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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마경 1권(6화)
二章 탈거(脫去)(3)
단현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놀랍게도 천마기가 천마령혼에 반응하며 몸속의 상처들을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회복시켜 가고 있었다.
‘이것이 설마 천마령혼의 저주스러운 힘 재생의 술(術)이라는 건가?’
단현의 머릿속에 흩어져 있는 방대한 지식 속에 담겨 있는 내용.
천마령혼을 몸에서 들어내기 전까지 주변의 생명력을 빨아들여 그 모체가 되는 신체를 복구시키는 경이적인 파천의 힘.
천마가 천하를 오시하며 군림할 수 있었던 근원적인 힘이었던 마의 진정한 경지에 근접한 원력.
빠르게 생기를 찾아가는 단현의 눈을 보며 제갈유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리고 어떻게 단현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는지 명시할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숨길 것은 숨겨야 했다.
제갈유를 비롯한 네 사람이 단현을 구해낸 진정한 목적과 자신들이 단현의 모든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사실까지도.
“그럼 이제 새롭게 얻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생각이냐?”
제갈유의 물음에 단현은 눈이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새롭게 얻은 인생?
그럴지도 몰랐다.
단현이 스스로의 상황을 관조해 봤을 때 단현의 몸속에 천마령혼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천마령혼이 천마의 근원적인 마의 힘 중의 하나인 재생의 술을 담고 있지 못했다면. 단현은 결코 죽음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모르겠습니다. 단지 지금은 쉬고 싶을 뿐입니다.”
단현은 그 부분에 대해 솔직해졌다.
지금은 모든 것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눈을 뜨자마자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단현에게 일어나 있었다.
지금의 모든 상황을 단현이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기는 너무나 충격과 상처가 컸다.
“그래, 지금은 쉬는 것이 우선일 것 같구나. 좀 쉬어 두거라.”
그것은 제갈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갈유도 지금의 상황을 다시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틀어져 버렸는지.
계획의 수정은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이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제갈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홀로된 단현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을 중독시켰던 몸속의 미심쩍은 기운을 지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소멸되었다 생각했던 천마기도 아무런 이상없이 돌아와 있었다.
단현의 몸에 숨어 있던 기운은 아마도 단현이 장기간 복용한 어떤 음식과 향이 서로 반응을 일으켜 생성해 내는 독의 매개체였을 것이다.
이미 그것은 깨끗이 제거되었다.
단현의 왼팔도 멀쩡했다.
아니,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랬다.
그러나 심한 이질감을 주는 단현의 왼팔은 자신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왼손에는 극독이 몰려 있었다.
독에 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단현조차도 처음 접해 보는 생소한 느낌의 치명적인 독이.
그러나 무엇보다도 천마령혼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단현에게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천마령혼. 오직 단가의 피를 이어받은 자만이 승계받을 수 있다는, 아직 단가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천마의 진정한 유물.
그 힘이 지금 눈을 뜨고 단현과 공명하고 있었다.
도무지 그 원리를 알 수 없지만 그곳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믿을 수 없는 지식들.
단현도 단청에게 천마령혼을 이어받고 그 전능에 관해 설명을 듣기는 했다.
하지만 천마령혼은 오랫동안 그 힘을 잃은 채 잠들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단현의 심장에서 천마령혼은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 절대적인 힘은 세상의 이치를 뛰어넘어 단현의 몸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었다.
‘전설이 사실이었다는 것인가?’
단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 속에서 의지를 잃어 버렸다.
이제 겨우 지학에 이른 단현이 아무리 뛰어난 자질을 지녔다고 해도 지금의 이 상황을 납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머리로는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있어도 가슴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형제보다도 믿고 의지했었던 친우의 배신.
누가? 조영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생각했던 여인의 변심.
소민이?
단현의 기억은 묘하게 꼬여 있었다.
그것은 단현이 평소에 자신을 철저하게 숨겨 왔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단현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조금의 위화감을 느꼈다.
제갈유의 안배. 그리고 제갈세가의 힘이 결국 단현의 일부를 뒤틀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단현은 이를 알지 못했다.
아니, 알 수가 없었다.
무엇 때문에 그런 위화감을 느끼는지도 모른 채 단현은 기억을 부정하고 있었다.
죽음의 기억이 떠오르자 그때의 끔찍한 고통과 함께 아려한 아픔이 되살아났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복수?’
한 번 죽음을 경험한 단현에게 세상사가 모두 부질없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무수한 상념 속에 시간이 흘러갔다.
* *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 방문이 열리고 제갈유를 필두로 네 명의 노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바로 천산의 절벽에서 단현을 구해내었던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 중 청색의 비단옷을 입은 노인이 태산과도 같은 기운을 뿜어내며 단현에게 물어왔다.
“너는 누구냐?”
단현은 청삼의 노인을 마주보며 천마기를 갈무리했다.
“의미 없는 문답일 뿐입니다. 어르신들도 저도 결코 서로를 모를 리 없지 않습니까. 저는 마도에 몸담고 있는 사람. 그런데 저와는 적과 다름없는 어르신들께서 왜 저를 살려 주신 겁니까?”
