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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마경 1권(7화)
二章 탈거(脫去)(4)


단현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직 천하는 단현의 진정한 모습을 모르고 있었지만 단현은 천재다.
그리고 지금도 이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단현은 지학도 되지 못한 나이에 천마신교의 교주직을 승계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단현이 천마신교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단현은 단지 상징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권한은 모두 부교주였던 조영과 사천황, 장로원 등의 세력들이 갖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단현은 자신의 모든 것을 감추기 시작했다.
성격을 비롯해 심지, 무공 수위 등 겉으로 보이는 모든 재능을 감추고 힘을 키워 왔다.
하지만 그것이 채 결실을 맺기도 전에 죽임을 당해야 했으니 세간에 알려진 단현은 그야말로 꼭두각시 교주에 불과했다.
단현은 일단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단현은 배신으로 인해 죽었고 천마령혼의 불가사의한 권능에 의해 되살아났다.
그런데 단현이 눈을 뜬 장소는 천산과는 동떨어진 삼청산이란 곳이었고 주위에는 구파와 오대세가의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 동시에 네 명이나 나타났다.
적어도 남궁천과 제갈유와 같은 배분의 인물들이 한곳에 모일 이유는 없었다.
각각 문파가 다른 사람들.
왜 그들이 모였을까?
그리고 천산에서 삼청산이란 곳까지 어떻게 오게 되었을까?
단현은 자신이 정신을 잃었던 사이에 또 다른 일이 있었다고 가정했다.
하지만 그 사이의 기억은 전무하다.
무엇보다도 왼팔.
단현은 왼팔을 잃어 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존재한다.
그것이 천마령혼의 힘일까.
그렇지 않다면 신의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아니면 단현의 왼팔이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무언가 준비된 느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단현이 왼팔을 들어 살폈다.
없었다.
천마사환도.
그리고 약간은 투명해 보이는 피부색.
‘아마도 내 팔은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혈맥의 굵기부터 미세한 부분이 다르다.’
단현은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단현의 눈빛이 점점 가라앉아 갔다.



三章 번뇌(煩惱)(1)


삼 일 동안의 고민 끝에 단현은 우선 자신의 힘을 감추기로 결정했다.
자신이 살아난 곳에 정도의 인물들이 모여 있다는 것을 단현은 그 뒤에 무언가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우선 저들의 목적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마침 단현이 새로 얻게 된 지식 중에는 그에 적합한 방법이 존재했다.
금제와 봉인의 술.
지금 단현의 머릿속에는 예전에 알지도 못했던 방대한 지식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천마령혼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머리 쪽을 스쳐 가면 불현듯 떠오르곤 하였다.
그렇다면 지금 단현의 머릿속의 지식들은 천마령혼이 새겨 주는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원리가 어떤 것인지 단현으로서는 짐작할 방법도 없었지만 그러한 지식들이 사실이라면 단현의 오의는 또 다른 경지를 향해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단현은 우선 그러한 지식들 중에서 금제와 봉인의 술을 사용하여 자신의 힘을 감추기로 하였다.
강한 힘은 공포와 경계를 가져온다.
반면 약한 힘은 상대방에게 자신감을 유발시키고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방심을 불러올 것이다.
또한 단현이 스스로의 힘을 포기한다는 것은 마공을 버리는 것이고 이는 상대방에게 개과천선의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당분간은 이 상태로 상태를 관망하고 정보를 수집하기로 했다.
행동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우선은 자신의 몸 상태와 주변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단현은 결정했다.
무엇보다 지금의 단현은 혼자라고 봐야 했다.
더 이상 마교의 교주도 아니다.
조영이 자신을 배신했을 때는 마교를 장악할 자신이 있었기에 행동에 옮겼을 것이 뻔했다.
지금 당장 이곳에서 탈출하여 마교로 귀환한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현은 천마기를 아낌없이 뽑아내어 천마령혼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단현의 천마기를 흡수한 천마령혼이 격하게 반응해 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단현의 천마기는 남김없이 천마령혼에 흡수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단현이 봉인의 술을 시전했다.
