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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마경 1권(15화)
五章 개신(改新)(4)


“무선의 중단전이 깨어났으니 우리는 어찌하면 좋을까?”
제갈유가 언제나처럼 근심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그가 괜히 무선이겠는가. 틀림없이 새로운 경지를 깨달아 출관할 걸세.”
당벽이 제갈유를 안심시켰다.
소싯적에 제갈유와 당벽은 각각 의술과 독술로 첨예한 대립을 이루던 사이였는데 설마 말년에 천부마경이라는 비급을 인연으로 이렇게 함께하게 될 줄은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처는 해야 하겠지.”
사무령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냉정했다.
사무령은 평소에 소탈한 성격이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소탈치 못한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그의 무공에 대한 집념이었다.
때문에 사무령의 까칠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남궁천은 사무령을 친구로 인정했고 이번 일에 초빙까지 한 것이다.
출관하게 되면 남궁천의 무공은 또 다른 경지로 넘어갈지 모른다는 생각.
그것이 사무령을 한층 날카롭게 만들었다.
“만에 하나라도 불상사가 일어나게 된다면 우리는 모두 남궁천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어. 그리고 그 와중에 천부마경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 버릴 수도 있지.”
제갈유도 그 부분에는 동의했다.
“확실히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낼 때는 두 가지 중의 하나겠지. 다른 건 몰라도 천부마경이 중단전을 깨우는 힘이 있다면 그냥 방치시켜 둘 수는 없겠지.”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인가?”
당벽도 그것이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쩌기는 뭐 별 뾰족한 수라도 있나? 본디 천부마경은 천마의 물건이니 마교의 것이나 어쨌든 제갈세가에서 비급을 찾아내었으니 지금은 제갈세가의 것이지.”
“그 말은 제갈세가에서 천부마경을 거두라는 것인가?”
“그것이 응당 합당한 일이네. 그렇다고 천부마경을 마교에 갖다 받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하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아이들이군.”
사무령의 이야기는 타당했다.
그러나 제갈유도 선뜻 사무령의 이야기에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남궁천의 일로 천부마경이 위험한 비급임이 드러났다.
중단전을 잘못 깨트리면 화를 부른다.
더구나 천마의 무학이다.
이 사실이 밖으로 퍼져 나간다면 제갈세가에서 마공을 익힌다고 한바탕 뒤집어질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비밀로 할 수도 없겠지.”
제갈유의 목소리에는 조금 힘이 빠져 있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내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적어도 장문인에게는 그 존재 정도야 넌지시 알려 줄 수밖에 없음을 자네도 알지 않나.”
제갈유도 사무령의 말을 이해했다.
이 자리에 모인 사선은 문파를 떠나 함께 천부마경을 다년간 연구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네 사람의 배분이 워낙 대단했기 때문이고 각기 남다른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직 새로운 무학에 대한 열망으로 모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사선은 만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후학들은 다르다.
사선은 천부마경이 제갈세가의 물건임을 인정하지만 그들의 사후 천부마경은 천마가 남긴 마공이 된다.
그리고 그 마공을 제갈세가에서 익힌다.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구파를 비롯한 각 문파에서 이를 빌미로 들고일어날 것은 뻔했다.
제갈유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 없었다.
만일 제갈세가의 후손들 중 천부마경을 통해 중단전을 깨워 광인이 되는 사람이 생겨난다면 그야말로 강호는 한바탕 풍파를 겪을 것이다.
이를 사무령과 당벽에게 비밀로 부쳐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구파나 십협에서 이를 주시하다 견제를 해 주어야 함이 마땅했다.
하지만 사무령이 말했듯이 자신의 사후 언제까지고 제갈세가가 천부마경을 소장하고 있는 것을 좌시할지는 역시 장담할 수 없는 문제였다.
당장 천부마경의 오의를 풀어낼 수만 있다면 천부마경을 세상에서 지워버리고 각 문파의 무공에 이 오의를 담아내면 된다.
그러나 사선의 무학이 틀림없이 진보를 이루었는데도 천부마경은 또 다른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포기하기에는 아직 아쉬웠다.
그리고 남궁천이 새로운 심득을 얻어 나온다면 이런 걱정은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남궁천이 이지를 잃어 버리고 힘만을 손에 넣은 채 출관하는 것도 대비해야 했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중단전에 관해서는 확답을 내릴 수는 없었으니까.
사선은 결국 어떠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각자 숙소로 향했다.
그 자리에서 비교적 말을 아끼던 당벽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래도 천부마경은 제갈세가에서 가져야지. 암 꼭 그래야 하지.”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당벽의 신형은 가벼웠다.
그의 입에 가볍게 그려진 호처럼.



