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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마경 1권(5화)
二章 탈거(脫去)(2)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단현의 몸에 기이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찢겨진 단현의 심장이 조각난 단현의 근육들이 스스로 봉합되고 이어지기 시작했다.
현세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지금 단현의 몸을 통해 일어나는 중이었다.
그 기현상의 중심에는 천마령혼이 존재하고 있었다.
불사의 힘.
재생의 공능이 천마령혼을 통해 펼쳐지고 있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것이야말로 천마의 피를 이은 단가가 생존해서 천마신교를 지켜올 수 있었던 근원의 힘이라는 것을.
심지어는 천마령혼의 소유자 단현조차도 모르던 일이었다.
죽었던 단현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머물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매던 단현의 정신이 다시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단현은 부활하고 있었다.
그때 단현이 죽어 있는 곳으로 네 개의 신형이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네 개의 신형은 마치 단현의 죽음을 사전에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단현의 앞에 내려섰다.
“시체라 하지 않았나?”
그중에 한 명이 아직 죽지 않은 단현을 보고 놀라며 말했다.
“이상하군. 죽이지 않는다면 훗날 그들이 당할 것임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
“죽일까?”
의문 섞인 목소리가 오가는 와중에 네 명의 시선을 잡아끈 한마디.
“잠깐, 기왕 이렇게 된 것 이 아이를 백분 이용해 보면 어떤가?”
“어떻게 이용한다는 것인가?”
“이 아이에게 천부마경을 남기는 것이야.”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가 오갔다.
“마두에게 힘을 쥐어 주자는 소리인가?”
놀라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단현을 마두라 호칭하는 것을 보면 이들은 소위 정파라 자처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정파의 인물들이 어째서 마의 하늘이 자리 잡고 있는 천산에 있는 것일까.
“중간에 약간의 상황만 비틀어 주면 이 아이가 마교로 복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야.”
“인두겁을 쓰고 태어나 어찌 그런 일을 하겠나?”
“이제 더 이상 남은 방법도 없지 않은가? 시체라도 해부해서 단서를 찾아내려 했었네. 그런데 그 진전을 이은 아이가 여기 있지 않은가.”
한동안 소란스럽던 사람들이 침묵에 잠겼다.
주위는 아직도 울부짖는 폭우의 괴성뿐.
“아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네.”
침묵을 깨고 침통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
“그게 무엇인가?”
“생사뇌중혈(生死腦中頁).”
“생사뇌중혈?”
“우리 제갈세가에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의술 중에 잘못 변형된 몇 가지 술법이 있네. 그중 하나이지.”
그렇다면 지금 단현의 앞에 서있는 사람이 당금 무림에서 오대세가의 일가로 군림하는 제갈세가의 사람이란 말인가.
“사람의 머릿속에는 뇌가 있지. 그 뇌는 사람이 생각하고 기억하는 일을 전담하지. 우리는 그 뇌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묘리를 찾아낼 수 있었네.”
“뇌를 건드린다는 건가?”
“그런 셈이지. 뇌 속에 이 아이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기운을 밀어 넣는 것이지. 그와 함께 이 아이가 갖고 있던 기억을 비틀어 버리는 것이네.”
제갈세가를 언급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그런 것도 가능한 것인가?”
“실패할 수도 있네. 물론 우리가 의도한 대로 완벽하게 되지 않을 수도 있지.”
“말하자면 미완의 의술이군.”
“미완일 뿐만 아니라 인세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
“인세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을 잘도 알고 있군.”
어딘가 비꼬임이 담겨진 듯한 말투.
“그래서 세인들이 나에게 의술에 미쳤다고 하지 않던가.”
“한 번 시도나 해 보지.”
“허허. 과연 천마 단휘가 마경이라 이름 붙일만 하군. 당금 천하에 최고의 반열에 올라선 우리가 인륜을 벗어나게 할 만큼 지독한 물건이니.”
어느 사이에 네 사람은 의견이 하나로 모아진 듯했다.
“그전에 몇 가지 안배를 철저하게 해야 할 것이야.”
“그래야겠지. 이 일은 우리의 업으로 마무리 지어 후세에는 바른길만을 남겨야 할 것이니.”
그러나 사람들의 목소리는 침울했다.

* * *

아련했던 의식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동반된 극심한 고통들.
“우욱!”
단현은 거친 신음성과 함께 신형을 일으키려 했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격렬한 통증이 전신을 휘감았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단현의 천마기는 생존을 위해 꿈틀거리고 있었다.
‘죽지 않은 것인가?’
단현은 고통을 감내하며 본능적으로 몸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다.’
놀랍게도 단현의 몸은 거의 원상에 가깝게 복구되어 있었다.
조영에게 잘렸던 왼팔은 심한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틀림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소민에게 찔린 심장도 단현의 몸에 뜨거운 피를 뿜어 주고 있었다.
‘나는 틀림없이 죽었을 텐데…….’
조영의 웃음이, 소민의 비수가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신경을 거슬리는 고통은 살아 있다는 증거.
그런 단현의 상념을 깨고 어디선가 노인의 목소리가 단현의 귀로 흘러들어 왔다.
“이제 정신이 좀 드느냐?”
그제야 단현은 정신을 수습했다.