천마령혼은 자신이 봉인되는 것에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천마령혼은 단현의 의지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한동안의 사투 끝에 단현은 천마령혼을 봉인시키는데 성공했다.
이것으로 단현은 자신의 내공을 완전히 숨겼다.
하지만 상대방은 이를 단현이 마공을 버린 것으로 이해할 것이다.
다음으로 단현은 자신의 몸에 금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봉인이 내공을 사용할 수 없게 하고 숨기는 기예라면 금제는 선천의 힘을 제한하는 기예였다.
단현은 천마령혼의 지식을 통해 자신의 몸이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태생적으로 갖게 되는 절대적인 강함.
선천의 힘은 내공이 없는 상태에서도 단현이 빠르게 움직이고 거대한 힘을 낼 수 있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선천의 힘이 무서운 것은 그 특유의 감각이었다.
내공을 봉인했다고 해도 선천의 힘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단현을 도저히 보통 사람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상대를 속이려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었다.
선천의 힘까지 금제하자 단현의 시야가 서서히 예전처럼 돌아왔다.
단현이 땀에 젖어 나른한 몸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몸이 무거웠다. 그것이 당연했다.
단현은 태생부터 무를 위해 맞춰진 신체였다.
무공을 배우기 전부터 단현의 몸은 강하고 빨랐다.
그러나 선천의 힘까지 금제한 단현의 육신은 이제 평범한 인간의 육체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단현은 태어나서 이러한 상태가 된 것이 처음이었다.
단현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열어 보았다. 뜻밖에도 문은 열려 있었다.
그것은 상대방이 언제나 자신을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
밖으로 나오자 단현은 자연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것은 오래된 습관. 따스한 햇살이 단현을 눈을 부시게 했다.
단현은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햇볕을 가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어 보는 일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완벽히 반응하던 육체를 지니고 있었던 단현에게는 이 모든 것이 생소했다.
그동안 단현은 하늘의 태양을 정면으로 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데 선천의 힘이 금제된 단현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단현이 태생적으로 갖고 있던 육체적 강함은 단현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절대적인 힘이었다.
“그것이 너의 대답이냐?”
남궁천의 목소리였다. 지척에 다다를 때까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단현은 내심 당황했다. 비록 잠시뿐이지만 힘을 포기한 것에 대한 위화감은 상상을 넘어섰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상대방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죽음의 순간이 기억에 각인되어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공포.
그의 이성이 지금까지 수많은 심득으로 단련되어 있지 않았다면 균형을 잃고 무너졌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단현은 본능적으로 이성에 치우친 냉정함을 찾아갔다. 범인을 넘어선 천재이기에 가능했던 본능적인 방어였다.
“무인이 무공을 버린다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알 거라 생각합니다.”
대답을 하면서 단현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네 사람을 바라보았다.
실제로 단현은 일신의 무공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이것은 천부마령의 지식에 의지한 속임수이다.
단현은 지금까지 천마궁에서 수많은 비급을 보았지만 봉인과 금제의 술처럼 완벽히 자신을 감출 수 있는 무학은 보지 못했다.
“그 말은 마교와 마도를 버리겠다는 뜻이냐?”
남궁천은 지금 단현의 모습을 보며 내심 커다란 충격과 그로 인한 놀라움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남궁천은 멸마십혈단(滅魔十血團)과의 접촉을 통해 천마신교의 내부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단현이 교주직에서 쫓겨나 죽임을 당할 거란 사실까지도 이미 알고 있었다.
단현은 천마 단휘의 피를 이어받고 있는 그야말로 마도의 하늘이다. 그것은 단현의 숙명이다.
그런데 그런 단현이 자신의 무공을 지웠다고 한다.
삼 일 만에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단현의 결단은 남궁천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지금 눈앞의 단현에게서는 삼 일 전까지 생생하게 느껴지던 마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단현의 말대로 무공을 버린 것일까?
무인이 무공을 버린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힘든 결정인지는 남궁천 역시 무인이기에 잘 알고 있었다.
남궁천이 불신의 눈으로 제갈유를 바라보았다.
