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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마경 1권(4화)
一章 배신(背信)(4)


작은 정원에서 꽃을 보살피던 소민이 조영을 발견하고 웃음 지었다.
아직 여물지 못했지만 뚜렷한 이목구비는 그녀가 자라면 절세가인이 될 거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오라버니, 오셨어요.”
뜻밖의 소리였다.
소민이 조영을 오라비로 부르다니.
조영이 냉정한 눈빛으로 소민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때가 왔다.”
조영의 말에 소민의 눈빛이 흔들렸다.
소민의 곁에서 시중들던 시비들의 안색도 급변했다.
“꼭 그분을 죽여야만 하나요?”
소민의 목소리는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남자에게 빠져 아버님의 뜻을 거스를 셈이냐?”
“그럴 리가 있나요. 하지만 굳이 사람을 죽여야 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요.”
“그는 천마의 후손이다. 살려 둔다면 언젠가는 비수가 되어 도리어 아버님을 찌를 것이다. 너는 그것이 좋단 말이냐?”
소민이 고개를 푹 숙였다. 소민은 원래 천애고아였다.
그런 소민을 거두어 길러 준 것이 지금 조영의 아버지인 조혜였다.
소민의 기억에 조혜는 인자하고 자상하며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조혜의 평생 숙원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힘이 근원이 되는 세상이 아닌 사람과 법이 우선이 되는 세상의 건설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조혜는 사지를 넘나들었다.
그런 조혜가 어느 날 소민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해 왔다.
천하를 위해 한 사람을 제거해 주지 않겠냐고.
소민은 그런 조혜의 뜻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소민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하늘이 우중충한 것이 곧 비라도 한바탕 퍼부을 것 같았다.
그런 소민의 귀로 조영의 맑은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모두 철저히 준비하라.”
“존명!”
조영의 말에 모든 사람들이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소민의 거처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조혜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조혜의 사람들은 곧 조영의 사람들이었다.
소민은 가슴속의 비수를 꼭 움켜쥐었다.
이번 한 번만 사람을 죽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를 셈이었다.
그녀의 가슴에 그날의 비극이 떠올랐다.
‘어째서 하늘은 나에게 이리 고통만을 주는 걸까? 어째서 하늘은 나를 이토록 저주하는 걸까?’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시비의 목소리가 소민의 상념을 깨웠다.
조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번 한 번이다. 괴롭더라도 천하를 위해 그리고 아버님을 위해… 구천을 떠돌지도 모르는 그분들을 위해 이번만 참고 이겨내자.”
“네, 오라버니.”
소민도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었다.
오늘은 긴 하루가 될 것 같았다.



二章 탈거(脫去)(1)


단현의 뜻밖의 소식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교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여기까지는 평상시와 다름이 없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조영은 의무적으로 단현에게 찾아와 보고서를 올렸으니까.
“소민님의 거처에서 기다린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상했다.
단현도 얼핏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조영이 종종 소민의 거처를 드나든다는 것을.
하지만 단현은 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소민은 단현의 정혼녀다.
뛰어난 미모를 지니고 있었기에 남자라면 누구나 탐낼만 했다.
단현은 나이에 비해 알고 있는 것이 무척이나 많았다.
여자에게 집착하게 되면 그 사람은 군림할 수 없다.
혹시나 천성이 낭만적이며 사랑이 너무 깊어 둘만의 인생을 사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면 그것도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군림자는 여자를 탐닉하면 군림하지 못한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었다.
단현이 알고 있는 것을 조영이 모를 리는 없었다.
그리고 조영은 군림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적어도 단현이 알고 있는 조영은 그랬다.
결코 여자 하나 때문에 자신이 지금까지 힘들게 쌓아온 권력을 버릴 사람은 아니었다.
행여나 그럴 일은 없었지만 만일 이 일이 사실이라면 그것을 빌미로 조영을 천마신교에서 축출하면 된다.
어느 쪽이든 단현이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단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소민의 거처로 향했다.
단현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곧 비라도 퍼부을 듯하늘은 어두컴컴했다.
단현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내궁에는 하늘이 없다. 물론 창문도 없다.
내궁은 거대한 철로 축조된 밀폐된 공간이었다.
그러한 까닭에 단현은 내궁에 있는 동안 하늘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생긴 버릇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천문을 읽는 눈도 뛰어났다.
최근에 단현의 눈에 비친 천문은 요동치고 있었다.
