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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마경 1권(19화)
七章 무후(武侯)(2)
여느 날과 다름없이 상청무상신공을 수련하고 있던 단현의 뇌리에 문득 상청무상신공과 유광여룡신공의 연결점이 떠올랐다.
물론 사무령이 곤륜의 사람이고 곤륜의 무공에서 유광여룡신공이 파생되었을 테니 연결점이 있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동안 단현은 유광여룡신공이 상청무상신공보다 우위에 있는 무공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무령이 곤륜의 무학을 바탕으로 천부마경의 심득을 더해 발전된 무공이 유광여룡신공이었기 때문이다.
단현도 유광여룡신공에 담긴 오의가 더 깊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상청무상신공이 서서히 유광여룡신공을 흡수하는 모습이 단현의 뇌리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거기에서 자연스럽게 전단무후신공의 타력도용의 술이 이루어졌다.
순간 단현의 시야가 환하게 밝아져 왔다.
타력도용의 수는 마치 이화접목의 수와 닮아 있는 듯하면서도 달랐다.
그것은 이화접목의 경우 상대방의 힘이 발현되어야 이를 이용하는데 반해 타력도용은 그와 상관없이 상대방의 힘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상청무상신공이 타력도용의 술과 합쳐져 유광여룡신공을 잡아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유광여룡신공도 타력도용의 술과 동화되며 상청무상신공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두 개의 신공이 전단무후신공의 힘을 빌어 격렬하게 부딪쳤다.
때로는 일부분이 합쳐지기도 하고 때로는 격렬히 서로를 밀어내기도 하면서.
그러다 돌연 두 개의 신공이 싸움을 멈추었다.
상청무상신공은 유광여룡신공의 일부를 흡수해 변형되었다.
그 모습이 이전과 다르게 훨씬 가볍고 맑은 느낌이 되었다.
유광여룡신공 역시 상청무상신공의 일부와 동화되어 변형되었다.
그러면서 유광여룡신공에 미약하게 감돌던 마공의 기운의 깨끗하게 사라졌다.
단현이 천천히 눈을 떴다.
평소에는 깊게 가라앉아 무심한 단현의 눈에 은은한 현기가 감돌고 있었다.
현기가 무엇이던가.
도에 대해 깨달음을 얻었을 때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기운이다.
그렇다면 단현은 지금 도에 관해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그것은 아니었다.
단지 단현의 상청무상신공에 관한 심득이 너무나 깊어 그것이 깨달음으로 이어져 생겨난 결과였다.
정도 무학 중에서도 도가의 문파들은 이 현기를 대단히 중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단현에게 그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현기에 대한 이해 자체가 없었다.
그것은 과거 단현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도에 대해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뜻밖에 전단무후신공의 타력도용의 묘용이 이렇게 사용될 수도 있구나.’
단현의 관심은 현기보다는 오히려 전단무후신공으로 쏠리고 있었다.
다음날 단현이 여느 때처럼 사선을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단현을 보는 사선의 시선이 동시에 변했다.
단현의 몸에 은은히 감도는 현기를 느낀 것이다.
현문정종의 심득을 얻었을 때 생겨나는 독특한 기운이 단현의 신형에 맺혀 있는 것이다.
사무령이 감탄을 표했다.
“상청무상신공을 익힌 지 삼 개월 만에 그러한 심득을 얻다니 정말 놀랍구나. 정말 너란 아이의 재능은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구나.”
단현이 사무령의 뜻밖의 반응에 얼떨떨해하며 공손히 예를 올렸다.
“밤새 강녕하셨습니까. 제자는 어제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정도의 사람이 되었구나. 정말 늙은 우리의 눈이 형편없구나, 형편없어. 너라면 정도무림의 기둥이 될 수도 있었는데 나의 졸렬함이 결국 그것을 망쳐 버리고 말았구나.”
제갈유가 한탄하는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사선은 단현이 현문정종의 무공을 통해 성취를 이루어내자 그것에 탄복한 것이다.
현기란 것은 단지 무공에 대한 깨달음이 깊다고 해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정심해야 하고 도가에 대한 깨달음이 깊다면 굳이 무공을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기운이 바로 현기였다.
즉, 현기를 지닌 사람은 마음이 올곧았다.
또한 그만큼 손에 넣기 어려운 것이기도 했다. 구파와 같은 현문정종의 거대 문파들도 현기를 지닌 인물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단현이 단지 삼 개월 동안의 수련으로 이러한 경지를 이루어냈으니 사선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사선은 알지 못했다.
단현이 도에 대한 깨달음 없이 현기를 이루어냈다는 사실을.
단지 단현의 무공에 대한 오의와 심득이 너무나 깊어 오직 무공에 대한 깨달음만으로 현기를 손에 넣었다는 것을.
더구나 비록 봉인된 상태이지만 단현은 천마기라는 마공을 지닌 채 현기를 이루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사선이 느끼는 배신감은 대단할 것이다.
그러나 사선은 이러한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마도 단현과 같은 경우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생겨나지 않을 테니까.
“이제는 현이에게 천부마경을 보여 주어도 괜찮을 것 같군.”
평소 단현에게는 비교적 냉정한 편이던 당벽조차도 단현이 현기를 품을 수 있는 경지에 올라서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금까지 현기를 이룬 도가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존경받을 만한 인품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무인을 넘어서 세상을 달통한 것 같은 다른 세상의 사람들 같았다.
