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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마경 1권(11화)
四章 수련(修練)(3)


다음날 단현은 마음을 가다듬고 사선과 한자리에 마주앉았다.
매일같이 무공을 배우고 토론하느라 만나는 사선이었지만 오늘은 그들의 세심한 표정의 변화 하나라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단현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오늘은 제가 근래에 배운 무공에 남궁 사부님께 들은 제왕무적신공을 떠올려 도입의 일초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단현은 천마궁에 과거 남궁세가와 싸웠던 정황이 설명된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누락시켰다.
물론 그 책은 남궁세가의 무공을 배제한 채 천마무학을 중심으로 설명되었으니 단현이 아니라면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기도 하였다.
단현이 그 책의 존재를 굳이 숨긴 이유는 현재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시켜 사선의 심리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작은 계책이었다.
사선은, 그중에서도 남궁천은 꽤나 흥미로운 표정을 보였다.
“그동안 천뢰제왕신공에 그렇게 매달리더니 겨우 몇 마디 구결로 제왕무적신공을 만들어 보았느냐?”
남궁천은 태연한 웃음을 보이며 단현을 바라보았다.
제왕무적신공은 남궁세가에서 실전된 최고의 무학이다.
미미하게 구결이 전해오기는 했으나 그 부분이 너무나 일부분이라 천하제일로 군림하는 남궁천으로서도 제왕무적신공의 복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남궁천도 제왕무적신공의 초입은 어느 정도 윤곽을 잡아 가고 있었다.
물론 단현이 제왕무적신공에 관심을 보여 몇 마디 구결을 알려 주기는 하였으나 그것으로 제왕무적신공을 복원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단현이 천천히 쌍수를 교차하며 보법을 밟아 나갔다.
그 모습을 본 남궁천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느리지만 장엄하게 펼쳐지는 단현의 동작을 따라가는 남궁천의 손이 참아내지 못하고 부들거렸다.
남궁천과 함께 있던 사선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단현이 몇 마디 구결로 제왕무적신공을 일부분이나마 연성해 내었다는 것을 뜻했다.
단현의 시연이 끝나자 남궁천은 그 놀람을 숨기지 않았다.
“너의 재능이 정말 놀랍구나! 불완전한 구결의 일부를 가지고 그 정도까지 제왕무적신공을 구현해 낼 수 있다니 정말 너의 재능은 하늘이 내렸다고밖에 할 수 없구나.”
그때 제갈유가 끼어들었다.
“혹시 마교에 한선이라는 아이를 아느냐?”
단현은 대번에 제갈유가 궁금해 하는 점을 집어내었다.
“혹시 무공에 미쳐 있다는 그 괴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너와 한선을 비교하면 어떠냐?”
“비교할 필요도 없습니다. 마교 역사상 천마의 재림에 가까운 힘을 지닐 것이라는 것이 수뇌부들의 판단이었으니까요.”
단현의 이야기가 사선에게 주는 충격은 엄청났다.
내공을 소멸시킨 채 한 달 만에 남궁세가의 실전 절학인 제왕무적신공을 구현한 말도 안 되는 단현이 눈앞에 있는 것도 믿기 어려운데 한선은 그보다 더하다고 했다.
사선은 침묵에 잠겼다.
단현이 보여 준 놀라운 재능에 그리고 그를 뛰어넘어 천마에 필적할 가능성을 지녔다는 한선의 존재에.
“오늘은 그만 쉬자.”
남궁천이 착잡한 표정으로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사선도 남궁천의 뒤를 따라 그들의 거처로 돌아갔다.
단현도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단현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예상은 했었지만 역시 내 죽음의 배후에는 사선이 있다.’
단현이 그것을 확신하게 된 것에는 제갈유의 이야기가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다.
한선은 천마신교 내에서도 기밀에 속하는 이름이었다.
전대 교주인 단천의 직속제자로 들어와 단현이 교주직을 승계하면서 마천우사의 자리에 오른 인물.
천마신교에서 마천좌우사는 상당히 독특한 위치에 있는 자리였다.
천마신교 교주의 직속이며 천마신교 교주이외에는 그 어떤 통제도 받지 않는다.
마천좌우사의 출신은 철저한 비밀에 붙여지며 당대 마천좌우사가 누구인지는 가능한 한 천마신교의 내부에도 알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교주만을 위한 힘이고 조직이었다.
천마신교에서 한선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은 단현을 포함해 부교주와 사천황 그리고 장로급의 직위를 가진 인물 정도까지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한선을 마천우사로 알고 있지 그 이름이나 내력까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정파의 정보력과 아무리 뛰어나고 수많은 세작들이 천마신교에 침투하고 잠입해 있어도 장로급의 직위까지 오르지 못한다면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제갈유는 정확하게 한선의 이름과 그가 천마신교 제일의 후기지수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장로급 이상의 인물과 정보의 교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당장 조영이 단현을 죽였고 그곳에서 사선이 단현을 구해내었으니 사선은 조영과 밀약을 맺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동안 의중은 있었지만 사선의 행동과 부합되지 않아서 고민 중이던 단현은 이로써 사선이 자신의 적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마침 조영에게 당한 것이 있으니 그대로 사선에게 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동안 짓눌러 왔던 단현의 본성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천마의 후손의 피가, 그 광오함이 단현의 무공의 성장과 함께 점차 본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 * *

