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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마경 1권(16화)
六章 뇌공(雷公)(2)
단현이 뇌공의 힘까지 손에 넣었을 때까지도 남궁천의 출관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단현은 새로 얻게 된 뇌공의 힘을 사선에게 알려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본래 단현은 새로운 내공의 단초를 만들어내면 사선과 함께 이를 완성시킬 요량이었다.
그러나 뇌공의 기운은 단현의 예측을 뛰어넘는 강력한 힘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융합의 경지를 단현에게 보여 주었기 때문에 단현은 이를 당분간 혼자만 알기로 했다.
단현은 사선을 완전히 믿지 못하는 만큼 그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꺼내어 보여 주는 것도 항상 신중하게 고심하고 있었다.
단현은 검에다 환단전을 생성시키고 그 속에 뇌공의 기운을 넣어 두고 다녔다.
그리고 밤이 되면 그 뇌공의 기운을 꺼내 다시 연구를 계속했다.
아쉬운 점은 검이 튼튼하지 못해 뇌공의 기운을 확장시키지 못한다는 정도.
단현은 자신이 새롭게 창안한 무공의 이름을 뇌공절세심의류(雷公絶世心意流)라 이름 붙였다.
그러면서 단현은 더욱 바빠졌다.
천마신공의 수련과 뇌공절세심의류의 창안으로 그야말로 심신이 격렬하게 소모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일은 사선 몰래 해야 하는 일이었다.
사선과 함께 있을 때는 사선의 무학과 지식을 가다듬고 아직 미완인 새로운 내공을 창안하는 것처럼 보여야 했다.
한편 사무령은 이때쯤을 단현의 한계로 보았다.
그토록 무섭게 성장하던 단현이 주춤하는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단현이 보여 준 모습만으로도 경이로운데 설마하니 스스로 뇌공의 힘과 같은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사실 사무령도 삼청산에 들어와서 무공에 큰 진전이 있었다.
천부마경을 시작으로 사선이 각각 자신들이 지닌 절기를 교환하며 그 역시 또 다른 무학의 경지를 개척했다.
사실 사무령은 이 무공을 곤륜의 후학 중 인성이 바른 아이에게 전수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단현을 보고 있으니 은근한 욕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비록 천마의 피를 잇고 있기에 자신의 사문과는 숙적일 수밖에 없는 관계이지만 그 재능은 사무령이 보아온 후학들 중 단연 최고였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남궁천이 광인이 될 경우 그것을 막아야 할 사람은 오직 사무령밖에 없었다.
제갈유와 당벽은 지금도 남궁천이나 사무령에 비해 한두 수 아래의 실력이었다.
더구나 당벽은 평생을 독선으로 살아온 인물이었다.
독에 관해서는 워낙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에 초빙하기는 하였지만 만일 일이 틀어질 경우 그가 자신을 희생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최악의 경우 남궁천을 비롯해 모든 사람이 죽고 오직 당벽만이 생존해서 천부마경을 가지고 사천당가로 귀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천부마경을 비롯해 사선이 그 죄를 모두 짊어지고 뒤끝을 깨끗하게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 사무령의 의지였다.
* * *
어느 날 사무령이 홀로 단현의 거처를 찾아왔다.
“새로운 내공의 창안에 진전은 좀 있느냐?”
사무령이 단현의 거처로 들어서며 물었다.
단현은 폐부로부터 아쉬움을 담아내며 한탄했다.
“제자가 부족하여 네 분 사부님의 가르침을 받고도 아직 그 일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어찌 우리의 무공을 섞어 하나로 만드는 일이 쉽겠느냐. 어쩌면 한평생이 걸려도 이루지 못할지도 모르는 일이거늘.”
사무령은 단현의 눈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인가, 아니, 첫 만남 때부터였던가 전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단현의 눈만이 무심하게 사무령의 눈길을 받아내고 있었다.
“너도 남궁 사부가 중단전에 눈을 떠 폐관에 들어간 사실은 알고 있겠지.”
