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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마경 1권(17화)
六章 뇌공(雷公)(3)


단현의 수많은 상념들과 상관없이 사무령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아무래도 새로운 내공의 창안이라는 것이 쉽지 않겠지. 본래라면 우리는 그것을 너에게 맡길 요량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천부마경이 중단전을 깨우기 전의 이야기였지 지금은 아니다.”
“그 말씀은 일단 아무 내공이나 배우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니다. 내 너에게 최근에 나의 무학이 집대성된 무공을 하나 알려 주려고 한다. 너는 가능한 한 빠른 시간 안에 이를 연성하여 천부마경을 보아야 한다.”
단현은 은연중에 사무령의 조급함을 엿볼 수 있었다.
이는 사무령이 중단전을 깨운 채 폐관에 들어간 남궁천에 관해서 갖는 불안감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한편 단현은 극도의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의아함을 지울 수 없었다.
사무령의 말대로라면 만일 제갈유가 죽을시 일 년 안에 단현도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난데없이 사무령이 자신의 절학을 전수해 주겠다니 의아해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생각과 판단은 나중에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너에게 전수해 줄 무공은 유광여룡신공(乳光驪龍神功)이다.”
단현은 사무령에게 유광여룡신공을 배웠다.
사무령이 자신의 무학을 집대성시켰다고 할 만큼 유광여룡신공은 대단했다.
사무령이 곤륜파임에도 불구하고 유광여룡신공은 곤륜파 무공의 범주를 벗어난 듯 보였다.
그리고 그러한 점이 단현의 마음에 더욱 들지 않았다.
유광여룡신공에는 곤륜파의 무학을 바탕으로 그동안 사무령이 천부마경을 통해 얻은 심득까지 포괄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유광여룡신공은 군데군데 천마신공의 향기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해가 밝아 올 때까지 단현은 사무령에게 유광여룡신공을 배웠다.
“너는 유광여룡신공을 익히는데 전념을 다하여라. 그리고 유광여룡신공은 그 누구에게도 알려 주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다른 사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명심하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사무령이 단현의 거처를 떠나고서야 단현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그러자 온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단현은 천마의 무학인 천마신공을 오직 단가의 후손들만이 배웠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무령의 말이 사실이라면 천부마경이라는 또 다른 천마의 무공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도 단가의 손을 떠난 상태로.
단현은 더욱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천마의 무공은 일반적인 마공과는 격이 다르다.
사선이 천마의 무학을 접했다면 욕심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단현이 협조한다면 천부마경의 해석이 쉽게 이루어질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천하에서 천마의 무공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천마신교의 교주일 테니까.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단현에게 천부마경을 보여 주지 않았을까.
지금도 만약 단현이 천부마경을 보고 심득을 얻는다 해도 사선에게 알려 주지는 않을 것이다.
사선도 물론 이를 생각지 못할 리 없다.
오히려 역으로 단현이 천부마경의 해석을 꼬아 버린다면 이것을 익힌 사선은 주화입마의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것까지 염두에 두고 가짜 천마신공을 만들어 사선에게 넘기기도 하였다.
천부마경의 존재로 사선의 그동안의 행동들의 이유가 설명되었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행동했는데 단현이 이를 눈치채지 못한 것이 이상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것은 아마도 천마의 무학은 천마궁의 절대 안전한 곳에 숨겨져 있다는 확신이 단현의 유연한 사고를 가로막았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이러한 사실을 인지한 이상 단현도 바뀌어야 했다.
지금은 삼청산에 처음 들어올 때보다 훨씬 강한 힘을 손에 넣었다.
남궁천의 이탈은 사선도 예상치 못한 일일 가능성이 높았다.
사무령은 실리와 이성적 판단보다는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는 인물이다.
남궁천이 일을 주도할 때와 달리 남궁천의 폐관 후 사무령이 전면에 나서면서 단현에게도 실낱같지만 정보들이 흘러들어 오고 있다.
그리고 균열도 조금이지만 느껴지고 있다.
바로 당벽이다.
남궁천과 사무령이라는 절대강자들이 동시에 버티고 있을 때는 그도 버거웠을지 모르지만 남궁천이 의외의 상황으로 이탈하게 된다면 달랐다.
