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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마경 1권(10화)
四章 수련(修練)(2)


“마도에서 인정한 최고의 재능은 마교 교주인 단현이 아니라 한선이었네. 그런데 저 단현이란 아이조차도 정도의 후기지수 중 군계일학이라 할 수 있는 영도가 넘어설 수 있을지 나는 우려된다네.”
제갈유의 우려에 당벽이 맞장구를 쳤다.
그도 이제 제갈유가 제기하는 문제가 당장의 문제가 아닌 먼 훗날의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마교가 천마 단가의 핏줄을 잃어 버렸으니 어쩌면 한선이 조영 이후 마교를 장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로군. 마교는 강자존의 세계이니.”
“그렇다면 재앙의 씨앗이라는 말은 단현이란 아이가 이제 마교의 교주가 아니고 저 아이보다 무서운 재능을 지닌 한선이란 아이가 마교를 장악하는 것이라는 거군.”
“하지만 강호란 곳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일들이 난무하고 짐작하지도 못했던 강자들이 수시로 출몰하는 곳이지. 우리가 너무 앞날의 일을 걱정하는 건 아닐까?”
“정말 단현이란 저 아이를 강호로 내보내 보는 것은 어떤가?”
제갈유가 마지막에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제갈유의 의견에 사선 모두 말이 없어졌다.
사실 사선은 단현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단현이 이곳 삼청산에서 격리된 채 생을 마치든 아니면 다시 세상으로 나가든 단현이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많은 변수를 갖고 있었다.
원래 사선이 세웠던 계획의 큰 틀은 단현에게 자신들의 무공을 전수하고 천부마경을 보여 준 후에 다시 강호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었다.
그런 후에 단현과 마교 사이에 간접적인 개입을 통해 단현과 마교의 암투가 벌어지게 하고 그 과정에서 단현이 깨달은 천부마경의 오의를 확인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사선은 단현을 다시 세상으로 내보는 것을 꺼려 하고 있었다.
이유는 바로 단현의 재능이었다.
단현의 재능은 사선이 예상했던 범주를 이미 벗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재능은 무공을 벗어난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 문제는 만약 단현을 다시 강호에 내보내었을 때 사선이 과연 단현을 제어하고 관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었다.
만일 사선이 제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단현이 움직이게 된다면 강호에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것은 훗날의 문제였다.
당장은 단청에 이어 단현까지 갑작스러운 일로 자취를 감춘 형태였다.
천마의 직계 후손이 모습을 모두 감춘 현재의 상황에서는 마도는 스스로 세력 재편의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마도의 이러한 혼란은 곧 정도의 평화와 이어지는 것이니 사선이 이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때문에 단현이 다시 세상에 나선다 해도 그때는 마교가 세력 다툼으로 힘을 소모할 만큼 소모한 다음이라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어째서 우리가 그런 번거로움을 자처해야 한다는 건가?”
당벽은 그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저 아이가 마교에서 배신을 당한 것은 사실이야. 그렇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저 아이의 마교에 대한 복수심은 진짜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네.”
“굳이 혈풍을 이쪽에서 일으킬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는 다르게 생각하네. 전면전이 아닌 흑막 속의 전투라면 마교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네. 사실 마교에 대해서 저 아이만큼 꿰뚫고 있는 사람은 없지 않겠나?”
“그러다 저 아이가 우리의 무공을 지닌 채 마교로 다시 넘어가게 되면 그 피해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나? 더구나 천부마경의 오의까지 쥐어 준 채로.”
“생사뇌중혈을 후대에 이어 준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라고 생각하네.”
“그러다 만일 생사뇌중혈이 깨어지기라도 한다면? 결국 술법 아닌가.”
사선의 토론은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었다.