단현은 사무령이 자신이 궁금해 했던 이야기를 먼저 꺼내자 넌지시 모르는 척 받아넘겼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좀 더 정확한 정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제자가 무능하여 사실 중단전이라는 것 자체를 잘 알지 못합니다.”
사무령은 무공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보유한 단현이 어째서 중단전을 모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하지만 무공을 수련하는데 중단전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마교에서 무공을 수련하는 방법과 정도의 방법이 다르니 모를 수도 있다고 가볍게 생각했다.
“중단전은 실체만 확인된 미완의 힘이다. 아직 어느 문파도 중단전을 제어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지. 중단전을 깨운 무인은 두 가지 길 중의 하나를 걷는다. 영웅이 되거나… 그렇지 못하면 광인이 되거나.”
단현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그 정도면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중단전을 제어하는 방법을 깨달은 정도의 무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이 구체적으로 이어져 오지 않는다는 소리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마교에서 사용하는 사술도 중단전과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이를 이용하면 중단전을 제어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단현의 이야기에 사무령은 웃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런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는 남궁 사부가 영웅의 힘을 얻어 나왔으면 한다. 그는 그럴 자격이 충분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가 광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단현은 사무령의 말뜻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만일 남궁천이 광인이 되어 사선을 제압하고 삼청산을 떠나 강호로 내려간다면 정도무림은 발칵 뒤집어질 것이다.
“만일 그런 일이 눈앞에서 펼쳐진다면 이곳에서 그것을 막을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다.”
단현의 사무령의 눈빛에서 얼핏 결의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는 죽는다.”
밑도 끝도 없는 사무령의 이야기.
그러나 단현은 어떠한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사선과 단현 사이에는 넘어서려야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 존재했다.
“이미 제 목숨은 사부님들께 맡겼습니다.”
사무령은 그런 단현을 믿음을 담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너는 살아서 도망쳐라.”
“저는 생사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어찌 남궁 사부님의 불행에서 도망치려 하겠습니까.”
사무령의 얼굴에 쓴웃음이 걸렸다.
“어차피 너는 죽는다. 이해하지 못하겠느냐?”
단현은 사무령의 말뜻을 그제야 눈치채었다.
조영이 천마신교에서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지금 단현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만 그러한 안배가 있다는 무언의 경고.
하지만 단현은 사무령이 굳이 늦은 시간에 자신을 찾아와 이런 말을 남기는 저의를 파악하지 못했다.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저도 여기서 네 분 사부님과 같은 운명을 맞을 것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이구나. 너는 남궁 사부에게 죽지 않아도 결국은 죽는다. 사실 너를 구해내었을 때 너를 믿을 수 없었단다. 죽어 가는 생명을 구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마교의 교주를 무턱대고 구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지.”
사무령은 그때를 회상하는지 잠시 침묵에 잠겼다.
단현은 그런 사무령을 보고 속으로 혀를 찼다.
어떻게 저렇게 무른 성격으로 십선의 일인으로 천하에 군림하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사무령이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사선이 단현을 구할 때 이미 단현이 천마신교의 교주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소리가 된다.
“해서 제갈 사부가 너의 몸에 괴이한 사술을 하나 걸어 놓았다. 만일의 경우 언제라도 너를 죽일 수 있도록. 행여나 우리가 모두 죽는다면 너는 그날로부터 일 년 후에 죽을 수밖에 없는 사술이 있다고 하더구나.”
단현은 은연중에 짐작하고 있던 일이 사실로 드러나자 이가 갈렸지만 겉으로는 이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제갈 사부님의 조치가 당연합니다.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사무령은 그런 단현을 보며 안타까움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사무령도 알고 있다.
단현의 마음속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을 숨겨진 칼날을.
어찌 세상에 대한 원망이 생기지 않겠는가.
만일 사무령 자신이 단현의 위치였다면 견디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만일 남궁 사부가 광인이 된다면 나와 제갈 사부가 막을 것이다. 당 사부는 아마도 적당한 기회를 보아 도망칠 것이고.”