“우리가 예상했던 것 이상이오.”
제갈유의 침중한 목소리.
이번에는 남궁천도 제갈유의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제왕무적신공이 맞았나?”
당벽의 의문에 남궁천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라도 구결만으로 제왕무적신공을 그 정도까지 복원하지 못하겠지?”
평소에 말이 없던 사무령도 이번 일에는 흥미가 동한 듯했다.
천성이 자유로워 남궁천에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천하제일인의 명예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강자.
“한평생 남궁가의 무학을 익혔지만 나로서도 그것은 불가능하네.”
“천부마경의 오의도 중요하지만 저 아이의 재능과 심성을 이대로 방치해 두는 것도 위험해. 역시 천마의 자식이라더니 호랑이의 새끼는 다르다는 것인가.”
“저 재능이라면 정말 천부마경을 풀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것도 우리가 죽기 전에 말이야.”
“하지만 저 아이가 천부마경의 오의를 얻고 우리가 얻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으로 봐서는 저 아이가 성장한다면 우리를 넘어설 가능성이 농후하네.”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하고 시작한 일 아니었나?”
사무령의 냉소적인 말이 일시에 침묵을 불러왔다.
“이제 와서 무엇을 고민하나? 우리가 녀석에게 죽임을 당할까 봐? 아니면 우리가 죽고 난 후 정도무림의 평화를 위해서? 저 녀석이 우리의 무공과 천부마경의 무공을 모두 손에 넣고 천하를 피로 지배하고 붉게 물들일까 봐?”
좀처럼 들을 수 없었던 사무령의 직설적인 말투.
“난 단현이란 저 아이가 마음에 들어. 태생과 재능을 떠나서 저 근성이 아주 마음에 들어. 위정자들이 그러지 않았던가. 평화가 너무 길면 부패로 썩어 들어간다고.”
“자네 입에서 위정자 이야기가 나오다니 뜻밖이군.”
당벽이 투덜거리듯 중얼거렸다.
“세상은 우리가 움직이는 것이 아냐. 무엇을 그리 깊게 고민하나. 어차피 우리는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죽어. 다 늙어 빠졌다고. 우리가 후대를 위해 무엇을 얼마나 안배할 수 있겠나. 그리고 그것이 과연 올바른 길이라 생각하나?”
“무령, 자네의 말도 이해는 하네.”
남궁천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하나 우리가 협을 위해 살아온 이유가 무엇이던가?”
“아이들은 아이들의 인생이 있는 거야. 그것을 결정하는 것도 결국 아이들의 몫이지. 저 아이도 껍질뿐이라도 한때는 마교의 교주였어. 하지만 지금 저 아이의 인생은 무엇인가.”
“마물을 두둔하는 건가?”
“어차피 천의는 거스르지 못해. 자네도 나도 결국은 사람이니까.”
사무령이 먼저 자리를 떴다.
사무령의 뒷모습을 보며 남궁천이 씁쓸한 한마디를 남겼다.
“자네도 가주 한 번 해 보게. 그럼 우리들의 마음도 조금 이해가 될 것이야.”

