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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마경 1권(14화)
五章 개신(改新)(3)


밤이 깊어지자 단현은 태연히 거처를 나와 남궁천의 거처로 향했다.
단현은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근방을 살피지 않았다.
당장 사선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필요 없는 움직임은 경각심만 돋울 뿐이다.
그러나 오늘밤은 달랐다.
남궁천이 폐관에 들어갔다면 남궁천의 거처가 비어 있다는 것을 뜻했고 이는 그냥 넘기기 어려운 호재였다.
혹시나 제갈유나 당벽과 같은 인물들도 단현과 같은 생각으로 벌써 움직였거나 움직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단현은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금의 상황에 애써 적응하며 버터 오고 있었지만 단현은 이대로 모든 것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움직일 기회가 오면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그렇지 않으면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이 단현의 판단이었다.
조심스럽게 인기척을 죽여 남궁천의 거처로 들어섰다.
천으로 불빛이 새어 나갈 만한 곳을 가리고 불을 밝히자 정갈하게 정리된 실내가 환히 모습을 드러냈다.
단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남궁천의 거처를 뒤져 나갔다.
도움이 되겠다 싶은 물건이 있으면 과감하게 챙겨 넣기도 했다.
남궁천의 거처 수색은 반 시진이 걸려서야 끝이 났다.
대충의 수색이 끝나자 단현은 곧바로 기관이나 비밀 공간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단현도 그랬지만 남궁천과 같이 치밀한 성정을 지닌 인물들은 이중 삼중으로 함정을 파두고 중요한 것들을 숨기는 습관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남궁천의 거처에도 밀실로 이어지는 공간이 있었다.
밀실을 발견했음에도 단현은 잠시 망설이다 이를 곧 포기했다.
단현은 남궁천이 어느 곳에서 폐관에 들어갔는지 모른다.
그 말은 곧 이 안에 남궁천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가 된다. 아직은 숨죽인 채 알아보아야 하는 것들이 많다.
단현은 밀실로 통하는 곳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고 다시 거처를 수색했다.
그리고 침상의 기둥 부분에 교모하게 제작되어 숨겨진 작은 상자를 발견했다.
상자는 쇠로 만들어진 데다가 자물쇠까지 잠겨 있었다.
단현은 그 상자까지 챙겨 넣은 후 남궁천의 거처에 최대한 자신이 드나든 흔적을 지운 후 붉을 끄고 천을 떼어낸 후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단현은 우선 남궁천의 거처에서 가지고 나온 철제 상자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단현은 이전부터 이러한 쪽으로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이 분야에 최고 실력을 보유한 자들이 천마신교에 있었다.
단현은 어릴 때 한선과 함께 몇 날 며칠을 각종 절도에 대한 기술을 습득한 바가 있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잠금장치였지만 단현에게는 무의미했다.
물론 일반인이나 어정쩡하게 도둑질이나 일삼는 사람들이 보았다면 단현의 기술에 혀를 내둘렀겠지만 단현은 간단하게 철제 상자의 잠금장치를 열었다.
안에는 청량한 향기가 감도는 알약 하나와 보기에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비수 한 자루와 얇은 책이 세 권 들어 있었다.
특히 단현은 환단전을 시험해 볼 수도 있는 비수가 탐이 났지만 꾹 참았다.
남궁천이 폐관에 들었다 어떤 상태로 나오게 되는지 확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리한 욕심은 화를 부를 수도 있었다.
단현은 관심을 세 권의 얇은 책자로 돌렸다.
한 권은 단현의 눈에도 익숙했다.
자신이 직접 만든 책이었으니까.
다른 책 중의 한 권은 남궁세가에 그나마 전해져 오는 제왕무적신공의 일부였고 후반부는 남궁천이 복원한 부분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권은 남궁천이 최근에 얻은 심득을 나열해 놓은 글들이었다.
그런데 그 내용의 난해함에 단현은 남궁천을 새삼스럽게 재평가하게 되었다.
단현의 예상보다 남궁천의 심득이 훨씬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남궁천이 남궁세가를 구파에 견줄 수 있는 위치로 이끌었다더니 과연 그 말이 허언은 아닌 듯하다. 군데군데 남궁세가의 무공의 한계를 벗어난 듯한 흔적도 보이니.’
만일 남궁천이 지금 단현이 자신이 남겨 놓은 심득에 대한 평을 들었다면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사실 사선과 단현이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단현의 무공에 대한 광범위함은 사선을 넘어서고 있었다.
단지 단현이 조영에게 죽임을 당하고 겨우 천마령혼의 불가사의한 힘으로 되살아났던 직후라 사선은 단현의 피폐해진 모습만을 보아 왔다.
이후 단현이 스스로의 무공과 힘을 감춘 것을 단현이 무공을 버린 것으로 착각했기에 사선도 단현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이제 갓 지학을 넘긴 나이에 자신을 그 정도로 완벽하게 감출 수 있다는 것을 사선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그 기반에는 천마령혼의 봉인과 금제의 술로 인해 단현의 무공이 거들떠 볼 정도도 못된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기는 했지만.
만일 그러한 과정이 아니었다면 단현이 사선을 처음 만났을 당시에 단현의 무위에 사선은 단현을 지금과 같이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 근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선의 무공을 전수받고 또 이로 인해 마공이 아닌 무공을 처음 접하게 되며 단현의 무학은 다시 또 다른 경지로 진입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단현의 경이적인 무공 습득 능력과 이를 바탕으로 복원해 낸 제왕무적신공에서 어느 정도 드러났다.
물론 그 능력이 경이롭기 짝이 없었지만 사선의 의식 깊은 곳에는 항상 이런 전제가 깔려 있었다.
단현은 자신의 내공을 소멸시켰다.
