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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마경 1권(13화)
五章 개신(改新)(2)
일단 생각이 정리되자 단현은 바로 새로운 내공의 창안에 몰두하였다.
사선이 만들지 않는다면 자신이 만들면 된다.
사선이 만든다고 자신이 만든 내공보다 좋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일단 하나라도 아쉬운 단현이 스스로 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제왕무적신공을 기반으로 검선과 의선 그리고 독선의 오의가 천마신공의 치환과 융합의 술을 만나자 서로 이를 드러내고 먹히지 않으려 저항하였다.
단현은 각각의 심법의 중함과 덜함을 구별하고 중복되는 부분을 덜어내었다.
상충하는 부분은 절단하고 동화시켰고 각각의 장점을 부각시켰다.
그와 함께 단현의 뇌리에 자리 잡고 있던 마공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 오의가 부족한 것들을 버려 나가고 강력한 마기를 뿜어내는 마공들도 제외했다.
그리고 남은 마공들에 가면을 씌워 기존의 사선의 무공들과 다시 융화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 와중에도 단현은 천마신공으로 대표되는 천마무학과 신조마경과 같은 절정의 마공들은 철저히 배제시켰다.
‘하지만 아무래도 천마무학과 비교하다 보니 모자람이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인가? 소림과 같은 정도의 최고 절학을 참조한다면 더 좋은 무공으로 태어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 * *
사방이 밀폐된 연공실에서 남궁천이 명상에 잠겨 있었다.
남궁천의 뇌리에서 천부마경의 구결들이 흘러갔다.
얼마나 반복해서 읽었던지 천부마경의 글자 하나하나가 너무나 명료하게 그려졌다.
그리고 단현이 넘겨준 가짜 천마신공의 구결이 떠올랐다.
참으로 묘한 것이 천마신공과 천부마경은 일맥하는 듯하면서도 절대로 합쳐지지 않았다.
그것이 남궁천은 너무나 안타까웠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았다.
이런저런 상념이 어느덧 제왕무적신공에까지 이어졌다.
남궁천이 천부마경을 보기 전까지 평생을 받쳐 복원하고자 했던 마지막 소망.
그리고 그러한 소망이 단현의 손에서 펼쳐지는 모습까지 남궁천의 뇌리에 빼곡히 들어찼다.
남궁천은 단전에서 천뢰제왕신공의 웅장한 기운을 전신으로 뿜어내었다.
천뢰제왕신공 특유의 따뜻한 기운이 남궁천의 혈맥을 휘감았다.
남궁천은 묵묵히 천뢰제왕신공의 기운을 자신이 복원한 제왕무적신공의 길을 따라 움직여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사이에는 군데군데 빈틈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 사이를 또한 절묘하게 메워 나가는 것이 단현이 복원한 제왕무적신공이었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남궁천은 내심 단현의 능력에 탄복하고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어찌하여 하늘은 그런 재능을 정도를 걸어가는 남궁세가에 내리지 않고 세상을 파멸로 이끄는 마교에 내렸단 말인가.
잠깐의 상념이 끼어들자 남궁천의 천뢰제왕신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궁천은 노련하게 서둘러 정신을 수습하고 다시 운기에 집중하자 천뢰제왕신공은 금방 안정을 되찾았다.
남궁천이 한시름 놓을 그때 불현듯 천부마경의 구결이 남궁천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 백회혈로 천뢰제왕신공의 기운을 이끌었다.
남궁천은 한 가닥 기운이 통제를 벗어난 것을 느끼고 급히 그 기운을 바로 잡으려다 그것이 천부마경의 구결이 이끄는 것이라는 점 때문에 갈등하고 말았다.
그러나 갈등의 시간은 길었고 천뢰제왕신공의 흐름은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백회혈에 도착한 한 가닥 기운은 순식간에 수백 가닥의 실처럼 갈라지며 퍼지더니 사방으로 비산해 흘러들어 갔다.
남궁천은 전혀 예상치 못한 현상에 깜짝 놀랐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남궁천은 머리 전체가 시원해지는 느낌과 함께 시야가 탁 트인 것 같은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 남궁천의 눈앞에 한 청년이 연기처럼 피어났다.
남궁천은 낯선 청년이 느닷없이 연공실에 모습을 나타내자 극도의 경계심을 끌어 올렸다.
아니, 그것은 본능인지도 몰랐다.
청년이 고개를 들었고 삼라만상을 담은 것 같은 청년의 눈동자에 남궁천의 시선이 의식과 함께 빠져들었다.
“으아아악!”
남궁천의 입에서 고통에 찬 괴성이 터져 나왔다.