사무령은 이를 염려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모든 근심은 원인은 남궁천의 중단전과 천부마경이라고 단현은 파악했다.
정도무림에서 중단전을 위험하게 보고 있다면 그리고 어느 한 문파에서 이를 독점하길 원하지 않는다면 천마신교에서 배신당한 단현만큼 적격인 인물도 없다.
남궁천과 달리 사무령은 단도직입적이다.
상황을 정확히 직시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남궁천과 같다.
그러나 남궁천이 주변의 모든 상황을 통제하며 완벽에 가까운 모습으로 가는 것과 달리 사무령은 곧장 목표점을 향해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다가선다.
그것은 자신이 하는 일이 언제나 바르다고 믿는 신념이 없다면 사무령과 같은 인물에게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혼자 있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의 전후를 차분히 정리하니 그것들이 단현에게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일단은 사무령의 뜻에 따른다.
그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다.
뒷일은? 그때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은 눈앞의 일만으로도 벅찼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어도 단현은 아직 경험이 부족했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자연스럽게 해결해 줄 문제였다.
물론 이제는 그 시간이 꼭 자신의 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단현은 유광여룡신공을 배우는데 모든 심력을 소모하였다. 사무령은 새로운 내공의 창안이 현재 단현의 한계라고 보았지만 이는 사무령의 판단 착오였다.
천마신공과 뇌공절세심의류를 완성하기 위해 소모하던 시간을 줄이고 유광여룡신공에 힘을 기울이니 그 성취는 대단했다.
유광여룡신공은 단현이 그동안 배워 왔던 무공들과는 또 다른 상이한 일면이 있었다.
먼저 곤륜파의 무공에 은은히 감돌고 있던 공의 기운의 사용법이 훨씬 유려해졌다.
그리고 이는 유광여룡신공의 위력이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또한 그동안 곤륜파의 무공에 포함되지 않았던 혼륜의 기운이 아주 조금이지만 유광여룡신공에 배어 있었다.
이 혼륜의 기운은 공의 기운과 함께 천마무학의 기틀을 이루는 힘 중의 하나였다.
이는 사무령의 무학이 천부마경을 통해 어느 정도 바르게 접근해 가고 있음을 증명해 주었다.
다만 천마신공과 다르게 전개되는 부분이 산의 기운에 도달하면서부터였다.
천마신공은 산의 힘을 륜화(輪化)시키는데 반해 유광여룡신공은 산실이라는 독특한 법칙을 구현하고 있었다.
이러한 방법 역시 단현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실이 가져다 주는 순간적인 파괴력은 상당했다.
단현이 유광여룡신공을 익혀 갈수록 암의 기운이 서서히 단현의 단전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단현은 이를 느끼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 존재가 외형적으로는 마의 힘을 닮아 있으면서도 본질적으로는 마의 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마공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할 수 있는 단현조차도 생소한 힘이었다.
그것이 단현이 사무령으로부터 유광여룡신공을 배운 날로부터 칠 일이 지나서였다.
단현은 조그마한 성취가 보이자 곧장 사무령을 찾아갔다.
사무령을 비롯해 제갈유와 당벽이 단현의 몸 상태를 세세하게 살피고는 각각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이 현이도 천부마경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다고 했던가. 그럼 편히 말하지. 한눈에 알아보기는 어렵지만 결국은 마공이 되어 버렸어.”
제갈유가 혀를 찼고 사무령의 표정에도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단현이 돌아가는 상황을 살피니 사무령도 유광여룡신공은 익히지 않은 듯했다.
그때 단현은 진한 배신감을 느꼈다.
물론 사무령은 처음부터 유광여룡신공이 미완이 무공이라 언질했었다.
하지만 지금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단현은 마치 자신이 살아 있는 실험용 도구가 된 느낌이었다.
단현은 마음 한편으로 자신들의 절학을 아낌없이 가르쳐 주는 사선을 의아해 하면서도 조금의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감옥에 유배된 삶과 다를 것 없는 삶이었지만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암흑과도 같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생명을 구했고 무공까지 가르쳐 주었다.
사선의 목적이 훗날 단현과 천마신교의 싸움으로 그 중간에서 이득을 취하려 했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무공을 빼내 보려 했든 그들이 단현의 목숨을 구하는데 일조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단현이 지금까지 알게 된 진실 속의 모습은 그것만은 아니었다.