* * *

단현은 거처로 돌아와서도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는 천하의 무학이 산재하고 가득한데 그것을 마음 편히 한 번 펼쳐 볼 수가 없으니.
목숨은 겨우 부지했으나 아직 적중 한가운데 홀로 기약 없는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것도 끝을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향해서.
단현이 상념을 지우기 위해 침상에 몸을 눕혔다.
눈을 감으니 아련하게 떠오르는 그날의 고통.
가늘게 피어오르는 미약한 향의 향기가 지금도 코끝에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갑자기 단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신의 왼팔을 살펴보았다.
심장 부근을 어루만져 보기도 했고 크게 심호흡을 해 보기도 했다.
‘조영은 나를 제압하기 위해 독을 사용했다. 그 방법은 독이 아닌 것 하나를 조금씩 내 몸에 축적시키고 나머지 하나를 결정적일 때 꺼내어 나를 중독시켰다.’
단현의 눈이 자신의 왼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사선이 나의 잘려진 팔을 이어 붙일 동안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 사이에 내 몸에 어떤 장난을 쳐 놓았다 하더라도 지금 나는 알지 못한다.’
단현은 사선처럼 경험이 풍부한 노회한 강호인들이 무방비로 자신을 방치시켜 두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내 몸에 무슨 짓을 해 놓았는지 그리고 이 왼팔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이 왼손에 내재되어 있는 독은 무엇인지 파악해야만 생존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단현은 애써 달아오른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명상에 잠겼다.
‘당금 강호에서 사선 이상의 배분을 가진 인물들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사선 뒤에 또 다른 배후가 존재할까?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제갈유와 당벽의 지식 속에 그 답이 있을 것이다.’
단현의 뇌리에서 다시 남궁세가와 곤륜파의 무공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가능한 한 빨리 사선의 무공을 이어야 한다. 사선이 단순히 나에게 자신들의 무공을 가르치기 위해 삼청산에 모여 노년을 보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사선의 무공을 빨리 익히면 익힐수록 그들의 본심이 나오는 시간도 빨라질 것이다.’

사선에게 제왕무적신공을 드러낸 후 단현은 새로운 내공의 창안보다는 사선의 무공을 있는 그대로 배우는데 주력했다.
그리고 그 속도는 사선이 고금을 통틀어 들은 적이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단현의 암기력은 그야말로 천재라는 두 마디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다.
단지 스르륵 스치듯 책장만 넘겨도 그 속의 내용의 정확히 외우고 있었다.
또한 한 번 들은 이야기는 좀처럼 잊지 않았으며 여기에 단현이 기존에 알고 있던 무학의 기본적인 원리를 추려내어 이를 바탕으로 사선의 무공을 해석해 내었다.
그렇게 되자 보통 사람이라면 한 달이 넘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을 불과 반나절에 완성해 낼 수 있었다.
그 경이적인 무공 습득 능력에는 사선도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만일 단현이 선천의 힘을 금제하지 않았다면 사선은 단현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단현이 사선의 절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시간은 불과 일 년에 불과했다.
그 기간 동안 단현은 거의 잠도 자지 않고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버텨냈다.
사선의 무공을 익혀 나가면서도 단현은 천마무공의 심득을 높여 나갔다.
특히 천마무공은 사선에게 어떠한 낌새도 주지 말아야 했으므로 더욱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단현은 마침내 천마무학의 기틀이라 할 수 있는 치환의 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단현은 이를 응용해 몸속에 가상의 단전을 만들었다.
물론 이것은 진짜 단전이 아니라 단지 단전처럼 내공을 담아두는 역할만을 수행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단현은 이를 바로 봉인의 술과 연동시켜 내공을 쌓는 즉시 천마령혼으로 밀어 넣어 흔적을 지우는 방법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이로서 단현은 사선이 없는 곳에서 천마기를 축기하고 이를 봉인하여 사선의 눈을 피하며 내공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여러 개의 가상의 단전을 만들어 이곳에다 성질이 다른 여러 가지 내공을 축기하는 방법까지 터득했다.
가히 천마무학은 기존의 상식을 파괴하는 영험함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