그리고 제갈유가 틈틈이 단현의 몸 상태를 살폈다.
물론 단현은 지금까지 내공을 전혀 쌓지 않은 것처럼 제갈유에게 비춰졌다.
아무리 무학에 관한 심득이 뛰어나도 이를 구현할 수 있는 내공이 없다면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그러나 단현은 자신의 내공을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다.
사실 사선이 천부마경의 경이적인 경지를 엿보았다면 천부마경을 만든 단휘와 같은 무공을 잇고 있는 단현의 무공에 대해서도 의심했어야 했다.
그리고 그동안 천마신교의 교주들이 보여 주었던 절대적인 강함과 사술로 표현되는 그 사기적인 능력들을 감안한다면 절대 단현에 대한 경계심을 쉽게 놓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사선이 정도무림에서 갖는 배분과 능력들.
단현의 아직 어린 나이와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던 허약한 인간 본연의 모습.
종래에는 그 알량하다 생각한 힘마저 포기한 단현을 보며 사선은 단현을 너무 과소평가한 면이 없지 않았다.
잠깐 사이에 단현은 남궁천이 남겨 놓은 모든 것을 외웠다.
물론 남궁천이 자신의 모든 것을 그곳에 남겨 놓은 것은 아니었다.
제왕무적신공의 복원은 오랜 시간 동안 남궁세가의 숙원 중 하나였고 그가 끼적여 놓은 심득들도 단편적인 부분들이었지 완형은 아니었다.
그러나 단현에게는 그것만으로도 남궁천의 무력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었다.
단현은 자신이 쓴 것 외의 나머지 두 권의 책의 내용을 완전히 암기하고 다시 철제 상자 안에 내용물을 고스란히 담고 잠금장치를 다시 잠갔다.
다음으로 단현은 남궁천의 거처에서 가지고 나온 물건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먼저 몇 권의 책들은 남궁천이 그동안 얻은 무공에 대한 심득들을 기준으로 자신의 무학을 집대성한 듯했다.
철제 상자 안의 책들이 아직 정립되지 못한 것들의 나열이라면 이 책들은 남궁천 무학의 심득이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또한 대부분의 책들도 무공에 관련된 서적들로 정도무림의 기초가 부족한 단현에게는 제법 큰 도움이 되었다.
최근에 단현이 느꼈던 대로 정도무림과 마공은 완연히 다른 부분이 다수 존재했다.
단현은 처음부터 천마무학을 기틀로 기초를 다져왔기에 기존의 무공들과는 무공에 대한 관념이 아예 달랐다.
또한 천마궁에 소장되었던 비급들은 마공들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최고급의 비급들이었다.
단현은 천마무학을 바탕으로 이를 보았기에 그리 대단치 않게 생각했었는데 지금 정도무학의 일반적인 무공을 책으로 접해 보니 이러한 무공들에 비해 남궁천의 무학이 그리고 천마궁의 무학이 얼마나 뛰어난 무학인지 피부에 와 닿았다.
그리고 그 모든 무학들을 상회하는 천마무학에 짜릿한 감각을 느낄 정도였다.
이러한 것들을 토대로 단현은 남궁천이 최근에 정말 무공의 집대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남궁천이 이처럼 자신의 무공을 정리하고 집대성한 것을 보면 정말 이곳에서 무공에 관한 심득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것 같다. 그렇다면 사선의 목적은 정말 놀라운 무학을 얻어 이것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드는데 주력했던 것 같다.’
그와 함께 단현의 시름이 깊어졌다.
‘그렇다면 남궁천의 중단전이 깨어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것이 아마도 새로운 무학을 언급할 것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정도의 무학에 대해 무지했듯이 사선도 마공에 대해서는 한계가 존재했으니 나를 이러한 방향으로 이용하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선이 단현에게 아낌없이 무공을 알려주는 것도 이해가 갔다.
사선의 목적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데도 불구하고 단현의 근심이 깊어진 것은 조영과 사선의 연결점이 애매모호해졌기 때문이다.
조영의 배신과 사선의 목적은 전혀 부합될 수 없었다.
잠깐 동안 어떤 공조가 오갔을지는 몰라도 사선이 조영의 배후 중의 한 세력이 되기에는 무언가 부족했다.
단현은 복잡해지는 상상을 접고 이번에는 남궁천의 거처에서 가져온 몇 가지 서류에 집중했다.
대부분의 글들은 남궁세가에 관련된 몇 가지 소소한 글들로 대략이나마 남궁세가의 모습을 그릴 수 있는 정도의 정보들과 크고 작은 강호의 사건들이 나열된 수준이었다.
단현은 그 속에서 자신에 관련된 내용이나 천마신교의 동향을 살필 수 있는 글들이 있을까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그런 부분은 눈에 띄지 않았다.
대략의 내용을 살펴본 단현은 다시 그 물건들을 남궁천의 거처에 그대로 돌려놓고 나왔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내공의 창안에 박차를 가했다.
단현이 남궁천의 거처에서 본 무공들은 어찌 보면 쓸모없을 듯한 무공들이었지만 단현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단현에게 모든 무공의 기준은 천마무학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천마무학은 일반적인 무학으로 시작해서 도달하기에는 그야말로 경이적인 경지였다.
그런데 단현이 아무리 제왕무적신공과 곤륜의 무공을 기틀로 삼았다고 하나 이를 천마무학의 경지까지 끌어 올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단현은 아직 천마신공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이 상태에서 단현이 무공을 창안해서 그 경지로 끌고 오는 것 역시 버거운 일이었다.
무학마다 나름의 장단점이 있는 법.
단현은 남궁천 무학을 기틀로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으로 새로운 내공을 창안하는 것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때로는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것도 필요한 법.
단현은 지금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