* * *

같은 시간 단현은 단현대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것이 정종의 무공이라고 하는 것인가?’
단현은 천마의 무공이 보통의 마공과는 확연히 다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도의 무공은 또 천마의 무공이나 마공과는 확연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아직 단현은 모르고 있었지만 천마신교 역사상 천마궁에 소장되어 있는 모든 비급들을 외우고 있는 것은 단현이 처음이었다.
단현도 물론 알고 있던 것이지만 천마궁의 비급 중 최고의 비급은 천마신공이다.
그런 까닭에 천마궁에 들어선 천마신교의 역대 교주들은 오직 천마신공의 오의를 깨닫기 위해 한평생을 보냈다.
그래도 완형을 보기 어려운 무공이 천마신공이었다.
반면 단현은 너무 어린 나이에 교주직에 올라 일선연을 경계하다 보니 천마신공의 수련보다는 천마궁의 비급을 외우는 일에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다.
즉, 무공, 그중에서 마공에 관한 광활한 지식은 당금 강호에 단현에 근접한 사람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때문에 단현은 사선의 예상보다도 훨씬 쉽게 정도의 무공과 마공의 차이를 명확하게 느끼고 있었다.
‘마공이 인간의 잠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무공이 많은 반면 천마무공은 치환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가진다. 그런데 오히려 천뢰제왕신공이 약간이나마 치환의 법을 내포하고 있구나.’
어째서 마공보다 정도의 무공이 천마의 무공과 닮아 있는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단현의 상념은 더욱 깊어져갔다.
‘의외로 정도의 무공은 천마무학에 융화되는 것이 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사선에게 알려 주어서는 안 된다.’
사선이 단현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놀랄 정도로 단현은 사선의 계획을 어느 정도 꿰뚫고 있었다.
단현은 사선에게 자신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면밀히 검토하였다.
그것은 단현이 천마 단휘의 후손이라는 상징성.
그리고 천마신교의 교주로 있으면서 얻게 되었을 가공할 마공들이었다.
먼저 단현의 상징성은 사실 사선에게 별로 쓸모가 없었다.
사선이 마도의 인물이었다면 모르지만 정도에 몸담고 있는 이상 단현은 필연적으로 죽여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단현은 존재 자체가 정도에는 일말의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무공.
하지만 짧은 기간에 불과하지만 사선은 단현이 그들의 의중을 살펴보기 위해 꺼내 놓은 절대마공 자체에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단현도 혼란을 겪은 부분이 사선의 경지에 다다른 무인이 마공을 익히게 된다면 도리어 그들의 정도 무공과의 충돌로 피해를 입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단현은 사선의 의중의 짐작하는데 제법 어려움을 겪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단현은 사선이 자신을 풀어 주지 않을 거라는 것까지 짐작하고 있었다.
깊은 생각에도 부족한 정보로 인해 뾰족한 해답을 찾지 못하던 단현이 밖으로 나왔다.
맑은 공기을 폐부 깊숙이 받아들여 기분을 한 번 전환했다.
높은 하늘에 걸린 태양을 보기 위해 한 손으로 눈을 가린 단현의 뇌리에 어렴풋이 스쳐 가는 글귀들이 무작위로 떠올랐다.
그것은 단현의 선조가 남궁세가의 무인과 싸우면서 남긴 내용이었다.
단현의 머릿속에서 그때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선조의 무공이 눈에 그려지듯 잡힌다.
선조의 무공이 곧 단현의 무공이었기에 그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선조의 무공에 맞춰 패도적으로 몰아치는 웅장한 무사의 무공도 그려지기 시작했다.
남겨진 글귀는 비록 단편적인 부분밖에 없었지만 선조의 무공에 맞추어 남궁세가의 무공이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무의식적으로 단현의 신형이 천천히 움직였다.
묵직한 일보와 광대한 일권.
그러다 어느 순간 두 사람의 대결이 흐릿한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뜻밖에도 제왕무적신공을 본 것 같다.’
단현은 방금 전까지 오직 남궁세가의 천뢰제왕신공만을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남궁세가의 무공이 정리되고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그러한 찰나에 남궁세가와 천마신교의 전대 인물들이 싸웠던 당시의 글귀가 떠올랐고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제왕무적신공의 단초를 손에 넣는데 성공한 것이다.

제왕무적신공의 단초를 얻은 다음날부터 단현은 사무령에게 상청무상신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남궁세가의 천뢰제왕신공이 양강의 패도적인 신공이라면 곤륜파의 상청무상신공은 부드러움의 절정에 이른 신공이었다.
천뢰제왕신공이 광활함을 품고 있었다면 상청무상신공은 표표함을 담고 있었다.
단현은 다시 눈을 감고 의념에 집중했다.
단현의 뇌리에서 제왕무적신공이 일어섰다.
그리고 그에 맞서는 상청무상신공.
다시 두 개의 절학이 단현의 뇌리에서 치열하게 맞붙고 있었다.
제왕무적신공이 사위를 압도하고 상청무상신공이 영민한 움직임으로 제왕무적신공을 비껴 나간다.
거기에 다시 신조마경이 일어선다.
미완의 신조마경과 미완의 제왕무적신공 그리고 완형의 상청무상신공.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단현은 세 개의 절학을 끊임없이 부딪치게 했다.
단현이 갑자기 눈을 떴다.
단현의 눈 속에 붉은 광채가 일렁였다.
단현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그려졌다.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단현은 천마무학의 오의를 느꼈다.
치환과 융합의 술.
어렴풋이 그것을 느꼈을 때 단현은 천마신공이 얼마나 대단한 절학인지 새삼스럽게 실감할 수 있었다.
당장에라도 이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가 봉인과 금제를 풀고 사선과 싸우고 싶었다.
그래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단현은 이를 꾹 눌러 참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예상치 못했지만 천마무공의 실마리를 정도의 무공에서 찾았다. 뿐만 아니라 정과 마의 공존법까지 찾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과연 세간에서 천마의 무학을 사술로 부르며 두려워한 이유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완형이 가능할지 불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실마리는 발견한 것 같다.’
단현은 세간의 상식을 벗어난 천마신공을 그렇게 평했다.
단현은 내일 사선 앞에 미완의 제왕무적신공을 꺼내어 놓을 결심을 했다.
제왕무적신공은 남궁천의 꿈이자 염원일지도 모르는 무공이다.
남궁세가에서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일을 단현이 해낸다면.
사선도 급해질 것이다.
지금은 사선의 무력이 단현을 압도한다.
하지만 단현의 성장속도라면 그것을 언제까지 장담할 수는 없었다.
결국 사선은 그들의 계획이 무엇이 되었든지 앞당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강자존의 법칙.
그것은 정도에서도 다르지 않다고 단현은 확신했다.
왜냐하면 강자존은 인간의 본성에 가장 충실하기 때문이다.
결국 강한 힘을 가진 자가 우위에 선다.
그것은 정도도 마찬가지였다.
구파와 십협이 정상의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것도 힘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테니까.
이제 단현이 삼청산에 들어온 지도 한 달이 되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