그러나 단현의 의지에 순응하는 정신과 달리 단현의 몸은 아직 단현의 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간신히 확보한 시야를 통해 어렴풋한 빛무리가 점점 사물의 형상을 갖추어 갔다.
보이는 것은 칙칙한 천장.
단현이 힘들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예의 그 목소리가 이를 제지했다.
“아직 기력이 회복되지 않았을 테니 무리하지 말아라. 그나저나 그 몸을 하고도 용케 살아났구나.”
“제가 죽지 않은 것입니까?”
“내가 산사람이고 네가 내 눈에는 귀신으로 보이지 않으니 아마도 그런 것이겠지.”
말속에 어딘가 비꼼이 느껴졌다.
단현이 겨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백색의 의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노인이 서책을 뒤적이며 무엇인가를 적어 나가고 있었다.
“이곳은 어디입니까?”
“삼청산이다.”
단현은 삼청산이 어디인지 떠올려 보려 하였으나 극심한 두통이 이를 저지했다.
“무리하지 말거라. 아무리 괴물 같은 몸이라도 어차피 피육으로 이루어진 것이거늘.”
“노인장께서 저를 살려 주신 것입니까?”
노인은 잠시 단현을 보며 침묵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가벼운 한숨.
“내가 아니라도 너는 살아났을 것이다. 하지만 눈과 팔은 어찌 되었을지 모르지.”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단현은 몸속의 천마기를 일으켰다.
그러자 강력한 마기가 좁은 방 안을 휘감아 채웠다.
그리고 천마기에 의해 단현은 자신의 몸 상태를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천마령혼이 반응하고 있다. 이전에는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그런 단현의 상념을 깨고 노인의 목소리가 비집어 들었다.
“아이야, 도대체 너는 누구냐?”
단현의 무심한 눈길이 노인의 깊은 눈빛과 얽혔다.
단현은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소민의 비수가 자신의 심장을 헤집던 그 지독한 느낌을.
아득해지던 의식 속에서 느꼈던 지독한 절망감을.
생사를 가로질렀던 또렷한 아픔이 단현을 냉소적으로 만들었다.
“인생의 패배자이지요. 저에게 이제 과거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단현은 자신의 과거를 부정했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조차도 부정하고 있었다.
노인이 단현을 보는 눈빛이 한층 날카로워졌다.
“하나 네가 보인 마기를 나는 쉽게 보아 넘길 수 없구나.”
단현의 눈이 노인을 직시하고 있었다.
지금 단현의 눈에 보이는 사물은 이전과 판이하게 달랐다.
영롱한 빛이 사물을 묘하게 휘어감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단현의 머릿속에는 이전까지 단현이 모르던 것들이 각인되어 있었다.
믿을 수 없게도 그것은 광대한 무공이었다.
아니, 무공을 넘어서는 무엇이었다.
단현은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판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단현의 본능은 그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꿰뚫고 있었다.
노인의 몸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자색의 기운.
그 독특한 기운이 제갈세가만의 고유한 호흡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그건 노인장께서 제갈세가의 사람이기 때문입니까?”
단현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그것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단현에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기가 광채를 품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그 광채 중에서 노인이 자색의 광채만을 흡입하는 것도.
하지만 단현에게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그것이 제갈세가가 가진 고유의 심법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단현은 그것이 천마령혼의 잠재된 힘이 깨어져 아주 미세한 양이지만 천마령혼과 자신의 신체가 공명하며 생기는 현상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지금 단현이 보고 있는 세상이 과거 천마가 세상을 바라보았던 천마안의 세상과 닮아 있다는 것도.
그러나 이를 알 리가 없는 노인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너는 어떻게 내가 제갈가의 사람인 것을 알았느냐?”
“그것은 제갈세가가 무공의 일가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단현으로서는 그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단현이 보고 있는 세상을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세상을 그리고 단현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그 방대한 지식을 무엇으로 설명한다는 것인가.
아니, 무엇보다 단현 그 자신이 지금 가장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천마령혼에 의해 비롯된 것이라는 것만 짐작할 뿐이다.
단현의 지식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달랐다.
그리고 단현은 지금의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놀랍구나. 설마 마공을 익힌 자의 경지가 그 정도로 올라설 수 있다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제갈세가의 사람이며 단현을 죽음에서 구해낸 네 사람 중의 한 명인 제갈유는 실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믿기 어렵구나. 설마 이 아이가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나의 대법이 잘못된 것일까?’
제갈유는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었다.
제갈유. 그가 누구던가.
중원에서도 신기제갈로 칭송받는 제갈세가에서도 정점에 위치한 사람이었다.
세인들은 그를 의선으로 불렀다.
인체에 관해서 천하에서 가장 해박한 지식을 보유한 사람 중의 한 명이 그였다.
그런 제갈유조차도 지금 단현의 말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어째서?
“저를 살려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현의 질문이 이어졌다.
단현은 마도의 사람이고 제갈유는 정도의 사람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 이를 인정하고 있었다.
결코 한 하늘을 머리 위에 두고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
차이점이라면 제갈유는 처음부터 이러한 사실을 알고 단현의 생명을 구했고 단현은 불가사의한 감각을 바탕으로 이를 눈치챘다는 것.
“죽어 가는 생명을 살리려 노력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더냐.”
제갈유의 대답은 통속적이었다.
이는 지금 제갈유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혼란을 겪는지 은연중에 대변해 주는 말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