하지만 단현의 마음에 가장 걸린 부분은 자신의 몸속에 숨겨진 한 가닥 알 수 없는 미약한 기운이었다.
일선연이 내궁을 떠나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무공을 점검하던 단현은 어렴풋이 자심의 몸에 자신도 모르는 기운이 한 가닥 존재하는 것을 감지했다.
제어하려 했으나 그것은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단현은 한참의 시간을 소모해서 그것이 어떤 약의 기운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일단 몸에 아무런 해는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기운인지 어떤 약에서 생성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단현은 천마신교의 교주고 그 이전에는 소교주였다.
당연히 몸에 좋다는 갖가지 영약들을 밥처럼 먹고 살아왔다.
그 기운이 어떤 약에서 흘러들어 왔는지 판별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의원이라도 불러야 하나?’
그러나 그것도 그다지 단현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큰일도 아닌데 굳이 의원을 불러서 소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당장 위험한 기운도 아니었으니까.
단현이 소민의 거처에 들어서자 시비들이 깍듯하게 안으로 단현을 안내했다.
단현은 소민의 거처로 들어서며 주위로 기립한 경호무사들의 얼굴이 낯선 것을 보고 무심코 한마디 툭 던졌다.
“뭐야, 낯선 얼굴들이 제법 많이 있네.”
천마외궁이 천마내궁에 비해 출입이 자유로운 편이라 해도 엄연히 교주의 거처였다.
거주가 허락된 사람은 천마의 피를 이은 사람과 교주와 관련된 여인들 그리고 건물을 관리하는 사람들과 경호무사들뿐이었다.
이들은 모두 엄중히 선별되었고 최종적으로 단현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어머님께서 보내주신 분들이에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필요치 않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소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단현에게 예를 올리며 대답했다.
천마외궁의 거주에 단현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것은 원칙적인 이야기다.
지금은 그 일을 단현의 생모인 진영이 대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집무실도 아니고 이곳이라니 무슨 일이라도 있어?”
단현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조영을 바라보았다.
“실은 은밀히 교주님께 상의 드릴 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단현의 손짓에 경호무사와 시비들이 모두 자리를 비켰다.
소민이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단현의 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단현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이제 말해 봐.”
조영이 잠시 침묵하더니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천마성에 살수가 잠입했다고 합니다.”
“살수? 그럼 색출해서 잡아 죽이면 되잖아. 그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단현은 대답하면서도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단현이 아는 조영은 결코 이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천마신교의 두뇌라 불릴 정도로 명석하고 치밀한 심성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허투루 말을 내뱉는 적이 없이 과묵한 편이었다.
단현은 그런 조영이 실없는 소리에 가까운 말을 내뱉자 의아한 기분이 든 것이다.
“그런데 그자의 목적이 교주님이라는 정보가 있습니다.”
단현은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대었다.
이곳은 천마성의 천마궁이다.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접근조차 불가능한 곳이다.
또한 천마궁에는 실력이 뛰어난 경호무사들이 즐비하다.
그들 중에는 진영조차 모르는 인물들도 섞여 있었다.
조영의 시선이 방 안에 피어오르는 향으로 향했다.
“교주님은 저 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단현은 얼굴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나타냈다.
“지금 나랑 말장난이나 하자고 이곳으로 불러낸 건가, 조영?”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저는 사실만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단현이 천마기를 끌어 올렸다. 아니, 끌어 올리려 했다.
‘사라졌다?’
단현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아주 작은 단현의 표정 변화에 조영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야 느껴지는 게 있으십니까?”
단현은 그제야 조영이 술수를 부린 것을 알아차렸다.
“천마궁 안에서 나를 죽이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나? 우습군.”
조영이 여유롭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영의 패도적인 마공의 기세가 점점 거칠어졌다. 단현이 향을 바라보았다.
“궁금하십니까? 고작 저따위 향 한 대에 내공을 잃어 버렸다는 것이?”
조영의 이야기로 확실해졌다.
단현이 느꼈던 알 수 없던 기운은 독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기운이 저 향과 만나면서 내공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든 것이 틀림없었다.
“아무도 없느냐?”
단현이 조금 큰 목소리로 밖을 향해 외쳤다.
조영이 그런 단현을 보고 키득거렸다.
“소용없습니다, 교주. 제가 미쳤다고 이곳에서 교주를 만나려 했겠습니까?”
