁천의 전신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숨어들었다.
남궁천의 눈에 다시 평범한 세상이 들어왔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편안했다.
중단전을 통해 너무나 청량한 기운이 자연스럽게 남궁천의 몸과 외부를 연결시키고 있었다.
남궁천이 천천히 신형을 일으켰다.
툭툭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빛의 무언가가 남궁천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남궁천이 그것을 살펴보니 남궁천의 껍데기였다.
남궁천이 한쪽 구석에 마련되어 있는 작은 샘으로 다가갔다.
상체를 샘의 위쪽으로 쑥 들이밀자 작은 샘 안에 정열이 넘치는 중년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궁천의 몸이 가벼운 떨림을 일으켰다.
그 모습은 남궁천의 중년 시절의 모습이었다.
‘마침내 이전의 나를 넘어선 것인가?’
가벼운 휘파람 소리와 함께 남궁천의 신형이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힘의 수발은 더할 나위 자연스러웠고 검을 손에 들고 있지 않아도 검이 펼쳐졌다.
남궁천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그려졌다.
하지만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혀가 입술을 한 번 지나쳐 갔다는 것을 남궁천은 들뜬 마음에 느끼지 못했다.
남궁천이 연공실의 문을 힘차게 열어 젖혔다.
“이제…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다.”
八章 마경(魔經)(1)
단현은 떨리는 마음으로 세 사람의 뒤를 따랐다.
사선의 거처 뒤쪽에는 제법 울창한 숲이 자리 잡고 있었고 이 숲에는 진법이 펼쳐져 있었다.
진법은 복잡하기가 이루 표현할 수 없어 일다경의 시간을 걸어서야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숲을 벗어나자 제법 너른 공터가 나타났고 그 공터의 중앙에는 견고한 석재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얼마나 견고하게 만들어졌는지 사면에 창문 하나 없었고 표면에 나타나는 투박함이 벽의 두꺼움을 나타내주고 있었다.
석제 건물의 유일한 출입구는 결국 정면의 견고한 석문뿐이었다.
세 사람이 석문의 한쪽에 파여진 음각에 각각의 철패를 끼워 넣고 다시 사무령이 품에서 하나의 철패를 더 꺼내어 마지막으로 끼워 넣자 우르릉거리는 굉음과 함께 석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석문이 완전히 열리자 이번에는 아래로 통하는 제법 긴 계단이 나타났다.
한참 동안 계단을 내려서자 다시금 철문이 네 사람의 앞을 가로막았다.
세 사람은 다시 네 개의 열쇠를 꺼내어 철문에 끼워 넣고 함께 돌리자 역시 굉음과 함께 철문이 열렸다.
단현은 비급 한 권을 위해 이렇게 방비를 해 놓은 사선을 보며 혀를 내둘렀고 그렇게까지 하면서 지키고 있는 비급이 도대체 얼마나 대단할까 하는 생각에 다시 한 번 혀를 내둘렀다.
철문의 안쪽에는 제법 넓은 석실이 있었고 석실의 안쪽에는 각종 서적들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었다.
그리고 석실의 중앙에 돌로 만들어진 바닥과 일체가 되어 있는 돌 탁자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 돌 탁자 위에 다시 탁자와 일체가 되어 있는 돌함이 놓여 있었다.
사선은 다시 각자의 품에서 조그만 돌조각을 네 개 꺼내어 돌함에 맞춰 넣자 딸각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돌함의 뚜껑이 열렸다.
제갈유가 조심스럽게 돌함의 뚜껑을 들어 올리고 안에서 낡아 보이는 서책을 한 권 꺼내어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것이 천부마경이다.”
제갈유의 목소리를 들으며 단현은 긴장된 마음으로 천천히 천부마경을 살피기 시작했다.
단현이 가장 먼저 살펴본 것은 천부마경의 내용이 아닌 천부마경의 보존 상태였다.
당연히 천부마경의 내용을 먼저 볼 줄 알았던 사선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얼 하는 게냐?”
사무령의 물음이었다.
“이렇게 낡은 책을 저는 처음 봅니다. 더구나 사부님들께서 고심하고 계시는 비급이라니 조심스럽군요.”
그렇게 천부마경을 꼼꼼하게 살핀 후 단현이 조심스럽게 천부마경을 스르륵 한 번 넘겼다.
한 번의 손짓이었고 그 짧은 찰나 천부마경의 모든 구결들이 단현의 뇌리에 또렷이 새겨졌다.
그리고는 다시 천천히 천부마경의 첫 장을 넘기며 단현이 가벼운 탄성을 내질렀다.
“천마신공과는 많이 다르군요. 정말 이 비급이 천마의 비급입니까?”
지금 단현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처럼 단현은 마음속으로도 정말 놀라고 있었다.
놀랍게도 천부마경은 천마신공과 겹치는 오의가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단현은 일전에 사선에게 건네준 가짜 천마신경이 있으니 내용이 다르다고 우선 발뺌을 해야 했다.
“앞부분에 쓰여 있지 않느냐?”
물론 단현은 이미 이를 외우고 있었다.
하지만 사선의 앞에서 책장을 팔랑거리며 넘기는 것만으로 모든 내용을 암기할 수 있다는 것을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단현은 계속해서 천부마경의 책장들을 조심스럽게 넘기며 일부러 천천히 정독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정말 그렇게 쓰여 있군요. 그런데 어째서인지 천마신공과 달리 마공의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군요.”
“그래서 우리도 천부마경이 마공의 경지를 넘어서 신공의 위치에 다다르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했다. 그러나 중단전이 깨지는 것을 보니 역시 근본은 마공인 모양이다.”
사무령이 씁쓸한 표정을 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