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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마경 1권(8화)
三章 번뇌(煩惱)(2)
제갈유는 남궁천을 만났고 남궁천과 제갈유는 함께 고민했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천부마경의 난해함.
두 사람은 고민 끝에 두 명의 사람을 더 초빙하기로 하였다.
남궁천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또 다른 무의 신화 검선 사무령.
그리고 제갈유와 숙명의 맞수로 경쟁하던 독선 당벽이 그들이었다.
네 사람은 그동안 천부마경을 통해 무의 또 다른 경지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최고의 자리에서 군림하던 그들도 천부마경의 난해함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다.
네 사람은 그것을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당금 천하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네 사람이 함께해도 이룰 수 없는 무학이라면 천하에 누가 이 무학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천마 단휘 이후로 천부마경은 인간의 접근을 거부한 것일까?
그 와중에 네 사람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답답함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자신들의 무학과 마공이 가지는 근원적인 차이였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네 사람은 혹시나 그들이 마공을 전혀 모르는 까닭에 천부마경의 난해함을 풀어내지는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네 사람은 천부마경을 풀어내기 위해 차마 마도의 고수를 초빙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천부마경을 함께 해독해 나가려면 마도에서도 손에 꼽히는 초절정의 고수여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마도의 인물과 함께했다가 오히려 마도에 천부마경이 역으로 흘러들어 간다면 뒷일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또한 그 마인이 천부마경을 통해 심득을 얻는다 해도 그것을 네 사람에게 숨기고 훗날 마도천하를 꿈꿀지도 모르는 일.
네 사람이 그렇게 천부마경의 해독에 정체되어 있을 무렵 남궁세가에서 은밀한 정보 하나를 손에 넣게 된다.
천마신교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움직이는 세력이 있다.
이 소식을 접한 네 사람은 직접 움직였다.
그리고 어렵게 찾아낸 신비의 조직이 멸마십혈단이었다.
천마신교의 몰락을 위해 움직이는 비밀 결사 조직.
남궁천은 멸마십혈단과 접촉을 시도했다.
그리고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면서까지 모종의 거래를 체결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단현의 사체를 넘겨받는 조건이었다.
마도의 고수를 초빙할 수는 없었기에 의선 제갈유의 능력을 바탕으로 마공을 익힌 천마의 후손 단현의 사체에서 천부마경 해독의 실마리를 찾아내려 한 것이었다.
남궁천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거래를 시작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약속한 장소에 도착해 보니 아직 단현이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뜻밖의 상황에 네 사람은 당황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단현의 지식을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사체를 해부해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보다는 단현이 천마신교의 교주로서 알고 있을 그 무시무시한 마공들을 이용하는 편이 훨씬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단현을 구해낸 네 사람은 단현을 활용할 방법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네 사람은 논의를 계속했다.
단현을 고문해서 그가 알고 있는 마공을 뱉게 할 것인가 아니면 정신을 제어하는 술법으로 그를 제압하여 방법을 찾아볼 것인가?
그러나 어떤 방법이든 결론이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고민 끝에 네 사람이 내린 결론은 단현의 몸속에 언제라도 죽음에 이를 수 있게 하는 모종의 술법을 심어두고 단현에게 천부마경을 보여 준다는 것이었다.
만약 일이 잘못될 경우 네 사람의 손으로 직접 단현을 죽이면 될 것이니 이로 인해 강호가 피로 물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견이 정리되자 네 사람은 단현을 살렸고 단현이 의심을 가지지 않도록 지금의 상황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기하며 풀어 가야 했다.
그래서 지금 네 사람은 단현을 앞에 두고 미리 논의한 방법대로 일을 풀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다시 마도의 길로 들어서면 어쩌려고 그러나?”
흑의 노인의 우려 섞인 걱정에 제갈유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스스로 모든 기혈을 막아 버렸네.”
제갈유의 말에 흑의노인 당벽이 더욱 놀란 표정이 되었다.
“독한 녀석이로고…….”
“그럼, 도대체 저 녀석을 어쩌잔 말인가?”
마지막으로 입을 연 노인이 물었다.
“저 아이는 마공을 버렸네. 마공을 버렸다는 것은 저 아이가 올바른 길로 들어서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하네. 그리고 그것을 저 아이는 스스로 결정했네.”
“무인이 무공을 포기한 것이 놀라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어찌 저 아이가 마도를 버렸다고 단정할 수 있겠나?”