제갈유도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단현을 향해 다가갔다.
제갈유가 단현에게 다가와 단현의 맥문을 움켜잡고 단현의 몸속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탄성.
“정말 마공을 지웠구나!”
제갈유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천하에 의선으로 명성이 자자한 제갈유도 천마령혼의 봉인과 금제의 술을 파악하지 못했다.
단현은 속으로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단현의 머릿속으로 새롭게 흘러들어 온 천마령혼의 지식은 진짜다.
천마령혼은 제갈유가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
단현의 독문 내공인 천마기가 천마령혼에 봉인되어 있는 것도, 그리고 천마령혼이 다시 잠들어 버린 것도 제갈유는 알 수가 없었다.
제갈유가 보기에는 단현이 자신의 모든 내공을 깨끗이 지워 버린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제갈유도 이해하기 벅찼던 신비로운 힘을 가진 천마기를.
제갈유가 남궁천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천의 추도와 같은 기상이 언제 그랬냐는 듯 스르륵 가라앉았다.
“아이야, 너는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 이제 정도의 공부를 해 나간다면 너의 잘못된 인성 또한 바로 잡힐 것이니 늙은이들이 말년에 조그만 소일거리를 찾았구나.”
“저 아이에게 무공을 가르칠 심산인가?”
지금까지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던 호화스런 흑의를 걸친 노인이 입을 열었다.
단현이 무공을 포기했다는 것, 아니, 내공을 포기했다는 것이 뜻밖이기는 했으나 그 외의 것은 미리 계획했던 대로였다.
네 사람은 우선 단현을 이곳에 가두어 놓고 정도의 무학을 수련하게 할 참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단현의 몸에서 정도의 무학과 마도의 무학이 충돌하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한 부작용은 네 사람도 대충 알고 있었다.
사실 네 사람이 이곳 삼청산에 모인 이유는 의선 제갈유가 한 권의 비급을 얻게 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제갈유는 그 별호대로 의술에 자신의 인생을 쏟아부은 인물이다.
그런 그가 산속을 헤매며 약초를 살피고 구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제갈유는 장백산에서 하나의 기관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운명인지도 몰랐다.
만일 기관에 관해 해박한 제갈세가의 사람인 제갈유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제갈유가 의술에 미쳐 산속을 헤매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못했을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제갈유는 무려 한 달의 시간을 공들여 겨우 기관을 해체하고 모종의 거처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한 한 권의 비급 천부마경.
천마 단휘의 이름이 또렷이 새겨진 비급을 손에 넣고 제갈유는 갈등했다.
강호 역사상 최강으로 군림했던 마의 하늘인 천마의 무공.
그러나 제갈유의 갈등을 오래가지 못했다.
비급을 손에 넣었으니 호기심이 일어났고 아무리 마공의 상징과도 같은 천마의 무공이라 하여도 읽어 보는 것쯤이야 별일 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천부마경을 읽어 보게 되었다.
그것이 설사 정도의 지탄을 받을 마공이라 하여도 읽기만 하고 익히지 않는다면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여타 문파들에 비해 한두 수 아래로 평가받는 제갈세가의 무공의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들떠 있는 탓도 있었다.
그러나 천부마경을 읽어 본 제갈유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천부마경은 제갈유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그 어떤 무공보다 깊은 심득을 담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마공이고 무엇이 정도의 무공이란 말인가?
제갈유의 가슴은 뛰었다.
하지만 천부마경 속의 무공은 너무나 난해했다.
제갈유는 천부마경 속의 무공의 변화를, 그 광오함을 자신이 담아낼 수 없음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갈등.
제갈세가가 천부마경을 소유해 제갈세가 무학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것이 좋을까?
그렇지 않다면 최고의 심득을 얻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인가?
고민 끝에 제갈유가 선택한 것은 후자였다.
그리고 그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남궁천의 존재였다.
천하제일의 무공을 지니고 있다는 세간의 평을 받고 있는 제갈유의 오랜 친우.
아마 남궁천과 제갈유의 오랜 우정이 아니었다면 제갈유는 전자를 택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