남궁천의 신형이 요동치듯 경련했다.
얼마나 남궁천의 비명이 이어졌을까?
남궁천의 괴성이 잦아드는가 싶더니 남궁천의 눈 속에 혈광이 일렁였다.
그리고 남궁천의 입가에 가늘게 흐르는 한 가닥의 붉은 선.
“드디어… 천부마경의 오의를 얻은 것인가?”
남궁천의 웃음이 짙어졌다.
이제 연공실을 가득 채우는 것은 남궁천의 웃음소리뿐이었다.
* * *
단현은 오늘따라 남궁천의 모습에서 유난히 낯설음을 느꼈다.
나머지 사선은 전혀 그렇지 않은 듯했지만.
단현은 호흡을 가다듬고 준비해 온 얇은 책자를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놓고 펼쳤다.
그 속에는 단현이 손수 적은 글자가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이것이 무엇이냐?”
사무령이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제가 완성한 제왕무적신공입니다.”
“드디어 완성했느냐?”
사무령의 흡족한 목소리와 달리 남궁천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네는 궁금하지 않나?”
사무령이 남궁천을 보며 물었다.
제왕무적신공은 남궁세가의 실전된 무공이다.
당연히 이 자리에서 남궁천이 가장 깊은 관심을 보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남궁천은 단현이 내민 책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남궁천의 시선이 단현이 꺼낸 제왕무적신공의 비급이 아닌 사무령의 눈을 향했다.
남궁천은 굳은 눈빛을 사무령에게 내보이며 무거운 목소리를 내었다.
“자네 중단전이라고 들어봤나?”
“중단전이라면…….”
사무령이 섬뜩한 느낌을 느끼며 반문했다.
남궁천이 오른손으로 주먹을 말아 쥐며 자신의 가슴 아래쪽을 툭툭 건드렸다.
“그래 중단전. 그것이 깨어난 모양이네.”
이곳에 모인 사람들 중 그것이 가지는 의미의 심각함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오직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나는 당분간 폐관에 들어가야 하겠네.”
“혼자서 괜찮겠나?”
제갈유가 근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혼자서 극복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지 않나.”
“혹시 그것 때문인가?”
당벽의 물음에 남궁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현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것이 천부마경 때문임을 알아들었다.
“아무래도 그 물건을 아이들에게 보이는 것은 위험하겠네. 당분간은 자네들도 조심하게.”
중단전.
중단전이 무엇이기에 사선이 이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까.
중단전은 최고의 경지에 오른 무인들이 풀지 못한 난제 중의 하나였다.
일부 도가문파에서는 등선의 관문이라 했고 어떤 불가문파에서는 해탈의 방법이라고도 했다.
보통 중단전을 깨운 무인들은 두 가지 길 중의 하나를 걸었다.
불세출의 무공을 소유하며 천하에 우뚝 서거나 아니면 광인이 되어 세상으로부터 격리되거나.
이렇다 보니 중단전에 관한 논의는 문파에 상관없이 언제나 논란이 되었다.
이런 논란이 가중되는 원인 중 하나는 중단전을 깨운 무인들이 후대에 남기는 말들이 각 문파마다 너무나 상이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같은 문파에서 남기는 전언조차도 상반된 내용으로 상충하며 혼선을 빚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뿐만 아니라 중단전은 무공의 깊이를 떠나서 때로는 세간에서 주술을 다루거나 도가 계열의 문파에서 주술에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 중 일부가 중단전을 깨웠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문파에서는 중단전을 깨우는 것을 극도로 꺼려 했다.
이는 중단전을 깨운 무인들 중 영웅이 되는 사람들보다 광인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중단전은 실체만 확인되었을 뿐 제어를 할 수 없는 양날의 검과 같은 힘이었다.
하지만 중단전이 갖는 마력은 대단했다.
실패하면 모든 것이 끝나지만 성공하면 천하를 얻을지도 모르는 힘이었으니까.
그런 만큼 이런 중단전에 관심을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몇몇 문파는 문파의 부흥을 위해 중단전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또 문제가 되는 것이 중단전을 깨우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깨우고 싶다고 깨어지고 경험하고 싶다고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아직까지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우연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남궁천이 심각한 표정으로 단현의 제왕무적신공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장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문의 실전 비급에 미련을 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반면에 단현은 사선의 반응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단현에게는 상, 중, 하 단전을 이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그것도 모자라서 환단전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이제 중단전을 깨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심각해지니 이 상황이 단현에게는 오히려 이해되지 않았다.
천마신공에서는 그것이 새삼스러운 내용도 아니었다.