청색의 비단옷을 입은 노인 남궁천이 뿜어내는 기세가 한층 강렬해졌다.
좁은 방 안은 남궁천이 뿜어내는 기세에 짓눌려 질식할 듯한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단현은 남궁천의 기세를 침착하게 받아냈다.
“짐작과 확인은 다르지 않겠느냐.”
남궁천의 한마디.
단현과 남궁천 사이에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단현입니다.”
그리고 단현이 먼저 그 침묵을 깨었다.
단현.
강호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중 그 이름은 모르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아니, 있기나 할까?
마의 하늘이라 칭해지는 천마신교 교주의 이름을.
남궁천의 기운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이미 단현의 정체를 알고 있던 남궁천이 놀랄 이유는 없었다.
단지 그것은 단현의 눈을 속이기 위해 남궁천이 일부러 만들어낸 흔들림일 뿐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이제는 남궁천의 말속에 노골적인 적의마저 느껴졌다.
그것은 정상적인 반응이다.
정과 마는 공존할 수 없었으니까. 지금까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단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결코 남궁천이 원하지 않던 말이었다.
단현은 우선 자신들의 무공을 이어야 했다. 그리고 만약 상황이 허락한다면 다시 강호로 나가야만 했다.
강호로 나선 단현의 남은 인생이 복수를 위한 피의 향연이라면 더할 나위 없었다.
과거 천마신교의 교주였던 단현이 천마신교를 상대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천마신교를 얽어맬 죽음의 사슬을 이어 나간다면 마도는 요동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들은 천마 단휘의 유물.
천부마경의 오의를 손에 넣어야 했다.
그것이 그들이 바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 일은 강호사를 뒤흔들 거대한 파도의 시작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 당분간 이곳에 머물면서 훗날을 생각하거라.”
“…….”
단현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배려를 담은 노인의 말에 오히려 짙은 의구심이 일어났다.
단현의 천마안이 일렁였다.
단현의 눈앞에 있는 청색의 비단옷의 노인은 남궁세가의 사람이라고 천마령혼이 속삭이고 있었다.
남궁세가와 제갈세가.
그뿐이 아니다.
곤륜파와 사천당가의 사람까지.
도대체 자신은 무슨 일에 휩쓸린 것일까?
단현의 눈동자가 깊게 침전했다.
마침내 열린 단현의 입에서 단현의 생각이 흘러나왔다.
“삼 일만 시간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남궁천의 기도가 더욱 강해지며 태산과 같은 압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강력한 압력으로 인해 단현의 입가에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렀다.
무언의 압력.
남궁천이 아무리 정도의 정점에서 군림하는 강자라 하여도 단현도 엄연한 마의 하늘.
그 자체이거늘.
단현은 본능적으로 꿈틀거리는 천마령혼의 저항을 간신히 잠재웠다.
“그럼 삼 일 후에 너의 뜻을 듣도록 하마.”
남궁천이 등을 돌렸고 언제 그랬냐는 듯 거대한 압력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단현은 다시 혼자가 되었다.
단현은 손을 들어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았다.
사실 천마령혼이 깨어난 지금 단현의 힘이라면 아무리 남궁세가의 남궁천이라 해도 기세만으로 단현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천마령혼의 불가사의한 권능은 죽음에서 단현을 건져냈다.
아직 미약하긴 하지만 단현은 지금 그런 천마령혼의 힘과 공명하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 단현이 이전의 단현과는 격이 다르게 강해졌다는 뜻이다.
그런 단현이 남궁천의 뿜어내는 압력에 피해를 입을 까닭은 단현이 스스로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하를 오연시할 힘이 지금 단현의 몸속에서 용솟음치고 있었다.
그러나 단현은 일부러 남궁천이 압박해 올 때 자신의 몸을 무방비로 노출시켰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먼저 단현은 지금의 상황을 전혀 판단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혼란이 가중된 상황에서 지금 힘을 소모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지 단현은 판단할 수 없었다.
단현은 조영에게 배신을 당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배신한 것이 조영과 소민뿐인지 아니며 천마신교 그 자체인지 모른다.
최악의 경우에는 천마신교와 적이 될 수도 있다.
천마신교는 마의 하늘.
결코 지금의 단현으로서는 천마신교를 이기지 못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도라 자처하는 세력의 힘을 이용해야 할지도 몰랐다.
지금 섣불리 충돌해서 단현에게 돌아오는 소득은 없었다.
일단은 참고 정보를 모아 상황을 판단한다.
그것이 본능적으로 단현이 내린 결론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단현은 지금 스스로의 무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무인으로서 치명적인 약점이다.
자신의 한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면 생사의 고비를 넘지 못한다.
천마령혼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자신은 그것을 어디까지 제어할 수 있는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천마령혼은 단현의 최후의 패이고, 끝까지 드러나서는 안 되는 단가의 비밀이었다.
만일 단현을 배신했던 자들 중에 천마령혼의 권능을 눈치채고 있는 자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아무리 불사에 가까운 권능을 지녔더라도 단현은 살아나지 못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