단현의 생각도 사무령의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신은?
“너도 당벽과 마찬가지로 도주했으면 한다.”
단현은 이번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물론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단현은 두말할 필요 없이 몸을 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사무령에게 인식시킬 필요는 없었다.
“저는 이미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삼청산을 떠난다 하더라도 어차피 일 년밖에 더 연명할 수 없는 목숨이라면 무엇 때문에 그리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남궁세가에는 이러한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한 가지 더 천부마경이란 비급을 파훼하고 사천당가가 이 물건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전해야 한다.”
“천부마경이란 비급이 무엇이기에 사부님들의 생명을 등한시하시는 겁니까?”
사무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이런 일로 천부마경의 존재를 단현에게 알릴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사실 사무령은 이 일을 암조를 통해 맡길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천부마경의 유혹은 너무나 거대했다.
일전에는 암조 중 세 명에게는 천부마경을 보여 주려 하였으나 천부마경이 중단전을 깨우는 힘이 있다면 위험했다.
만일 허욕이 생겨 천부마경을 수련하다 또 다른 광인이 탄생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야 곤란했다.
어차피 단현에게는 천부마경을 보여 주어 해석에 도움을 받으려 했다.
또한 단현이 광인이 된다 한들 그는 마교의 인물이고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
결국 사무령은 이 일을 암조가 아닌 단현에게 맡기기로 결정하였다.
물론 단현에게는 안 된 일이었지만 사무령으로서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천부마경의 존재는 가능하면 알려지면 안 되었다.
어찌 되었든 천마의 무학.
그것을 사선이 익힌 것이 알려진다면 그것이 마공이든 아니든 가져올 파장은 대단했다.
또한 천부마경의 존재가 알려진다면 수많은 강호인들이 천부마경을 손에 넣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더구나 그 천부마경이 천마가 남긴 무공이라는 사실까지 알려진다면 구파구방을 비롯해 십협, 오교와 같은 강호의 절대세력들까지 가세할 것은 뻔했다.
그야말로 혈풍이 일어날 것이고 이를 촉매로 정사대전이 펼쳐질지도 몰랐다.
그만큼 천마의 무공이 가지는 의미는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이러한 모든 사정을 감안해 보았을 때 단현 이상의 적임자를 찾기 어려웠다.
“천부마경은 천마의 무학이라 했다.”
순간 단현은 머리를 둔기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천부마경은 단현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순식간에 수많은 상념들이 단현의 뇌리를 스쳤다.
천마신교의 교주조차 모르는 천마의 무공.
“저는 처음 들어봅니다. 정말 천마의 무공이 천마신공 이외에 더 존재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단현은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순식간에 모든 생각이 뒤집어지는 느낌이었다.
천마의 또 다른 무학.
그것이 단현의 죽음에 얽혀 있다면 단현으로서는 최후의 패를 잃어 버리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지금껏 단현의 자신의 힘.
즉, 천마의 무공을 감추는데 사력을 다해 왔다.
만일 또 다른 천마의 무학이 존재하고 그 무학을 단현의 적이 숙지하고 있다면 이 같은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된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우리 사선이 다년간의 심혈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천부마경의 오의를 해석하지 못했다.”
“설마 사부님들께서 마공을 익히고 계셨던 겁니까?”
“그런 셈이지.”
사무령은 부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언젠가는 단현이 받게 될 충격이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너도 보아야 할 비급이지만 그전에 한 가지를 더 거쳐야 할 것 같구나.”
“그것이 무엇입니까?”
“새로운 내공의 습득이다.”
어차피 단현은 처음부터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천마무학이 비록 신비롭기 그지없지만 단현은 아직 이를 완성하지 못했고 그 상태에서 사선을 제압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서 상황을 살피며 스스로 힘을 몰래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사선을 어느 정도까지는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선이 천마의 무학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 봉인과 금제의 술을 알고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