지금껏 현기를 이룬 정도의 인물들이 그래 왔고 그것은 정도의 사람들에게 일종의 고정관념을 심어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제반 사항을 전혀 모르는 단현으로서는 오늘따라 사선의 반응이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이들이 또 어떤 계략을 세우고 있는 건가?’
오히려 단현의 경계심만이 더욱 날카로워질 뿐이었다.
평소처럼 단현이 사선에게 무공을 지도받고 돌아가고 사선은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남궁천이 폐관에 들어가고 사선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은 점점 줄어들어 갔다.
최근에는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오늘은 단현이 현기를 이룬 것을 보고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어느새 남궁 대협이 폐관에 들어간 지도 반년이 넘었구려. 어떻게 되었는지…….”
제갈유의 목소리에 그리움이 묻어났다.
“중단전이 깨어날 것은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지.”
사무령의 목소리는 독백에 가까웠다.
“그나저나 현이의 성장 속도는 정말 무섭군. 일 년 동안 내공의 기틀만 다시 잡아도 다행이다 했는데 현문정종의 범주에 근접하다니.”
당벽이 혀를 내둘렀다.
이미 단현의 뛰어난 재능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단현의 재능은 다시 한 단계 올라선 것이다.
“문제는 남궁대협 없이 천부마경을 현이에게 보여 주게 된 것이구려.”
“현기를 이루어냈다는 것은 이제 현아가 완전히 정도의 인물이 되었다는 뜻이오. 이제 현아에게 더 이상 생사뇌중혈은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사무령이 제갈유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에 제갈유는 크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생사뇌중혈은 불완전한 술법입니다. 어찌 보면 정도라 자처하는 제갈세가에서는 버렸어야 하는 술법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술법은 제갈세가에서도 금기로 지정해 둔 바입니다.”
제갈유는 연달아 한숨을 내쉬며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세가 내의 사람들도 혹시나 하는 호기심에 종종 살펴보기는 하지만 이것을 습득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의 의술에 관한 욕망이 생사뇌중혈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말았습니다.”
“그럼 현아의 생사뇌중혈을 풀 수 없다는 것이오?”
사무령이 제갈유가 낙담하는 모습을 보고 짐작하여 물었다.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생사뇌중혈은 본가 내에서도 사장된 술법입니다. 그나마도 제가 의술을 공부해 이를 흉내 내는 정도나 가능했습니다. 사실 생사뇌중혈 그 자체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무령과 당벽은 나란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었다.
처음부터 제갈유는 생사뇌중혈의 불완전성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었으니까.
물론 그때는 그것이 제대로 작동할까에 대한 고민이었지만.
“어쩌면 정마의 판도가 뒤집힐 수도 있는 일이 될 뻔했는데 아깝구려.”
사무령의 목소리에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이제 사선은 단현이 마도의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 모두 동의했다.
마공과 현기가 동시에 공존하는 것이 가능하리라고는 그들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같은 정파의 진기라도 문파가 다르면 충돌하는 마당에 마공과 정도의 내공의 공존이라는 것을 불가능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저주받은 마공으로 손꼽히는 흡상대법조차도 결국에는 진기의 충돌로 자멸하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런데 현이가 천부마경의 내용을 해독할 수 있다고 해도 과연 우리에게 그 내용을 알려 주겠습니까?”
당벽은 사선이 가졌던 가장 근본적인 고민을 들추어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천마신교의 내분에 접근하여 단현의 사체라도 해부해 보려 했던 이유도 결국은 천부마경의 매혹 때문이었다.
물론 당시만 해도 사선은 천부마경의 오의를 짐작하며 이 절대 비급이 마공의 범주를 벗어난 신공이라 판단하였다.
하지만 남궁천의 중단전이 깨어지며 천부마경을 무작정 신공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워졌다.
“만일 우리가 해독하지 못한다면 천부마경을 다시 묻어야 할 것입니다.”
제갈유의 말에 두 사람도 무언으로 동의했다.
천부마경을 사선이 풀어내지 못한다면 천부마경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천하에 없거나 있다하더라도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만일 천부마경을 잘못 익혀 생겨나는 폐해가 중단전의 활성이라면 천부마경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광인들이 강호를 피로 물들게 할지 몰랐다.
차라리 그렇게 될 바에는 천부마경을 세상에서 지워 없애는 것이 당연하다고 사선은 판단했다.
“그럼 조만간 현아에게 천부마경을 보여 주고 그 추후를 살펴 나머지 일은 결정하도록 하지.”
사무령이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사선에게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만일 일이 잘못된다면 사선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애당초 그렇게 하기로 해서 만났고 함께 천부마경을 연구하였다.
그러나 사선의 기분이 착잡한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아무리 천부마경이 천마의 무학이라고는 하나 사선도 당금 강호에서 견줄 자가 드물 정도로 절대강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다년간에 걸쳐 함께 힘을 모아도 풀어내지 못한 것을 단현이 풀어낸다면 그것이 얼마나 허탈할 것인가.
사선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만일 남궁천의 폐관이 잘못된 상태로 끝나게 된다면 단현으로부터 성과가 없다면 그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천부마경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눈앞의 비급은 없애야 할 것이다.
이제 사선이 결론을 내려야 할 날도 머지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