오히려 심법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단현은 사선이 괜히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일단 침묵을 지키며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면서 혹시나 사선이 정말 중단전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단현이 알고 있는 마공들 중에서도 중단전과 상단전에 관해서 언급하는 마공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다만 단현은 아주 어려서부터 아버지인 단청에게 중단전을 비롯해 상단전에 관해서 이야기를 들어왔고 천마무학에서도 그 내용이 기초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었기에 그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 왔을 뿐이었다.
‘흠, 확실히 천마무학을 제외하면 중단전에 관해서 언급된 비급이 별로 없었고 그나마 언급한 비급도 세세한 부분은 부족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나중에 모른척하며 중단전에 관해 물어봐야겠군. 잘만 하면 손쉽게 힘을 감출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남궁천이 방을 나가고 나머지 사람들도 무거운 표정으로 각자의 거처로 돌아갔다.
단현도 따라서 무거운 표정을 가장하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그나저나 사선을 흔들 요량으로 제왕무적신공의 심득을 절반이나 까발렸는데 헛 힘만 쓴 꼴이 되었군.’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단현은 앞으로의 운신에 대해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단현은 이곳이 삼청산이라는 것만 알뿐 나머지는 어떤 것도 알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삼청산이 맞는지 아닌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 근거는 오직 사선의 이야기뿐이었으니까.
이곳에는 오직 사선과 단현만이 살고 있었고 한 달에 한 번 밖에서 노인 한 명이 드나들며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공급해 주고 있었다.
대부분의 생활은 스스로가 직접 해결했고 서로 간에 간섭은 거의 하지 않았다.
물론 단현의 경우는 예외였지만.
단현이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사선을 이끄는 역할은 남궁천이 하고 있었다.
남궁천은 남궁세가의 태상가주로서 무공뿐만이 아니라 통솔력과 지력을 두루 겸비한 인물이었다.
반면 사무령은 남궁천에 뒤지지 않는 무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두뇌도 비상했다.
하지만 사무령은 태생적으로 속박을 싫어하는 듯했다.
그의 이러한 성정은 괴팍한 일면으로 비추어져 사람들을 통솔해 나가는 데는 적합하지 않았다.
제갈유와 당벽은 무력이나 명성에서 남궁천에게 밀리고 있었기에 사선을 이끄는 역할은 하지 못했다.
즉, 남궁천이 폐관에 들어간다는 것은 단현의 운신의 폭이 한결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당벽이 그것 때문에 그렇게 되었냐고 물어봤다. 남궁천은 그렇다고 대답했고. 그럼 그것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역시 내가 예상했던 대로 무공 비급일까?’
단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정보를 수집하고 지금의 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이 수반되어야 한다. 만일 내가 조영과 맞설 때 충분한 힘을 갖추고 있었더라면 상황은 또 다르게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단현은 아직도 자신의 힘에 믿음을 갖지 못했다.
지금까지 단현의 무공은 많은 다독에 의해서 범위를 늘려 왔고 심상과 심득에 의해 무공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왔다.
그러니 단현의 무공은 아직 제대로 실전을 겪지 못한 탁상공론격의 무공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단현 역시 이를 잘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단현에게는 새로운 내공의 창안이 중요했다.
또한 사선과 무공에 대해 토론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마공을 연성했을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마기라는 것이었다.
단현이 천마신교에 있었을 당시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기를 풍겨내고 있었기에 당연시 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단현의 천마기는 더욱 독특한 기운을 뿜어내었다.
무공을 시전하지 않을 때는 천마기를 갈무리하면 되지만 싸움이 일어나면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는 것은 단현이 이곳 삼청산을 탈출했을 경우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금방 탄로 나게 된다.
단현은 조영이 자신을 죽이려 한 일을 혼자서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경우 단현은 천마기로 쉽게 행적이 드러나게 되고 상대방의 행적을 파악해야 하는 단현은 반대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조영의 배후가 파악되지 않는 이상 천마신교로 귀환하더라도 지리멸렬한 소모전이 계속될 것이 뻔했다.
오히려 자신의 생존을 감추고 외부에서 접근하는 것이 배후의 실체를 간파하기에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서 마기가 흘러나오지 않는 새로운 내공의 창안이 절실했다.
물론 천뢰제왕신공이나 상청무상신공을 익혀도 되지만 이 역시 남궁세가와 곤륜파의 기운이 흘러나온다.
이 역시 단현의 행보에 제약을 미칠 것은 뻔했다.
단현이 원하는 것은 그 누구도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쉽게 간파하지 못할 내공이었다.
그래서 단현은 지금 새로 창안하고 있는 내공에 천마무학을 철저히 배제했다.
‘그리고 남궁천이 폐관에 들어갔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