단현은 겉으로는 조용히 네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네 사람의 말속에서 지금의 상황을 파악할 실마리를 찾아내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저 노인네들은 봉인과 금제의 술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또한 마도에서 벗어난다면 굳이 죽일 생각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하기야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굳이 잘린 팔을 이어 줄 이유도 없었겠지. 일단 살자. 살아야 다음도 있다.’
단현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굻었다.
갑작스런 단현의 행동에 네 사람의 대화가 끊겼다.
“먼저 목숨을 구해 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비록 타의에 의해 마교의 교주자리에서 쫓겨나기는 하였으나 그것으로 저와 마교의 인연은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마공을 폐한 것은 그런 제 의지의 표현입니다.”
단현의 이야기에 남궁천과 제걀유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그럼 너는 차후 어떻게 살아갈 생각이냐?”
“지금의 제 목숨은 여분의 것. 네 분 덕분에 새롭게 얻게 된 인생입니다. 만일 거부하시지만 않는다면 네 분을 모시며 어떤 것이 올바른 삶인지 생각하며 구명의 은혜를 갚고자 합니다.”
단현의 이야기에 잠깐이나마 남궁천이 입가에 미묘한 비틀림이 일어났다.
계획대로 너무나 쉽게 일이 흘러간 까닭이다.
그러나 단현은 그 찰나의 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자신의 추측을 확신했다.
‘역시 나를 살려낸 것은 그대들이 나로부터 무언가 얻어낼 것이 있다는 소리겠지.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결국 시간이 흐르면 그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겠지. 어차피 시간은 그대들 편이 아니라 나의 편일 테니까.’
네 사람은 천부마경을 해독한 실마리를 하나 마련했다는 기쁨에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단현이 눈을 뜨고 지금까지 한 번도 흔들림을 보이지 않고 침착했다는 것을.
자신의 인생이 통째로 뒤틀린 이 상황에서도 어떠한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네 사람은 단현과 처음 대면하면서부터 일관적으로 그런 모습을 보아 왔기에 그것이 주는 이질감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남궁천이 단현의 어깨를 손을 올렸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우리의 무공을 이어받아 마교를 멸문시키는데 일조할 수 있겠느냐?”
“이제는 그것이 마교로부터 배신당한 저의 숙원이기도 합니다.”
단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것은 네 사람이 안배한 같은 지향점이기도 했다.
정도는 마도를 견제하고 마도로부터 배신당한 단현은 복수를 바란다.
그렇게 네 사람과 단현의 동거는 시작되었다.
단현은 네 사람의 진정한 정체를 알고 속으로 경악했다.
무선 남궁천, 검선 사무령, 의선 제갈유, 독선 당벽까지.
정도라 자처하는 정파에서도 손꼽히는 배분의 강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세간에서는 그들을 포함해 몇몇의 절대강자들을 십선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십선들 중 무려 네 명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단현은 그런 정도의 최강자들의 공동제자가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을 누가 안다면 지금의 단현을 동경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현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 단현의 모든 관심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배신당한 이유와 그 배신의 주체가 천마신교의 부교주였던 조영인가 그렇지 않으면 배후에 다른 세력이 도사리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다시 자신의 죽음의 문턱에서 이들 사선에 의해 구명되어진 연유까지.
단현은 지금의 모든 상황이 의문투성이었지만 이를 꾹 눌러 참았다.
지금은 최대한 자신을 감추고 정보를 수집하고 상황을 파악한다. 움직이는 것은 그 다음이라도 늦지 않다.
일단 목숨은 붙어 있으니까.
* * *
하루가 지나고 단현은 다시 사선과 마주 앉았다.
“너도 마교의 교주로서 천하제일의 마공을 익혔을 것이다.”
남궁천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궁 사부님은 그 마공이 필요하십니까?”
단현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남궁천은 가벼이 고개를 저었다.
“마공은 인간의 심성을 피폐하게 만든다. 단기간에 강력한 무력을 손에 쥘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인간의 본성을 잃어 버린다. 결국 욕망에 의해 행동하고 되고 종국에는 파국을 맞게 된다.”
단현은 고개를 끄덕여 이를 긍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사실 남궁천의 이야기는 정파에서 파악하고 있는 마공에 대한 일반론이었다.