단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천마궁 안이라고 너무 안일하게 대응했다.
내공의 소실은 아무래도 타격이 너무 컸다.
“근본도 모르는 계집 따위를 역시 궁 안에 들이는 것이 아니었어.”
겉으로는 태연한 신색을 최대한 유지했지만 단현의 마음은 이미 그렇지 못했다.
단현은 애써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이 상황을 타계할 방법을 모색했다.
“그거야 단현 교주의 잘못이 아닙니다. 굳이 잘못을 찾자면 전대 교주인 단청의 잘못이지요.”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당신을 죽여서 얻는 것이라고는 마교의 교주자리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단현이 허리의 검에 손을 가져갔다.
천마신교의 교주직을 상징하는 신물 중 하나 천마제왕검.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가짜라는 것.
지금 단현이 지니고 있는 천마제왕검은 겉모습만 정교히 베껴낸 모조품이었다.
만일 단현이 천마신교 교주의 상징인 천마제왕검과 천마사환을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면 비록 내공이 소실된 상황이라도 이처럼 열세에 몰릴 것은 아니었다.
천마제왕검과 천마사환은 마도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마병.
하지만 단현은 아직 진짜 천마제왕검과 천마사환을 사용할 수 없었다.
부족한 천마기로는 두 마병을 제어할 수 없었다.
비록 제어할 수 없었다 할지라도 단현이 두 마병을 지금 가지고 있었다면 큰 힘이 되는 것은 굳이 부정할 수는 없었다.
“칫!”
단현이 먼저 움직였다.
소민의 거처만 빠져나간다면 살아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천마궁 전체가 조영의 손아귀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단현의 가짜 천마제왕검이 발검되며 조영을 향해 휘몰아쳐 갔다.
조영은 한껏 내공을 개방하며 아낌없이 단현을 압박했다.
조영이 뿜어내는 거대한 압력에 단현의 움직임이 조금 느려졌다.
찰나의 순간 단현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조영의 가슴을 스치며 지나쳤다.
단현은 그 기세를 이용하여 곧장 천마제왕검을 조영을 향해 내던지며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경호무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허공으로 신형을 뽑아 올리며 단현에게 검을 휘둘러 왔다.
단현은 재빠르게 몸을 회전시켜 경호무사들의 검세를 벗어났다.
그러나 내공이 뒷받침되지 않은 단현의 무공은 그 위력이 너무나 미약했다.
간신히 경호무사들을 피해 내려선 곳에 조영의 신형이 재차 쇄도해 들어왔다.
단현은 이를 악물고 신법을 펼쳐 조영의 검을 피해냈다.
순식간에 단현은 방의 한쪽 구석으로 몰렸다.
소민은 그곳에서 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칫!”
단현이 구석에서 벗어나려 할 때 소민의 손이 번뜩이는 것을 보았다.
푹―
단현이 자신의 심장에 꽂힌 비수를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어서 단현의 왼팔에 벼락같은 통증이 일었다.
조영의 일검이 단현의 왼팔을 통째로 잘라내 버린 것이다.
단현의 신형이 서서히 무너졌다.
단현의 눈빛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민을 마지막으로 담고 있었다.
조영은 단현의 품을 뒤졌다.
교주를 상징하는 천마령패가 있었다.
단현의 떨어진 왼팔의 손가락에서 천마사환을 챙기고는 천마제왕검을 들었다.
이것으로 천마신교의 교주를 상징하는 세 가지 신물이 모두 조영의 손에 들어왔다.
조영의 눈빛이 일렁였다.
‘이것으로 천마신교는 내것이 된다! 아버님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졌다!’
“시체는 어떻게 할까요?”
조영은 단현의 숨이 완전히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단현의 몸에 꼽힌 비수를 뽑았다.
“천산 뒤쪽의 적당한 절벽에 던져 두고 오너라. 만일 필요한 일이 생길 경우 시체를 끄집어내 공표해야 하니.”
“존명!”
사내들은 복면을 뒤집어쓰고 단현의 시체를 포대에 담은 후 사라졌다.
조영은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소민을 보고 한마디 툭 던졌다.
“아버님께서도 네 마음을 이해하실 거다. 오늘은 고생했으니 쉬고 이후 네 마음이 동하는 대로 움직이도록 하자. 오늘 너의 고통이 훗날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될 것이다.”
우르릉―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폭우가 세상을 모두 집어삼킬 듯 울부짖는 듯했다.