천마의 무학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
사선은 언제라도 단현의 목숨을 끊을 수 있도록 안배하고 단현에게 한정된 삶을 부여했다.
단현은 얼마 전까지 그것도 모른 채 생존을 위해 꿈틀거렸다.
뿐만 아니라 사선은 단현의 몸을 통해 마공과 자신들의 무공의 차이점을 실험하고자 하였다.
만일 단현이 마공을 버리지 않았다면 단현은 마공과 사선의 무공이 공존하는 문제를 위해 사용되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천부마경을 해독하는데 힘을 보태고 다시 그 무공을 익혀 나가며 발생할지 모르는 부작용을 사선에게 알려 주는 충실한 생명체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적당한 때가 되면 사선은 단현의 목숨을 끊을 것이다.
만일 중간에 단현이 탈출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일 년을 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니 사선은 마음 편안하게 자신들의 무공을 단현을 통해 구현하고 이 무공이 천부마경과 공존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사실이 사무령과 제갈유의 대화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단현의 생사보다는 미완의 유광여룡신공에 대한 진한 아쉬움.
어렴풋이 짐작했던 것들이 하나하나 사실이 되어 단현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어차피 마는 정이라 자처하는 존재와 공존할 수 없는 것이었지.’
단현은 그동안의 천마신교의 역사를 되짚어 보며 잠시나마 흔들렸던 자신의 유약한 정신을 질책했다.
‘그러니 조영과 같은 녀석에게 배신을 당하는 거다. 그래서 사선에게 지금도 이용당하는 거다. 왜 이렇게 돼 버렸을까? 단지 천마 단휘 태상조사님의 후손이라서?’
이런 단휘의 자책과 상관없이 제갈유는 자신의 의견을 펼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유광여룡신공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 어차피 마공이 되어 버렸다면 우리와 함께 유광여룡신공을 다시 고쳐 보면 어떤가?”
“외람되지만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단현이 사무령과 제갈유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무엇이더냐?”
“저는 사 사부님께 무공을 사사받았습니다. 물론 곤륜과 유광여룡신공뿐만 아니라 알고 있는 마공도 제법 됩니다.”
단현의 이야기에 세 사람이 집중했다. 그들도 이미 단현의 해박한 무학은 인정하고 있었다.
“부족한 저의 견식으로 보자면 유광여룡신공은 근본이 마공입니다. 시작은 미약한 것 같아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시전자의 잠력을 뽑아내어 종래에는 결국 시전자를 파멸로 이끌게 됩니다.”
제법 신랄한 단현의 이야기에 사무령의 작은 신음성이 이어졌다.
자신의 무학이 깨어지는데 그 누가 반기겠는가.
더구나 사무령은 무학에 관해서 많이 관대하지 못했다.
“가장 근본이 되는 씨앗이 마공인데 아무리 공을 들여 손본다 한들 마공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차라리 버리는 것이 났다.”
“제가 느끼기에 무공의 완성도는 천마신공에 버금갈 정도라 느껴집니다. 하지만 마공이 아니니 천마신공의 위력에 미치지 못하고 그렇다고 정도의 정심함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어찌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느냐?”
“제 좁은 소견으로는 천부마경의 오의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해서 생긴 부작용 같습니다. 아마 천부마경의 오의를 풀어낸다면 유광여룡신공의 문제도 함께 해결되리라 생각합니다.”
단현의 이야기에 세 사람이 동요했다.
“아무래도 현이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소. 당분간 유광여룡신공의 완성은 조금 미루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제갈유의 말을 사무령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또 다른 마공 하나를 세상에 꺼내어 놓을 수는 없었으니까.
사선이 떠나가고 홀로 남은 단현이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나를 이용하겠다고? 웃기지도 않는군. 아마 당신들의 생각대로는 되지 않을 거야.’
사선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단현이 유광여룡신공을 스스로 마공으로 변질시켜 버린 것을.
천하에서 마공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단현임을 알면서 단현이 유광여룡신공을 그렇게 간단하게 마공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이제 서서히 바뀔 때도 되었지. 나도 당신들도 그리고 세상도.’
단현의 눈빛에 묘한 일렁임이 겹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