六章 뇌공(雷公)(1)


단현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정도무학의 내공은 호흡을 통해 외부의 힘을 받아들여 그중에서 정순한 기운을 자신의 몸에 조금씩 쌓아 나간다.
반면 마공은 호흡을 통해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힘을 몸속의 힘과 충돌시킨다.
이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몸속에서 사용되지 않던 힘들을 깨어나게 하여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정도무학은 힘이 천천히 쌓여 간다.
그리고 쌓이고 쌓여서 더욱 강력한 힘이 된다.
하지만 마공은 초기에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몸속의 힘이 소모되면 소모될수록 힘은 점점 약해지게 된다.
보통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정도무학이 마공을 종래에는 제압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일반적인 무공에 한해서였지만.
또한 마공의 경우에는 수련 방법도 제각각이다.
그것은 마공을 기반으로 하는 세력이 흥망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본성에 충실하게 행동하다 보니 충돌도 잦고 그 과정에서 세력의 균형이 쉽게 깨어진다.
하지만 정도의 무학의 반대다.
그들의 대부분은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고 참으며 지낸다.
때문에 정도무학의 세력들은 존립의 시간이 제법 길다.
그 긴 시간 동안 그들은 장점을 발전시키고 단점을 고쳐 나가며 강력한 힘을 키워 왔다.
단현은 그런 정도무학의 장점을 극대화시킬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호흡을 통해 탁기를 배출하고 그 심법의 특성에 따라 고유의 성질을 가진 특정한 기운을 축기한다.
그리고 축기된 기운을 인체에서 융화되도록 변형 과정을 거처 마침내 심법이 가진 고유의 내공이 완성된다.
단현은 천마무학을 이었기에 축기 과정에서 다양한 기운을 임의대로 뽑아다 쓸 수 있었다.
문제는 단현이 새로 만들고 있는 내공의 두 개의 기둥인 남궁세가와 곤륜파의 내공이 각각 서로 상이한 기운을 사용한다는데 있다.
천마신공의 치환과 융합의 술을 사용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지만 이미 새로운 내공에 천마무학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 내렸다.
치환과 융합의 술이 사용될 수 없다면 아예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흡상대법의 경우를 보아도 수많은 마도의 고수들이 서로 충돌하며 날뛰는 진기를 공존시키기 위해서 오랜 시간 노력해 왔으나 아직 결실을 보지 못했다.
그만큼 서로 다른 기운을 섞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두 개의 기운 사이에 새로운 기능을 놓아 두면 길이 열리지 않을까?’
남궁세가의 제왕무적신공은 양강의 기운이다.
이글거리는 태양의 대지로 보내는 기운이 힘의 근간이 된다.
때로는 잔잔하게 세상을 품어 안는 힘이 되고 때로는 세상의 모든 것을 태울 것 같은 강렬한 힘이 된다.
반면 곤륜의 상청무상신공은 공과 물과 바람의 기운을 이용한다. 하지만 상청무상신공과 제왕무적신공이 만나게 되면 제왕무적신공의 힘이 반감된다.
상청무상신공의 차가운 힘이 바람과 조화를 이루어 변환의 극치를 이루어낸다.
여기에 공의 힘이 가세되며 뿜어내는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이 공의 기운은 천마신공을 이루는 근간의 힘 중의 일부이기도 하다.
천마신공처럼 완형된 것이 아닌 불완전한 요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는 힘이었지만 그 위력은 대단했다.
단현은 이 두 가닥의 힘을 어떻게든 공존시키려 하였지만 그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기운을 유입시켜 실마리를 찾고자 하였다.
단현은 수많은 기운들을 머릿속에서 떠올리고 지웠다.
한쪽에서는 치환과 융합의 술이 단현을 유혹하고 있다.
그러나 치환과 융합의 술이 가미되면 이 새로운 내공도 시전될 때 강력한 마기를 동반할 것이다.
마기를 지워낼 수 없다면 새로운 내공의 효용은 반감된다.
단현은 수많은 기운들 중에서 겨우 몇 가지 기운을 추려냈다.
단현이 수많은 기운들 중 처음으로 뽑아낸 기운은 벽력의 기운이었다.
하늘과 땅의 힘이 순간적으로 이어졌을 때 생성되는 가장 파괴적인 힘 중의 하나.
단현은 천천히 제왕무적신공의 기운과 상청무상신공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단현에 의해 한 번 정제된 두 가지 기운은 더욱 근원적이고 강력한 기운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서 단현은 벽력의 기운을 두 기운 사이에 놓아두었다.
제왕무적신공이 상청무상신공이 벽력의 기운을 사이에 두고 서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벽력의 기운이 뿜어내는 파괴적인 힘에 단현의 신형이 움찔거렸다.
그러나 이전처럼 두 개의 기운이 직접 부딪히지는 않았다.
도리어 두 개의 기운은 벽력의 기운에 힘을 보태었고 벽력의 기운은 이로 인해 더욱 증대된 힘으로 스스로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단현이 힘의 가닥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두 개의 기운은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기에 벽력의 기운과 연결시키는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처음에는 두 개의 기운보다 작던 벽력의 기운이 거대해지며 점차 두 개의 기운을 지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벽력의 힘이 스스로 제왕무적신공의 기운과 상청무상신공의 기운을 융합하기 시작했다.
단현은 그 과정을 느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천마신공의 치환과 융합의 술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벽력의 힘이 스스로 융합을, 변환을 거듭하며 전혀 다른 기운이 태동하고 있었다.
이것은 단현조자 미처 예상 못하던 일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벽력의 기운이 고요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황금색의 기운을 은은히 갈무리하고 가끔씩 파장을 가볍게 일으키는 새로운 힘이 태동한 것이다.
단현은 이 힘을 뇌공이라 이름 붙였다.
단현이 뇌공의 기운을 가볍게 움직여 보았다.
그러자 제왕무적신공의 기운과 상청무상신공의 기운이 은은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모든 기운을 압도하는 패도적인 기운인 뇌공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건 괴물이 만들어졌는걸.’
단현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아직은 끝이 아니다.
이 힘을 걸러내고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게 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