단현은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대부분의 마공이 남궁천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도의 무공은 마음을 닦고 몸을 건강히 한다. 올바른 마음을 가지면 거기에 부응해서 몸도 정화된다. 정화된 몸은 속성으로 익힌 마공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강한 힘을 손에 넣는가가 아니라 가진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로부터 사선의 기나긴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그것은 단현에게 잔소리나 다름없었다.
단현의 나이가 어렸기에 사선의 단현의 성취를 그리 높게 보지 않았다.
그러나 단현의 심득은 사선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 단현에게 사선의 이야기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오히려 정도의 무학을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현이 행하고 있는 그것은 사선이 진정으로 원하고 있던 것이었다.
천마 단휘의 천부마경과 자신들의 무공의 차이를 찾아내는 것.
정도의 무공과 마도의 무공의 차이를 파악한다면 천부마경 해독의 단초가 잡힐지도 모른다고 사선은 생각했다.
사선은 그들이 천부마경을 해독하지 못하는 것을 천마 단휘의 무공의 근간이 마공인데 자신들은 마공의 섬세한 부분까지 체득하지 못해 해석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 느꼈다.
그래서 사선은 첫 번째로 단현의 인성을 잡아 나가며 자신들의 정종의 무공을 가르치려 하였다.
일반적으로 마공과 정종의 무공은 공존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양공과 음공이 공존하지 못하는 현상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타인의 내공을 갈취하는 무공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다종의 진기의 충돌로 자멸하는 것이 최대의 약점이듯 사선이 마공에 접근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부분이 한계였다.
본디 사선은 단현이 마공을 보유한 상태에서 정종의 내공을 주입시켜 그 폐단을 알아보려 하였으나 단현이 스스로의 마공을 지워 버렸다고 알고 있기에 그 방법은 포기하고 말았다.
단현은 사선의 무공을 배우면서 첫 번째 관문에 부딪쳤다. 그것은 내공의 선택이었다.
사선은 모두 출신 문파가 다르다.
남궁천은 남궁세가의 사람으로 광오하고도 패도적인 정종의 내공을 지니고 있었다.
사무량은 곤륜의 사람으로 도가정종의 현문의 내공을 제갈유는 위력은 반감되지만 세밀한 내공을 당벽은 독을 자유자재로 수발할 수 있는 독득한 내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단현은 누구의 내공을 배운다고 쉽게 선택할 수가 없었다.
단현은 천마기라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내공을 이미 지니고 있었다.
단현의 천마기는 지금 봉인되어 있는 것이지 단현의 몸속에서 없어진 것이 아니다.
봉인이 풀어지면 단현의 천마기는 돌아온다.
또한 천마기는 천마령혼에 공명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사선의 무공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종래에는 결국 천마기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나 사선에게 내공을 소실한 것처럼 속인 이상 무턱대고 사선의 내공을 잇지 않는 것도 어렵다.
무공에서 내공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한다면 자칫 사선의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단현은 일단 시간을 버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 제가 감히 네 분 사부님의 무공을 선택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제가 네 분 사부들 중 어느 한 분만의 무공을 이어받는다면 그것 또한 제가 마교를 벌할 때 사부님들의 문파에 폐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단현의 이야기는 곧 사선의 고민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사선은 내공의 선택을 자신들이 하지 않고 단현에게 위임하려 한 것이다.
단현이 지금 선택하는 내공은 향후 단현이 천부마경을 수련할 때 직접적인 문제를 바로 진단할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다.
또한 단현이 강호사에 다시 엮이게 될 경우 다분히 그 문제를 사선 자신들뿐만 아니라 각각의 문파에서도 짊어지게 될 것이다.
“외람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이 기회에 새로운 내공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새로운 내공이라…….”
“사실 이미 한 번 무공을 폐기한 저의 몸과 나이를 고려하면 이제 다시 정종의 무공을 배운다 하여도 성장에는 한계가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무공은 대부분이 속성의 무공들이니 그것을 네 분 사부님이 적당히 손봐 주신다면 그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단현의 제안은 사선의 마음을 강하게 흔들었다.
또한 사선이 단현의 치밀한 성격을 인지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아직 어린나이에 벌써 문파의 분쟁이 될지도 모르는 사항을 예측하고 안배한다.
그리고 그러한 판단이 너무나 빠르고 자연스러웠다.
또한 단현이 꺼낸 제안은 지금의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방법 중의 하나였다.
그렇기에 사선도 단현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